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검찰, 누가 먼저 재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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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수석 사퇴 여론에 레임덕 가속화… 검찰, 공수처 설치 여론 당면 과제

2015년 3월 당시 이완구 국무총리는 갑작스런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른바 ‘기획사정’이라 불린 박근혜 정부 3년차의 사정계획이 칼끝을 향한 곳은 자원개발과 대기업 비리 쪽이었다. 이 전 총리는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을 대동한 채 대국민 담화문을 읽었지만, 불과 50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성완종 리스트’ 사건 때문에 특별수사팀으로부터 수사를 받는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전 총리 본인이 스스로 발표한 부패와의 전쟁의 당사자가 되면서 여당 내에서도 이런 ‘헛발질’을 만든 배후가 누구인지를 묻는 책임론이 퍼졌다.

“자기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 시기에 그 정도 그림을 그릴 사람이 달리 누가 있었겠나.”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결과적으로 이 전 총리를 자승자박하게 만든 ‘기획사정’의 기획자였다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당내 책임론이 파다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국회뿐 아니라 사정기관인 검찰 내부에서도 비슷한 관측이 많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주도한 사정을 국무총리라는 ‘얼굴마담’을 내세워 진행했다는 것이었다. 검찰과 법무부, 민정수석실로 이어지는 보고체계를 거치지 않고는 파악하기 힘든 수사정황이 이 전 총리에게 알려졌다는 게 그 근거였다.

사정정국을 조성하며 대통령의 지지도를 뒷받침하겠다는 구상이 의도치 않게 난처한 국면으로 흘러가 결국 정권 차원의 신뢰도를 깎아먹고 만 결과는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긴 했다. 그러나 다소 과도한 사정 드라이브를 걸었던 무리수에 대해서는 적지않은 불만 의견도 있었다. 검사 시절부터 특유의 수사 감각과 스타일을 인정받았던 우 수석이지만 정치적 판단이 엇갈리는 광범위한 수사를 밀고 나가면서 미처 내다보지 못한 돌발적인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비판이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며 민정라인을 주도하던 우 수석은 교체되지 않고 남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3월 16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3월 16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집권 4년차 사정정국 순식간에 역전
그리고 다시 한 번, 지난해보다 더 강하게 민정수석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현직 검사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뒤 해임까지 된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 발단이다. 진경준 검사장은 기업에서 받은 비상장 주식이 대박을 터뜨리며 큰 액수의 이득을 취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무리 없이 검사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검찰, 국정원, 국세청, 공정위 등 사정기관을 담당하는 민정비서관과 고위 공직자 인사검증 및 내부 감찰 등을 담당하는 공직기강비서관을 휘하에 둔 민정수석이 진 검사장에 대해서만은 매우 둔감하게 대응했던 것이다. 이제 의혹은 단지 인사검증이 부실했다는 정도를 넘어 우 수석 본인의 비리의혹으로도 번지고 있다.

지난해의 첫 번째 책임론이 불거졌을 때와 같이 청와대와 우 수석은 굳게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반면 야당은 우 수석이 즉각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권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레임덕을 염려해야 하는 청와대는 지난 정권들이 보여준 선례처럼 집권 4년차의 사정정국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검찰이 그 선봉장이 됐다. 그러나 사정정국 분위기가 순식간에 역전되면서 검찰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검찰개혁을 요구받게 된 데다, 청와대 역시 사정정국의 지휘자 격인 우 수석이 비리의혹에 휩싸이며 당초 계획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정 스케줄을 이어나가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검찰과 청와대 모두 큰 타격을 입은 전례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검찰로서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을 포함한 검찰개혁 여론이, 청와대로선 우 수석 사퇴 여론이 거세지면 더욱 가속화될 레임덕이 당면한 과제가 됐다. 게다가 이전까지는 우 수석을 연결고리로 해서 상당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던 두 조직 간의 거리가 벌어질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 강도 높은 사정정국이 만들어지면 검찰은 다시 권력의 전면에 나설 기회를 잡고, 청와대와 박 대통령 역시 총선 패배 이후 어수선한 당 안팎의 분위기까지 주도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던 것이다. 그러나 우 수석의 위기로 검찰이 다른 방면의 활로를 찾는 방안도 전혀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게 됐다. 검찰 사정에 정통한 한 의원은 “우 수석 자신뿐만 아니라 그 라인이 검찰의 다른 라인과 척을 지고 있는 게 많은데, 여차하면 검찰총장부터 나서서 일찌감치 지금 정권과는 거리두기에 나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 입장에서는 검찰개혁이라는 요구는 대체로 국회를 중심으로 한 조직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주축이 되는 라인이 중심이 되어 내부적 결속을 다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청와대 역시 공수처를 설치하는 등 규모가 큰 개혁에 나서는 대신 검찰의 자체적 개혁을 유도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도 거론된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누가 봐도 레임덕이 오는 이런 시기에는 다음 정권에서도 힘을 유지하고 싶은 검찰이 결집하기 쉬운 때이기 때문에 그만큼 위상을 회복하는 것도 빠를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우 수석 사퇴해도 안 해도 타격
이에 비해 청와대는 우 수석을 계속해서 자리에 앉히거나 물러나게 하거나 양쪽 다 적지않은 타격을 더하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이 나온다. 우 수석이 자리를 지키는 이상 그밖에도 사드 배치 등으로 민심이 적잖이 돌아선 상황이 반전될 기회를 잃는 것이고, 자리를 떠나면 강한 민정라인을 바탕으로 검찰 등 사정기관을 장악해 레임덕을 피하려던 구상이 틀어질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박한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기존의 대표적 친박 주자들이 크게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부담이 된다. 친박과 비박 사이의 중도적 당대표가 선출되는 것까지는 대처 가능하다 쳐도, 비박계가 당권을 쥘 경우에는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총선 직후와는 달리 당내에서 계파를 우선하기보다는 다음 대선에 대비할 당 지도체제를 제대로 꾸릴 당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어 친박계라고 불리는 쪽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우선은 5~6개 부처의 개각을 통해 대통령이 정국을 쇄신할 의지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 뒤, 차후 이어질 새누리당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상황에 맞는 대책을 마련하리라는 것이 여당 안팎의 관계자들이 내놓는 공통된 관측이다. 그러나 친박계 당 지도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현재 맞고 있는 레임덕의 속도가 더 완만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는 신임하는 정도에 따라 청와대 참모들에게 쥐어주는 권력의 크기를 정해줬고, 그 결과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부속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이라 불리는 참모들에 더해 우 수석 등이 실세 그룹에 가담해 왔다. 그러나 더 이상 박 대통령이 레임덕을 부정할 수 없는 시기가 임박한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야권에서는 사드 배치 문제보다 더 강경한 태세로 우 수석 책임론을 확대 반복하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과 야당이 매일 청와대를 향해 우병우 사퇴 확성기 방송을 보내는데도 아무 응답 없는 박근혜 정권은 외부 정권”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우 수석을 향해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해서 대통령의 치마폭에 숨어 있을 문제가 아니다”라며 “즉각 사퇴하고 제대로 된 조사와 수사에 임하지 않는다면 민정수석을 보호하려 하다가 정권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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