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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정부, 청년수당 ‘진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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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서울시 협의일지 단독 입수, “협의 가능” 에 대한 양측 주장 엇갈려

“볏집 태우듯 잠시 부르르 타다 꺼질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8월 12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의 말이다. 정부의 ‘서울시 청년수당 때리기’의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전날, 국무총리실 사회조정실장을 팀장으로 각 부처 국장들이 모인 ‘범정부 청년수당 대응 TF’를 구축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정부의 청년고용정책 홍보를, 청년위원회는 위원회 주관행사에서 정책홍보를 담당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언론매체 대상 홍보를, 법무부와 행정자치부는 서울시 청년수당 지급 강행의 위법함을 알리는 역할과 향후 서울시와 벌일 소송에 대한 법리 검토작업을 맡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보도에 대해 국무총리실은 반박하지 않았다. TF 구축 보도 하루 만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시나리오’대로 기자회견에 나섰다. 이날 장관 브리핑의 주제는 ‘취업성공패키지 참여자 취업지원협력 강화방안’이었다. 종전에 정부가 밀던 청년고용정책이다.

‘대통령 심기’ 의식한 장관 브리핑?
이날 브리핑은 고용노동부와 청년희망재단의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을 설명하는 자리지만 이기권 장관은 “누수가 불가피한 서울시 청년수당에 비해 취업성공패키지는 상담원의 상담을 거쳐 실제 지원이 필요한 청년구직자를 추천하고, 추천한 상담기관과 고용센터가 점검하기 때문에 누수가 최소화된다”는 설명을 내놨다.

“대통령 심기관리 차원에서 매일 브리핑하는 것이 아니냐.” 나흘 전, 서울시청 인근 커피숍에서 기자와 자리를 마주한 전효관 서울시 혁신기획관의 말이다. 예견은 맞아떨어졌다. 청년수당 정책을 총괄하는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과 청년에 대한 예의문제라고 본다. 도덕적 해이라고 말하는데, 실제 그런 누수가 발견되었다고 하자. 그런 몇 사례를 잡기 위해 어마어마한 행정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 맞느냐. 어느 정책이든 불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불신의 행동이 나오는 것이고, 호혜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호혜의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의심의 행정, 불신의 행정. 이 틀을 안 바꾸면 어마어마한 행정비용이 들고 서비스의 질은 계속 하락할 것이다.”

8월 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외벽에 보건복지부의 청년수당 직권취소 조치에 항의하는 서울시 입장을 담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8월 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외벽에 보건복지부의 청년수당 직권취소 조치에 항의하는 서울시 입장을 담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8월 8일 서울시청. 박원순 서울시장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정책은 청년이 제안하고 만든 정책이다. 2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토론하며 청년들 스스로 만든 정책이며, 미래세대가 책임을 다하고자 만든 정책이다.”(박스참조) 박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 대화이고 토론”이라며 “(가칭) 미래세대준비위원회를 만들어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저에게 간사라도 맡겨 주신다면 열심히 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이튿날 브리핑에서 “보건복지부와 상의할 일”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면담요청 거부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 문제는 서울시와 보건복지부 사이에서도 풀 수 있는 문제로 봤는데, 지금은 그것도 넘어버렸다. 오직 대통령만 풀 수 있어 대통령과 대화를 요구한 것이다.” 9일 기자회견 이후 이어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박 시장이 한 말이다. ‘선을 넘어버렸다’고 주장한 까닭은 무엇일까.

<주간경향>은 청년수당 문제를 두고 보건복지부와 협의를 해온 과정을 정리한 서울시 내부문서를 단독 입수했다. 협의일지 형태로 된 이 문서는 올해 1월 12일 서울시가 보건복지부에 협의요청서를 발송한 것을 시작으로 논의가 진행돼온 과정이 기록돼 있다.

