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파시즘 차단’의 이름으로 집단 괴롭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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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혐오 사이트로 알려진 ‘메갈리아’와 관련한 논란이 뜨겁다. ‘메갈리아’에 우호적 의사를 표시한 음악인, 성우, 만화가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입을 잘못 열었다가는 누리꾼들의 뭇매를 맞는 실정이다.

음악. SBS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5 준우승자로 가창력 못지 않게 작곡 실력으로 주목받던 가수 안예은씨는 7월 25일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까지의 저의 경솔한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고 실망하셨을 모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로 시작하는 사과문을 올렸다. 안씨는 “명확한 논조도 없고 잘 아는 것도 아닌 채로 이리저리 휘둘리며 이야기하는 탓에 저의 음악을 좋아해 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실망감을 끼친 것 같습니다”라며 “오늘의 사태를 교훈 삼아 앞으로는 음악 관련 이외의 내용으로 SNS를 통해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아무리 직업이 가수라고 해도 트위터에서 음악을 제외한 어떠한 말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만큼 큰 잘못이 뭐였을까. 이날 안씨가 트위터에 올린 22자가 화근이었다. “티셔츠 샀다고 메갈(메갈리아)이면 메갈하지 뭐. #내가메갈이다.”

게임. “나는 영웅이 필요하지 않아. 친구가 필요해.(I don’t need a hero. I need a friend)” 디즈니 애니메이션 <프린세스 스타의 모험일기>(Star vs. the Forces of Evil)에 나오는 대사다. 이 애니매이션의 우리말 녹음에 참여한 성우 김자연씨(26)는 7월 18일 ‘Girls don’t need a prince(소녀들은 왕자가 필요 없다)‘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진과 함께 이 문구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문구대로만 보면 주체적인 삶을 꾸려나가겠다는 당찬 포부다. 하지만 김씨는 이 사진 한 장으로 하던 일에서 하차했다. 넥슨은 이용자들의 성화가 빗발치자 온라인 게임 ‘클로저스’에서 ‘티나’의 캐릭터를 연기한 김씨의 목소리를 교체했다. 김씨는 블로그에서 “메갈리아 페이스북 페이지는 최대한 미러링을 배제한 커뮤니티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들어 알고 있는 와중에, 유독 이 페이지만 자꾸 신고당하고 삭제당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제 섣부른 판단과 행동으로 많은 분들께-특히 제작사인 나딕게임즈와 퍼블리셔인 넥슨에-큰 상처를 드렸다”며 사과했다.

만화. 유료 성인만화 플랫폼 탑코믹스는 <동창모임>을 연재하던 웹툰 에이전시 AA미디어 소속의 스토리 작가 달곰이 “불미스럽게도 고객을 기만하는 언행을 했다”며 7월 24일 연재 중단을 선언했다. 달곰이 자신이 소속된 웹툰 에이전시의 대표가 김자연 성우를 지지하고, 김자연 성우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이들을 ‘찌질이’라고 비하했다는 이유였다. 비슷한 시기 만화팬들 사이에서 “청강문화산업대는 메갈 소굴”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학교 홈페이지에 항의방문이 잇따랐다. 박인하 교수(46)가 7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 발단이었다. “처음에는 ‘미러링’이라는 방법론에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방법’으로 이야기를 해야 겨우 ‘내가 들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진짜 하고 싶은 그녀들의 언어가 들리고,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과격을 포장해도, 그 뒤에 처참한 표정들이 보였다. 난 젠더권력에 아주 구체적인 여러 가지 기득권들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그녀들을 지지하자.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자. 일단 들어주자.”

서브컬처계에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메갈리아라는 유령이다. 만화, 게임, 음악 등 분야를 막론하고 ‘메갈리아’와 연관되면 극단주의자로 몰리며 독자의 질타를 받고 있다. 급기야 검열을 찬성한다는 예스컷(YES CUT) 운동이 등장했다. 예스컷의 모토는 “창작은 권력이 아니다”이다. 팬들을 기만하고 극단적 혐오사이트를 지지하는 문화예술인의 경우 연재 중단 등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정부가 아닌 팬들이, 특히 ‘표현의 자유’ 이슈에서 작가들을 지지해주던 소비자들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검열 찬성 운동에 문화예술계는 충격을 받고 있다.

