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인터넷은 거대한 전선의 집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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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인터넷이 들어오는 관문은 어디일까? 한국에 인입되는 해저 케이블은 세 군데 중 하나를 통과하게 되어 있다. 부산의 6개 선, 거제의 3개 선, 충청남도 태안군 신두리의 1개 선이다.

2000년대 한국에서 인터넷보다 중요한 테크놀로지가 있을까? 언젠가부터 급속하게 보급된 인터넷은 이제 수많은 한국인들에게 공기(空氣)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한국의 가구 인터넷 보급률은 2008년 80%를 넘어섰다. 웬만한 공공장소에서도 무선 인터넷(와이파이)을 통해 접속할 수 있다. 2015년 기준 83%에 달하는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모바일 환경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람들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세계 각국에서 발신하는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용하고 있지만 ‘인터넷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 많은 독자들이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이 기사를 읽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브라우저의 주소표시줄에 www.nytimes.com이라고 입력하면 (대개의 경우)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미국의 <뉴욕타임스>라는 신문사에서 올린 기사들이 화면에 줄줄이 올라온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랜선. 독자들이 사용하는 컴퓨터 뒷면에 대개 이렇게 생긴 선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랜선. 독자들이 사용하는 컴퓨터 뒷면에 대개 이렇게 생긴 선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랜선을 절단해 보면 이처럼 8개의 전선이 2개씩 꼬여 있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이는 전기 신호에 잡음(노이즈)이 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설계다.

랜선을 절단해 보면 이처럼 8개의 전선이 2개씩 꼬여 있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이는 전기 신호에 잡음(노이즈)이 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설계다.

여러 전선을 통과 내 컴퓨터와 연결
인터넷을 상상하는 최근의 일반적인 비유는 ‘클라우드’이다. 세상 모든 정보가 구름처럼 하늘 위에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자유자재로 내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이란 궁극적으로 전선(電線)의 집합이다.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인터넷 환경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거대한 규모를 가진 통신 인프라와 이를 유지·보수하는 수많은 이들의 숨은 노동이다.

인프라는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속성을 갖는다. 인프라가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주 필자의 집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밤 10시쯤 갑자기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곧바로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하는 지역 케이블 회사에서 24시간 운영하는 고객상담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안내원은 예의 친절한 목소리로 몇 가지 지시(모뎀을 껐다 켜는 등)를 해본 후, 아무래도 기사(技士)가 방문을 해야겠다고 설명했다. 다음날 오전 9시에 어김없이 초인종이 울렸다. 방문기사는 집으로 들어오는 선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고, 필자는 기사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내 컴퓨터에 ‘인터넷’을 공급해 주는 선은 근거리 통신망, 또는 랜(LAN)선이다. 랜선은 8개의 구리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에서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랜선을 가위로 잘라 보면 파랑, 주황, 갈색, 초록색 선이 각각 두 가닥씩 꼬여 있다. 이는 노이즈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사진에서 보이는 랜선은 외부 전파의 간섭을 줄이는 추가 장치가 없고 두 가닥씩 꼬여 있는 UTP(Unshielded Twist-Pair) 형이다. 컴퓨터와 연결된 랜선은 지역 케이블 회사에서 제공한 모뎀에 연결되어 있고, 이것은 다시 케이블 선으로 벽에 설치되어 있는 케이블 포트로 이어진다. 방문기사는 여기까지 별다른 문제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가방을 챙겨 집 밖으로 나섰다.

가장 먼저 점검한 곳은 같은 층 계단 가에 설치된 작은 철제 상자였다. 상자에는 ‘TV 증폭기함’이라고 쓰여 있었고, 문을 열어 보니 ‘CATV 광대역 구내전송 증폭기’라는 기기와 함께 케이블 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 기기는 같은 층까지 올라온 신호를 받아 각 가구로 전송하기 전에 증폭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방문기사는 전기 신호를 측정하는 휴대용 장치를 꺼내들고 입력되는 신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 다음에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큰 철제 상자를 열어 다시 한 번 입력 신호를 확인했다. 그는 여기까지 살펴본 후 하드웨어 자체에 문제가 없는데도 이상 신호가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아파트 단지 전체 신호를 담당하는 기기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연락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아파트 복도에 설치되어 있는 케이블 신호 증폭기. 이 기기는 각 가구로 들어오는 인터넷 신호를 증폭해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한다.

