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Ⅰ

가리킨 곳은 못 보는 ‘특권 내려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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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으로 떨어진 국회 신뢰도가 배경… 입법부 본연의 제 역할에 더 고민해야

7월 4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국회의원 세비를 절반으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회의원 세비는 OECD 주요 국가 중 일본, 미국에 이어 3위”라며 “국민소득 대비 의원 세비를 독일 수준으로 받으려면 세비를 절반으로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의 세비와 관련한 논쟁은 이전부터 있었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은 일 안 하는 국회의원의 세비를 반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대 국회 원구성을 앞두고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세비를 받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행정부가 의회정치를 무시한 것으로 비판받았고, 안철수 전 대표의 주장은 인기영합주의라고 비판받았다. 그러나 20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세비 삭감’은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딸 채용으로 불거진 국회의원 친인척 보좌진 채용 논란이 확산되면서, 이른바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20대 국회 처음부터 세비삭감 이슈로
‘세비 삭감’과 함께 ‘특권 내려놓기’ 중 하나로 ‘면책특권’도 논쟁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회의원 면책특권은 헌법 제45조에 명문화된 권리다.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이 직무상 한 발언이나 표결에 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 헌법상 권리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면책특권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나선 쪽은 새누리당이다. 더민주 조응천 의원이 법사위원회에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발언을 하고 하루 만에 이를 사과하면서 새누리당은 면책특권 폐지를 더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면책특권 뒤에 숨어서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를 일삼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이를 국회 정치발전특위의 중요한 의제로 다루겠다”고 말했다. 반면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면책특권을 헌법에 명시한 이유는 야당 의원들에게 정부 견제 권한을 준 것”이라며 “이 문제를 국회의원 전체의 특권 내려놓기 문제와 연동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면책특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 만큼 여소야대 국면에서 여당의 주장처럼 개정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특권 내려놓기’가 이슈가 된 배경에는 바닥으로 떨어진 국회의 신뢰도가 있다. 2015년 3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가기관이나 단체 중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가장 낮은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해식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원이 쓴 ‘사회통합의 결정 요인: 통합상태를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남녀 3648명을 조사한 결과 입법부(국회)를 ‘매우 신뢰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1.0%에 불과했다. ‘다소 신뢰한다’는 응답은 16.4%였다. 두 항목을 더한 국회의 신뢰도는 17.4%였으며, 이는 사법부·행정부·검찰·경찰·언론계·군대·노조 등 13개 조사대상 기관 중 제일 낮은 수치다.

20대 국회 개원식에서 의원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20대 국회 개원식에서 의원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입법부의 국민적 신뢰도가 낮은 상황에서 ‘특권 내려놓기’는 신뢰도를 제고하기 위한 입법부 나름의 시도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현재 상황에서 ‘특권 내려놓기’는 필요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정치 일반이 그렇지만, 국회의 신뢰도가 워낙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국회의 ‘특권 내려놓기’는 불가피하다. 먼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포퓰리즘적인 접근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고, 행정부나 일부 언론의 의도라는 문제제기도 있지만, 국회가 신뢰도를 일단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특권 내려놓기’는 해야 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낮은 것은 현실이지만, 그럴수록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입법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세비 삭감이나 면책특권 논의에 치우치는 것은 국회 본연의 임무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의 말이다. “입법부는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고 싸우는 곳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면 국회에서 싸워서 이를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게 맞지 ‘입법부가 이것을 양보할 테니 당신들은 저것을 내놓아라’는 식의 논의는 맞지 않다고 본다. 입법부가 신뢰도가 낮은 건 사실이지만, 입법부 본연의 역할을 어떻게 더 잘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하는 것이 필요하지 여론의 흐름에 밀려서 세비를 삭감하자고 하는 것에는 비판적이다. 여소야대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쏟아져나오는 ‘특권 내려놓기’에는 입법부에 대한 의도적 견제도 있다고 본다. 국회의원 세비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라고 국회가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 “면책특권을 헌법에 명시한 이유는 야당 의원들에게 정부 견제 권한을 준 것이다.”/강윤중 기자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 “면책특권을 헌법에 명시한 이유는 야당 의원들에게 정부 견제 권한을 준 것이다.”/강윤중 기자

