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메일 스캔들 불기소’ 힐러리 역풍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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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 FBI 국장은 클린턴과 그 참모들이 “극도로 부주의했다”고 비판했지만 “합리적 검사라면 기소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불기소를 권고를 했다. 국가기밀인 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소홀히 다뤘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로 유력한 도널드 트럼프가 경쟁상대인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부를 때 항상 쓰는 단어가 있다. 바로 ‘부정직한(crooked)’이다. 트럼프의 페이스북에서 ‘부정직한 힐러리 클린턴(crooked Hillary Clinton)’은 상투어다.

클린턴에게 부정직하다는 이미지를 덧씌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게 바로 ‘이메일 스캔들’이다. 국무장관 재임 시절 개인 이메일을 사용해 국가 기밀사항을 유출했다는 의혹과 이에 대한 클린턴의 명확하지 않고 왔다갔다 하는 해명들 탓이다. 연방수사국(FBI)은 지난주 부주의했지만 기소할 사항은 아니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클린턴은 법적 책임에서는 벗어났지만 정직하지 못하다는 이미지를 씻어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메일 스캔들의 시작과 끝을 정리해본다.

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5일(현지시간) 워싱턴 본부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메일 스캔들과 관련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5일(현지시간) 워싱턴 본부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메일 스캔들과 관련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불기소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54%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은 2015년 3월 2일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촉발됐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부에서 개인 이메일 계정 사용, 규정위반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보도였다. <뉴욕타임스>는 클린턴이 2009년 1월부터 2013년 1월까지 4년의 장관 재임 기간 중 정부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았음은 물론 공무에 사용한 개인 이메일을 보관하지도 않아, 연방기록물관리법(Federal Records Act)에 위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또 2014년 12월쯤 클린턴의 조언자들이 그의 이메일 중 3만건, 5만5000페이지를 국무부로 넘겼다고 전했다.

이 같은 사실은 하원 조사위원회가 2012년 발생한 벵가지 습격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클린턴으로부터 자료를 제출받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벵가지 사건은 아프리카 북부에 위치한 리비아의 도시 벵가지에 있는 미국 영사관을 이슬람 무장단체 테러리스트들이 습격한 사건이다. 국무부와 중앙정보국(CIA)의 늑장 대응으로 4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비판이 일면서 의회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클린턴의 관련 이메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메일들이 모두 개인 계정인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메일이 보편화된 뒤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 이후 국무부 이메일 계정을 쓰지 않은 장관은 클린턴이 처음이었다.

2016년 대선 경선 레이스가 시작된 후에도 이메일 스캔들은 클린턴을 계속 따라다녔다. 그러자 <워싱턴포스트>는 스캔들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탐사보도에 나선다. <워싱턴포스트>의 결론은 “클린턴이 공무에 개인 휴대전화와 이메일 서버를 사용, 국가안보와 투명성에 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었다.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3월 27일 공개한 사태의 뿌리는 다음과 같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 AP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 AP연합뉴스

클린턴은 국무장관 집무실에 들어가기 전 보안금고에 자신의 블랙베리 휴대전화를 보관해야 하는 절차를 매우 싫어했다. ‘마호가니 로(Mahogany Row)’라는 보안공간인 7층 집무실에는 갖고 들어가는 것이 금지돼 있음에도 클린턴은 이메일을 개인 블랙베리를 통해 주고받기를 고집한 것이다. 측근들과 국무부 고위 인사들이 블랙베리를 보안공간에 반입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클린턴의 임기 시작 한 달 뒤인 2009년 2월 17일 국가안보국(NSA) 관리 5명이 ‘마호가니 로’의 회의실에 모였다. 이들은 클린턴의 최측근인 셰릴 밀스 당시 비서실장에게 블랙베리 해킹이나 도청 등의 위험을 설명한다. 결국 클린턴은 ‘마호가니 로’에 블랙베리를 반입하지 않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다른 장소에서는 개인 블랙베리를 계속 사용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클린턴의 블랙베리가 자택 지하에 설치된 개인 이메일 서버에 연동돼 있었다는 점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08년 11월 국무장관으로 그를 지명했을 때 클린턴의 자택에는 이미 서버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국무부는 초기에는 서버 구축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뉴욕타임스> 보도 이후 공화당은 ‘뜻밖의 호재’에 쾌재를 불렀다. <폭스뉴스>를 중심으로 ‘클린턴 중도하차론’도 나왔다. 클린턴은 2015년 3월 10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무와 개인 이메일을 위한 별도의 휴대전화를 갖느니 1개를 갖고 다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지만 사태는 커져만 갔다. 6만여통의 이메일 중 업무 관련 메일은 국무부에 제출했지만 사적인 메일들은 모두 폐기했다고도 밝혔다.

