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고(1)

파견법 제도화한 현재, 잊혀진 거짓말과 계속되는 거짓에 대하여…여러 구실 내세워 갈수록 ‘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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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기고(1)]파견법 제도화한 현재, 잊혀진 거짓말과 계속되는 거짓에 대하여…여러 구실 내세워 갈수록 ‘개악’

1998년 2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명칭으로 파견이 법제화되었다. 노동관계에 제3자가 개입해 이득을 취할 수 없다는 근로자 공급 금지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파견근로가 현실에서 늘어나고 있고, 기업의 유연한 인력관리 차원에서도 허용이 필요하기에 관련 법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제정의 이유였다. ‘기업의 인력관리의 신축성 제고’가 바로 ‘파견근로자 보호’라는 무의미한 법명 뒤에 가려진 본질이었으며, 노동자들의 저항은 IMF 외환위기로 인해 가로막혔다.

2년 후 노동자들이 파견법 제정을 반대했던 이유가 현실로 나타났다. 2년 동안 파견근로를 사용할 수 있고 2년 초과 시에는 직접고용된 것으로 본다는 기간규제는 2년이 되는 시점 대규모의 해고 사태를 낳았다. 당시 해고된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 한국 사회는 파견노동이 저임금·고용불안의 대명사임을 실제로 체감할 수 있었는데, 파견법상 고용의제 조항 적용 2년 시점을 앞두고 해고되기 시작한 방송사 파견노동자들의 수는 그해 연말까지 227명에 이르렀다.

이후 17대 국회에서 당시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이 파견법 폐기안을 발의했으나, 정부개정안과 병합심사되면서 사라져버렸다. 이때 발의된 정부안이 바로 기간제법을 만들어 비정규직 사용을 일반화하고, 파견법상 고용의제를 의무로 완화하는 것이었다. 결국 파견법 개악안은 기간제법과 함께 직권상정되어 제안 설명도, 반대토론도 없이 날치기 처리되었다.

이렇게 민의를 대변해야 할 국회는 늘 자본의 입장을 대변했다. ‘유연한 인력관리’를 위해 파견법을 도입했고, 파견법 폐기안이 제출되었을 때는 노사의 의견대립이 있다고 하면서도 ‘기업의 경영부담측면을 감안할 때 파견 대상업무 확대의 필요성이 인정’(파견법 검토보고서, 2004.11. 환경노동위원회 전문위원)된다고 보았다.

‘노동권 침해’ 본질은 달라지지 않아
정부는 계속해서 파견법 개악을 시도했다. 2010년에는 파견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시나리오까지 준비하면서 파견법 개악을 노렸고, 그 후에는 사내하도급법안을 주장하며 불법파견이라는 범죄에 합법의 틀을 씌워주려 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고용위기를 틈타 파견법의 본질 자체를 왜곡해 선전한다. 파견이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좋은 제도인 것처럼 고령자의 노동시장 진입을 위해서도,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서도, 당면한 조선업종 위기에 따른 구조조정 국면 극복을 위해서도 파견 확대가 필요하다고 되뇐다.

그러나 정부가 만병통치약처럼 휘두르고 있는 이 파견법의 본질이 무엇인가는 법 제정 당시 논의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1998년 법 제정 당시 환노위 심사보고서는 ‘파견근로의 법제화로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불안 및 노동조합 활동의 저해 등의 문제점이 우려되었던 것이 사실인 바’(1998년 2월 환경노동위원회 심사보고서)라며 파견제라는 고용과 사용이 분리된 형태에서의 노동권 침해 위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애초 직업안정법에서 근로자 공급을 강하게 규제하고, 근로기준법에서 제3자에 의한 중간착취를 금지하고 있는 취지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관계에 제3자가 개입할 경우 중간착취로 인해 노동조건이 저하되고, 노동3권이 형해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강력한 법적 규제를 가해 왔던 것이다.

어느덧 18년이 흘러 파견이 마치 노동자들을 위한 제도인 것처럼 말을 바꾸고, 거짓으로 우리를 구슬린다. 그러나 노동권의 침해, 중간착취라는 악법의 본질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며, 이는 아무리 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해 나간다고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악법은 존재하는 한 지속적으로 개악을 거듭하며 노동자들의 삶을 옥죌 수밖에 없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역사적 교훈이 너무도 공허한 문구가 되어 버린 지금, ‘파견법 폐기’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적 과제이다. 파견법 폐기 없이는 ‘노동자가 상품처럼 팔리는 것’을 더 이상 막아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엄진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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