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하청직원 개인정보·동향 보고서 ‘물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남양연구소 협력업체 서은기업, 직원 60명 배우자 직업·질병까지 수집

#(ㄱ씨) ‘아이 병원, 독감으로 병원 데리고 다녀옴. 와이프는 갑상선 문제로 병원 다님(토요일도 병원 갈 듯)….’

#(ㄴ씨) ‘이혼. 딸(2013년 생) 부양 누나 도움. 10분 거리 같은 단지(국민임대) 거주. 2014년 12월 7일 내출혈 산재.’

이는 국가정보기관이나 사설정보 업체의 불법사찰 내용이 아니다. 현대자동차 연구개발(R&D) 산실인 경기도 화성의 남양연구소 사내하청 협력업체 서은기업이 2015년 5월쯤 면담이나 유선전화, 가정방문 등을 통해 얻어내 정리한 개인정보 보고서의 일부분이다. 서은기업 측 동향보고서에는 ㄱ씨가 기혼에 부모가 있고, 자녀는 2녀1남, 경기 화성시 남양읍의 거주 형태는 자가인데 부모가 지원해줬다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또 처가 전업주부이며 어떤 병을 앓는지도 적시했다.

서은기업이 직원 60명의 거주형태나 대출금 정도, 배우자나 부모의 직업이나 질병 같은 세세한 신상정보를 수집해 사생활 침해 논란을 받고 있다. 또 일부 직원의 특이동향을 파악한 보고서도 작성했다. 특히 이런 자료가 원청업체인 현대차 남양연구소에도 넘겨진 정황이 포착돼 개인정보 유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사자들은 “원청인 현대차가 소송에 대응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서은 직원의 개인정보를 파악한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는 서은 직원들과 현대차 사이에 벌어진 불법파견 관련 소송 때문으로 추정된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협력사 서은기업이 직원 가족까지 세세한 개인정보와 특이 동향을 수집한 보고서. 서은기업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며 보고서들을 원청인 현대차에 넘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현대차 남양연구소 협력사 서은기업이 직원 가족까지 세세한 개인정보와 특이 동향을 수집한 보고서. 서은기업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며 보고서들을 원청인 현대차에 넘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직원 4명, 근로자지위 확인소송 1심 승소
앞서 남양연구소에서 9~10년 동안 일해온 박모씨 등 서은 직원 4명은 2014년 10월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마용주 부장판사)는 올해 2월 “현대차는 고용의 의사표시를 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또 박씨 등이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과 임금차별을 받았다며 차액으로 청구한 3800만원, 4000만원, 3700만원, 3900만원씩 현대차가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들 4명 이외의 직원들도 팀장 한 명을 빼고 모두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 직원의 경우 간호사인 처가 일하는 직장명과 현재 신경치료로 휴직 중인 사실도 기록됐다. 다른 직원의 부친이 아주대병원에서 후두암 투병 중이라거나, 부인이 커피점에서 일하다가 육아휴직 중이라거나, 3남매를 둔 전업주부 아내가 부업을 모색 중이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장비기술 예방보전(PM) 파트의 경우에도 이모씨는 ‘주동자,’ 최모씨 등 3명은 ‘적극가담’, 진모씨 등 2명은 ‘적극가담 강경’이라고 특성을 분류해놨다. 이 가운데 한 직원에 대해 ‘수원의 아파트는 자가인데 대출금 3000만원이 있고, 부인은 유아세례를 받은 천주교인으로 눈높이교사를 하며 아이 계획은 없다’고 적었다.

다른 직원은 부인이 산후우울증으로 처가에서 도움을 받는다는 점까지 회사 측은 기록했다. 이밖에 어머니가 성빈센트병원에서 난소암 치료를 받고 있다거나, 조기축구 활동을 하는 애주가이며 약초캐기 산행을 하는데, 허리디스크 수술을 두 차례 받았다는 내용도 파악해뒀다. 초등생 아들을 둔 한 직원은 이혼하고 모친을 부양하며 산다고 적혀 있다. 아들이 월 한 차례 엄마와 면회하며, 이 직원이 생활·양육비를 제공한다는 정보까지 적시했다.

다른 한편, 서은기업의 ‘예방보전(PM) 파트 직원 특이동향 관련, 면담 및 접촉 진행(21주차)’이라는 보고서에는 2015년 5월 20일 회의실에서 ‘주동자’로 찍은 이씨를 면담한 내용이 적혀 있다. 보고서는 ‘진행경위 및 현 상황’과 관련 ‘소송의 파장으로 현대차(연구개발장비기술팀)에서 대응이 직원들을 자극’이라고 지적했다. 또 ‘직원들 사이에 비정규직 소송 관련한 판례에 관심이 고조되고 스터디를 한다’고 밝혔다. ‘직원 내에서 소송 필요성에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동향을 파악했다.

