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Ⅱ

‘판도라의 구로구 투표함’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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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대선 투표함 29년 만에 드디어 개봉… 군사정권의 선거부정 의혹 실체 밝힐까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한 중앙선관위 과천 수장고에 ‘대통령선거 우편투표함’이라고 적힌 낡은 하늘색 투표함이 있다. 1987년 12월 16일 치러진 13대 대선 당시 투표함이다. 훗날 ‘구로구청 사건’이라 불리는 일 때문에 이 투표함은 개봉되지 못한 채 29년째 선관위가 보관하고 있다.

소위 ‘구로구 투표함’은 구로구청 사건 이후 20년간 구로구 선관위가 보관하고 있다가 2007년 중앙선관위 수장고로 옮겨졌다. 선관위 수장고에는 사료 가치가 있는 다양한 자료들이 보관돼 있지만, 박물관처럼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것은 아니다. 과연 구로구 투표함은 29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지, 투표함 안 내용물의 상태가 온전한지는 투표함을 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7월 14일, 한국정치학회와 중앙선관위는 문제의 구로구 투표함을 개봉한다. 선관위 측은 “이 자리에서 투표함 봉인이 과연 당시 선거법 절차에 맞게 진행됐는지 검증할 예정”이라며 “누구나 투표함 개봉을 볼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투표함 개함 및 개표는 서울시 종로구의 선거연수원 대강당에서 열린다.

1987년 12월 16일 공정선거감시단 회원들이 '구로구 투표함'을 깔고 앉은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7년 12월 16일 공정선거감시단 회원들이 '구로구 투표함'을 깔고 앉은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당시 부재자 투표 4000여표 담겨
1987년 12월 16일은 직선제 개헌 이후 시민들이 처음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는 날이었다. 당시 시민들은 15년 만에 대선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날 오전 11시쯤, 서울시 구로구청 안에서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 한 트럭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선거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선관위가 투표함을 외부로 반출하려 한다는 제보를 받고 달려온 시민들이었다. 몇몇 시민들이 트럭에 투표함이 실려 있는지 확인했지만, 트럭 안에는 식빵이나 과자만 실려 있었다. 그런데 한 시민이 열어젖힌 빵이 담긴 상자 안에서 봉인이 완전히 되지 않은 투표함이 발견됐다. 중앙선관위는 현재 이 투표함에는 4000여명의 부재자 투표가 담겨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구로구 선관위에서 선거시간이 끝나기 전인 오전 시간에 왜 투표함을 개표소로 보내려 했는지, 투표함을 왜 빵 상자 안에 숨겼는지 시민들에게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하자 구청에 모인 시민들은 이 투표함을 부정투표함으로 규정했다.

당시 서울시 공정선거감시단 조직국장이었던 윤두병 구로동지회(구로구청 사건 참가자들의 모임) 회장은 “현장에서 투표함을 확인하고 바로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일단 투표함을 깔고 앉아 있으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구로항쟁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오후 1시30분쯤, 일부 시민들은 구로구청 3층에 있는 선관위 사무실을 조사해야 한다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여기서 용도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투표함 1개와 투표용지 1506장이 새로 발견됐다. 투표함 바꿔치기가 일어난 것 아니냐는 소문이 퍼지면서 순식간에 1000여명의 인파가 구로구청 앞마당을 메웠다. 저녁이 되자 시민들은 부정선거의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구로구청에서 무기한 점거농성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윤 회장은 당시 농성에 참가한 사람이 연인원으로 2만명가량 될 것이라고 봤다.

구로구청 점거농성은 12월 18일 오전에야 끝났다. 18일 새벽 1시쯤, 경찰버스 약 70대가 구로구청 인근에 배치됐고, 오전 6시30분쯤부터 백골단 등 전투경찰들이 구청 안으로 진입했다. 구청의 시민들은 애국가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저항했지만, 결국 농성은 2시간여 만에 진압됐다. 이 과정에서 농성 참여자 양원태씨가 옥상에서 떨어져 하반신 마비가 됐다. 구로구청 사건 참가자들이 1988년 1월 발간한 ‘구로구청 부정선거 항의투쟁 백서’에는 머리를 다쳐 봉합수술을 하거나 갈비뼈가 부러진 채 병원에 누워 있는 시위대의 사진이 실려 있다.