2015년 11월 27일 서울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예술검열 반대와 문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문화예술인 만민공동회’가 열리고 있다. / 서성일 기자

2015년 11월 27일 서울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예술검열 반대와 문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문화예술인 만민공동회’가 열리고 있다. / 서성일 기자

항의 빗발치자 성우 목소리 교체
서비스 업체들은 발 빠르게 소비자의 요구에 응대하고 있다. 김자연 성우 사건으로 독자들과 트위터에서 논쟁하다 “(그런다고) 내 만화 안 볼 거야?”라고 조롱한 레진코믹스 영조 작가는 사과문을 올렸다. 레진코믹스는 소속 작가들에게 SNS 사용지침을 내려보냈다. 인터넷 게임방송 나이스게임TV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의 북미 리그를 중계하던 김경우 캐스터는 출연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김 캐스터는 트위터에서 김자연 성우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독재정권 시절 사상검증하는 들개”라고 비유했다. 모바일 게임 ‘시드 이야기’의 제작사 싱타(singta)는 일러스트레이터 메릴리를 권고사직시켰다. 메릴리는 김자연 성우를 비난하는 누리꾼들에게 “빻았다”고 표현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상대방을 가루를 내는 것처럼 폭력적으로 몰아붙인다는 뜻으로, “물어뜯다”보다 더 강한 의미를 담은 표현으로 사용된다. 업무상의 문제가 아니라 트위터에서 논쟁 중 벌어진 일들이 창작자들에게 ‘불매운동’이나 ‘하차 요구’로 돌아오고, 콘텐츠 서비스업체·제작업체들이 이를 들어주는 형국이다.

예스컷 운동에는 두 가지 층위의 당위가 존재한다. 표층은 ‘메갈리아’는 남성혐오를 일삼는 절대악으로서, 메갈리아를 조금이라도 두둔하면 안 된다는 논리다. 따라서 메갈리아를 공격하는 것은 ‘정의로운 행위’가 된다. 메갈리아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박스기사 참조) 한꺼풀 더 들어가면 소비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울분이 있다. 만화평론가 성상민씨는 “서브컬처(게임, 웹툰 등의 하위문화)에서 문화의 생산자와 향유자(소비자) 간의 거리가 지나치게 밀착돼 있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게임에서 캐릭터와 성우는 동일시된다. ‘클로저스’의 이용자들이 김자연 성우에게 극렬하게 반발한 이유다. 전반적으로 젊은 남성들에게 메갈리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공유된 상태에서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듯한 여성 성우의 행보는 ‘배신감’마저 안겨준다는 것이다. 일부 작가들의 독자를 향한 조롱은 분노를 자극했다. 성씨는 “웹툰 작가들은 네이버 베스트 도전 사이트에서 독자들의 호응을 통해 발굴되는 경우가 많다. 작가들은 독자들 덕에 데뷔하고 먹고사는데, 독자를 기만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심리가 있다”고 말했다. 영조의 조롱이나 달곰 사건을 거치면서 ‘오늘의 유머’에는 “독자를 우습게 아는 귀족작가”, “독자를 개·돼지로 아는 작가들에게는 쓴맛을 보여줘야 한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었다 게임에서 교체된 성우 김자연씨(왼쪽). 트위터에서 메갈리아티셔츠에 착용에 대한 비판을 비판했다 사과를 한 가수 안예은씨(오른쪽).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었다 게임에서 교체된 성우 김자연씨(왼쪽). 트위터에서 메갈리아티셔츠에 착용에 대한 비판을 비판했다 사과를 한 가수 안예은씨(오른쪽).

검열 찬성 ‘YES CUT’ 운동 등장
메갈리아를 극단주의자 파시즘이라고 주장하는 누리꾼들은 창작자들의 SNS 계정에 몰려가 “당신은 메갈을 지지하느냐”고 먼저 묻는 경지에 이르렀다. 파시즘을 처단해야 한다는 논리다. 개별 창작자들이 누리꾼들에게 난타당하거나 온라인에서 자신의 의견 표명을 숨기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특히 공격 대상이 여성일 경우 더 쉽게 무너졌다. 안예은씨처럼 SNS에서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만 하겠다고 사과하거나, 김자연씨처럼 “내가 알고 있던 메갈리아는 잘못된 것이었다”고 강제 사과하는 일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메갈리아는 나쁜 사이트’라는 관념이 강화되고 있다. 한국만화가협회, 음반제작자협회 등 직능단체는 공식적으로 대응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게임개발자연대가 넥슨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가 “메갈을 옹호한다”는 누리꾼들의 뭇매를 맞았다. 원내 제4당이자 진보정당을 자처하는 정의당은 넥슨을 비판한 당내 문화예술위원회의 논평을 상위 기구인 상무위원회에서 철회했다. 기업도, 정치권도 온라인 괴롭힘과 검열 요구에서 창작자들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는 7월 29일 “정당의 역할은 문제 해결에 있다”며 “극단적 방법을 제어해 나가는 것이 책임 있는 정당의 모습”이라고 밝혔다. 시장에 내맡겨진 창작자들에 대한 괴롭힘은 심 대표가 생각한 ‘사회문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인터넷에 등장한 ‘예스컷’ 로고. 2012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웹툰 유해매체 지정 반대 운동 당시 한국만화가협회가 제작한 ‘노컷’ 로고를 패러디했다.