8월 11일 정부가 발표한 범부처 TF처럼 보건복지부뿐 아니라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서기관들, 관련 연구기관 연구원 등과 서울시 관계부처 담당자들이 모여 논의한 관계부처 협의 자리가 있었다. 3월 30일이다. 회의가 열린 장소는 서울 충정로에 자리잡은 사회조정위원회 회의실이었다. 이날 논의된 내용에 대해 문서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청년 문제의식에는 동의, 사업으로서 구체적인 성과, 실행방안과 관련한 질의가 다수였음.” 문서에는 이날 나온 정부 측의 질문 리스트가 정리되어 있다. 크게 목표와 효과성, 성과 측정, 그리고 실행 측면에서 의구심을 담은 것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서울시 담당과 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 기관에서 회의에 들어와 날선 질문들을 쏟아냈다. 작정하고 오신 분들이었다.”

이후 논의는 5월 26일 이뤄졌다. 문서에 따르면 복지부는 이날 서울시 청년지원사업에 ‘부동의’ 의견을 밝힌 공문을 보내면서 ‘다만 권고사항’을 포함했다.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권고사항을 이행한다면 부동의 의견이 바뀔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3월 30일과 5월 26일 사이에 사실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4·13 총선이다. 야당이 다수당이 된 상황에 협의할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사실 결과 통보의 답은 간단하다. 동의와 부동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보완한다면 협의가 가능하다는 것을 열어둔 것이었다.” 서울시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내부문서에 따르면 이 ‘1차 협의 결과 통보 전에 사전 미팅’이 있었고, 서울시 측이 권고사항을 수용할 수 있는지 의사를 타진하는 자리였다. 서울시는 권고사항을 수용하는 것으로 2차 수정안을 만들었다. 문건에 따르면 서울시 측은 ‘서울시 수정안’을 공문 시행에 앞서 메일로 통보한 뒤 통화를 했다. 통화는 담당과장들 사이에 이뤄졌다. 문건이 정리한 통화내역은 다음과 같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서울시와 보건복지부 사이의 청년활동 지원사업 협의일지. 6월 9일 “이 정도면 협의 가능하다” 및 “2~3일 내에 서울시에서 보낸 수정안대로 협의가 완료되었다는 내용으로 공문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힌 보건복지부 측 발언내용이 눈에 띈다. 보건복지부 해당 관계자는 “공동 보도자료 등은 여러 이야기를 하다 나온 것이며, 2~3일 내 협의 완료라는 발언을 했는지 여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간경향>에 밝혔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서울시와 보건복지부 사이의 청년활동 지원사업 협의일지. 6월 9일 “이 정도면 협의 가능하다” 및 “2~3일 내에 서울시에서 보낸 수정안대로 협의가 완료되었다는 내용으로 공문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힌 보건복지부 측 발언내용이 눈에 띈다. 보건복지부 해당 관계자는 “공동 보도자료 등은 여러 이야기를 하다 나온 것이며, 2~3일 내 협의 완료라는 발언을 했는지 여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간경향>에 밝혔다.

“이 정도면 협의 가능”에서 말 바꾼 정부
“△메일로 보내주신 <서울시 수정안> 잘 받았음. 이 정도면 협의 가능할 것임. 공문 시행해주기 바람. 공동 보도자료 제안.” 앞서 서울시 핵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공동 보도자료를 내자”고 제안한 쪽은 보건복지부였다. 복지부에 ‘서울시 수정안’을 발송한 때는 6월 10일이었다. 그리고 6월 14일. 복지부는 수정협의안 수용 통보를 알려왔다. 역시 문건에 정리된 양측 담당과장 사이의 통화내역이다.

“△2~3일 내에 서울시에서 보낸 수정안대로 협의가 완료되었다는 내용으로 공문이 시행될 예정임(복지부) △공동 보도자료를 내기 쉽지 않더라도 공문 발송 시점에, 보건복지부와 서울시가 협치의 정신을 살려 협의를 이뤄냈다는 내용으로 동시에 보도자료를 내는 것이 좋을 듯함(서울시).”