보고서는 ‘추정 및 업체장 의견’으로, 이씨가 박모씨(도장팀 소송 주동자)와 접촉했으나 실질적 도움이나 조언을 교환한 것은 아닌 듯하며, 서은 내부적으로 회합하여 의견을 교환 및 수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었다. 이에 ‘관리자(임◇◇)를 통한 내부 단속, 회유 병행’이라며 전략도 제시했다.

이어 22주차 특이동향 보고서에서는 5월 29일 이씨를 다시 만나 소송의 부적절함과 소송 시 입을 불이익·리스크 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또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인사징계 시행(징계위원회 6월 3일)을 공지했다고 했다.

또 정보수집 후 동향 파악차 변호사를 만난 관련자 5명을 면담했다. 변호사들이 “소송에 따른 불이익은 없다. 승산은 충분하다. 하루라도 빨리 소송하라”고 조언한 데 대응해 업체장은 “변호사는 절대로 너희 편이 아니다. 결과와 무관하게 수입만 챙긴다. 너희는 지금 승산 없는 도박을 하려고 한다. 너희 일자리는 너희가 지켜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밝혔다. 업체장은 주동자 이씨에 대한 내부 징계로 ‘감급(급여를 깎음)’을 했다고 조치 내용을 밝히고, 내부 회합을 해 전 인원이 소송을 한다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작업자 이상동태 건[현대자동차 상대 근로자지위 확인소송 준비 의심]’이라는 요약 보고서에도 직원들의 주요 움직임과 배경, 업체장(서은 대표)의 직원 접촉 및 설득 조치 내용, 업체장의 의견이 적혀 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이 2013년 5월 서울 양재동 본사 앞에서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이 2013년 5월 서울 양재동 본사 앞에서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직접고용 요구 직원 설득·회유용 의혹
이처럼 서은기업 대표가 현대차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거나 준비 중인 자기 직원들을 면담하거나 동향을 파악하고, 설득·회유하는 내용과 방향을 제시하며 대응조치와 의견을 보고서에 담은 것은 내부용 자료일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회사 대표인 업체장의 조치와 의견 등을 동향 보고서로 만들 이유는 잘 없기 때문이다. 외부에 보고용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는 게 직원과 법무법인 새날의 판단이다. 소송 대응 내용이나 ‘업체장 의견’ 같은 표현도 한 근거다. 결국 이런 보고서를 원청인 현대차 남양연구소 소송 대비 태스크포스(TF)팀이나 연구소가 소속된 울산공장 협력지원팀 등에 보고용으로 만들었을 개연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특히 ‘예방보전(PM) 관련 동향’이라는 엑셀파일을 보려면 비밀번호가 필요하다. 암호를 요구하는 팝업창에는 ‘다음 사용자에 의해 예약되었습니다. HKMC’라고 떴다고 한다. 한 직원은 “HKMC는 협력사들이 원청인 현대·기아자동차(Hyundai Kia Motor Company)를 가리키는 말로 통용된다”며 “이에 비춰볼 때 보고서가 현대차 측에 보내졌을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직원 개인정보와 동향 보고서는 정우남 전 사장이 내부 단속, 회유의 거점으로 지목했던 ㄷ씨에게 이메일로 보내면서 알려졌다. ㄷ씨는 "초기에 4명이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 나섰을 때만 해도 동참하지 않았고, 중간관리자인 나와 내용을 공유하기 위해 보내온 것 같다. 또는 단가조정 같은 다른 자료들을 종종 보내왔는데, 실수로 보고서도 첨부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은기업은 그동안 업체명을 수차례 바꾸고 대표이사도 교체하면서 남양연구소 협력사로 이어져 왔다. 정 전 사장이 물러나기 전인 올해 5월 박우원 사장은 서은기업 전무로 전격 취임한 뒤 7월부터 공동대표로 됐다가 9월부터 대표이사가 됐다.

현대차에 입사해 1993년 현대차 마북연구소에서 남양연구소로 옮겨와 노무담당을 지낸 박 사장은 장비기술팀장 등을 거쳐 올해 4월 말 현대차에서 퇴사한 뒤 서은기업에 전무로 왔다. 새날 최종연 변호사는 “전형적인 ‘바지사장’을 갈아치우는 행태로 보인다”고 말했다. 1996년 입사한 ㄷ씨는 “회사 명칭도 7번 바뀌고 박 사장도 7번째 사장이다”라고 밝혔다.