인터넷에 등장한 ‘예스컷’ 로고. 2012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웹툰 유해매체 지정 반대 운동 당시 한국만화가협회가 제작한 ‘노컷’ 로고를 패러디했다.

특정 사안에 대해 한쪽 입장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 게임개발자연대는 “넥슨의 결정이 개발자들의 정치적 의사 표명을 막고, 특히 여성 개발자들의 목소리를 억압할 수 있다는 데서 심각함을 느낀다”고 발표했다.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은 “흔히 일베와 비교되는데, 일베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된다면 당연히 부당해고다. 일베 회원이 게임회사에서 해고된 사례가 있었는데, 당시는 게임에 회사 모르게 ‘4·19 폭동’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어 손해를 끼쳤기 때문”이라며 “김자연 성우의 경우 회사 업무와 무관한 의견표명이었다는 점에서 부당하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더욱이 성우 개인의 SNS 계정에 몰려가서 집요하게 묻는 일은 명백한 집단괴롭힘”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부탁한 한 웹툰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꺼리게 된다. 유명 작가가 아니고 심지어 생활고에 허덕이는 존재라도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독자와 정치적 견해가 일치될 것을 요구받는다”고 전했다. ‘극단주의’를 막겠다며, ‘파시즘’을 막겠다며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다.

불매운동에 작가 하차요구까지
하장호 예술인소셜유니온 사무처장은 “메갈리아의 표현방식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상, 종교 등의 여부를 떠나 차별받지 않은 것은 민주사회에서 노동의 기본적 권리인데, 직장에 속해서 노동법을 적용받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계약 관계로 이뤄지는 문화예술계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보호가 척박하다”고 말했다. 하 사무처장은 “이런 관점에서 문화예술과 관련한 정책적 의제들이 나와야 하고, 정의당 문예위의 논평이 출발점이 되기를 바랬는데, 메갈리아에 대한 당원들의 반응에 지도부마저 몰입해 문제의식 자체가 거론되지 못했다. 결국 정의당 지도부의 몰이해로 기회가 날아간 사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성상민 평론가는 ”다양한 의견을 묵살하고 한 가지 의견만을 강요하는 ‘판’에서 다양한 예술작품이 나올 수 없다“며 ”결국 판이 위축되거나 다양성이 사라지면 향유자들마저 설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 부르는 ‘메갈리아’는 어떤 사이트인가

‘페미 포터와 날아오는 돌’. 2006년 딴지일보가 운영하던 성인콘텐츠 매체 ‘남녀불꽃로동당’에 실린 칼럼 제목이다. 된장녀, 개똥녀 등의 조어가 나오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2001년 부산대 여성주의 웹진 ‘월장’이 복학생 문화를 비판하는 특집을 마련했다가 필진들이 성폭행 위협을 받는 등 사이버 테러를 당하는 ‘월장 사태’가 발생했다. 2002년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가 역시 사이버 테러를 당했다. 테러는 시민사회단체로부터 비판받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며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를 지칭하는 ‘페미’는 일종의 욕으로 정착됐다. ‘김치녀’ 등 여성 일반을 비하하는 표현이 등장했고, 어떤 사이트에서는 여성을 아예 ‘보지’, ‘자궁’ 등으로 지칭했다. 지난해 1월 자발적으로 IS에 가담한 김군은 “나는 페미니스트를 싫어한다. 그래서 ISIS를 좋아한다”는 말을 트위터에 남겼다. 방송인 겸 칼럼니트스 김태훈씨는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스트가 더 위험하다’는 글을 남겨 논란이 됐다. 불과 1년 전 일이다. 그런데 최근 남성 누리꾼들이 “페미니즘은 나쁜 게 아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등장한 ‘메갈리아’ 때문이다. “페미니스트가 문제가 아니라 메갈리아가 문제다”, “메갈리아는 남성혐오이지 페미니즘이 아니다”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페미’는 자연스럽게 욕의 지위를 내려놓았다. 메갈리아를 둘러싼 논쟁과 남녀 간 커다란 인식 차이는 바로 이 현상에서 시작된다.

