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지역 때아닌 ‘대권후보 풍년’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반기문·안희정·정운찬·정우택·이완구… 자천타천 무려 다섯 명 거론

충청은 한국 정치에서 변방으로 여겨지곤 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양당체제에서 지역 정치의 중심은 늘 영남과 호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청은 상수가 아닌 변수로 취급되는 설움을 맛보기도 했다.

늘 영·호남에 밀려 3등의 비애 맛봐
하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충청이 대망론으로 한국 정치의 중심지로 도약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선두에 섰다. 반 총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권 출마가 유력시되는 반 총장에 뒤이어 야권에서는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부각되고 있다. 안 지사는 10월 중 자서전을 발간하는 등 본격적인 대선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안 지사는 최근 더민주에서 당 후보의 대세를 차지한 문재인 전 대표에 맞설 후보로 손꼽히고 있다. 야권의 한 전직 지역정치인은 “반 총장이 충청 인물이라고 하나 인구가 많은 대전·충남에서 반 총장은 충북 인물”이라면서 “반 총장의 대항마로 야권에서 안 지사가 후보가 된다면 최소한 충청지역 안에서는 안 지사가 반 총장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 총장의 대항마로 안 지사가 적합하다는 이야기다.

안희정 충청남도지사가 8월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안희정 충청남도지사가 8월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정운찬 전 총리도 차기 대선을 노리고 있다. 정 전 총리는 야권의 각 대권후보 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당내 경선 또는 제3지대 경선의 러닝메이트에 적합한 인물로 손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안철수·정의화·이재오·박지원 등의 대선 관련 정치인들로부터 만나자는 요청을 받고 있으나 아직 만날 계획은 없다는 것이 정 전 총리 측의 이야기다. 정 전 총리 측은 “정 전 총리가 차기 대권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서 “정 전 총리도 이번 대선이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단순히 러닝메이트가 아닌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분명히 굳히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정 전 총리는 대선주자로서의 본격 행보를 앞두고 미국과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충북 출신 4선인 정우택 의원도 ‘더좋은나라전략연구소’를 설립해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한때 차기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던 이완구 전 총리는 9월 27일 ‘성완종 리스트’ 연루 의혹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직후 언론에서 대권 도전 가능성이 부각됐다.

이처럼 충청지역에서 자천타천 대권주자가 무려 다섯 명이나 거론되고 있다. 이들 후보 중 여권과 야권에서 유력 주자가 각각 한 명씩 있다. 때아닌 대권 풍년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영남과 호남은 그동안 대선에서 대통령을 배출해 권력에 대한 의지가 느슨하지만 충청은 상대적으로 권력에 대한 욕구가 강한 편이어서, 이번 대선에서 충청에서는 지역주의가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5월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6 국제로타리 세계대회’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이석우 기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5월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6 국제로타리 세계대회’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이석우 기자

하지만 충청지역의 힘만으로 대권을 잡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대선에서 충청지역의 선거인은 전체 약 4050만명 중 410만명으로 10%를 겨우 웃돌았다. 실제로 투표한 투표수로는 전체 3072만표 중 306만표로, 역시 10% 정도였다. 전체 25%(약 822만표)를 넘어서는 영남 투표수에 비해 수적으로 적다.

거주민 기준이 아니라 충청 출신으로 한다면 전체 유권자 중 20%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돼 지역구도에서 일단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산업화로 인해 본격적인 인구이동이 있기 전의 자료를 보면 1960년에 충청권 인구는 16%로, 영남 31%와 호남 25%에 비하면 적은 수치”라면서 “충청권의 결집만으로 대선구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반 총장, 다음에는 안 지사’
대선 여론조사에서는 ‘충북에서 이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충북에서 이기면 대선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선에 승리하는 후보가 충북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것이 여론조사 전문가의 이야기다. 황 평론가는 “예전부터 충청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왔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는 되는 쪽에 서는 대세추종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면서 “하지만 늘 영·호남에 밀려 3등의 비애를 맛보았던 이전과는 달리 내년 대선에서는 국면을 주도할 수 있는 양상이 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충청권 대망론은 여야는 물론 중립지대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지역 출신 후보가 있다는 데서 단단한 밑바닥을 다지고 있다. 여권에서는 반 총장, 더민주에서는 안 지사, 제3지대에서는 정 전 총리가 거론되기 때문이다. 홍형식 소장은 “반 총장만 대선후보로 거론됐다면 충청지역 후보에 대한 역풍이 만만찮을 수도 있지만, 안 지사와 정 전 총리 같은 유력 후보도 야권에서 거론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충청지역에 대한 역풍이 거의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충청 지역 때아닌 ‘대권후보 풍년’

주목해야 될 것은 충청권 후보가 지역 연합의 키를 쥐고 있다는 점이다. 반 총장은 영남을 텃밭으로 하는 새누리당에서 영남권 친박계로부터 후보로 옹립되고 있다. 영남권 친박계에서 김무성·유승민 의원 같은 영남권 후보를 미는 것이 아니라 반 후보를 차기 대권주자로 미는 형국이다. 결국 영남과 충청의 지역 연합이 친박의 전략이다. 이에 비해 안 지사는 더민주 일각에서 호남과 충청의 결합을 이끌 수 있는 인물로 여겨진다. 문재인 전 대표가 역대 대선의 야권 유력 후보와는 달리 호남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안 지사의 호남 지지도가 만만치 않은 결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홍형식 소장은 “여권에서는 차기 대선에서 영남 양보론이 나오고 야권에서는 문재인 대안론으로 안희정 지사가 후보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들 충청권 후보의 장점으로 충청이 영남 또는 호남지역과 지역 연합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거론된다”고 말했다.

내년 대선은 지역마다 접전의 양상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호남의 경우 예전에는 야권의 표가 결집됐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혈투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영남은 영남지역대로 충청권 여권 후보 대 영남권 야권 후보의 대결 또는 영남권 여권 후보 대 영남권 야권 후보 등의 구도로 한치의 양보를 허용하지 않는 국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지역 결합 가능성을 가진 충청권 후보의 장점이 돋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황태순 평론가는 “반 총장은 영남에서, 안 지사는 호남에서 지지도를 높인다면 충청이 ‘3등의 비애’를 딛고 이번 대선에서는 대통령을 낼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때아닌 풍년을 맞이한 충청권에서는 ‘이번에는 반 총장, 다음에는 안 지사’라는 낙관적인 기대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기대에 대해 새누리당의 한 영남 출신 관계자는 “충청권 후보들이 예전보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는 있지만 대선에서는 그동안 지역구도의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면서 “반 총장이 여권에 안착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충청권 후보가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