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부대’ 논란 김흥기 청와대 ‘사칭’ 탄로 이후에도 건재 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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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청년단체 주최행사에 전희경 의원과 공동연사로 등장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댓글부대’ 의혹 보도와 관련해 <경향신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국정원 출신의 김흥기씨가 또다시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김씨가 지난해 청와대 안봉근 비서관 이름을 팔아 국정홍보 전문 월간지 회장 취임을 시도한 데 이어 올해는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청년희망재단 후원행사의 연사로 등장한 것이다. 청와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고 해명했지만 뭔가 석연찮다. 청와대 해명대로라면 김씨가 안 비서관 이름을 사칭한 것인데, 민정수석실의 아무런 제지 없이 그가 버젓이 노동개혁의 상징과도 같은 행사에 주요 연사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제1회 청년일자리문화제’라는 명칭이 붙은 이 행사는 박 대통령이 직접 안산 반월·시화공단을 방문해 여당의원들을 향해 “노동4법 통과를 위해 피를 토하라”고 주문한 지 얼마 안 된 지난 2월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치러졌다. 이날 행사는 어버이연합으로부터 후원금을 전달받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은 한국대학생포럼(한대포)을 비롯해 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대청연), 청년이여는미래(청미래), 청년이만드는세상(청년만세)등 대표적인 4대 우익 청년단체가 총동원됐다. 이 가운데 대청연, 청미래, 청년만세 등 3개 단체는 지난해 7월 정부·여당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신호탄으로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청년 실업난을 앞세워 양대 노총을 기득권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여론몰이에 앞장서온 청년단체들이다.

지난해 11월 새누리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노동개혁을 통한 청년일자리 창출 토론회에 참석한 우익청년단체 대표들. 이들은 제2의 어버이연합 논란을 빚은 한국대학생포럼과 함께 지난 2월 광화문 광장에서 노동4법 통과를 압박하는 행사를 주최했다. 이 행사에서 국정원 출신의 김흥기씨가 자유경제원 출신의 전희경 의원(새누리당 비례대표)과 함께 연설했다. / 대청연 블로그

지난해 11월 새누리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노동개혁을 통한 청년일자리 창출 토론회에 참석한 우익청년단체 대표들. 이들은 제2의 어버이연합 논란을 빚은 한국대학생포럼과 함께 지난 2월 광화문 광장에서 노동4법 통과를 압박하는 행사를 주최했다. 이 행사에서 국정원 출신의 김흥기씨가 자유경제원 출신의 전희경 의원(새누리당 비례대표)과 함께 연설했다. / 대청연 블로그

“주변에서 권유가 있어 부른 것”
대청련의 김동근, 청미래의 신보라, 청년만세 조승수 대표는 지난해 11월 새누리당이 주최한 ‘노동개혁을 통한 청년일자리 창출 토론회’를 비롯해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주최하는 토론회의 단골 멤버이기도 했다.

의문은 이들이 지난 2월 개최한 일자리문화제에 김흥기씨가 어떻게 자유경제원 전 사무총장 출신의 전희경 의원(새누리당 비례대표)과 공동연사로 나란히 초청될 수 있었느냐는 데 있다. 전 의원의 경우 자유경제원 주최 토론회나 후원행사에서 이들 청년단체 대표들과 자주 얼굴을 봤기 때문에 공동연사로 초청된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김흥기씨의 연사 초청은 의외라 할 수 있다. 김씨는 <경향신문>이 2014년 말부터 근 1년간 추적보도해 온 KTL 댓글부대 의혹과 관련해 주요 인물로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렸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지난해 12월 <주간경향>에서 김씨가 청와대 안봉근 비서관 이름을 팔아 ㄷ월간지 회장 취임을 시도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그는 웬만한 사람들로부터 기피 대상이었다.

청년희망재단 측은 “당시 주최 측에서 급하게 행사 후원을 요청해와 보도자료도 만들지 못한 채 부스 설치와 행사비용만 보조했다”며 “자세한 것은 당시 행사를 주도한 대청연에 물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대청연도 김흥기씨가 연사로 오게 된 경위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대청연 김동근 대표는 “전희경 의원의 경우 자주 만나니까 직접 초청했고, 그 분(김흥기)의 경우는 주변에서 권유가 있어 부른 것”이라면서도 누가 권유했는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는“(김씨가) 2014년 우리 단체 창립식 때 와서 얼굴 정도만 알지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며 “그 분이 댓글부대 의혹과 <경향신문>에 자주 거론된 사실은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누가 권유를 하지 않았다면 이처럼 논란이 된 인물을 연사로 초청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공동연사로 초청된 전 의원도 “김흥기씨는 행사 당일 얼굴을 봤을 뿐 그전에는 알지 못했던 인물”이라고 했다.

