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우주전쟁 불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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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팔과 아마존 창업자, 우주개척 경쟁… 구글과 페이스북도 추격전

하늘에서 내려온 로켓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바지선에 되돌아온다. 로켓은 출발 때와 같은 모습으로 수직으로 착륙한다. 그 날렵함이 마치 한 마리의 새 같다. 민간 우주항공기 개발사인 ‘스페이스X’의 로켓인 ‘팰콘9’이다. 스페이스X 측은 자사의 트윗에 이 동영상을 올렸다. 그러고는 스스로도 대견한 듯 ‘이것은 새, 이것은 우주선’라는 멘션을 남겼다. 잠시 후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인 엘런 머스크는 이 내용을 리트윗했다. 테슬라모터스의 CEO이기도 한 머스크의 3일 트윗 첫머리를 장식한 내용은 전기자동차도, 자율주행자동차도 아니었다. 로켓이었다.

실리콘밸리의 ‘우주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페이팔 창업자이자 테슬라모터스의 CEO인 머스크와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가 가장 앞서 있다. 그 뒤를 구글과 페이스북이 재빨리 따라오고 있다. IT기업들의 싸움터가 지구에서 우주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때론 협력하고 때론 경쟁하면서 미지의 세계인 우주 개척에 나서고 있다.

태국 통신위성 ‘타이콤8’을 실은 팰콘9 로켓이 5월 27일 저녁(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되고 있다. / 스페이스X 홈페이지

태국 통신위성 ‘타이콤8’을 실은 팰콘9 로켓이 5월 27일 저녁(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되고 있다. / 스페이스X 홈페이지

스페이스X, 로켓 해상 회수 성공 비용 절감
머스크는 2일(현지시간) 미국 IT 전문매체인 <리코드>가 주최한 ‘코드 콘퍼런스’에서 “2024년 화성행 유인 우주선을 발사해 2025년 화성에 착륙하도록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이는 2030년대에 화성에 유인탐사선을 보낸다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목표보다 10년가량 빠른 것이다. 그는 “만약 죽을 장소를 고를 수 있다면, 아마 화성이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라고도 했다. 화성 이주 대상자에 자신도 포함된다는 의미다.

그의 구상은 구체적이다. 비용 절감에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1단 추진 로켓 재사용은 어느 정도 현실화됐다. 5월 27일 미 플로리다주에서 발사된 팰콘9 로켓은 태국 통신위성인 ‘타이콤8’을 우주궤도에 안착시킨 뒤 9분 만에 해상 바지선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스페이스X는 네 번의 실패 끝에 4월 8일 처음으로 로켓 해상 회수에 성공한 이후 세 번 연속 성공했다. 지금은 1단 추진 로켓이 1회용이라 쏠 때마다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로켓을 재활용할 수 있으면 경비가 최고 10분의 1까지 줄어들 수 있다. 만약 해상 회수라면 비용 절감폭은 더 커진다. 로켓의 낙하 궤적에 맞춰 착륙대를 이동시키면 되기 때문에 지상 회수보다 안정적이고 연료도 절약할 수 있다. 스페이스X 측은 연말에는 우주화물선인 ‘팰콘 헤비’도 쏘아 올릴 계획이다. 201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무인우주선을 화성에 보낸다.

머스크의 최대 라이벌은 제프 베조스의 ‘블루오리진’이다. 아마존 CEO인 베조스는 5월 31일 코드 콘퍼런스에서 <리코드>와 한 인터뷰에서 “중공업은 지구 밖으로 옮기되 인간은 지구에 살면 된다”며 “지구는 주거와 경공업을 위한 구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를 화성으로 이주시키자는 머스크와 달리 인간은 안락한 지구에 남고, 환경을 오염시키고 에너지를 쓰는 공장은 우주에 보내자는 것이다. 베조스는 “우주 공간에 대규모 공장과 태양전지 패널을 건설하면 중공업 전체를 지구 밖으로 옮길 수 있다”고 말했다. 로켓 회수에 처음으로 성공한 곳은 블루오리진이다. 블루오리진은 지난해 11월 ‘뉴 셰퍼드’호를 100㎞ 상공(지구와 우주의 경계)까지 보낸 뒤 다시 육상으로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그보다 한 달 늦다. 당시 머스크와 베조스는 트윗을 통해 설전을 벌였다. 베조스는 지난해 11월 뉴 셰퍼드호가 육상 착륙에 성공하자 “재사용 로켓의 보기 드문 성공”이라고 자축했다. 그러자 머스크는 “우주와 궤도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 셰퍼드호가 수직 이착륙으로 되돌아온 것은 맞지만 인공위성을 보낼 수 있는 저궤도까지 보낸 로켓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 달 뒤인 12월 스페이스X의 팰콘9이 성공하자 베조스는 “(로켓 재활용) 클럽에 온 것에 환영한다”며 자신들의 실험이 먼저 성공했다는 것을 은연 중에 강조했다.

