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 ‘브레이크 없는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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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면 먹을 시간도 없는’ 기사들… 열악한 근무환경과 부실한 관리·감독

출퇴근 시간을 지났지만 구로디지털단지역 버스환승센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환승센터에는 버스의 줄이 끊이지 않고, 환승센터 바로 아래 있는 마을버스 ‘영등포01’, ‘구로09’ 정류장에도 부지런히 버스들이 오고간다. 121개의 파란색 간선버스와 213개 초록색 지선버스가 서울 곳곳을 거미줄처럼 엮고, 그 빈 공간을 마을버스가 채운다. 역과 역 사이, 큰 도로와 아파트 단지 사이를 잇는 마을버스는 시민들의 소중한 발이다.

색깔과 노선번호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똑같은 것 같은 마을버스이지만 자세히 보면 버스 후미에 각기 다른 소속 회사가 적혀 있다. 형일교통, 서북교통, 대상운수, 한남상운…. 무작정 오른 버스는 구로디지털단지에서 가산디지털단지까지를 잇는 마을버스다. 왕복 10차선 시흥대로를 따라 움직이는 듯 싶더니 금세 골목으로 들어간다. 차도와 인도가 제대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 골목을 지난다. 정류장이 아닌 곳에 차가 잠시 멈추면, 반대편에서 큰 차가 오고 있다는 신호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온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다 도로를 막고, 예상치 못한 골목에서 사람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크랙션과 브레이크가 반복되고, 차선을 넘나드는 운전이 이어지지만 승객도 버스기사도 태연하다. 그렇게 15개 남짓한 정류장을 지나는 데 걸린 시간은 18분. 가산디지털단지까지 3.6㎞의 거리를 달린 버스 종점에 사람들이 내렸다. 승객들이 다 내리자 버스는 바로 앞 사거리에서 회차를 한다. 회차를 한 버스가 멈춘 곳은 한 건물 앞. 운전기사는 버스 밖으로 나와 담배를 문다. 담배를 문 지 1분이나 되었을까. 부랴부랴 다시 버스에 올라 구로디지털단지를 향해 출발한다. 구로디지털단지는 회차 없이 바로 출발하니 버스 운행을 하는 동안 이 노동자가 쉴 만한 곳은 좀 전의 건물 앞뿐이다. 그러나 그 곳에는 의자 하나, 화장실 하나 없다. 그렇게 마을버스는 제대로 담배 한 대 필 시간도, 한숨 돌릴 공간도 없이 골목 사이를 가로지른다.

금천06 종점 / 오진호

금천06 종점 / 오진호

수상쩍은 마을버스의 분사 과정
다른 마을버스에 올랐다. ‘금천06’. 구로디지털단지에서 금천노인종합복지관까지 가는 마을버스다. 얼마 전 언론을 통해 버스기사들의 ‘사발면 먹을 시간도 없는’ 사연이 알려지며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이 버스를 운행하는 회사는 한남상운이다. 한남상운 노동자들은 7월 7일부터 경성운수의 인허가 취소, 한남상운의 위법행위 및 규정위반에 개선명령, 조합원 해고 및 직장폐쇄 조치 철회 등을 요구하며 금천구청 구청장실 앞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한남상운의 이전 이름은 신곤운수다. 신곤운수는 2005년부터 ‘금천05’, ‘금천06’, ‘금천07’을 운영해왔다. 그러던 중 2016년 2월에 노동자들 몰래 ‘금천05’를 경성운수로, 3월에는 ‘금천06’과 ‘금천07’을 한남상운으로 분사시켰다. 그리고 신곤운수는 이름을 ‘성수여객’으로 변경해 본사를 성동구로 이전한다. 노동자들은 10년 동안 운영해온 회사가 분사한 배경에 2015년 10월 25일 설립한 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 서울경기강원지역버스지부 신곤운수지회’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합원들의 대다수였던 ‘금천05’ 노선을 처리하고자 경성운수라는 신설법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 회사는 노조와의 단체교섭이 결렬된 후 6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분사과정의 미심쩍음은 신설법인인 경성운수 등록과정에서 확인된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회사가 마을버스 인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차고지, 사무실, 휴게실, 세차시설, 정비시설, 점검시설, 화장실, 교육실 등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경성운수가 사무실이라고 밝힌 공간에는 위에서 밝힌 부대시설이 전혀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아니, 부대시설은 고사하고 현재는 건물 자체가 불법건축물로 확인돼 철거요청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 허위·거짓 신고다. 이는 시행령 ‘면허취소 등 행정처분기준’에 따르면 ‘사업면허취소’의 처분을 받아야 하지만 경성운수는 버젓이 운행 중이다.