‘공동 보도자료’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튿날(6월 15일) <동아일보>는 1면에 이 보건복지부와 서울시의 ‘협치실험’에 대한 기사를 싣는다. ‘복지부, 서울시 청년수당 수정안 수용해 7월 시행’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기사에는 ‘市 , 지급대상 좁혀… 복지부 17일 승인 방침/서울시 수정안 복지부 수용’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기사는 “정부와 야당 지방자치단체 간의 협치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 보도가 나온 당일,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급격히 요동친다. 1차 해명자료의 요지는 “수용 여부에 대해 정해진 바 없다. 서울시에 추가 보완을 요청하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저녁에 낸 해명자료에는 “현재 상태로는 사업 시행이 어렵다고 판단됨에 따라 수용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정리뉴스] 서울시 청년수당 6시간 미스터리’라는 이름으로 이날 벌어진 보건복지부 내의 심상치 않은 입장 급선회 사실을 다루고 있다. 앞서 협의에 참여한 서울시 핵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과장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 세세한 문구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방향에 대해서는 국장, 부시장 라인을 타고 공유되는 것이다. 저쪽(보건복지부)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8월 11일 기자를 만난 하승창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어디까지나 추론”이라며 이런 해석을 내놨다. “청와대에서 관련 논의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다 아침 배달된 신문을 보고 누구 마음대로 결정하느냐고 했을 수 있다. 자신들이 몰랐다는 것에 대해 화가 날 수는 있다. 그랬다 하더라도 복지부와 시가 오랫동안 논의한 것을 존중했어야 하는게 아닐까.”

이런 정황을 담은 보도가 있다. 보도 후 <동아일보> 측의 ‘기자메모’다. 이 기자메모는 이렇게 전후 상황을 전한다. “…이런 오락가락의 원인을 묻자 복지부 당국자들은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아무 힘이 없다’는 하소연만 되풀이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뒤늦게 연결된 통화에서 “아직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사안인데 승인된 것처럼 알려져 경위를 알아본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6월 18일자 ‘기자의 눈’) 중간과정이 생략되어 있지만 이 기자메모를 통해 드러나는 팩트는 다음과 같다. “<동아일보> 보도 후 보건복지부에 대한 청와대의 경위 파악 과정이 있었다.” 이 기자메모에 따르면 그 결과 보건복지부 입장이 급선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동아일보>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면 왜 보건복지부는 6월 15일과 18일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 신청을 하지 않았는지 되물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서울시 전효관 기획관의 말이다.

보도는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까. 서울시 관계자는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동아일보> 측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고 밝혔다. 뉴스의 소스는 보건복지부였을 가능성이 많다. 15일과 18일 보도를 한 기자 역시 당시 보건복지부 출입기자였다. “실무자들 사이에서 분위기가 좋아 뭔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당시 출입기자들의 분위기였다. 아침에도 해명자료를 보면 복지부는 서울시와 계속할 용의가 있었고, 그래서 오전 <동아일보> 보도를 기점으로 복지부가 긍정적 시그널을 보인 것이 아니냐는 기사들이 쏟아지자 저녁 무렵 해명자료의 톤은 세게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한 보건복지부 출입기자의 말이다. 계속되는 이 기자의 말. “<동아일보>의 경우 1면까지 쓴 기사인데, 결과적으로 오보가 되니 화가 났을 것이다. 그래서 기자메모까지 쓴 것이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결국 ‘분위기 좋다고 흘린 사람이 누구냐’면서 담당 핵심 관계자가 다치게 생겼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래서 기자단 분위기는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며칠간 조지지 말자는 분위기였다.”

6월 15일 세 차례 뒤집힌 정부 입장 ‘내막’
서울시 내부문건에 언급된 보건복지부 핵심 관계자와 통화했다. 그는 “(서울시 쪽과 전화통화에서) 2~3일 내에 수정안대로 협의가 완료되었다고 말한 기억은 안 난다”며 10일 보낸 공문은 11일 저녁에 봤고, 13일 월요일 원 내용을 보고 검토 중이었고, (그래서) 14일 통화에서는 ‘조정할 게 남아있다’고 말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럴 경우, 공동기자회견을 제안하거나(6월 9일), 주체가 서울시와 보건복지부가 다르니 각각 동시에 보도자료를 내자(6월 14일)는 논의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 인사는 “합의가 이뤄졌다는 전제 아래 여러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6월 14일 당일 국장이 연가를 써서 장·차관까지 보고된 사안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전효관 기획관은 6월 15일 당일 세 차례 보건복지부 입장이 변경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막후의 경위’를 밝혔다.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니 자기네(보건복지부)가 소스를 줘서 보도가 나갔는데, 제동이 걸리면서 그날 점심쯤에 만나서 한 번만 더 왔다갔다 하자, 단어 몇 개를 고치는 식으로…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오후가 되더니 ‘내부 설득이 안 된다’며 결국 입장을 바꿨다.”

