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탓틸리케’ 우즈벡전이 마지막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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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우즈베키스탄에 패하면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자 곳곳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설이 불거지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우즈베키스탄전은 ‘단두대 매치’다.

울리 슈틸리케(62·독일)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갓틸리케’라 불렸다. 이름에 신을 뜻하는 ‘갓(God)’을 합해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2014년 10월 한국축구 지휘봉을 잡은 슈틸리케 감독은 2015년 아시안컵 준우승과 동아시안컵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슈틸리케 감독은 ‘탓틸리케’라 불리고 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남 탓과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조로운 전술과 비합리적인 선수 기용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부진 원인을 선수 탓으로 돌리는 그에게 팬들은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10월 12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4차전에서 이란에 졸전 끝에 0-1로 졌다. 9월 1일 중국과 최종예선 1차전에서는 3-2 진땀승을 거뒀고, 9월 6일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4위 시리아와 2차전에서는 득점 없이 비겼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9월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중국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연속으로 내주자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강윤중 기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9월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중국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연속으로 내주자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강윤중 기자

2승1무1패(승점7)에 그친 한국은 이란(승점 10점), 우즈베키스탄(승점 9점)에 이어 조 3위로 추락했다. 한국은 11월 15일 우즈베키스탄과 홈 5차전을 치른다. 만약 한국이 우즈베키스탄에 지고 같은 날 이란이 시리아를 꺾으면, 한국은 2위권과 격차가 승점 5점 이상 벌어진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각조 1, 2위는 월드컵 본선에 직행하고, 3위는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한다. 한국이 우즈베키스탄에 패하면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자 곳곳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설이 불거지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우즈베키스탄전은 ‘단두대 매치’다.

선수들 부진 탓하다 호된 비판 받아

슈틸리케 감독을 향한 여론은 싸늘하다. 한국은 이란과 3차전에서 유효슈팅 0개에 그치며 완패했다. 많은 축구팬들은 “슈틸리케가 아닌 ‘슈팅영개’라 불러야겠다”, “이란전 안 본 눈 삽니다”라고 비난했다. 여기에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은 들끓는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이란전 직후 “세바스티안 소리아(33·카타르) 같은 스트라이커가 없어서 졌다”고 말했다. 공격수 지동원(25·아우크스부르크)과 김신욱(28·전북), 손흥민(24·토트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발언이었다. 손흥민은 “다른 나라 선수를 언급하면서까지 우리 선수들 사기를 떨어뜨린 건 아쉽다. 한국에도 좋은 공격수가 많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축구팬들도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반면 소리아는 우루과이에서 밀려 카타르로 귀화한 공격수다. 소리아 운운한 건 명마를 가진 자가 당나귀를 부러워하는 꼴”이라며 비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표팀 선수는 “선수들이 감독님의 발언을 접하고 크게 동요했다. 실망한 선수들도 많다”고 전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축구대표팀을 이끈 김호 전 감독은 “슈틸리케 감독이 이제와서 ‘쓸 만한 공격수가 없다’고 말하는 건 2014년 10월 부임 이후 우리 대표팀을 이끌었던 2년간의 준비 기간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축구는 유소년 단계부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소리아 발언은 ‘상식 위배’다. 전 세계 어떤 감독이 리오넬 메시(29·아르헨티나)가 없어서 졌다고 하는가. 심지어 메시도 아니고 소리아라니”라고 성토한 뒤 “유소년 발언은 이란전 패배에 대해 제3자의 입장을 취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유체이탈 화법’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큰 사고가 발생한 뒤 총책임자가 ‘어렸을 때 가정교육이 문제죠’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꼬집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남 탓’은 처음이 아니다. 10월 6일 카타르와 3차전 당시 2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수비수 홍정호(27·아우크스부르크)를 두고 “두 번이나 실수를 저지르고 퇴장까지 당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란전 출국길에는 “카타르전에 역전승을 거뒀는데도 여론이 차갑다. 이란에 가지 말아야 할 것 같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자신의 발언과 관련해 논란이 확산되자 슈틸리케 감독은 10월 12일 이란 현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동기부여 차원에서 한 이야기가 잘못 전달됐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그는 13일 귀국 기자회견에서는 “한국 축구가 지난 12년 동안 몇 명의 A대표팀 감독을 교체했는지 묻고 싶다. 10명의 평균 재임 기간이 15개월에 불과하다. 나는 당장이라도 ‘운이 없었다’고 말하면서 그만둘 수 있지만, 감독 교체가 대표팀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지 신중히 판단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축구인은 “대표팀 감독의 재임기간을 일일이 찾아 볼 시간을 차라리 상대팀 전력분석에 투자했으면 한다. 운이 없었다며 그만두겠다는 발언도 무책임하고 실망스럽다”고 쓴소리를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최근 부쩍 말이 많다. 반면 부진의 근본 원인으로 꼽히는 전술 부재에 대한 언급은 없다.

벼랑 끝 ‘탓틸리케’ 우즈벡전이 마지막 기회?

단조로운 용병술과 전술의 실패

이란전 패배는 전술의 실패라는 게 축구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수석코치 출신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은 한국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자세히 분석했다”며 “수비형 미드필더를 2명 세워 중원을 두텁게 했다. 공격에서는 한국 측면수비와 중앙수비 뒷공간을 집요하게 공략했다”고 분석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주포지션이 중앙수비인 장현수(25·광저우 부리)를 오른쪽 수비수로, 오른쪽 수비수인 오재석(26·감바 오사카)을 왼쪽 수비수로 기용했다. 한준희 위원은 “현대축구에서 양쪽 풀백은 전술의 핵심 역할을 한다. 공수 빌드업을 하고, 손흥민 같은 측면 공격수를 살려준다. 하지만 장현수와 오재석에게 맞지 않은 옷이었다”고 지적했다.

2년째 큰 차이가 없는 단조로운 용병술과 시리아전에 엔트리를 23명을 구성할 수 있는데도 20명만 뽑은 독선, 카를로스 아르무아 피지컬 코치의 선수단 체력관리 등도 도마 위에 올랐다.

여기에 슈틸리케 감독이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한다는 지적도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통역을 통해 기사뿐만 아니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댓글까지 찾아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슈틸리케 감독의 소신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김환 JTBC 해설위원은 “슈틸리케 감독은 그동안 기자회견에서 종종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자존심이 강해서인지 스스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많지 않다”며 “부임 이후 최악의 경기력과 결과가 나오자 스스로 무너졌다. 현실을 인정하기 싫은 듯한 화법으로 선수들과 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10월 18일 “2년간 지켜본 슈틸리케 감독은 열정이 큰 지도자다. 우리나라와 서양의 표현방식과 문화 차이에서 오해가 생겼다. 우즈베키스탄과 경기가 한 달 남은 만큼 선수단을 흔들리기보다는 성원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승리하지 못할 경우 경질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김환 해설위원은 “슈틸리케 감독은 우선 선수들과 불편한 감정들을 봉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준희 위원은 “슈틸리케 감독이 이란전에 ‘점유율 축구’, ‘실리축구’, ‘역습축구’ 중 도대체 무슨 축구를 펼쳤는가. 콘셉트가 불명확했다”며 “우즈베키스탄을 확실히 연구해 맞춤형 전술 콘셉트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호 전 감독은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이 단조롭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기술위원회가 적극 도울 필요도 있다. 손흥민을 제외한 유럽파의 몸상태를 끌어올릴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벼랑 끝에 몰린 슈틸리케 감독. 그는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반전 드라마를 쓸 수 있을까.

<박린 일간스포츠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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