경성운수 사무실 / 공공운수노조 서울경기강원지역버스지부 신곤운수지회 제공

경성운수 사무실 / 공공운수노조 서울경기강원지역버스지부 신곤운수지회 제공

서류를 위조해 신설법인을 등록하는 마당에 기존 버스 노동자들의 권리들이 제대로 보장받고 있을 턱이 없다. 한남상운이 서울시와 금천구청에 등록한 운행기준에 따르면 ‘금천06’은 하루에 150회 운행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162회를 운영한다. 하루 12회를 더 운행하니, 안 그래도 부족한 휴게시간은 더 쪼들린다. 하루 근무시간인 9시간 동안 9회 운행, 1회 코스 운행에 걸리는 시간 70분(정상운행 기준). 잠시라도 쉬기 위해서는, 화장실이라도 들르기 위해서는 과속을, 난폭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 식당 밥은 꿈도 꿀 수 없고, 회사가 나눠주는 1500원 상당의 빵과 우유, 편의점 김밥이 근무 중 먹는 유일한 식사다. 회사는 이마저 야속하다.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지급해 운행 중 설사를 해야 했던 모욕적인 경험도 해야만 했다. 회사가 돈을 쫓는 딱 그만큼 노동자들의 존엄은 땅으로 떨어진다. 노동자들의 존엄이 땅으로 떨어져 난폭운전으로 내몰리는 만큼 시민들의 안전도 위협받는다.

유통기한 지난 우유와 빵으로 점심
이제야 드러나기 시작한 버스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와 버스회사들의 전근대적 회사운영. 제대로 된 실사 한 번 없이 마을버스 업체를 인허가해 준 금천구청과 서울시에도 책임이 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여객자동차운송사업 면허 발급과 등록은 시장이나 도지사에게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를 금천구청에 위임했고, 버스회사들에 대한 관리·감독은 전무했다. 그리고 금천구청은 탁상행정으로 버스 인허가를 처리했다.

위에서 언급한 한남상운의 초과운행은 관련 시행령에 따르면 적발될 때마다 과징금 100만원이다. 그러나 한남상운(신곤운수 포함)은 이제까지 단 한 차례의 과징금도 물지 않았다. 구청이 오히려 “초과운행은 시민서비스 차원에서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서울시에 등록된 마을버스 업체가 131개, 등록대수는 1489대, 운전기사는 3190명이다.(2015년 6월 기준) 최근 4년간(2011~2014년) 마을버스 업체에 지원한 재정만 495억원이지만 노동자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서울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 비율은 47.3%,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한 달 만근이 26일이니 주5일 근무는 턱도 없다.(2015년 6월 기준) 회사는 노동자들이 병가를 내면 임금을 50% 차감한다고 협박하고, 교통사고 처리비용도 노동자들이 부담하도록 압박한다. 2014년 서울시 마을버스 교통사고 발생 263건, 사망자 수 10명. 시와 구청의 관리·감독이 사라진 자리에 버스노동자들의 존엄과 1000만 서울시민의 안전을 지킬 최소한의 보호망도 사라졌다.

금천구청을 나와 다시 ‘금천06’에 몸을 실었다. 왕복 45개 정류장, 13.6㎞. 표준 운행시간은 70분이라지만 도착까지 걸린 시간은 45분에 불과했다. 좁은 골목을 지나며, 몇 번의 급브레이크와 크랙션이 또다시 이어졌다. 버스기사는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과 차에게 몇 차례 욕을 한 후에야 종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슬아슬했던 45분. 나는 종점까지 사고 없이 도착했음에 감사했고, 버스 노동자가 담배 한 대 필 틈을 얻을 수 있었음에 감사해야만 했다.

<오진호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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