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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고발 수사 ‘동문서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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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위 ‘제약회사 약가우대’ 사기혐의 수사 의뢰… 검찰은 관세법 위반혐의로 약식기소

5년 전인 2011년 4월,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전직 수석연구원이었던 최성조 박사(55)는 국민권익위를 찾았다. 자신의 전 직장이 만들지도 않은 의약품을 만들었다고 허위신고해 부당하게 약가우대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권익위는 최 박사의 주장에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보고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에 들어간 지 3개월, 권익위는 결론을 냈다. 유나이티드제약이 보험약가를 과다하게 지급받은 혐의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권익위는 대검찰청에 사기 혐의로 유나이티드제약을 수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에도 조사를 요청했다.

제약사는 신약을 개발할 뿐만 아니라 이미 다른 회사에서 개발한 신약을 모방한 복제약을 만들기도 한다. 정부는 제약회사의 기술수준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원료(출발물질)에서부터 복제약을 만드는 경우 원본 의약품에 준하는 높은 약가를 책정해준다. 높은 기술수준을 보유한 제약사일수록 비싼 약값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중간물질에서 의약품을 만드는 경우 상대적으로 낮은 약가만 인정받을 수 있다.

10월 7일 국회 보건복지위의 식약처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질의를 하고 있다.

10월 7일 국회 보건복지위의 식약처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질의를 하고 있다.

거래명세서에 드러난 여러 허점들

그런데 최 박사가 유나이티드제약에 입사한 직후인 2007년 8월, 정부는 약가 상한선을 인정받던 복제약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116개 약제가 부당하게 상한금액을 유지하고 있었던 점이 드러난다. 116개 약제 중에서는 유나이티드제약의 품목도 있었다. 이후 최 박사는 여러 복제의약품 제조기술을 ‘사후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말했다. 최 박사는 특히 2개 의약품(덱시부프로펜, 독시플루리딘)에 대해서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아예 생산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2011년 권익위가 각 부처에 유나이티드제약 건에 대한 조사를 요청한 이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회사가 실제 신고된 내용대로 제대로 의약품을 만들었는지 조사했다. 회사는 심평원에 거래명세서, 제조기록서 등을 제출했다.

그런데 회사가 제출한 덱시부프로펜(진통제) 관련 거래명세서에 허점이 있었다. 회사가 재료를 구입한 시점은 2008년 1월이었는데, 회사 주소가 ‘세종시’로 나온다. 또한 거래명세서 곳곳에 도로명 주소가 발견됐다. 세종시라는 이름은 2006년 12월 확정됐지만, 세종시가 정식 출범한 것은 2012년 7월이다. 도로명 주소도 2012년 1월부터 사용됐다. 반면 2009년 거래명세서에는 회사 주소가 ‘충남 연기군’으로 나오며, 도로명 주소도 쓰이지 않았다.

최 박사는 회사가 화학 이론상으로 불가능한 양을 생산했다고도 주장했다. 덱시부프로펜의 출발물질은 4-이소부틸벤질클로라이드(IBBC)다. IBBC에 3~4차례 화학처리를 거치면 덱시부프로펜이 생산된다. 최 박사의 설명은 이렇다. 화학이론상 두 가지 이상의 물질을 결합해 새로운 물질이 나올 경우, 새 물질의 생산량(몰 넘버)은 재료가 되는 물질의 생산량 중 작은 것 이하가 될 수밖에 없다. 회사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회사는 IBBC 167㎏과 요오드화메틸 30㎏에서 덱시부프로펜 100㎏을 생산했다. 하지만 최 박사는 “이 경우, 이론상 최대로 생산할 수 있는 덱시부프로펜 양은 43㎏이 되어야 화학이론과 맞는 것이다. 회사가 실제 100㎏를 생산했다면 노벨상을 받을 만한 위대한 발견을 한 것”이라며 황당해했다.

항암제의 원료의약품인 독시플루리딘에 대해서도 회사가 생산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최 박사는 주장한다. 독시플루리딘의 출발물질은 플루오르유라실이다. 회사가 심평원에 제출한 거래명세서에도 이 물질을 구입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제조기록서에는 독시플루리딘의 주원료가 플루오르유리딘으로 되어 있다. 두 물질의 이름은 비슷하지만 분자구조는 완전히 다르다. 플루오르유라실에 다른 분자들을 결합해야 플루오르유리딘이 생성된다. 최 박사는 “회사가 구입한 출발물질을 가지고는 제조기록서의 방법으로 독시플루리딘을 생산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독시플루리딘의 거래명세서에도 도로명 주소와 ‘세종시’가 등장한다. 회사가 출발물질인 플루오르유라실을 실제로 구입했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최 박사의 고발 내용이 사실이라면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의약품을 생산하지 않았거나 그 기술수준을 부풀려서 높은 약가를 인정받아온 셈이다. 지난해 10월 결정된 권익위의 신고심사의견서는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300억원가량을 편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식약처를 상대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의혹을 질의했던 윤소하 의원실은 최대한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50억원가량 부당한 이득을 받았다고 봤다.

