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 혁명가 과르디올라, 영국마저 ‘접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과르디올라 감독은 맨시티 지휘봉을 잡고 또 한 번 진화했다. 힘과 스피드를 앞세운 잉글랜드 축구에 스페인 패스축구를 결합시켰다. 과르디올라는 평소 차분하며 합리적이다. 하지만 자기만의 철학은 확실하다.

“지금껏 프리미어리그에서 지켜보지 못했던 축구다.”

잉글랜드 축구 전설 앨런 시어러(46)는 최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의 경기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펩 과르디올라(45·스페인) 맨시티 감독을 향한 찬사였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끄는 맨시티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6전 전승(9월 30일 기준)으로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총 18골을 넣고, 단 5실점했다.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꺾었다. 맨시티는 유럽 챔피언스리그 등 각종 대회를 포함해 11경기에서 10승1무,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08년 아랍에미리트(UAE) 석유재벌 셰이크 만수르가 인수한 맨시티는 ‘오일머니’를 앞세워 스타 선수들을 줄줄이 영입했다. 맨시티는 2012년과 2014년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정작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번번이 좌절을 맛봤다. 맨시티는 올 시즌을 앞두고 세계 최고연봉 1500만 파운드(약 219억원)를 주고 과르디올라 감독을 데려왔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맨시티를 강호로 변모시키고 있다.

전술 혁명가 과르디올라, 영국마저 ‘접수’

크루이프의 토털사커 계승 발전시켜
과르디올라는 선수 시절 스페인 축구대표팀 소속으로 A매치 47경기를 뛰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이끌었다. 당시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스페인과 평가전을 치른 한국의 신태용 감독(현 축구대표팀 코치)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선수가 맥을 잘 짚으면서 축구를 하더라. 빠르진 않은데 적시적소에 패스를 찔러 넣으면서 공격을 이끌었다”며 “알고 보니 과르디올라였다. 감독으로 변신해서도 선수 시절과 비슷한 축구를 펼치더라”고 말했다.

과르디올라는 프로팀 FC바르셀로나에서 1990년부터 2001년까지 활약했다. 1988년부터 8년간 바르셀로나를 이끈 고 요한 크루이프 감독은 과르디올라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했다. 체격(1m80㎝)이 크거나 스피드가 특출나지는 않았던 과르디올라를 중용했다.

‘크루이프 애제자’ 과르디올라는 단순히 1차 저지선 역할만 하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니었다. 이탈리아 미드필더 안드레 피를로(37) 같은 후방 조율사였다. 수비할 때는 압박에 가담하고, 공격할 땐 볼을 뿌려줬다. ‘토탈사커(전원 공격 전원 수비)’를 펼친 크루이프 감독 전술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 과르디올라는 선수 시절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6회, 유러피안컵 1회 우승 등을 거뒀다.

과르디올라는 감독으로 변신해 ‘스승’ 크루이프의 토탈사커를 계승했고, 더욱 진화시켰다. 2007년 바르셀로나 2군 감독으로 지도자를 시작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이듬해 바르셀로나 A팀 지휘봉을 잡았다. 그러고는 ‘축구천재’ 리오넬 메시(29)와 함께 티키타카(Tiki-Taka·탁구 치듯 짧고 빠른 패스 플레이)를 펼쳤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부임 첫해 트레블(리그·컵대회·유럽 챔피언스리그)을 달성했다. 2008-2009시즌에는 각종 대회에서 6관왕을 이뤄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2013년부터는 독일 바이에른 뮌헨을 이끌고 3시즌 연속 분데스리가 우승을 지휘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과르디올라는 축구 자체의 아름다움과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감독이다. 크루이프 감독의 축구에 티키타카와 강력한 압박을 더해 업그레이드시켰다”고 말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전술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탔다. 한 위원은 “티키타카와 메시를 폴스 9(False 9)으로 기용하는 전술이 대표적이다. 과르디올라는 현대축구 최고의 아이디어맨이다”라고 말했다. 폴스 9(가짜 9번)은 가짜 공격수가 최전방과 미드필더를 오가며 수비수를 교란하며 적극적으로 골도 노린다. 한 위원은 “감독에는 크게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처럼 위대한 지도자, 아리코 사키 전 AC밀란 감독처럼 전술적 혁명가가 있다”며 “과르디올라 감독은 8년간 총 21회 우승을 이끌었다. 또 축구전술 패러다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위대한 지도자 겸 전술적 혁명가다”라고 말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맨시티 지휘봉을 잡고 또 한 번 진화했다. 힘과 스피드를 앞세운 잉글랜드 축구에 스페인 패스축구를 결합시켰다.

맨시티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유일하게 평균 점유율이 60%를 넘는다. 티키타카에만 얽매이지 않았다. 볼 점유율을 높이면서 강력한 압박을 펼쳐 골을 넣는 축구를 펼쳤다. 경기당 3골을 넣었다. 공격 시 선수 전원이 가담해 유기적인 패스를 주고받은 뒤 골망을 가른다. 시어러는 “올 시즌 맨시티는 11명이 아닌 14명이 뛰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과르디올라 감독은 좌우 수비수들을 중앙 미드필더 위치로 끌어올리는 빌드업, 특정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스위칭 등을 펼치고 있다. 잉글랜드 축구계 입장에서는 센세이션한 축구다”라고 분석했다.

영국의 스피드 축구에 패스 축구 접목
과르디올라 감독은 탁월한 전술 분석 능력도 뽐내고 있다. 본머스와의 5라운드에서는 맨시티 미드필더 케빈 데 브루잉이 프리킥을 낮게 깔아 차 골망을 흔들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경기 전 본머스 수비벽이 세트피스 때 높이 뛰는 걸 간파하고 지시한 것이다.

과르디올라는 평소 차분하며 합리적이다. 조세 무리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처럼 거침없는 발언으로 상대의 기를 꺾는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자기만의 철학은 확실하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다. 팀과 전술에 맞지 않는 선수는 과감히 내친다. 2009년 바르셀로나에서 한솥밥을 먹은 지 1년 만에 팀을 떠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자서전을 통해 “과르디올라는 대화할 때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겁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르디올라 감독의 축구철학은 흔들림이 없다. 맨시티 지휘봉을 잡은 뒤 아프리카 올해의 선수 4연패에 빛나는 야야 투레를 명단에서 제외했다. 투레 에이전트가 비난하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투레를 아예 전력 외로 분류했다.

반면 자신이 믿는 선수들에겐 무한 신뢰를 보인다. 올 시즌 4골을 터트리며 부활한 맨시티 미드필더 라힘 스털링은 “과르디올라 감독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자신감과 믿음, 동기부여를 해준다. 내게 득점을 즐기라고 말해줬다”고 말했다. 스타 의식에 젖어있던 맨시티 선수들은 요즘 과르디올라 감독 지휘 하에 정말 열심히 뛴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리그에서 훌륭한 경기력을 보이는 팀들이 너무 많다. 4위 진입이 아주 힘들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반면 프랑스 축구전설이자 스카이스포츠 해설위원 티에리 앙리는 “맨시티가 챔피언이 되는 걸 막기 위해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금도 과르디올라 감독의 지도력을 폄훼하기도 한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메시와 함께했고, 바이에른 뮌헨은 독일 극강팀이라는 게 이유다. 하지만 과르디올라 감독은 보란 듯이 스페인과 독일에 이어 잉글랜드 프로축구까지 정복하려는 기세다.

<박린 일간스포츠 기자 rpark7@joongang.co.kr>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