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도 데이터 사이언스는 선택 아닌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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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에 UC 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으로 입학 허가를 받았을 때, 한 학기는 학부 강의에 조교로 참여하는 게 내 펀딩 패키지의 일부였다. 버클리에서는 그냥 답안지 채점만 하는 일을 하는 건 리더(reader)라고 부르고, 앞에서 말한 조교란 실제 자기 수업을 맡아서 커리큘럼도 짜고, 가르치기도 하고, 총괄적으로 할 일을 다 하는 대학원 강사(GSI)를 지칭한다. 보통 큰 수업 같은 경우, 담당 교수가 대형 강의를 가르치고, 대학원 강사들이 조그만 토론 혹은 문제풀이 위주 수업을 나눠 맡아서 가르친다. 이렇다 보니 GSI를 하게 되면 할 일이 정말 많다. 그래서 내가 들어야 할 수업이 너무 많았던 2학년까지는 GSI를 할 엄두를 못냈다. 3학년 1학기가 돼서야 한 학기 수업을 가르치기로 결정했고, 이번 학기에는 정량적 방법론을 가르치게 됐다.

잠시 이 과목에 대해 설명하자면, 버클리에서는 정치학과 학부생들이 한 학기는 이 정량적 방법론 수업을 꼭 들어야 한다. 강의 내용은 어느 강의나 그렇지만 담당 교수가 누구냐에 따라서 많이 달라진다. 이번에 내가 같이 가르치는 교수는 정치심리학을 하는 사람으로 실험 설계가 위주이기 때문에, 실험 설계에 대한 내용이 많다. 담당 교수의 철학이 학생들이 수학에 대해 지레 겁 먹고 정량적 방법론에 아주 길을 못 들이는 걸 피하게 하려는 주의이기 때문에 수학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어느 정도 통계적 지식이 바탕에 깔려 있고, 테크니컬한 건 거의 다루지 않지만 실제로 강의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내가 대학원에서 계량경제나 인과추론에 관련된 수업을 들었을 때 배웠던 내용들이다. 그러므로 전혀 쉽지는 않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문과계열 학생들에게 기초교양으로 통계·인과추론과 정량적 분석방법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 datafloq.com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문과계열 학생들에게 기초교양으로 통계·인과추론과 정량적 분석방법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 datafloq.com

이 수업을 반 학기 가르치면서 느낀 건 두 가지다. 첫째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많은 학생들이 이 강의를 듣는 이유는 이 과목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학을 학부에서 전공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현대 정치학이라는 학문이 이렇게 수학과 통계가 판을 치는 학문인지는 많은 학생들이 잘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꼭 정량적 방법론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현대 정치학뿐 아니라 정치학을 넘어서서 많은 공공과 민간 영역에서 데이터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중요하다는 걸 생각하면 정량적 방법론의 기초를 잘 배워두는 건 본인이 어떤 커리어를 택하든 유용하다. 장래의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의 현재의 동기 부여 수준은 낮다. 이건 한국에서 이와 비슷한 과목을 문과계열 전공자들에게 가르쳐도 비슷할 거 같다. 이게 큰 문제인 이유는 사실 이런 기초수업 하나만으로는 제대로 된 정량적 분석을 하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어려운 수업을 들어야 하고, 더 많은 관련 경험을 쌓아야 한다.

이제 겨우 한 학기 가르치고 있는 꼬꼬마 강사로서는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없다. 그러나 21세기의 기초 교양으로서 통계추론, 인과추론에 대한 지식과 R, 파이선 같은 언어에 대한 사용법은 문과계열 학부생들에게도 필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적어도 미국의 대학 현장에서는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도 이런 방향을 많이 닮아가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내 학생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밥벌이에 대해 도움이 된다는 걸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데이터 사이언스를 문과계열 학부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당장 갖고 있는 학문적 열정과 사회적 관심에 이런 사고의 틀과 추론의 도구를 익히는 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좀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재연 UC 버클리 정치학과 박사과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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