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게오르크 펜츠 <험담꾼>-저 악마의 혓바닥에 자물쇠를 채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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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으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에 펜츠가 그림을 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유가 어찌되었든 펜츠의 이 그림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 검열의 속성을 드러낸다. 검열은 한 사회의 질서에 위협이 될 만한 목소리를 차단한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무엇인가 말을 꺼내려는 듯 입을 벌리고 있으나 혀에 자물쇠가 채워져 말을 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그의 귓가에는 흉측하게 생긴 도마뱀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도마뱀은 무언가 속삭이듯, 남자의 귓가에 혓바닥을 날름거린다. 여기서 우리는 이 남자의 혀에 자물쇠가 채워진 이유를 알 수 있다. 날개가 달린 이 도마뱀은 악마를 상징한다. 악마는 남자에게 무엇인가를 속삭이고, 남자는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려 든다. 이 그림은 보는 이들에게 악마의 목소리를 차단할 것을 아주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기독교인의 책무임을 말하고 있다.

지금 이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림이 제작되었던 16세기 독일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림에 담긴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불온한 이야기를 꺼내는 악마의 목소리에 자물쇠를 채우는 것은 어느 시대에서나, 어떤 집단에서나 응당 행하여야 할 일로 여겨져 왔으니까.

게오르크 펜츠, <험담꾼(Der falsche Klaffer)>, 목판화, 1536, 종교개혁기의 신학자 한스 굴덴문트(Hans Guldenmund)가 1547년에 출간한 책에 삽화로 사용됐다./권혁빈 평론가 제공

게오르크 펜츠, <험담꾼(Der falsche Klaffer)>, 목판화, 1536, 종교개혁기의 신학자 한스 굴덴문트(Hans Guldenmund)가 1547년에 출간한 책에 삽화로 사용됐다./권혁빈 평론가 제공

‘악마의 속삭임’ 확산 막자는 판화

이 그림은 16세기 독일의 화가 게오르크 펜츠(Georg Pencz)의 <험담꾼>이다. 1536년에 그려진 그림이고, 종교개혁운동가 한스 굴덴문트(Hans Guldenmund)가 1547년에 발표한 책에 삽화로 사용되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 ‘악마의 속삭임’이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판화지만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력은 예사롭지 않다. 게오르크 펜츠는 뉘른베르크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조수로 생활하던 1525년에 동료 조수 바르텔, 제발트 베암 형제와 불온한 사상을 담은 전단지를 배포한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이 전단지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가 배포한 전단지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펜츠의 심문기록을 통해 유추할 수밖에 없다.

게오르크 펜츠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은 신을 믿는가?” “네, 나는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중략) “그리스도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나는 그리스도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성서를 믿지 않습니다.” “제대의 성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그것이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례에 관해서는?” “나는 세례가 쓸모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세상 권력을 믿는가?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몸과 재산, 그리고 모든 물질을 다스리는 뉘른베르크 정부를 인정하는가?” “나는 통치자를 인정하지 않으며, 오직 하느님만을 알 뿐입니다.”

펜츠는 기독교 사회의 전통을 모두 부정한다. 신은 믿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 않는다. 당연히 성서 또한 믿지 않는다. 펜츠에게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쓴 문서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서를 인정하지 않으니, 최후의 만찬을 재현하는 성체성사 또한 쓸데없는 짓인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한 번쯤 거치는 세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세속사회의 권력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펜츠는 오로지 자신의 위에는 신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펜츠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뉘른베르크에서 추방당했다.

당시 뉘른베르크 사회에서는 종교개혁운동의 영향이 적잖게 퍼져 있었다. 우리가 아는 ‘개신교’의 형태로까지 발전되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생각을 가진 신학자들이 등장하며 갑론을박을 벌였던 시절이었다. 그런 가운데 펜츠의 주장은 수용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은 그를 구원자로 여기는 기독교의 전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기독교는 그 이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종교였으니, 펜츠의 주장은 당시 사회의 기준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펜츠가 세속권력을 부정하는 것도 문제였다. 펜츠의 주장은 1525년 당시 독일 남부에서 일어난 무장봉기와도 관련이 있었는데, 무장봉기에 참여한 민중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들이 하나’라는 갈라티아서의 가르침처럼 차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를 주장했다. 하지만 종교개혁에 호의적이었던 지배계층은 그 주장을 수용할 리 없었다. 지배계층이 종교개혁운동에 관심을 가진 것은 교회가 세속권력에 복종해야 한다는 루터의 주장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종교개혁은 오랜 시간 동안 권력을 두고 미묘한 긴장관계를 이루었던 교회와 세속권력 사이의 관계를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기회였다.

계층 간의 사회적 평등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루터와 그 지지자들은 민중봉기에 대해 가톨릭을 지지하는 보수적인 세력들만큼이나 가혹했다. 루터와 그 지지자들 입장에서 정치권력은 하느님에 의해 부여된 것인데, 그것을 거스르는 행동은 불경의 죄를 범하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회질서 위협 목소리 차단하는 ‘검열’

추방으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에 펜츠가 그림을 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 그린 것일 수도 있고, 검열의 피해자였던 그 역시 또 다른 이들을 향한 검열에는 찬성하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의 행동에 대한 후회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를 뉘른베르크에서 몰아냈던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펜츠의 이 그림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는 검열의 속성을 드러낸다. 검열은 한 사회의 질서에 위협이 될 만한 목소리를 차단한다. 예수를 부정했던 펜츠가 감옥에 갔던 것처럼 말이다.

검열은 창작물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1525년의 무장봉기에 가담한 사람들 중에는 뷔르츠부르크의 시장이자 조각가였던 틸만 리멘슈나이더(Tilman Riemenschneider)가 있다. 봉기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 리멘슈나이더는 수감생활을 하다가 석방되었지만 조각가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주위에서도 ‘검열된 사람들’을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육신은 검열되지 않았지만 생각과 말이 검열된 것은 더욱 많았다.

검열은 사회가 존재하는 한 국가에 위임된 폭력 중 하나로 계속될 것이다. 민주적인 사회일수록 그 존재를 의식하기 어렵겠지만 완전히 사라지기란 어려운 것이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자물쇠를 채우는 일이니만큼 엄격한 통제와 비판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검열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일어난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다. 입을 막으려 드는 것은 곧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두렵기 때문이다. 검열을 작동시키는 이들이 두려워하고, 보고 듣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은 바로 무엇인지 면밀하게 살펴보자. 혹시 아는가, 그 속에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사실을 보게 될지. 아니면 애써 외면하려 했던 사실을 마주하게 될지.

<권혁빈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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