남양연구소 인사팀에서 협력사 불법파견 직원의 현대차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 대비한 TF팀을 맡은 팀장은 박 대표가 남양연구소 총무지원팀 근무 당시 부하직원으로 알려졌다. 이런 관계로 볼 때 동향보고서가 남양연구소 TF팀 등에 보고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직원들은 의심한다.

소송에 참여한 직원 ㄱ씨는 “정 전 대표도 현대차 임원(이사대우) 출신이고 울산공장이나 남양연구소에 예전 부하직원들이 근무하지만, 서은 직원들의 소송을 막지 못한 책임을 물어 2년 6개월 만에 현대차 측에 의해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ㄱ씨는 “서은에서 남양연구소에 직원 동향을 매주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부모, 배우자의 세세한 신상정보까지 들어 있는 것을 알았을 때 황당했다. 개인 사생활 침해는 별개로 문제 삼을지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현대차 “그런 보고 받은 적 없다” 부인
개인정보보호법 제16조는 개인정보처리자는 목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도록 규정했다. 그 입증책임은 정보처리자에게 맡겼다. 서은기업의 세세한 정보수집 자체가 위법이 될 수 있다. 또 제17조는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 시 당사자 동의를 받아야 하고, 제공받는 자와 목적 등도 당사자에게 알리도록 규정했다. 특히 제23조는 건강, 성생활 정보 등이나 사생활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 있는 것 등은 ‘민감정보’로 별도로 규정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

정 전 대표는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이미 회사를 그만둔 사람으로서 특별히 말할 사안이 없다. 취재 전화를 받을 위치에 있지 않고, 이유도 없다”며 끊었다. 박 대표는 “그런 동향보고서가 있는지 본 적도 없다. 설령 있더라도 상식선에서 정 전 대표 본인이 직원 관리를 위해 만든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지금 나는 그런 보고서를 안 가지고 있다.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됐다”며 “소송은 현대차와 직원들 사이 관계로,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게 못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른바 ‘바지사장’ 의혹에 대한 질문에 박 대표는 “내가 투자해서 지분을 100% 인수해 (서은기업에) 들어왔다”며 부인했다.

현대차 홍보실 담당자는 “남양연구소 쪽에서 서은에 직원들 정보나 동향을 파악하라고 지시하거나 그런 보고를 받은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현대차 측은 “직원들과 회사가 소송이 진행 중인데, 이런 주장을 한 것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위험하고 힘든 일 파견 몫… 직접고용이 답이다

그동안 울산공장, 아산공장, 전주공장에서 2년 이상 일해온 사내하청 협력업체 노동자를 현대차가 직접 고용하라는 판결이 나와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자동차 양산 공장이 아니라 연구소에 대해 불법파견 판결을 내린 것은 올해 2월 남양연구소 사례가 처음이다. 노동법에 따라 정식 도급계약이 아니라 파견인 경우 사업주는 2년을 초과해 근무하는 노동자는 직접고용해야 한다.

앞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가 2010년 7월 대법원에서 승소하며 ‘제조업 사내하청은 원청이 직접고용한 정규직’이라는 판결에 물꼬를 텄다. 대법원은 2015년 2월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에게도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현대차가 근로자들에게 구속력 있는 지시를 했는지, 현대차의 업무에 실제로 편입돼 있었는지, 협력업체가 근무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는지 등을 바탕으로 현대차의 사내 하청을 불법으로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결정했다.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 업체 3곳 중 1곳꼴로 불법파견이 이뤄진다. 고용노동부가 올 3~5월 전국 주요 공단의 파견 사용업체 311개소와 파견사업체 등 1008곳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다. 특히 566곳 중 195개소(34%)에서 3379명의 노동자를 불법파견으로 사용했다. 이 가운데 77.8%(2632명)가 인천, 안산, 화성, 부천 등 인천·경기지역이다.

파견노동을 쓰는 이유는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하청 직원에게 맡기려는 점이 크다. 게다가 값도 싸다. 서은기업 직원은 “남양연구소의 시험장비를 유지·보수하는 것은 위험하고 기름 때 묻는 힘든 일로 통한다”며 “과거에 분당회전수(rpm) 6000이 넘는 상태에서 장비 진동으로 베어링이 나가며 엔진이 깨져서 날아온 파편에 맞아 직원이 숨진 산업재해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샤프트가 날아가 천장에 꽂히고, 불이 나는 등 나도 두 차례 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다. 그런 일을 계기로 차츰 협력사 파견직원에게 일을 넘겨왔다”고 밝혔다.

올해 5월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 안전문 수리 중 열차에 치여 숨진 19세 노동자나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잇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도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비용절감을 동반한 ‘위험의 외주화’ 탓이다. 근본 해법은 근래 잇단 법원 판결에서 명하듯 원청의 직접고용일 수 있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