경찰 진입으로 끝난 구로구청 점거농성
양원태후원회의 부회장을 지낸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구로구청 사건에 대해 군사정권의 연장이 눈앞에 뻔히 닥친 상황에서 시민들의 불만이 터진 것이라고 봤다. “양김(김영삼, 김대중)이 분열한 상황인 데다가 전두환 정권이 그대로 대통령 선거 관리를 하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느낌이었다. 민주화를 생각했던 국민들은 당연히 1987년 대선에서 부정선거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구로구청에서 일이 터진 것이다.”

물론 중앙선관위는 예나 지금이나 ‘선거부정은 없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09년 발행한 선관위의 <대한민국 선거사>에서 선관위는 구로구청 사건을 ‘구로구을 선관위 우편투표함 탈취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 책에서 선관위는 구로구청 투표함에 대해 “통상적이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이송 중인 투표함”이라며, 시위대가 사무실에 들어간 행위 등에 대해서는 “기물을 파괴하고, 선관위 직원 등을 불법감금, 폭행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어 선관위는 이듬해인 2010년 1월 구로구 투표함 공개를 논의했지만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연기했다.한편, 구로구 투표함 연구를 주도하는 한국정치학회 측은 지속적으로 이 투표함에 관심을 가져 왔다. 군사정권 시절 투표 상황을 직접 보여주는 사료로 남은 건 이 구로구 투표함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부정선거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도 구로구 투표함 공개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구로구청 참가자들의 입장에서도 부정선거를 주장하기는 했지만 명확한 증거를 포착한 것은 아니다. 2001년 농성 참가자 중 일부가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보상을 받았지만, 부정선거가 인정됐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구로구청 사건 참가자들이 큰 부상을 당한 데 대한 보상의 성격이 강했다.

결과적으로 구로구청 사건 이후 선관위가 투표시간 종료 전에는 투표함을 옮기지 못하게 하는 등 몇 가지 제도개선을 이끌어낸 점도 이 사건이 민주화운동을 인정받는 한 이유다. 한국정치학회 구로구 투표함 연구팀의 책임연구원인 손병권 중앙대 교수는 “제가 판단하기에 당시 선거행정에 오류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선거시간이 오후 6시까지인데, 오전 11에 반출시키려 했다는 것 자체가 중대한 과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런 행정적인 과실 때문에 당시 구로구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DJ정부 당시 민주화운동이 인정된 것과 선거부정 여부와는 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정치학회는 이번 조사를 통해 군사정부 시절의 선거 실태를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선관위의 주장대로 투표함 바꿔치기 등 선거관리 상에 부정은 없었던 것으로 결론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투표함은 당시 부재자투표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료의 가치를 가진다. 한국정치학회에 따르면 구로구 투표함은 군대 내 부재자 투표가 담겨 있다. 당시 여당 대선주자였던 노태우 후보가 지나치게 많은 득표를 했다면 군대 내의 선거부정 행위를 의심할 수 있다.

구로구청 사건에서 4년여가 지난 1992년 3월, 14대 총선을 앞두고 이지문 중위의 군 부재자투표 내부고발 사건이 터졌다. 당시 이 중위는 군대 내에서 무조건 여당인 1번을 투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고 폭로했고, 이를 계기로 군대 내 부재자 투표는 영외에서 실시되게 됐다. 그러나 실제 투표 자료를 통해 군대 내에서의 선거부정의 실상이 보여진 적은 없었다. 구로동지회 윤두병 회장도 이 부분을 기대하고 있다. 윤 회장은 “군사정권 때는 군인은 거의 강제로 여당표를 찍게 하던 시기였다. 구타를 해가면서 사실상 공개투표로 했다는 것은 당시엔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만약 이번 투표함에서 노태우를 찍은 표가 압도적으로 높게 나오면 당시 군대 내에서 어떻게 투표가 이뤄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구로구청 사건 참가자들이 생각한 것처럼 선관위가 선거부정을 저질렀다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 경우 구로구 투표함은 부정선거의 직접적인 증거물로서 큰 역사적 가치를 갖게 된다.

책임연구자인 손 교수가 말하는 투표함 진위 여부 판독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다. 부재자투표의 경우 회송용 봉투에 투표지를 담아서 우편으로 투표한다. 그 안에는 선관위 관련자들의 도장뿐만 아니라 우체국의 소인 등 찍혀야 할 도장이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중 일부라도 누락된 표가 많다면 투표함의 진실성 여부를 의심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에 의뢰해 투표함과 내부의 투표용지가 29년 전의 것인지 후대에 조작한 것인지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선관위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어떻게 생각할까. 중앙선관위 김수진 사무관은 “그동안 정치적 악용의 소지가 있어서 개함을 미뤄오다가 민주화 30주년을 앞두고 이젠 객관적인 상황으로 볼 수 있는 때가 아닌가 해서 개함을 결정했다”며 “개함을 했을 경우 (선관위에) 부정적인 부분이 나오더라도 객관적으로 역사의 일부를 볼 때가 아닌가. 저희 입장에서도 현재 투표함이 29년 전의 그 투표함이 맞는지 정말 알고 싶다”고 말했다.