“지금은 싸움을 위한 TF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생을 살리는 TF를 만들 때가 아닙니까. 정부는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서울시 청년지원정책을 비판합니다. 당장 배가 고파 죽겠는데, 고기 잡는 법 강습을 받으라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차라리 이런 비유가 더 적절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건져줘야지요. 거기다 대고 ‘수영강습을 받아라’ 하면 되겠어요? 그 격입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진심으로 대통령을 면담하고 싶습니다. 법정 다툼으로 가는 걸 원하지 않아요.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지 않습니까. 꼭 응답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8월 11일 저녁, 페이스북 생방송에 출연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무리 발언이다. 이튿날, 기사 서두에 인용한 8월 12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의 ‘볏집 태우듯 잠시 부르르 타다 꺼질 수 있는 제도’라는 서울시 청년지원정책에 대한 ‘비판’이 그 응답이다. 포털에 전송된 이 장관의 브리핑 기사에 대한 댓글에서 한 누리꾼은 이렇게 말했다. “(청년들의 상황이) 불쏘시개라도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을 왜 모르나.” 정부와 장관에게 되묻고 싶은 질문이다.

국무회의 설전 속 침묵 지킨 대통령과 총리

서울시가 청년수당을 포함한 청년보장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보도한 <주간경향> 1140호 표지.

서울시가 청년수당을 포함한 청년보장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보도한 <주간경향> 1140호 표지.

<주간경향>은 1년 전, ‘노동개혁 대신 청년보장 안되나’를 주제로 한 커버스토리 기획을 진행했다.(1140호 커버스토리 기사 참조) 현재 청년수당 정책의 ‘원형’에 해당하는 정책을 서울시가 도입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사실상 첫 보도다. 기사에서 소개한 제도는 프랑스 정부가 실행하고 있는 ‘알로카시옹’이라는 이름의 현금 지급계획, 청년보장(유스개런티) 제도다. 프랑스는 2015년 연말까지 약 5만명의 청년에게 452유로, 한국돈으로 약 57만원을 지급하는 청년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이른바 ‘노동개혁’을 밀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8월 6일 기자회견에서 “노동개혁 없이는 청년들의 절망도,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통도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것이 노동개혁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현수막 전쟁’이 벌어진 것도 이 직후다. 박근혜 정부의 시책에 맞게 새누리당이 내건 ‘노동개혁으로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현수막에 ‘아버지 봉급을 깎아 저를 채용한다고요?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재벌개혁’이라는 당시 야당이 내건 맞불 현수막이 화제가 되었다.

‘청년보장’은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 앞서 열린 서울시 청년주간 행사에서 청년단체들이 꺼내놓은 아이디어였다. 이 행사를 앞두고 기자를 만난 전효관 기획관은 “무엇보다도 청년들 자신의 목소리로 나온 정책들을 서울시에서는 어떻게 받아 안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청년활동 보장제에 대한 연구를 2015년 연말까지 시행하고, 2016년부터 실시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청년활동 지원사업이 유럽연합(EU)의 유스개런티를 참조했다는데 유스개런티는 그런 사업이 아니다.” 8월 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 이기권 장관의 발언이다. 유스개런티는 공공취업지원서비스와 연계해 실직청년들을 직접 지원하는 사업인데, 서울시의 지원사업은 그런 연계가 없다는 논리다.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격’에 가담했다. “직접적인 현금지원이 교육훈련이나 구직활동에 사용되지 않으면 도덕적 해이가 나타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마이크를 잡은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의 청년정책을 잘못 이해하시는 것 같은데, 교육훈련 등에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선택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10여분간의 논쟁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나 황교안 국무총리는 침묵을 지켰다. 기자를 만난 전효관 기획관은 “서울시의 청년보장정책은 일자리, 주거, 활동공간, 부채 등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 상황을 두고 만든 4개 분야 20개 정책패키지인데, 그 중 정책 하나를 두고 ‘비슷하다’ ‘왜곡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빨라진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권 행보?