국민권익위 재조사 요구에도 수사 종결

최 박사의 문제제기에 회사 측은 ‘이미 다 끝난 일’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강덕영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대표는 10월 7일 국정감사에 출석해 “회사에서는 이 사실을 가지고 5년 동안 지금 재판을 받아오고 있다. 중앙지검, 고검, 대검에서 (수사를) 받았다. 일부는 무혐의가 났고, 일부는 죄가 있다고 해서 5000만원과 3억원의 과징금을 낸 것이 5년 동안 저희가 겪었던 어려움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최 박사는 이미 해결된 문제를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일까.

회사가 당당한 근거는 검찰 수사에서 찾을 수 있다. 권익위는 검찰에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을 사기 혐의로 수사해달라고 했다. 검찰은 회사가 일부 품목의 경우 출발물질이 아닌 원료의약품을 수입했다며 관세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했다. 법원은 강 대표에게 벌금 5000만원, 추징금 3억2000만원, 회사에 대해 벌금 2억원, 추징금 278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검찰은 회사가 사기를 쳤는지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았다.

국민권익위도 검찰의 처분이 옳지 않다고 보고 재조사를 요구했으나 2014년 10월 서울중앙지검은 2차 수사를 종결했다. 검찰은 “이 사건은 서울세관에서 송치한 사건으로, 세관공무원은 관세법 등 특정 죄명에 한하여 수사권이 인정되고, 검찰도 송치된 범죄에 한해 보완수사 후 처분하는 게 일반적인 사건처리 실무”라고 밝혔다. 애초 관세법 위반 혐의로 송치된 사건이기 때문에 사기 혐의를 수사하지 않았다는 논리인 것이다.

권익위에서도 검찰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권익위의 한 관계자는 지난 8월 최 박사와의 대화에서 검찰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최 박사에게 “우리는 사기 혐의로 이첩을 했는데, 사기에 대해서는 전혀 한마디도 없다. 이런 동문서답식의 수사에 대해선 얼마든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 검사장으로 있던 사람이 변호를 하는데, 안 봐도 뻔하지 않냐”라고도 말했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2008년 덱시부프로펜 출발물질 거래명세서. 주소에 도로명 주소와 ‘세종’ 표기가 보인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2008년 덱시부프로펜 출발물질 거래명세서. 주소에 도로명 주소와 ‘세종’ 표기가 보인다.

검찰의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압수물품 목록의 일부. ‘원료의약품을 자가생산할 수 없음이 기재된 내부보고서’의 존재가 확인된다.

검찰의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압수물품 목록의 일부. ‘원료의약품을 자가생산할 수 없음이 기재된 내부보고서’의 존재가 확인된다.

최 박사도 검찰 수사에 불만이 있었다. 1차 수사 당시인 2013년, 최 박사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부당하다고 여겨 서울고검과 대검에 항고와 재항고를 신청했지만 고발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된 바 있다. 그래서 지난해 3월 최 박사는 공익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서울서부지검에 직접 강덕영 대표 등을 고발했다. 최 박사는 고발장에 “사기 등으로 공익신고한다”면서 죄목을 명확하게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사기 혐의에 대해서도 불기소 처분했다. 최 박사는 이에 불복해 항고장을 제출했다. 최 박사는 “고발 이후 서부지검에 출석해 기존에 검찰이 압수한 수사자료를 근거로 수사관에게 설명을 했다. 하지만 설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그날 하루뿐이었다. 검찰은 이제 수사가 시작됐으니 또 부르겠다고 말했지만 더 이상 저를 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기관을 믿을 수 없었던 최 박사의 발길이 향한 곳은 국회였다. 시민단체 관계자 ㄱ씨의 도움을 받아 ㄱ씨와 인연이 있는 정의당의 윤소하 의원실을 찾은 것이 올해 6월 초였다. 이후 의원실은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 등과 면담했다. 7월에는 보건복지부에 건강보험공단이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게 해달라고 의뢰하기도 했다. 이미 복지부는 2014년 3월 건강보험공단에 손해배상 청구 등 후속조치를 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공단 측은 “승소 가능성이 낮다”며 소송을 진행하지 않았다. 복지부는 윤 의원실 면담 이후 다시 건강보험공단에 공문을 보내 “손해배상 청구 등 필요한 후속조치를 조속히 취하여 주기 바란다”고 했다. 아직 건강보험공단은 소송 진행 여부를 검토 중이다.

