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본선에서 폭발한 ‘웨일스의 별’ 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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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은 그동안 긱스처럼 웨일스 대표팀에서 고군분투해야 했다. 한때 웨일스 축구대표팀은 ‘웨일스’가 아닌 ‘베일스’라는 평가까지 들었다. 베일의 ‘원맨팀’이란 평가였다.

하얀색과 초록색 바탕의 웨일스 국기에는 커다란 붉은 용이 그려져 있다. ‘붉은 용의 심장’ 가레스 베일(27·레알 마드리드)이 웨일스 축구대표팀의 돌풍을 이끌었다.

웨일스축구협회는 1876년 창립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됐다. 하지만 웨일스 축구는 오랫동안 ‘축구 변방’이었다. 영국연방 4개국 중 하나인 잉글랜드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웨일스 축구 유망주들은 자신의 가치를 더욱 빛낼 수 있는 잉글랜드로 떠났다. 웨일스의 월드컵 마지막 출전은 1958년 스웨덴 월드컵. 2011년에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117위에 불과했다.

만년 약체였던 웨일스가 6월 10일 프랑스에서 개막한 유로2016에 깜짝 출전했다. 사상 첫 유로 본선 출전. 그런데 1958 스웨덴 월드컵 이후 58년 만에 메이저 대회에 출전해 돌풍을 일으켰다. 웨일스는 16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공격수 가레스 베일이 조별리그 3경기 연속골을 터트리며 기적을 이끌었다.

1989년 웨일스 수도 카디프에서 태어난 베일은 9살 때 축구를 시작했다. 롤모델은 라이언 긱스(43·웨일스)였다.

6월 20일 프랑스 툴루즈에서 열린 유로 2016 B조 웨일스 대 러시아 경기에서 웨일스의 가레스 베일(오른쪽)이 수비를 제치고 공을 패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6월 20일 프랑스 툴루즈에서 열린 유로 2016 B조 웨일스 대 러시아 경기에서 웨일스의 가레스 베일(오른쪽)이 수비를 제치고 공을 패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잉글랜드 대표팀 유니폼 마다한 애국자
긱스는 선수 시절 박지성(35) 등과 함께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맹활약했다. 긱스는 1990년부터 24시즌 동안 맨유 유니폼을 입고 프리미어리그 13회 우승, 유럽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 등을 이끌었다. 긱스는 잉글랜드인 아버지와 웨일스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잉글랜드 대표팀이 긱스에게 몇 차례 귀화 제의를 했다. 잉글랜드는 오른쪽 측면에 데이비드 베컴(41), 왼쪽에 긱스라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꿈꿨다. 하지만 긱스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어머니의 나라 웨일스를 택했다. 긱스는 웨일스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자랑스럽게 A매치 64경기(12골)에 뛰었다. 하지만 긱스는 유로, 월드컵 등 메이저대회 무대를 밟지 못한 채 결국 2007년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할머니가 잉글랜드 출신인 베일 역시 잉글랜드 유니폼을 입을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베일은 긱스처럼 조국 웨일스를 위해 뛰고 있다. 부모님의 나라이자 자기가 자란 곳을 택했다. ‘애국자’ 베일은 “어린 시절 잉글랜드 대표팀 얘기가 나왔지만 1초 만에 거절했다. 잉글랜드 대표로 뛸 일이 없으니 얘기를 그만두라고 했다. 난 웨일스 출신이고 웨일스 사람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웨일스인들은 과거부터 자신의 땅을 침략한 잉글랜드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베일은 17세이던 2007년 당시 웨일스 최연소 A매치 출전 기록(16세 315일)을 세웠다. 베일은 웨일스 대표팀에서 긱스와 2년간 함께 뛰었다. 하지만 메이저 대회 출전에 실패했다.

베일은 프로축구에서 특별한 재능을 폭발시켰다. 2006년 잉글랜드 사우샘프턴에 입단한 베일은 이듬해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초창기에는 왼쪽 수비수 이영표(39)의 백업 멤버였다. 하지만 2010년 측면 공격수로 변신한 뒤 승승장구했다. 그해 인터밀란(이탈리아)과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작성하며 세계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토트넘에서 6시즌 동안 활약하며 특급선수로 성장한 베일은 2013년 이적료 1억 유로(1311억원)에 레알 마드리드(스페인)로 이적했다. 팀 동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를 뛰어넘어 역대 최고 이적료 기록을 세웠다.