‘e메일 스캔들 불기소’ 힐러리 역풍 맞나

'보수 시민단체 ‘사법감시(Judicial Watch)’는 국무부를 상대로 이메일 공개 소송을 제기했다. 논란은 그해 7월 23일 다시 본격화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2명의 감찰관이 클린턴의 개인 이메일을 조사한 결과 기밀로 분류될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해 국무부에 보고했고, 국무부는 다시 법무부에 수사를 의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 달 후인 8월 14일에는 FBI가 수사에 착수한 사실도 확인됐다.

클린턴도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그는 9월 8일 기자들에게 ‘나의 이메일(My email)’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돌렸다. 클린턴은 “나는 개인용과 업무용으로 나눠 2개의 이메일 계정을 사용했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실수였고, 죄송하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법이나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고, 어떠한 기밀문서도 주고받지 않았으며, 투명하게 조사에 응하고 있다는 입장도 반복했다.

공화당, FBI 국장 청문회와 특검 거론
대선 레이스 내내 이메일 스캔들은 결론 없이 논란만 계속됐다. 그리고 지난 5월 25일 국무부 감사관실의 조사 결과 발표로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감사관실은 클린턴이 이메일 모두를 보관·제출하지 않은 것은 국무부 규정 위반이라고 밝혔다. 남은 쟁점은 이 문제가 검찰이 클린턴의 법적 책임을 물을 정도인가에 맞춰졌다. 그런데 6월 27일 피닉스 공항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만난 게 알려지면서 곤경에 처한 로레타 린치 법무장관은 기소 여부와 관련해 “FBI 수사진의 권고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겠다”며 논란에서 발을 뺐다. 결국 클린턴의 목줄을 잡은 쪽은 FBI였다.

FBI는 클린턴을 소환해 3시간30분 동안 조사한 후 지난 5일 최종 결론을 내놨다.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기자회견에서 클린턴이 국무부에 제출한 3만건의 이메일 가운데 52다발 110건은 비밀정보였다고 밝혔다. 그 중 8개 다발은 1급비밀(top secret), 36개 다발은 비밀(secret), 다른 8개 다발은 그보다 낮은 기밀(confidential) 사항이었다는 것이다. 제출하지 않은 수천 건의 e메일 중에서도 1다발의 비밀과 2다발의 정보사항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그는 클린턴과 그 참모들이 “극도로 부주의했다”고 비판했지만 “합리적 검사라면 기소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불기소를 권고했다. 국가기밀인 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소홀히 다뤘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민주당이나 공화당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만족시킬 수 없는 곤경에 처한 FBI로서는 잘못은 했지만 법률적으로 문제삼을 정도는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FBI의 결론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분위기다. 공화당은 특검까지 거론하고 있으며, 의회 다수 의석을 활용해 코미 국장에 대한 상임위 청문회도 진행할 계획이다. 클린턴 입장에서도 상처가 적지 않다. 법적 책임은 면했지만 투명하지 않고, 정직하지 않다는 평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라스무센의 미국인 1000명 상대 조사에서 54%는 FBI의 불기소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동의한다는 응답은 37%에 불과했다.

<박영환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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