투표함 개함과 관련해 제3의 가능성도 있다. 현재 발견된 투표함 자체는 조작 등 부정행위가 이뤄지지 않은 투표함이 맞지만, 실제로는 바꿔치기 등의 수법으로 투표함 조작을 하려는 순간에 시민들에게 적발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정황은 투표함 개함만으로는 알 수 없다. 또한 구로구청 사건 당시 시민들이 선관위 사무실에서 발견했다는 또 다른 투표함과 투표용지(둘 다 현재는 사료로 남아있지 않음)의 실체는 무엇인지 등 구로구청 사건의 전반적인 진실 역시 구로구 투표함은 말하지 않는다. 일단 한국정치학회 측은 사건과 연루된 사람을 가능한 한 많이 인터뷰하기로 했다. 구로구 투표함 연구팀의 공동연구원 서복경 서강대 교수는 “선관위 등 관계기관의 협조를 받아 당시 시위대뿐만 아니라 선관위에서 일했던 사람들에게도 인터뷰 신청을 하고 있다. 구로구청 사건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인터뷰를 하다 보면 예상보다 보고서를 발표하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특집Ⅱ]‘판도라의 구로구 투표함’ 열린다

‘구로항쟁’ 참여 인사들의 생각은
당시 구로사건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던 인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구로구청 사건 이후 양원태후원회의 부회장을 지냈던 윤용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부추연) 대표는 구로구 투표함 개봉 소식에 “감개가 무량하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지나간 역사라고 해도 부정선거 여부에 대한 사실규명은 반드시 하고 넘어가야 한다”며 이번 개봉을 통해 “어떤 방식이든 선거를 조작하는 행위, 거기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것은 범죄행위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알리게 됐다”고 말했다.

윤두병 회장은 의외로 이번 개함에 대해 부정적이다. 중앙선관위와 구로동지회 사람들은 구로구청 사건에 대한 인식차가 크다. 중앙선관위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구로구청 사건을 ‘투표함 탈취사건’으로 보고 있는 반면, 구로동지회 측에서는 ‘구로항쟁’이라는 표현을 쓴다. 윤 회장은 “7월 3일에 동지회 사람들끼리 모여서 구로구 투표함 개봉을 연기해 달라고 선관위에 요청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중앙선관위가 ‘구로항쟁’의 의미를 퇴색시키기 위해 이번 일을 사실상 주도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대화 과정에서 중앙선관위에 대한 불신도 내비쳤다.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이 이뤄지기 전까지 군사정권은 수많은 부정선거를 저질러 왔다. 우리가 깔고 앉았던 구로구 투표함은 오랫동안 자행된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를 상징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데 중앙선관위는 자신들이 계륵으로 여겼던 투표함을 개봉해서 의미를 퇴색시키고 구로항쟁의 의미를 축소시키려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

아울러 윤 회장은 중앙선관위가 부정선거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키려면 과거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만큼이나 현재 자신들에게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서도 정확히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1987년 당시 중앙선관위를 못 믿어서 선거감시단을 꾸렸다. 지금도 선관위가 부정선거를 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이들이 전자개표기(투표지 분류기)를 쓰지 말자고, 투표소에서 바로 개표를 한 뒤에 집계하자는 주장을 하는데, 선관위에서는 정확한 답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가 끝난 구로구 투표함은 어디로 가게 될까. 중앙선관위 김수진 사무관은 “연구 이후 구로구 투표함은 다시 수장고로 들어간다. 중요 사료인 만큼 훗날 선관위 박물관이 생기면 그곳에 보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끊이지 않는 투·개표 의혹, ‘시민의 눈’ 수용해야

1987년 구로항쟁은 13대 대선 개표과정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시민들의 문제제기에 서울시 구로구 선관위가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하면서 의문은 기정사실이 되고 항쟁으로 번졌다. 전두환 정권이 백골단 등을 투입해 구로구청에 모인 시민들을 강제 해산하면서 구로구청 사건은 ‘선거 부정을 은폐하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한 사건’으로 기정사실화됐다.

