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Ⅰ

또 ‘북 붕괴론’ 이번에도 희망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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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까지 나서 “심각한 균열조짐”… 남북관계 더 수렁 속으로 빠질까 우려

# 윗동네에 오래된 차가 있다. 교체하지는 못하고 수리해서 굴려왔다. 가업으로 이어온 운전사도 두 번 바뀌었다. 한때, 1970년대까지 할아버지 시대에는 아랫동네 차보다 잘나갈 때도 있었다. 그러다 1대가 숨진 1994년 이래 수년간은 거의 굴러가지도 못했다. 다들 폐차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기적적으로 수리됐고, 옆동네에서 기름을 빌려와 그럭저럭 굴린다. 2010년 9월 아버지 도장이 찍힌 공식면허를 얻고(운전연습은 2009년 초부터로 알려졌다), 운전대를 완전히 물려받은 건 아버지가 과로로 쓰러졌던 2011년 12월 어느 날부터다.

동네 사람들 걱정이 더 커졌다. 여기저기 누유가 되는 듯한데 덜컹대며 비포장길을 달린다. 차급이나 엔진에 과할 만큼 터보차저 같은 새로운 기기(핵, 미사일)도 큰돈을 들여 보탰다. 직원들 허리띠를 졸라매며 추가한 장비들이다. 이를 믿고 굉장한 가속을 내기 시작했다. 특히 3대 젊은 운전사가 의욕에 넘친다. 급가속, 급브레이크로 이웃 주민들 간담을 서늘케 한다. 직원 식비도 부족하고, 기름까지 모자란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뒷배를 봐주는 동네 형님이 있다지만 마냥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위에서는 대문만 열어주면 대대적으로 수리하거나, 아예 새 차를 주겠다는 식으로 꼬드기지만 운전사는 화부터 낸다. 끝내는 낡은 차마저 빼앗기고, 운전대에서 끌어내려질까 불안해서다. 그러면서 직원에게는 “우리 차가 낡아도 주체성 높은 제일 좋은 차”라고 훈육해 왔다. 내비게이션도 세계에 통용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남들은 “그 길은 틀렸어”라고 하지만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고 고집한다. 말 안 듣는 조수는 여러 번 차창 밖으로 내던지거나, 반쯤 던졌다가 도로 태워 충성을 서약받았다. 타지에서 다른 차를 타본 일부 외판원은 최근 ‘아들에겐 그랜저라도 태워주겠다’며 이웃 동네로 넘어갔다.

옆동네들에서는 이 차가 곧 망가질 것이라고 수군댄 지가 오래됐다. ‘직원들이 대거 도망치거나, 심지어 운전사를 갈아치울 수도 있다’고들 기대한다. 그러나 의욕 넘치는 3대 운전사는 나이든 정비공을 젊은 인물로 대거 물갈이하고, 우리 힘으로 잘 달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최근 새 장비들을 단 차는 예전보다 더 힘있게 달리는 중이다. 심지어 8월 24일에는 세계적 기술(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까지 내보여 이웃을 깜짝 놀래켰다. 허나 그만큼 도로에 위험은 더 커졌다는 평가도 늘었다. 과연 이 차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박근혜 대통령이 7월 14일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면서 북한 탄도미사일 방어 개념도를 가리키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7월 14일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면서 북한 탄도미사일 방어 개념도를 가리키고 있다. /청와대 제공

도둑같이 온다던 급변사태
‘①식량난으로 굶주린 주민들의 불만이 증폭되고, 다수가 국경을 넘는다. ②민심을 의식한 지도층 다수가 불만을 표출하며 북한을 탈출한다. ③급기야 민중봉기가 일어나고 군부가 호응해 정변을 일으킨다. ④김정은을 제거하고 정권을 교체 내지 전복시킨다….’

이런 상황을 상정한 대응책인 ‘작전계획 5029’도 한·미 당국에 수립돼 있다. 근래 청와대를 필두로 북한 내부 동요라든지, 급변사태나 체제 붕괴 같은 단어가 심상찮게 나돌고 있다. 분위기만 보면 당장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부터 북한 사회의 급변 가능성을 의욕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8월 22일 을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북한 엘리트층조차 무너지고 있고, 주요 인사들까지 탈북과 외국으로의 망명이 이어지는 등 심각한 균열 조짐을 보이는 등 체제 동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을 계기로 내부 균열을 언급한 것이다. 이어 24일에는 “1인 독재하에 비상식적 의사결정체제라는 점과 김정은의 성격이 예측키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협이 현실화될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의 성격까지 남한의 지도자가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군당국이나 세간에서 김정은이 외향적이며 즉흥적이라는 일반의 관측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쉽게 말해 ‘핵·탄도미사일까지 손에 쥔 김정은은 언제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인물’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지난 4월 중국의 북한식당 일꾼들 13명 망명부터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무너질 것이라는 기대로 보인다. 이는 2011년 6월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다. 한밤중에 그렇게 올 수 있다”고 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빼닮았다.