메갈리아는 지난해 7월 등장했다. 디시인사이드 메르스갤러리에서 여성 관광객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마스크도 안 쓰고 돌아다니는 개념 없는 한국 여성 때문에 메르스가 확산됐다”는 글이 올라오고 동조하는 댓글이 여럿 달리자 화가 난 몇몇 여성 이용자들이 악플과 욕설로 게시판을 점령한 것이 뜻밖의 호응을 얻었다. 여성 몰래카메라 범죄 문제가 심각해지고, 데이트 폭력을 정당화하는 콘텐츠 유통으로 온라인 상에서 여성들의 불만이 팽배하던 시점에 이 사건은 기폭제가 됐다. 여성혐오와 성차별을 일삼는다는 점에서 ‘김치녀’는 ‘한남충’, ‘씹치’ 등으로 패러디됐고, 남성의 외모와 성기 크기를 품평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거울처럼 혐오를 되돌려준다는 의미에서다. 디시인사이드, 페이스북 등 매체들은 욕설과 선정적 표현을 이유로 메갈리아 및 파생사이트 페이지들을 차단했고, 메갈리아 이용자들은 “여성에 대한 혐오는 방치해두면서 메갈리아만 폐쇄하는 이중잣대야 말로 성차별”이라며, 끊임없이 사이트를 다시 만들어나갔다. ‘Girls don’t need a prince’(소녀들은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티셔츠도 메갈리아4 운영진이 페이지를 삭제한 페이스북 코리아와의 소송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단순한 커뮤니티 사이트가 아니라 ‘사회운동적 성격’이 존재한다.

메갈리아에서는 여성의 권익보호, 성차별 등에 대한 논의와 ‘미러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원색적 욕설 등이 뒤섞여 올라온다. 여성이 피해자였으므로 여성이 남성을 비하하는 것은 무조건 정당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소수자에 대한 비하 문제로 일부 이용자들은 떨어져나가 별도 사이트를 만들었다. 20대 남성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메갈리아는 극단주의자들이다. 김치녀는 일부 여성에 대한 지적이었는데 한남충은 한국 남자 전반을 싸잡아 비판한다”고 말했다. “메갈리아 이후 인터넷에 욕이 두 배로 늘었다. 일베를 비판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메갈을 싫어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베와 달리 사회 정의 추구를 내세우는 게 역겹다”는 의견도 있었다. 직장인 김모씨(31)는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혐오와 욕설을 저지르는 사람은 더 잘 이해하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이 오히려 반감을 갖는 모순이 존재한다. 욕설과 거친 표현에 거북함을 느끼지만 여성차별주의자로 몰릴까봐 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반면 옹호하는 목소리도 팽팽하게 맞선다. 메갈리아 이전 온라인 상 여성혐오는 악화되기만 하다가 메갈리아의 활동을 통해 ‘여성혐오’가 간신히 공론화됐다는 이유에서다. 대학생 박모씨(26)는 “인터넷에서 늘 위축되기만 했다가 메갈을 보면서 해방감을 느꼈고, 여성혐오를 저지르는 그들이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여성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메갈리아 이전에는 성차별 얘기만 거론해도 ‘페미’ 낙인을 찍었다. 지금은 메갈은 진정한 페미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행위는 ‘메갈’로 낙인 찍힌다. 과거 사이버 테러에 대한 반성은 없다. 메갈리아는 여전히 우리 사회 성차별이 무엇인지를 폭로한다”고 답했다. 30대 남성 유모씨는 “욕설은 싫지만 여성들이 느끼는 억압, 답답함을 메갈을 통해 알게 됐다. 아직까지 메갈리아가 범죄를 모의하거나 저지른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소비자는 문화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성상민 만화평론가>

[표지이야기]‘파시즘 차단’의 이름으로 집단 괴롭힘?

‘넥슨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메갈리아 논란’에는 여성혐오뿐 아니라 창작자와 소비자와의 관계 문제가 놓여 있다. 성우 김자연을 지지하고, 그녀와의 계약을 해지한 넥슨을 비판하는 창작자들을 비난하는 이들은 자신이 작품을 그간 계속 본 ‘독자’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창작자들이 만든 작품을 보기 위해 돈도 꾸준히 지출한 ‘소비자’임을 강조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창작자가 만든 작품에 많은 애정을 드러냈지만, 창작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인 자세를 보인 것에 상처를 받았다며 ‘독자를 무시하는 판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자신들의 공격을 정당화한다.