선거의 투·개표 과정에 대한 불신과 의문은 30년이 지나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 구로항쟁에 참여했던 이들 중에도 여전히 선거부정 관련 시민단체 일을 하는 이들이 있다. 윤두병 구로동지회 회장이나 윤용 부추연 대표는 투표지 분류기(일명 전자개표기) 사용을 중지하고 모든 개표과정을 100% 수개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간이 흘러 윤 회장과 윤 대표의 정치적 색깔은 정반대로 갈렸지만, ‘선관위를 믿을 수 없다’는 문제인식은 그대로다.

투·개표 과정에 대한 의혹은 선관위가 자초한 측면도 크다. 올해 4·13 총선의 경우, 인천시 남동구에서 한 사전투표함이 자물쇠에 봉인지가 누락된 채 개표소로 이송되는 일이 있었다. 경남 진주시에서는 1개 면의 사전투표자 100%가 새누리당에 투표한 것으로 알려져 개표 부정 논란이 일었다. 나중에 진주시건은 2개 면의 사전투표지가 개표과정에서 섞이면서 발생한 일로 드러났다.

지난 선거에서도 투·개표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18대 대선 개표과정이 담긴 영상에 선거사무원이 투표지 분류기를 거친 100표 묶음을 4초 만에 확인하고 넘기는 모습이 포착됐다. 대구시의 한 개표소에서는 심사·집계부에서 수검표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계수기로 표를 넘기는 일도 있었다. 2012년 총선에서는 서울 강남구을 일부 투표함의 투입구 등이 봉인되지 않은 사실이 밝혀져 한때 개표가 중단됐다. 일련의 일에 대한 선관위의 대답은 한결같다. 담당 사무원의 ‘실수’ 또는 ‘업무처리 미숙’이다.

시민단체 시민의날개는 올해 총선에서 모니터링단 ‘시민의눈’을 운영했다. 시민의눈 회원들은 서울 전역 총선 개표소의 개표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투·개표 과정을 직접 감시한 것은 아니지만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총선넷)는 정부 관계자들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감시하고, 사실상의 낙선운동을 전개했다. 이승훈 총선넷 공동사무처장은 “특히 ‘시민의눈’은 이른 새벽부터 개표가 끝날 때까지 꼼꼼히 감시를 했다. 그 결과 이번 총선에서는 투·개표 과정이 보다 투명해져 부정의혹이 줄어드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이 사무처장은 선관위가 유권자들의 선거 감시활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관위는 총선넷의 활동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반대로 선관위가 국정원이나 보수단체의 선거법 위반을 엄중히 감시해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시민들의 자발적 운동을 선관위가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선관위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근 몇 년간 투·개표 과정의 논란은 논란으로 그쳤을 뿐 법적으로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다. 국정원 대선 개입 등 큰 틀에서의 ‘선거부정’에 비해 투·개표 부정의혹에 대한 사회적 주목도도 낮은 게 사실이다. 한국정치학회의 구로구청 투표함 연구팀 서복경 교수(서강대 교수)는 “군사정권이 끝난 이후에는 최소한 선관위가 의도적으로 투·개표 과정을 조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투·개표 의혹에 대한 사회적 반향은 낮은 편”이라면서도 “선관위를 불신하는 쪽의 의견도 편견없이 들어봐야 하는데, 공론의 장 자체가 열리지 않는 점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법관이 관행적으로 각급 선관위원장에 임명되는 일에 대한 비판도 일었다. 18대 대선 개표과정 영상을 공개한 정병진 목사는 지난해 국회 토론회에서 “각급 선관위가 선거범죄에 연루된 경우에도 판사가 선관위원장을 하기 때문에 공정한 재판이 이뤄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행 선관위법에 따르면, 각급 선관위원장은 선관위원 중에서 호선한다. 상임위원의 경우 판사뿐만 아니라 검사·변호사나 법학·정치학·행정학 교수도 할 수 있다. 즉, 판사가 꼭 선관위원장이 되라는 법은 없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판사가 선관위원장을 하는 것은 “일종의 관습법”이라며 “각급 선관위원장이 소송의 당사자가 됐을 경우 다른 판사가 재판을 담당하는 법원 내에서 재판의 공정성에 혼선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정치학자는 “나라마다 선거관리제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법관이 선관위원장을 할 이유는 없지만 누가 선관위원장을 하느냐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나 국회가 추천한 인물이 선관위원장을 한다고 바로 선거의 공정성이 확보되는 건 아니다. 입법·행정·사법 3부 모두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떨어진 상황에서 선거 과정에 대한 의혹 제기는 금세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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