‘특권 내려놓기’의 또 다른 배경에는 불평등한 한국 사회에 분노한 여론이 있다. 장은주 영산대 교수는 ‘메리토크라시’ 개념에 빗대어 한국 사회를 설명했다. ‘메리토크라시’는 ‘능력에 따른 지배체제’를 의미한다. 장 교수는 한국 사회는 노력이나 능력이 아닌 상속·세습이 더 좌우하는 사회로 “한국 사회는 제대로 된 메리토크라시가 아니라 부당한 기득권이 은폐되고 정당화되는 과두 특권 독점체제”라고 말했다. 불평등한 한국 사회에서 국회의원의 친인척 보좌진 채용 논란은 여론의 분노를 살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딸을 보좌관으로 채용하는 이러한 특혜에 대해 대중들이 분노하는 것은 일종의 메리토크라시적 정의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거시적인 수준에서 메리토크라시적 재화 분배는 다른 문제이기는 하지만, 미시적인 수준에서 봤을 때 능력에 따라 적합한 자리를 갖느냐 갖지 않느냐를 따지는 것은 대중들의 정당한 반응이라고 본다.”

국민 여론에 대한 포퓰리즘적 대응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국회의원 면책특권 뒤에 숨어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는 없어져야 한다.”/연합뉴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국회의원 면책특권 뒤에 숨어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는 없어져야 한다.”/연합뉴스

문제는 국회 차원에서 이뤄지는 ‘특권 내려놓기’ 논의가 이러한 여론에 대해 올바른 응답을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는 점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특권 내려놓기’는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입법을 하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회의 기본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권한과 필요 없는 권한이 무엇인지 따져보는, 목적이 확실한 논의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현재 정치권의 반응은 여론에 대한 포퓰리즘적 반응에 불과하지 불만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은 아니라고 비판했다. “영국의 브렉시트는 영국의 의회정치와 직접민주정치가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은 영국의 수준을 넘어 사회적 불만이나 분노가 훨씬 높은 사회다. 그러나 정치권이 이런 걸 수용해서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 현재 ‘특권 내려놓기’를 하겠다는 정치권의 반응은 이 분노에 대해 ‘조금만 참아달라. 우리가 길을 찾고 대안을 마련해보겠다’는 메시지가 아니다. 포퓰리즘적으로 여론조사가 이렇고 대중이 이렇다고 따라가는 상황이다. 스스로 리딩하는 역할은 전혀 하지 못하고 문제가 터지면 분위기에 휩싸여 문제가 된 사람 몇몇을 욕하고 끝내는 상황이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국민소득 대비 의원세비를 독일 수준으로 받으려면 세비를 절반으로 낮춰야 한다.”/연합뉴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국민소득 대비 의원세비를 독일 수준으로 받으려면 세비를 절반으로 낮춰야 한다.”/연합뉴스

그러다 보니 자칫 ‘특권 내려놓기’가 ‘의회혐오주의’로 빠질 우려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장은주 교수는 “의전상의 특혜라든지 국회의원들의 특권 중 충분히 비판해야 할 부분이 있지만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정치혐오를 불러오고, 불의한 기득권 체제를 온존시키는 데 기여를 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특권 내려놓기’가 한국 사회의 기득권 문제를 국회의 문제로만 한정시켜 국회로부터 견제받아야 할 행정부나 시장 기득권 세력의 문제점을 간과하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국회의원 자료제출 요구가 ‘갑질’로 연결돼 특권으로 비판받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자칫 의회활동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민주 박주민 의원은 세월호 집회와 관련, 경찰서장 2명의 19가지 자료를 요청했다. 이 자료에는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어 피감기관에는 압력성 자료 요구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더민주 한정우 부대변인은 자료제출 요구권은 국회의 정당한 요구권이라고 반박했다. “국회는 헌법이 보장한 자료제출 요구권을 통해 입법활동을 하거나 국가기관을 감시할 수 있다. 감시기관인 국회가 피감기관에 자료를 요구한 것은 국민을 대신해 피감기관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라고 부여받은 권한이다.” 박주민 의원은 “자료를 요청했는데 만약 해당 기관에서 개인정보라고 제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밝히고 제공을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언론에 흘려 이를 굉장한 폭압을 당한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정당한 의회활동을 위축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국회와 행정부의 권력의 기울기를 볼 때 ‘자료제출 요구’에 ‘갑질’을 연결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행정부가 국회에 자료제출 요구에 성실히 응한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매해 국정감사 기간 때마다 ‘정부의 자료제출 거부’ ‘늑장 부실자료 제출’은 논란이 됐다. 그러나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의원의 갑질 근절도 국회 정치발전특위에서 중요한 의제로 다루겠다”며 이 또한 ‘특권 내려놓기’의 일환으로 다루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당무감사원 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서 의원은 자신의 의원실 인턴으로 딸을 채용해 논란을 빚었다. / 권호욱 기자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당무감사원 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서 의원은 자신의 의원실 인턴으로 딸을 채용해 논란을 빚었다. / 권호욱 기자