베일은 ‘왼발의 마법사’라 불린 긱스처럼 왼발을 연마했다. 또 다른 우상인 호날두를 보며 무회전 프리킥을 연습했다. 여기에 엄청난 ‘치고 달리기’를 장착했다. 베일은 국제축구연맹(FIFA) 인증 드리블이 가장 빠른 선수다. 순간 최고 속도가 시속 36.9㎞다. ‘총알탄 사나이’ 베일이 59.1m를 달려 득점까지 걸린 시간은 7.09초에 불과했다.

베일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벤제마(29·프랑스)-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BBC 트리오’를 이뤘다. 2013-14시즌과 2015-16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또 2013-14시즌엔 스페인 국왕컵 우승에도 힘을 보탰다.

열일곱 살이던 2006년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베일은 10년이 흐른 2016년 웨일스를 이끌고 있다. 베일은 유로 2016 예선 10경기에서 팀의 11골 중 7골을 책임졌다. 웨일스는 6승3무1패 조 2위를 기록해 유로 본선에 첫 출전하게 됐다. 긱스가 이루진 못한 꿈을 베일이 이뤄낸 것이다. 베일은 2010년, 2011년, 2013년, 2014년에 이어 2015년 웨일스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유로 본선에서 폭발한 ‘웨일스의 별’ 베일

긱스는 자신의 후계자 베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선수 시절 호날두와 함께 뛰었던 긱스는 “베일은 호날두 같은 선수다. 프리킥이면 프리킥, 헤딩이면 헤딩, 슛이면 슛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골을 넣는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또 긱스는 “베일은 내 선수 시절보다 위대한 커리어를 밟고 있다. 날 뛰어넘어 웨일스를 대표하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 보장했다.

긱스의 믿음처럼 베일은 유로 본선에서 폭발했다. 베일은 슬로바키아와의 조별리그 B조 1차전 전반 10분 왼발 프리킥골을 터트렸다. 웨일스의 유로 사상 첫 골이다. 웨일스는 2-1로 승리했다. 베일은 웨일스의 58년 만의 메이저대회 첫 승리를 이끌었다.

베일은 잉글랜드와 2차전에서도 32m짜리 무회전 왼발 프리킥골을 뿜어냈다. 비록 팀은 1-2로 졌지만 그림 같은 골이었다. 베일은 러시아와의 3차전 후반 22분에 쐐기골을 터트렸다. 3경기 연속골을 기록했다. 2승1패(승점6)를 기록한 웨일스는 잉글랜드(1승2무·승점5)를 제치고 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잉글랜드보다 순위표에서 높은 곳에 위치했다.

베일은 러시아전을 앞두고 영하 161도의 냉동치료기에 들어간 사진을 SNS에 공개했다. 영하 150도 이하의 냉동치료기에 들어가 2분 정도 있으면 소염과 진통 효과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만큼 베일은 절실했다. 베일은 “웨일스는 유로에 놀러온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5년 전 FIFA 랭킹 117위서 26위로 껑충
베일은 그동안 긱스처럼 웨일스 대표팀에서 고군분투해야 했다. 한때 웨일스 축구대표팀은 ‘웨일스’가 아닌 ‘베일스’라는 평가까지 들었다. 베일의 ‘원맨팀’이란 평가였다. 하지만 베일은 애런 램지(26·아스널), 조 앨런(23·리버풀) 등을 이끌고 역사를 써내려갔다. 상투를 튼 듯한 헤어스타일을 지닌 베일은 ‘상남자’처럼 팀을 이끌었다. 베일은 잉글랜드전을 앞두고는 “웨일스가 잉글랜드보다 더 높은 열정과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비장한 출사표를 밝히기도 했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117위에 불과했던 웨일스의 FIFA 랭킹은 현재 26위까지 올랐다. 웨일스는 6월 26일 북아일랜드와 유로2016 16강전을 치른다. 비록 패하더라도 도전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베일이 이끄는 웨일스는 더 이상 약팀이 아니다.

<박린 일간스포츠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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