북한 체제가 정말, 언제 무너질지는 예측키 어렵다. 다수 전문가들은 “북한은 오늘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다”고 말하는 반면 “쉽게 무너질 체제는 아니다”라는 상반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근래에는 북한 붕괴론이나 급변사태론에 회의적인 시각도 커졌다. 무엇보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에 즈음해 북핵위기와 ‘고난의 행군’에도 체제가 살아남았다. 2008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급변사태, 붕괴 가능성이 또 거론됐다. 김정일 사망은 곧 북한 몰락으로 봤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핵·미사일 능력이 제고됐고, 경제는 크게 나아진 건 별로 없으나 최저점은 지난 것으로 평가된다. ‘기대’와 달리 젊은 지도자 김정은은 생각보다는 빠르게 기반을 잡았다. 고모부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처형 등 충격적인 조치들을 놓고는 해석이 엇갈린다. 그만큼 불안하다는 평과 반대로 김정은 체제를 다지는 과정이라는 평이 상충된다.

예컨대 태 공사의 망명도 여권은 ‘심각한 체제 동요’로 해석한다. 반면 이명박 정부 때 남북교류에 관여한 인사는 “태영호 같은 인물은 오히려 김정은 체제에 안주하지 못해서 밀려났을 가능성도 크다”며 “주민 동요가 아니라 세대교체를 통한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 과정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포커스Ⅰ]또 ‘북 붕괴론’ 이번에도 희망사항?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핵심 엘리트는 분열되지 않고, 경제상황은 오히려 나아진 측면도 있어 북한 체제의 균열·붕괴 조짐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고위급 황장엽 노동당 비서가 김덕홍 노동당 부실장과 1997년 망명했으나 북한 체제는 멀쩡했다. 심지어 김정일과 함께 동거한 것으로 알려진 성혜림과 그의 언니·조카까지 망명했고, 김정은의 친모인 고용희의 여동생 고용숙도 미국으로 도망쳤으나 체제는 유지된다.

북한은 8월 26일 평양에서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9차 대회를 열었다. 김일성 시대인 1993년 이래 23년 만이다. 김정은 시대에 부쩍 강조된 계층이 바로 소년단이나 청년동맹이다. 이는 북한의 김정은에 대한 핵심 지지세력으로, 군부를 비롯해 당 일꾼에 대해 대대적 세대교체를 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세 최룡해 또한 청년동맹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체제붕괴, 어떤 때 일어날 수 있나
국가 체제의 붕괴는 어떤 조건에서 일어날까. 전통적인 정치이론에서는 식량난 같은 경제난이나 민중봉기, 군사반란(쿠데타), 전쟁이 주요 원인으로 꼽혀 왔다.

먼저, 경제난에 따른 붕괴는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앞서 본 대로 1990년대 후반 최악의 고비에서도 체제 붕괴는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많게는 300만명이 굵어죽었다는 설도 거론되지만, 인구통계를 추산해보면 30만명 정도가 아사했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나 이 숫자만 해도 막대한 것으로, 체제가 지탱된 게 신기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면 왜 안 망했을까. 북한 체제 특성상 조용히 굶어죽을지언정 저항이 일어나기 어렵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독재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민중이 굶어죽지도 않고, 저항하지도 못할 만큼만 먹고살게 한다는 얘기도 있다. 민주화는 배고픔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적절히 먹고살 만해졌을 때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큰 동기가 된다는 평가도 많다. 2011년 ‘중동의 봄’이라는 민주화 물결을 보고 이것이 북한에도 이어질지 국제사회가 주목한 적이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 ‘민중봉기’는 상상조차 어렵다는 게 탈북자들의 증언이다.