유권자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정치권의 ‘특권 내려놓기’가 여야 간의 이해다툼이나 인기영합주의, 입법부 견제 등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서복경 교수는 “‘국회가 깨끗해졌다’는 차원이 아니라 ‘특권 내려놓기를 통해서 유권자들의 복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목적이 명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철 교수는 대안을 갖고 논의를 해야 하며, 논의과정에 시민들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논쟁 자체가 특권 폐지냐 아니냐 이런 식으로 자꾸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보다는 특권 사용의 범위, 특권을 적용할 건지 아닌지에 대해 시민들이 주체로 참여해 논쟁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에서는 의회의 특권을 약화시키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일반 시민들이 윤리위원회에 참여했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논의가 한국 사회에서는 나오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포퓰리즘적으로 흐르고 지식사회에서는 원론적으로 가는 측면이 있는데, 이를 해결할 방도는 시민들의 관여도를 높이는 것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정치혐오는 대의기능에 불편한 집단이 즐겨쓰는 프레임”

/ 강윤중 기자

/ 강윤중 기자

‘국회의원 특권’과 ‘정치혐오 프레임’ 사이에서 현재 정치권의 이슈인 ‘특권 내려놓기’를 어떻게 봐야 할까.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특권 내려놓기’는 “유권자에게 반응하는 책임 있는 의회의 모습으로 나아가는 노력의 일환으로 필요한 과정”이라고 말하면서도 ‘특권 내려놓기’는 더 좋은 의정활동을 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국회의원이 일반 노동자의 삶과 거리를 좁혀가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이는 의회만이 아니라 입법부·사법부·행정부 모두의 과제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좌관 친인척 채용, 면책특권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특권 내려놓기’가 정치권의 이슈가 됐다.
“‘특권 내려놓기’는 ‘좋다’ ‘나쁘다’로 판단해서 볼 문제는 아니다. ‘특권 내려놓기’ 그 자체는 도구적이고 수단적이기 때문이다. 선출된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할 일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특권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특권 내려놓기’는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입법을 하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회의 기본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권한과 필요 없는 권한이 무엇인지 따져보는, 목적이 확실한 논의가 되어야 한다. 예컨대 세비를 조정한다면 세비 조정으로 국회의 신뢰도가 높아져 국회가 그 기능을 잘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목적성이 있어야 한다. 면책특권도 마찬가지다.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국정운영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국회의 기본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무엇이 과도하고 과도하지 않은지 목적을 염두에 둔 논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논의의 흐름을 보면 중간에 샛길로 빠져나가 ‘특권 내려놓기’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누가 더 기존의 제도를 훼절하고 깎아내느냐는 식의 논의로 빠져버린다.”

