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플라스틱 수프로 변한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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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흘러든 미세 플라스틱이 해양 생태계 파괴… 인간 건강에도 치명적

독일 태생 영국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고 했지만, 때로 작은 것은 위험하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아 방치하는 사이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 미세먼지가 있다면 바다에는 미세플라스틱이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7월 6일 미세플라스틱의 유해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전 세계적으로 실시하면서 유해 미세플라스틱 문제가 국제적 환경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이란 지름 5㎜ 이하의 플라스틱을 통칭한다. 크기가 작다 보니 구, 조각, 섬유형태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미세플라스틱은 산업적 필요성에 따라 인위적으로 작게 만든 ‘1차 미세플라스틱’과 대형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에서 마모되거나 쪼개지면서 생긴 ‘2차 미세플라스틱’이 있다. 1차 미세플라스틱 중에는 마이크로비즈(Microbeads)가 있다. 미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치약, 화장품, 보디워시, 폼클렌징, 각질제거제 등에 들어가는 미세한 플라스틱 입자다.

국제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가 한 해변에서 발견된 다양한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모아 놓았다. / 그린피스 제공

국제 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가 한 해변에서 발견된 다양한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모아 놓았다. / 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 유해성 알리는 캠페인 벌여
지난해 6월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유엔환경계획(UNEP)이 낸 한 편의 보고서에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보고서는 “바다로 흘러든 미세플라스틱이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잠재적으로 인간의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며 미세플라스틱의 퇴출을 촉구했다. 세계 각국은 그동안 눈에 보이는 ‘큰 플라스틱’만을 주목해 왔다. 해양동물들이 큰 플라스틱 조각을 먹거나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해양동물들의 숨구멍을 막아 폐사시키는 사례가 많이 목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더 나쁜 것은 미세플라스틱이었다. 그린피스 박태현 해양캠페이너는 “플랑크톤, 어류 등 바다 동물들이 마이크로비즈를 포함한 미세플라스틱을 먹이로 오인하고, 심지어 먹이보다도 더 즐겨먹는 경우도 있다”며 “미세플라스틱을 먹은 생물들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 늦고, 성장이 느려지며 심지어는 변이를 일으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마이크로비즈는 비스페놀A, 노닐페놀(NP), 폴리염화페닐, 디클로로디페닐 트리클로로에탄(DDT) 등 수많은 발암물질이 포함된 독성화학물질로 구성돼 있다. 이 미세한 조각들은 독성화학물질을 밖으로 내뱉거나(침출), 주변의 독성화학물질을 끌어모으거나(흡착), 이렇게 흡수했던 독성물질을 다시 내뱉는(탈착) 과정을 겪으면서 주변을 오염시킨다. 이런 마이크로비즈를 플랑크톤이 먹으면 플랑크톤을 작은 어류가 먹고, 작은 어류는 큰 어류에 잡아먹힌다. 큰 어류는 결국 어부에 잡혀 인간의 식탁에 올라온다.

이미 바다는 미세플라스틱으로 가득 차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51조개의 미세플라스틱 조각이 해수면을 떠다니고 있다. ‘바닷물은 미세플라스틱 수프’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미세플라스틱은 해수면뿐만 아니라 해수층, 해저퇴적물, 심지어 북극의 해빙에서도 발견된다.

한국 해역도 마이크로비즈에 심하게 오염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인천대의 연구를 보면 한국 해변의 미세플라스틱 오염도는 일본, 브라질, 포르투갈, 미국의 해변에 비해 매우 높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연구에서도 연안의 미세플라스틱 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해역의 미세플라스틱 오염이 심한 것은 양식업 발달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조심스레 나온다. 양식을 위해 사용하는 각종 플라스틱 제품들이 파도와 자외선에 의해 분해되면서 미세플라스틱을 대량 양산한다는 것이다.

미세플라스틱 수프로 변한 바다

치약·화장품 등에 함유… 하수도 통해 유출
원인이야 어쨌든 해양생물들은 이렇게 형성된 미세플라스틱 수프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즐기고 있다. 최근 과학자들이 지중해에서 채취한 어류표본의 18% 이상에서 플라스틱 부스러기가 발견됐다. 이 중에는 황새치, 참다랑어 등 인기어종도 포함돼 있다. 북해에서 양식된 홍합과 대서양에서 기른 굴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됐다.

미세플라스틱이 바다를 메우는 과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반 플라스틱 쓰레기다. 연간 800만톤이 바다로 유입된다. 플라스틱은 매년 더 많은 양이 생산되고 있다. 2002년 2억400만톤이던 플라스틱 생산량은 2013년 2억9900만톤까지 늘어났다. 그린피스 관계자는 “매년 다랑어를 잡는 양이 800만톤 정도라고 하는데, 다랑어를 빼낸 양만큼 플라스틱으로 채우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플라스틱 쓰레기도 쓰레기지만 처음부터 작게 만든 미세플라스틱이다. 화장품 한 제품에는 최대 36만개의 마이크로비즈가 포함돼 있다. 세수를 하면 이 마이크로비즈는 하수도를 통해 바다로 흘러간다. 입자가 워낙 작아 하수처리시설을 거쳐도 걸러지지 않는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화장품에 사용된 마이크로비즈는 매년 최대 8762톤씩 유럽 바다로 유입된다. 미국 해역으로 흘러드는 마이크로비즈도 매일 8조개 이상 된다. 매일 테니스코트 300개를 덮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각국이 주목하는 것은 마이크로비즈다. 마이크로비즈는 하기에 따라서 통제가 가능한 미세플라스틱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마이크로비즈 청정 해역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미국에서 마이크로비즈를 함유한 세정제의 판매와 유통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만, 캐나다, 호주,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벨기에 등에서도 비슷한 규제법안을 준비 중이다.

한국도 비정부기구(NGO)의 대응은 늦지 않다. 여성환경연대는 지난해부터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이슈화해 상당한 성과를 이끌어냈다. 여성환경연대는 지난해 국내 유통되는 화장품 1500여개를 분석해 미세플라스틱 함유량을 조사했다. 대한화장품협회는 지난 4월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내년 7월까지 화장품 제조사들이 자율적으로 마이크로비즈 사용을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국내 화장품 55개사는 “미세플라스틱 사용을 중지하겠다”고 밝혔다. 정현희 여성환경연대 정책국 활동가는 “미세플라스틱의 주범 중 하나가 여성들이 사용하는 화장품이라는 데서 미세플라스틱 캠페인을 추진하게 됐다”며 “올해는 주로 화장품을 따지지만 의료용구, 침구류 등 다른 영역으로도 캠페인을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 정부의 대응은 다소 느려 보인다. 아직 어느 부처에서 담당을 할지도 논의되지 않았다. 화장품과 식품의 문제라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육상에서의 플라스틱 오염을 포괄하면 환경부가, 해양오염으로 한정하면 해수부가 주무부처가 될 수 있다. 일단 해수부는 미세플라스틱이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용역에 들어갔다. 하지만 축적된 과학데이터가 필요한 까닭에 용역 결과가 나오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해수부 관계자는 “조만간 그린피스 등 비정부기구 관계자들을 만나 미세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며 “다만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규제가 본격 논의되면 어민들이 쓰는 어구, 부표 등도 대상이 되는 만큼 법제화가 쉬운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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