스페이스X가 화성에 보낼 예정인 화성탐사선 ‘레드드래곤’. / 스페이스X 홈페이지

스페이스X가 화성에 보낼 예정인 화성탐사선 ‘레드드래곤’. / 스페이스X 홈페이지

블루오리진 “중공업 지구 밖으로 옮길 것”
스페이스X는 우주에 물자보급, 유인수송 등 운송사업에 관심이 많다. 2012년 5월에는 민간업체 최초로 화물 우주선인 ‘드래곤’을 쏘아 올려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물품을 배송하는 데 성공했다. 우주비행사들을 7인승 규모의 우주선에 태워 ISS에 보내는 일명 ‘우주택시’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화성 식민지 개척도 많은 사람과 물자를 보내야 가능한 일이다.

반면 블루오리진은 우주선을 활용한 우주 관광사업에 관심이 많다. 대기권 근처에서 유인캡슐을 타고 약 5분간 무중력 체험을 한 뒤 우주와 지구를 관광하고 낙하산을 이용해 지구로 귀환하는 계획을 세워놨다. 이르면 내년 테스트 비행을 실시하고 2018년에는 일반 승객을 대상으로 상업적인 우주 관광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이 블루오리진의 복안이다.

실리콘밸리, 우주전쟁 불붙었다

블루오리진은 2000년, 스페이스X는 2002년 설립됐다. 그때만 해도 불가능해 보였던 우주여행이 현실로 다가오자 또 다른 IT기업들도 뛰어들고 있다. 구글의 ‘플래니터리리소스’와 페이스북의 ‘커넥티비티랩’이다. 2012년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과 래리 페이지 공동창업자는 “2022년부터 소행성에서 희토류 같은 희소자원을 채취하겠다”며 플래니터리리소스를 설립했다. NASA의 화성탐사 참여 연구진들이 주축이 됐고, 영화감독인 제임스 캐머런 등이 주요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2014년에는 페이스북이 “우주 인터넷 사업을 하겠다”며 우주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인구가 적거나 통신인프라가 좋지 못한 지역에 인공위성을 통해 인터넷 통신을 가능케 하는 것이 목표다. 또 여러 개의 드론을 하늘에 띄워놓고 통신용 레이저를 쏴 인터넷 신호를 지상에 보내는 방식도 연구하고 있다.

실리콘밸리를 뜨겁게 달궜던 IT기업들이 사이버 스페이스로 눈을 돌린 것은 냉전 이후 우주개발 비용이 축소되면서 미국이 민간에 기술규제를 푼 것이 결정적이었다. 민간기업 입장에서 우주개발은 정부 독점에서 막 풀린 블루오션이어서 선점을 할 경우 얻는 보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터넷도 처음에는 군사용 컴퓨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에서 시작했지만 개인용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산업 패러다임을 바꿨다. 우주개발은 IT기업의 혁신 이미지와도 딱 맞아 떨어졌다. 우주만한 혁신의 아이콘은 없었다. 머스크, 베조스 등 CEO들이 어릴 때부터 SF소설을 좋아했던 점도 IT기업들이 경쟁을 벌이는 원인이 됐다. 포스코경영연구원 민세주 수석연구원은 “최근 민간기업들이 우주산업에 참여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면서 우주 개발시대가 앞당겨질 것 같다”며 “그동안 상용화되지 못했던 여러 가지 핵심기술들이 발굴돼 새로운 비즈니스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만큼 우리도 여러 측면에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m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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