제보자의 항고는 고발인 아니여서 기각

국정감사 기간이 임박한 9월 1일, 윤 의원실은 최 박사의 제보 내용을 토대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10월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강덕영 대표와 최성조 박사를 부르기도 했다. 최 박사 측은 국정감사를 계기로 자신이 제기한 2개 의약품을 실제 회사가 만들었는지 공개검증의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ㄱ씨는 “애초 의원실에 강 대표를 상대로 직접적인 질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강 대표에게 덱시부프로펜과 독시플루리딘을 실제로 생산했는지 묻고, 최 박사와 다른 대답이 나올 경우 식약처를 통해 공개검증을 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의원은 강 대표에게 질의하지 않았다.

국정감사 기간 동안 윤소하 의원실은 40건이 넘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하지만 유나이티드제약과 관련한 질의사항은 보도자료로 나오지 않았다. 윤 의원실 측은 “국정감사에서 9월 보도자료보다 새로운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따로 보도자료는 내지 않았으며, 의원 질의 내용은 의원실에서 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실은 “식약처에서 유나이티드제약 건을 조사하고 있고, 건보공단도 소송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꾸준히 살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익제보자 흠집내기 막으려면

내부고발의 대상이 된 기관은 일단 고발자의 약점을 공격한다. 고발자의 도덕적 정당성을 떨어뜨려 고발자 주장의 신빙성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다. 10월 7일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강덕영 유나이티드제약 대표도 같은 전략을 썼다. 그는 발언을 시작하면서 “고발인(최성조 박사)이 저희 회사에서 퇴직하면서 1억원을 회사에 요구한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강 대표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 최 박사가 권익위에 공익제보를 하자 회사는 최 박사를 공갈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은 혐의가 없다고 보고 불기소 처분했다. 오히려 검찰은 유나이티드제약이 최 박사와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요구했고, 회사가 최 박사에게 복직 및 금전 지급을 제의했다고 봤다. 강 대표의 발언과 정반대로, 회사가 최 박사에게 1억원을 강제로 지급했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이영기 호루라기재단 이사장은 “공익제보의 대상이 된 쪽에서는 주로 제보자에 대해 먼지털기식으로 과거를 털어 꼬투리 잡힐 만한 것들을 찾아낸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지난해 하나고등학교의 입시성적 조작을 폭로한 전경원 교사의 사례를 들었다.

지난해 8월, 전 교사는 서울시의회 행정사무조사에 출석해 여학생을 떨어뜨리고 남학생을 합격시키는 식으로 입학생 성비를 맞춰 왔다고 증언했다. 이후 하나고는 전 교사에 대한 징계를 추진한다. 징계사유 중에는 전 교사가 동료교사를 성희롱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2010년, 전 교사는 다른 교사들과 함께 한 여 교사의 어머니를 문병했다. 이 자리에서 전 교사는 해당 여 교사와 악수를 나눴다. 그런데 이 일이 5년 뒤 성희롱으로 둔갑해 징계위원회에서 거론된 것이다. 이 이사장은 “공익제보자를 괴롭히는 전형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이사장은 제보자의 도덕적 흠결과 제보자의 제보내용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조 박사는 연구원 재직시절 허위로 연구노트를 작성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비록 회사의 강권이 있었고, 나중에 돌려줬다고는 하나 회사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이영기 이사장은 “삼성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내부비리를 폭로했을 때 ‘그동안 삼성이랑 같이 일하고 돈 받다가 이제 와서 딴소리냐’는 말이 많았다. 민간인 불법사찰을 폭로한 장진수씨도 ‘너도 불법에 가담한 사람 아니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여럿 봤다. 하지만 음지에 있던 사람이 빨리 양심선언을 하고 전체적인 범죄사실을 밝혀내는 게 공익의 측면에서 더 중요한 일 아니냐”고 말했다.

공익제보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현재보다 폭넓게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현행 공익제보자 보호법에 따르면 제보내용과 관련해 금전적 이득을 취했거나, 법 2조 1항에 열거된 법률이 아닌 내용을 제보했을 경우 공익신고자 보호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이 이사장은 “공익제보가 가능한 법률을 열거할 일이 아니라, 좀 더 포괄적으로 공익제보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진수씨처럼 한때 범죄에 가담했던 이가 양심선언을 하는 경우, 제보자 역시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이 이사장은 “장씨처럼 범죄에 단순가담했던 이가 내부문제를 폭로하는 경우라면 법적으로 처벌을 면제해줘야 좀 더 많은 이들이 용기를 내서 내부고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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