일각에서는 ‘국민정서’에 부합하기 위해 ‘특권 내려놓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여러 가지가 착종돼 있는데, 그러다 보니 선명성 경쟁이 벌어진다. 예컨대 친인척 보좌관 채용 문제는 유권자의 시선에서 봤을 때 취업기회의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 금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그런데 이 또한 수단적이어야 한다. 국회가 지금 청년실업 문제에 비춰 유권자의 시각에 반응하는 의정활동을 하겠다는 각오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마녀사냥’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할 문제이지 ‘다 한통속이다’라는 관점으로 논의해나갈 문제는 아니다. 일부 언론은 국회에 대한 불신으로 이 이슈를 끌고가려는 의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유권자가 원하는 게 과연 ‘우리가 투표한 결과 모두 한통속인 도둑놈들을 뽑았더라’는 결론일까. 어떻게 해서든 선출된 대표로서 유권자의 기대에 부응해 일을 해달라는 게 유권자들의 요구다. ‘모두가 한통속이다’라는 논의로 이득을 보는 유권자는 없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20대 국회의 힘을 빼려는 ‘정치혐오’ 프레임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게 볼 여지는 있다. 그러나 사실 여소야대 때만이 아니라 여대야소일 때도 국회에 대해서는 늘 그랬다. ‘국회가 다 도둑놈’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이득을 보는 유권자는 없어도 이득을 보는 집단은 있다. 국회의 입법이나 결정 등을 통해서 견제받아야 할 시장 기득세력 또는 미디어의 기득권 세력들이다. 이들은 국회의 견제로 피해를 볼 수 있는 집단들이다. ‘정치혐오’는 선출된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시장에 대한 규제를 하고 또는 행정부 관료들의 월권을 견제하는 등 강력한 대의기능을 수행하는 것 자체가 불편한 집단들이 즐겨 쓰는 프레임이다. 여소야대 때만이 아니라 여야 모두에 적용되는 프레임이다.”

한국 사회가 유독 ‘정치혐오’가 심한 편인가.
“기본적으로 어느 나라나 그렇긴 하다. 모든 문제가 정치를 통해 해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외교가 안 돼도 정치가 문제고, 경제가 안 돼도 정치가 문제다. 그런데 한국이 좀 특수하다. 역사적으로 힘이 약한 상태에서 국회가 출발했다. 오랜 독재 경험이 있었다. 국회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언술들을 보면 수십 년 독재체제가 만들어낸 인식의 구조를 그대로 갖고 있다. 적어도 서구에서는 행정부 수장이 의회를 향해 ‘밥값 못하니 세비를 깎아라’는 식의 말은 하지 않는다. 유권자들이 의회를 바라보는 관점도 정치인들의 해석과 태도를 통해서 형성이 된다. 의회에 대한 존중은 국회의원 300인에 대한 존중이 아니다. 이들을 뽑은 주권자들에 대한 존중이다. 그런 규범이 한국 사회에는 아직 정립이 안 돼 있다.”

정의당 노회찬 대표도 얼마 전 세비를 절반으로 줄이자고 했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세비 삭감 논의는 포퓰리즘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과 지금 대한민국의 평균 근로자의 평균소득 격차가 다른 나라보다 큰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입법·사법·행정부 전체로 고위공직자들의 급여수준 체계를 유권자들의 평균소득과 연동해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의회만 그렇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장관급인 국회의원이 국가공무원 1급 수준으로 급여가 떨어졌다면 유권자 입장에서는 행정부, 사법부도 여기에 뒤따르라고 말할 수 있다. 전략적으로 고위공직자와 일반 노동자들의 소득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국회의원이 먼저 솔선수범하겠다고 앞장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행정부나 사법부에 대한 논의는 누락된 채 국회만 세비를 줄여야 한다는 논의가 지배적이다. 국회의원 세비 조정에 전체적으로 헌정체제를 구성하는 입법부·사법부·행정부와 일반 국민의 삶의 거리를 좁혀나가겠다는 비전이 명료하게 서 있다면 그 자체로 문제가 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언론 보도를 봐도 그렇고 늘 국회의원만 문제를 삼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박근혜 대통령의 세비 삭감이나 안철수 전 대표의 무노동 무임금과 같은 잘못된 발언들이 나오는 것이다. 유권자들도 헷갈린다. 세비 조정은 입법부는 입법부대로,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사법부는 사법부대로 전체 유권자들의 삶과 밀착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의 차원에서 고민돼야 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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