이토록 강경한 태도를 내비치는 서브컬처의 향유자들에게서는 크게 두 가지의 함의가 관찰된다. 하나는 일종의 변형된 소비자 중심주의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비난을 ‘작가가 독자를 무시했다’는 근거를 내걸며 합당한 행동이라 주장하지만, 정작 관찰되는 것은 작가가 먼저 개인의 의견을 밝힌 뒤 해당 의견이 잘못된 것이자 ‘메갈리아’를 옹호한다는 이유로 선제적으로 비난하는 상황 또는 독자가 먼저 작가에게 이번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묻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뜻과 맞지 않자 이를 공격하는 일방적인 소통의 자세이다. 물론 일부 작가의 경우 조롱조의 말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경솔한 지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에 맞서 작가에 대해 인신공격을 하고 동시에 그들이 활동하는 판 자체를 뒤집어엎으려는 시도는 너무나도 과해 보인다.

이는 어찌 보면 향유자들이 그간 창작자들에게 드러낸 태도의 연장선상에 가깝다. 독자들은 웹툰이 정시에 업로드되지 않으면 작가들에게 ‘프로 정신’이 없다며 댓글로 무수한 비난의 메시지를 내뱉어 왔다. 정해진 간격에 맞춰 작품을 만들지 못한 것은 분명 문제의 소지가 없진 않지만, 이 외에도 작가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작품 연재를 잠시 쉬거나 연재가 종료된 작품을 무료에서 유료로 전환할 때도 즉각적인 비난의 반응이 쏟아졌다. 물론 독자들이 원하던 전개와 전혀 딴판으로 작품이 흐를 때도 원색적인 언어폭력이 댓글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향유자들은 창작자들이 먼저 자신을 무시했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창작자를 자신들보다 낮은 존재로 인식했던 것은 향유자들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논란이 된 작품을 너무나도 쉽게 없애길 요구하는 자세이다. 작품에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쉽게 비난이 나왔고, 다시 그 비난은 연재 중단 요구로 이어졌다. 휴재나 지각이 잦은 작품은 물론 사회적인 이슈와 연루되어 논란을 낳던 작품들 역시 그러했다. 작년 <뷰티풀 군바리>가 여성혐오성 표현으로 논란이 될 때도, 한국 작품은 아니지만 일본 게임 <함대 컬렉션>(칸코레), <도검난무>가 우익 소재로 논란이 일 때도 너무나도 쉽게 해당 작품 자체를 없애길 원했다. 여성혐오적인 작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과연 해당 작품이 우익적인 작품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공론의 장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이처럼 분명 한국의 서브컬처 향유자들에겐 문제적인 자세가 관찰된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들은 여성혐오에 무지한 한국 사회와 겹쳐지며 심각한 수준으로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 사태의 책임과 근원을 모두 향유자들에게 모는 것 역시 적절치는 않아 보인다. 단순히 그렇게 책임을 지우기에는 그간 한국의 서브컬처가 전개된 과정 속에서 내재되어 왔던 한계들이 이번 사건에서 계속 관찰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서브컬처는 그간 규제의 위험함과 시장 자체의 성장만을 강조했다. 1996년까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현재까지도 셧다운제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웹툰 심의 논란 등으로 문제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해되지 않는 태도는 아니나, 시장 자체가 성장하면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이렇다 할 신경을 쓰지 못한 대가는 컸다. 각 영역의 창작자들이 계속 겪는 고용 문제는 물론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표현을 추구해야 하는지와 같이 창작의 담론을 형성하기 위한 고민은 관심사에서 사라진 지 오래됐다. 물론 창작자와 향유자 사이의 관계성을 고민하는 시도도 없었다. 오로지 각 창작자나 연구자 개인의 차원에서 이야기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담론과 비평이 사라진 공간에서 판 자체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게임개발자연대를 제외하면 한국 서브컬처계의 단체들은 이렇다 할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있다. 규제 사안이 조금이라도 언급되면 즉각적으로 성명을 발표해 대응하던 모습과 천양지차다.

‘표현의 자유’와 ‘시장의 성장’만을 강조한 자세가 역설적으로 표현의 자유는 물론 시장의 존립 자체를 위협받음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은 셈이다. 너무 늦은 성찰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담론을 만들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궁극적인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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