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고(2)

파견제 확립과 간접고용의 확산, 노동자는 어떻게 팔리고 있나…노동력을 사고파는 ‘인신매매’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특집 기고(2)]파견제 확립과 간접고용의 확산, 노동자는 어떻게 팔리고 있나…노동력을 사고파는 ‘인신매매’다

“파견업체로부터 출근하라는 문자를 통보받은 다음날부터 새로운 업체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제비뽑기를 하거나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해고되는 겁니다. 어느 날은 통근버스에 타지 못하게 하더군요. 그게 바로 해고였습니다.“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다. 국가산업의 근간인 반월·시화공단에서는 30만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파견업체를 통해 일자리를 구한다. 어디 반월·시화공단뿐이겠는가. 하청, 용역, 위탁, 도급이라는 이름으로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를 위해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전국에 넘쳐난다. 간접고용 노동자라 불리는 사람들 말이다. 중대한 잘못이 없으면 해고되지 않는다는 해고 법리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문자 한 통에 근무기간이 시작되고 나오지 말라는 말 한마디에 근무기간이 종료되는가 하면 인력을 공급하는 업체와 공급받는 업체 간의 계약에 따라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근무기간도 자동으로 결정된다. 어디 근무기간뿐이랴.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여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4조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아니, 근로기준법 자체가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근로기준법뿐만 아니라 노동법 전체가 간접고용 노동자들과는 거리가 멀다.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누구를 상대로 협상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용자와 실제 노동력을 사용하고 이익을 얻는 진짜 사용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노동법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노동력을 활용하여 이익을 얻는 자가 사용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1967년에 제정된 직업안정법은 노동조합을 제외한 그 누구도 근로자공급사업(‘공급계약에 따라 근로자를 타인에게 사용하게 하는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했고, 근로기준법은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 이른바 중간착취를 금지하였다.

근로기준법 ‘중간착취 금지’ 원칙 깨져
그런데 이 중요한 원칙이 1998년 파견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소위 파견법이 제정되면서 깨졌다. 파견법의 핵심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사업주에게 파견업체가 대가를 받고 노동자를 공급하도록 허용하는 데에 있다.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법 전반에 있어 사용자가 져야 하는 책임을 이행하지 않아도 사업주는 노동자를 빌리는 방식으로 노동력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데에 있다. 간단히 말해서 파견법의 핵심은 사람의 노동력을 사고파는 행위를 허용하는 데에 있다. 사람의 노동력을 사고파는 행위를 다른 말로 하면 인신매매다. 그러니까 인신매매를 허용하는 법이 파견법인 것이다. 파견법은 파견근로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그동안 금지되어 왔던 파견을 합법화했다. 파견이 합법화되면서 간접고용의 포문이 열렸다. 파견, 하청, 용역, 도급, 직업 정보 제공 등등 명칭은 다양하다. 업종, 나이, 성별을 불문한다. 형식도 명칭도 다양하지만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해 아무런 결정권한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점, 노동력을 사고파는 자들, 특히 노동력을 사서 이용하는 자가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결정한다는 점, 노동력을 파는 자는 노동력 공급의 대가로 중간에서 이익을 취한다는 점, 무엇보다 거래의 객체인 노동자가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취급된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고스란히 인신매매의 특징이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필라델피아 선언). 인간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창출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명제를 들먹이며 기업과 정부는 노동력이 상품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더 강도 높게 파견의 허용 범위를 넓히려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이 상품이 아니라는 당연한 원칙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불법 파견인지 합법 파견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파견이 인신매매다. 파견법의 폐지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