다음으로 쿠데타 가능성이다. 탈북자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정은 3대 세습 이후 북한의 대표적 명문가인 빨치산 가문이나 만경대 가문도 2대까지만 권력을 물려받아서 불만이 누적돼 있다”고 전했다. 안 소장은 “숙청에 의한 공포정치가 단기에는 효과를 보겠지만 내적 위험은 높아졌다. 소외당한 군부가 뇌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원로급 군부 실세들을 거의 다 갈아치우고 세대교체를 이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력 쪽에서도 “박수를 건성으로 치고, 왼새끼를 꼬았다”는 이유로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을 사형시킨 사례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장성택의 숙청은 북한 권력층 내 김정은에 대적할 세력이 뿌리뽑혔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이철우 국회 정보위원장(새누리당)은 8월 25일 MBC라디오에서 북한 정권교체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민심 이반이 일어나서 민란 정도면 (가능할지) 모른다”면서도 “군부에 의한 그런 것(쿠데타)은 어렵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북한 정권이 외침에 의해 무너질 수 있을까. 한반도 전쟁상황인데, 이 또한 중국과 러시아가 버티고 있어서 한·미가 북한을 접수하기는 간단찮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제는 붕괴할 수도 있지만 국가가 쉽게 망하지는 않는다”며 “북한은 특히 유엔 회원국으로 중국이 뒷받침해주는 한 외침에 의한 체제 붕괴는 일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24일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에 성공한 뒤 담당자를 얼싸안고 좋아하는 모습이 이튿날 노동신문에 실렸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24일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에 성공한 뒤 담당자를 얼싸안고 좋아하는 모습이 이튿날 노동신문에 실렸다. /연합뉴스

북한 분열 유도 이외에 노림수 있나
최근 평양에 이어 국경지대까지 건설 붐이 일어날 만큼 일부 활기를 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8월 초순 북·중 접경지대를 답사한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이전에는 새벽 1~4시쯤 밀무역을 했다면, 사드 논란 뒤로는 신압록강대교 아래서 저녁부터 거래가 활발해지고 차량 이동이 늘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 남북 교류협력 사업을 꾸려온 한 민간단체 담당자도 “압록강철교에서 하루 200대 이상 차량이 드나들고, 북·중교역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북한 식량 사정은 수년 동안 개선된 것으로 평가된다. 김정일 시대는 연간 100만톤 넘게 부족했으나 김정은 때는 40만톤 안팎으로 부족량이 줄었고, 악화됐다는 올해도 70만톤 정도로 추산된다. 북한 농업 전문가 권태진 GS&J연구소 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공식 공급량 이외에 밀무역을 더하면 북한은 근래에 식량문제가 크게 없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그 비결로 권 원장은 “밀무역 등을 통한 장마당의 시장기능이 살아나 부족한 생산량을 메우고 있고, 인력이나 예산을 비료·연료 같은 농업부문에 대거 배분한 정책 효과도 나타났다”고 평했다. 지난 3년간 자연조건이 안 좋았는데도 생산량이 늘어난 이유다.

여기에다 북한 경제는 2012~13년쯤 협동농장의 수확량 일부는 장마당에 처분할 권리까지 준 ‘6·28 방침’으로 농업 생산량이 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소에도 경영 자율권을 일정 부분 보장하고 처분권, 인센티브를 주는 ‘5·30 조치’가 시행된 것으로 알렸다. 이들이 아직 전체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만 눈여겨볼 움직임이다.

북한은 2014년 1%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2012년 이래 3년 동안 연간 30만톤 식량 증산 등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핵·미사일 실험 뒤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최근 식량난 등이 다시 늘어났다는 소식이 들린다. 2015년에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고 한국은행은 추산했다. 물가가 상승하고 탈북자도 소폭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해 남한에 들어온 주민은 2009년 2914명으로 최대를 기록한 뒤 감소세를 보였다. 지난해 1275명에 이어 올해는 6월까지 749명이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 경제가 과거보다 나아진 행태도 보이지만 주민의 기대수준이 높아지고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양극화 문제 등이 나타나 불만이 커졌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최근 다시 불거진 ‘북한 급변사태, 체제 붕괴’ 주장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부풀려진 것인지, 실제 근거를 가진 판단인지는 명확지 않다. 다만 적어도 현재로서는 김정은 체제가 당장 주저앉을 것같지는 않다는 데 다수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외교관 10~20명이 탈북해도 북한이 망하지 않고 내부 단속이 더 심해져 단기·중기로 볼 때는 체제가 더 견고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 교수는 “박 대통령이 내부 동요→체제 붕괴라는 ‘희망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며 “설혹 북한 주민이 대규모로 넘어온다고 치더라도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말만 앞섰던 이명박 정부가 북한 체제 변화에 기여한 바는 거의 없다. ‘통일 도둑론’처럼 ‘통일 대박론’도 위기 모면용이라며 진정성을 의심받기 십상이다. 백학순 위원은 “북한 붕괴론은 주민과 정권을 분리한 뒤 북한 지도자와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남북관계가 점점 나빠지게 된다”며 “사드 갈등과 우병우 민정수석 논란 등 레임덕 상황에서 유일한 카드가 남북문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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