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분위기 담은 대통령 취임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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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사업본부가 내년에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키로 했다. 이를 두고 우정사업본부가 ‘박정희 우상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됐다. 우정사업본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기념우표 발행을 결정하는 심의과정이 날림이었다는 게 화근이었다. 진위와 관계없이 이 공방은 ‘대통령 우표’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

대통령은 우표의 단골 모델이다. 지금까지 발행된 우표 중 대통령 얼굴이 디자인된 게 85종에 이른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7차례, 박정희 전 대통령은 24차례,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무려 47차례나 등장한다. 13대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는 취임 기념우표만 발행되고 있다. 박·전 전 대통령의 우표가 많은 것은 해외순방 혹은 정상회담과 같은 대외활동과 관련한 기념우표가 많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 기념우표들 / 우정사업본부 제공

역대 대통령의 취임 기념우표들 / 우정사업본부 제공

대통령 우표 중에서도 소장가치가 큰 취임우표가 우표수집가들 사이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역대 정부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역사기록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수립된 후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는 17번 발행됐다. “현재 18대 대통령인데 왜 17번밖에 되지 않느냐”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4대 윤보선 대통령의 취임 기념우표는 발행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 시절, 정부 형태는 내각책임제였다. 대통령 권한도 약했고, 취임의 의미도 크지 않았기 때문에 발행하지 않은 것 같다. 대신 ‘장면 정부’ 수립 기념우표가 발행됐다.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에는 정부 성격만이 아니라 시대정신과 사회적 분위기가 함축되어 있다. 세 차례(1~3대) 발행된 ‘이승만 우표’는 모두 ‘인물사진’에 가깝다. 이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의 설계자 혹은 국부로 추앙하던 당시 시대적 상황을 읽을 수 있다. 다섯 차례(5~9대) 발행된 ‘박정희 우표’는 얼굴과 다양한 배경 그림을 통해 국정 목표를 상징화한 게 특징이다. 5대 때 태극기가 펄럭이는 중앙청 건물과 봉황거울 속의 얼굴은 군정에서 민정으로의 전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날아가는 봉황과 태극기를 배경으로 상반신 사진이 도안된 ‘6대와 9대 우표’는 청와대와 대통령의 권위를 상징한다. 권위주의적 시대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7·8대에는 고속도로를 디자인에 포함시켜 ‘조국 근대화’에 대한 의욕을 드러냈다. 10대 최규하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는 무궁화와 물결치는 태극 리본을 통해 국부독재 이후의 ‘자유로운 세상’을 묘사한 듯하다.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기념우표는 공장을 배경으로 횃불을 든 남녀의 형상(11대)을 통해 ‘새 시대, 새 역사’를 상징했다. 3색 리본과 무궁화 문양 안에 그려진 공장 이미지(12대)는 국가발전을 표현했다. 13대 노태우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는 태극기 아래 올림픽 주경기장을 배치한 게 특징이다. 14대 김영삼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는 태극기 아래 백두산 천지 이미지를 넣어 통일의 염원을 담았다.

15~18대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에는 공통적으로 태극기 또는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다. 김 전 대통령 우표는 심플하다. 태극기를 배경으로 웃는 얼굴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우표는 한반도를 중심에 둔 세계지도를 통해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로의 발전을 희망한 듯하다. 와이셔츠 차림에 노트북을 켜고 있는 이 전 대통령은 ‘디지털 코리아의 변신’을 이미지화했다. 박근혜 대통령 기념우표의 콘셉트는 ‘희망의 새시대를 열어갈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다. 웃는 얼굴과 태극기에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듯하다.

취임 기념우표에서 표현된 다양한 메시지는 역사와 함께 흘러왔다.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를 통해서도 우리의 근대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다만 취임 기념우표에 담긴 메시지대로 국정이 수행됐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김경은 편집위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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