박원순 서울시장이 8월 8일 오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보건북지부의 청년활동 지원사업(청년수당) 직권취소와 관련해 ‘대통령과 면담을 요청한다’며 브리핑하고 있다./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8월 8일 오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보건북지부의 청년활동 지원사업(청년수당) 직권취소와 관련해 ‘대통령과 면담을 요청한다’며 브리핑하고 있다./연합뉴스

“내일 저녁 광주에 내려갑니다.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 강연을 하고요, 다시 저녁 9시에는 광주시민들의 번개에 참여합니다. 내일 광주에서 뵙겠습니다. 오다가다 보면 ‘원순씨’에게 손을 흔들어주세요.” 8월 11일 저녁. 페이스북 생방송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마무리 말이다. 광주에서 행사를 한 뒤 박 시장은 휴가를 간다. 휴가 때는 부인 강난희 여사 등과 함께 지리산에 올라가는 개인일정을 가질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년수당을 둘러싸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개면담 요청을 한 것을 두고, 대권을 둘러싼 박원순 서울시장의 행보가 빨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주간동아>는 이달 초 서울시청 6층이 박원순의 대선캠프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울시청 6층에는 시장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행정1·2부시장, 정무부시장, 민생경제자문관, 정무수석비서관·조직담당관 사무실이 있다. <주간동아>의 기사는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캠프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대거 서울시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1월 임명된 하승창 정무부시장, 그리고 7월 12일 서울시장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허영 더불어민주당 강원 춘천지역위원장을 꼽았다. 이외에도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의 ‘진심캠프’ 관련 인사 여럿이 서울시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주간경향>은 8월 11일 하승창 정무부시장을 서울시청 6층 집무실에서 만났다. 하 부시장은 “올해 총선을 앞두고 정치 쪽으로 본격 입문하기 위해 신변정리를 하던 중, 박원순 시장으로부터 서울시로 들어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 부시장은 안철수 캠프 인연 이전에 박 시장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참여한 2011년 박 시장의 희망캠프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고, 진심캠프 이후에는 다시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역시 시민사회 출신으로 캠프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은 바 있다. 정무부시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원순씨, 배낭 메고 어디가세요?>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허영 비서실장은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대선 준비라기보다 기존의 행정력만으로 대응하기 힘드니 정무적 대응도 필요해 정치경험이 있는 나를 비서관으로 뽑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시장이 각각 청계천 개발과 용산공원 관련으로 대통령 면담을 요청해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낸 바 있다”며 “노 대통령은 서울시장을 적극적인 국정운영 파트너로 인정해 논의했는데, 박근혜 정부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서울시정을 ‘정치화’하고 있는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라는 것이다.

8월 11일 서울시 행정을 경험한 시민사회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희망새물결’이라는 사실상 대선캠프가 꾸려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오성규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이사장과 지난 7월 구의역 참사사건을 계기로 물러난 서왕진 정책특보, 캠프에서 주요 직책을 담당한 김민영 전 참여연대 사무총장 등이 중심이 된 100여명의 인사들이 서울 서교동에 사무실을 차렸다는 것이다. 오성규 전 이사장은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시민사회 인사가 주축이 되어 꾸려졌던 전국모임 ‘혁신자치포럼’의 재정비 과정이 와전돼 알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단체의 공동대표를 맡았던 권미혁 의원이 국회에 들어가는 등 신상변동이 생겼고,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뿐 아니라 각계각층을 대변하는 시민정치조직을 9월 중 발족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하승창 부시장은 “캠프라고 할만 한 준비하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13일 광주 전남대 강연에서 “뒤로 숨지 않겠다. 역사의 대열에 앞장서겠다.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 행동하겠다”는 박 시장의 발언은 사실상 대권도전을 선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이번 광주 방문 이후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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