국고보조금 횡령으로 벌금형도
그렇다면 과연 누가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김씨를 박근혜 대통령의 초미의 관심사인 노동개혁 이벤트의 중심 인물로 불러냈을까. 이 같은 의문에 답변하기에 앞서 안봉근 비서관과 친분을 과시한 김씨의 수상쩍은 행적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왜 6개월 가까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안 비서관이 전혀 알지도 못한다고 하는데, 청와대가 굳이 나설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청와대 사칭 사기가 한두 건이 아닌데 어떻게 그때마다 일일이 대응하느냐는 것이다. 물론 김씨가 평범한 인물이라면 그렇게 판단할 수 있다. 문제는 김씨의 사칭행각이 이미 청와대는 물론 미래창조과학부, 외교부, 중소기업청, 특허청, 카이스트,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발명진흥회 등 정부의 주요 부처와 공공기관들을 심각한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데 있다.

‘댓글부대’ 의혹에 대한 보도와 관련해 지난달 24일 <경향신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국정원 출신의 김흥기씨. / 경향신문 자료사진

‘댓글부대’ 의혹에 대한 보도와 관련해 지난달 24일 <경향신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국정원 출신의 김흥기씨. /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씨는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대선캠프에 있었고, 대선 후에는 민주평통 상임위원과 미래창조과학부 글로벌창업정책포럼 상임의장에 추대된 데 이어 정부의 각종 위원회 자리를 도맡아 왔다. 그가 2013년 9월부터 서울 강남에 중국과학원 이름을 도용한 최고위 과정을 운영하면서 정부 부처와 전·현직 장·차관들까지 감쪽같이 속이고 ‘가짜 수료증’ 장사를 할 수 있었던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김 교수는 도용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중국과학원은 ‘어떠한 형태의 한국교육원도 승인해준 사실이 없다’며 언제든 한국 외교부가 공문만 보내주면 사실조회 요청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전해 왔다. 또한 대선 이후 김씨를 만난 사람은 대부분 그를 모스크바 국립대 초빙교수로 알고 있었다. 그가 지난해 말까지 겸직교수로 있었던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홈페이지에는 아예 ‘초빙교수’도 아닌 ‘교수’로 이력이 표시돼 있었다. 하지만 모스크바 국립대는 지난달 초 무혐의 결정이 난 <경향신문>에 대한 명예훼손사건과 관련해 “김흥기라는 이름을 가진 (초빙)교수는 없다”는 확인 메일을 보내왔다. 김씨가 공개한 명예박사학위도 가짜로 드러났다. 학위수여자로 표시된 러시아 유라시안 무브먼트 대표 알렉산더 두긴은 “우리는 교육기관도 아니고 (김씨가 받은) 학위증은 단지 기념품에 불과하다”고 했다. 2014년 창립식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는 대청연의 김동근 대표는 “정말 모스크바 국립대 초빙교수가 아니냐”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의 사칭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모스크바 초빙교수로 신분을 위장하기 전에는 성균관대 행정학박사로 행세하기도 했다. 2011년 10월 중소기업청이 ‘중소기업 CSR 콘퍼런스’를 위해 배포한 보도자료에 김씨는 성균관대 행정학박사로 프로필이 소개돼 있다. 그는 변호인을 통해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군색한 변명을 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청에서 본인이 밝히지도 않은 학위를 만들어 보도자료에 기재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가 이처럼 대담한 사칭범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에는 행정고시를 거쳐 국정원에서 근무한 경력 때문에 누구도 그를 쉽게 의심하기 어려웠던 측면도 자리하고 있다. 그는 바로 이 점을 노리고 학력사칭뿐 아니라 각종 문서 위조까지 시도한 정황도 파악되고 있다. 실제로 그는 벤처기업인으로 활동하던 2008년 국고보조금 횡령사건으로 정식재판에 회부돼 벌금 3000만원을 낸 적도 했다. 그는 “국가연구개발과제 수행과정에서 직원 급여가 부족해 먼저 직원 급여를 지급하고 일주일 후쯤 메워넣은 것으로, 돈을 횡령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2007년 김씨의 비리를 검찰에 제보했던 전 부하직원 박모씨는 “직원들의 채용시기를 속여 고용보조금을 횡령한 사실도 드러났는데도 개인적으로 착복한 게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단지 자금이 쪼들려 횡령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는 것이다. 박씨는 “다른 비리도 아니고 국고보조금을 횡령해 실형이나 다름없는 벌금형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정부의 각종 정책자문위원, 심사위원 등을 맡고 청년들의 멘토로 행세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정말 청와대나 검찰은 김씨의 실체를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청와대와 검찰이 그에 대한 처리를 미적거릴수록 그를 둘러싼 ‘댓글부대’ 의혹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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