아파트 복도에 설치되어 있는 케이블 신호 증폭기. 이 기기는 각 가구로 들어오는 인터넷 신호를 증폭해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필자의 짧은 인터넷 탐사(?)는 여기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케이블을 따라가다 보면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인프라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위의 단계까지는 지역 케이블 회사가 관리하지만, 다음부터는 KT에서 관리하는 국내 인터넷 망을 만나게 된다. 1981년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출범한 KT는 1992년부터 인터넷의 한국 관문국(關門局)을 맡아 왔다. 그로부터 몇 년 후인 1995년, KT는 자회사 KT서브마린을 설립해 한반도를 외국과 연결해 주는 해저 광케이블을 자체적으로 시공 및 유지·보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인터넷은 바다 밑에 깔려 있는 광케이블을 따라 일본·중국·대만 등으로 연결되어 있고, 다시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동남아시아와 인도양·수에즈 운하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된다. 우리가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한국에서 바로바로 검색할 수 있게 된 것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광대한 인프라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으로 인터넷이 들어오는 관문은 어디일까? ‘해저 케이블 지도(Submarine Cable Map)’라는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에 인입되는 해저 케이블은 세 군데 중 하나를 통과하게 되어 있다. 부산의 6개 선, 거제의 3개 선, 충청남도 태안군 신두리의 1개 선이다. 10개의 해저 케이블 망 중에서 하나만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한국의 거제에서 연결되는 ‘뉴 크로스 퍼시픽(NCP)’ 케이블 시스템은 총연장이 1만3618㎞에 달하며, 한국의 KT를 비롯해 일본의 소프트뱅크 텔레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중국의 차이나 텔레콤, 차이나 유니콤, 대만의 청화 텔레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이 케이블은 한반도 서쪽으로는 중국의 상하이(上海) 인근 세 군데로 들어가고, 남서쪽으로는 대만 북부의 터우청(頭城)으로 연결되어 있다. 동쪽으로 뻗는 지선을 따라가면 우선 일본 마루야마(丸山)에 들렀다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 북서부 오리건주의 퍼시픽 시티(Pacific City)까지 도달하게 된다. 미국에 도달한 전선은 미국 국내 인터넷 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 설치되어 있는 해저 케이블 망을 보여주는 지도. 한국에는 부산, 거제, 충남 태안군 신두리 세 군데로 인터넷 케이블이 들어온다.

동아시아 지역에 설치되어 있는 해저 케이블 망을 보여주는 지도. 한국에는 부산, 거제, 충남 태안군 신두리 세 군데로 인터넷 케이블이 들어온다.

전 세계 구석구석 연결하는 해저케이블
현재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인터넷의 기원은 1960년대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ARPA)의 원거리 컴퓨터 네트워크인 아르파넷(ARPANet)으로 알려져 있다. 점차 그 수가 늘어나고 있는 컴퓨터를 서로 연결시킨다면 여러 연구자들이 컴퓨터 자원을 공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간의 소통을 활성화할 수 있어 공동연구 등 협업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1963년에 ARPA 정보처리기술국의 책임자였던 J C R 릭라이더(Licklider)가 처음으로 제기했다. 실제로 아르파넷이 가동되기 시작했던 것은 1969년의 일이었다. 당시에는 컴퓨터 과학 연구자들 사이의 네트워크 형태였다. 초기 아르파넷은 4개의 노드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들은 스탠퍼드대학교 연구센터(SRI), 유타대학교, 그리고 캘리포니아대학교의 2개 캠퍼스(샌타바버라, 로스앤젤레스)였다. 이렇듯 단출하게 시작된 컴퓨터 연결망이 수십 년에 걸쳐 점차 확장되어 온 것이다.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 박사. 그는 1982년 KIET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한국 최초로 KIET와 서울대 사이의 컴퓨터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 박사. 그는 1982년 KIET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한국 최초로 KIET와 서울대 사이의 컴퓨터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박사
한국 인터넷의 효시는 1982년 10월 경북 구미에 위치한 한국전자기술연구소(KIET·현재 ETRI)와 서울대학교 사이의 교신이었다. 당시 이 작업을 주도했던 연구자는 전길남(全吉南) 박사였다. 전길남은 아르파넷이 가동될 무렵인 1970년대 초 UCLA 컴퓨터과학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그는 1974년에 학위를 마치고 1979년에 귀국해 KIET 연구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첫 컴퓨터 통신이 성공할 무렵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전길남은 카이스트에 SDN(Software Development Network) 운영센터를 설치하고 네트워크를 점차 확장해 나갔다. 1985년 무렵이 되면 이미 SDN에는 카이스트를 중심으로 20여개의 국내 주요 대학, 연구소, 정보통신 관련 기업들이 접속하고 있었다. 이러한 국내 네트워크를 공중전화망을 이용해 외국의 네트워크와 연결시켰다. 이로써 한국의 컴퓨터들이 외국의 컴퓨터들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초기 인터넷은 컴퓨터 연구자들 사이의 소통을 돕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였다. 이러던 것은 1990년대 이후 일반 대중들의 소통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맡는 것으로 변화해 나갔다.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짧은 단신이 1992년 9월 22일자 <매일경제>에 실렸다. “한국통신은 국제적인 학술연구망인 ‘인터넷’의 한국 관문국이 한국과학기술원에서 한국통신으로 이관됨에 따라 오는 24일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거행.” 인터넷을 “국제적인 학술연구망”이라고 설명하는 대목은 당시 인터넷이 맡았던 역할을 잘 보여준다.(지금은 누구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지 않는가?) 1992년 인터넷이 학술의 영역에서 대중의 영역으로 ‘이관’된 것을 기점으로 인터넷은 한반도 주민들의 생활을 뿌리째 흔들어놓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 무렵 광대역 인터넷이 전면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전국에 PC방이라는 독특한 사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컴퓨터 게임 강국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2015년 기준 ‘한국 100대 부자’ 명단에는 대개 재벌가의 일원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 다음카카오, 네이버, 엔씨소프트, 게임빌 등 IT 관련 업종에서 부를 축적한 1세대 부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인터넷이라는 사회적 인프라가 한국에 구축된 이후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부의 재분배 효과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전 ‘복사기’ 편에서도 언급했지만 인터넷 보급이 정치적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정치·경제적 현상들이 서로 긴밀하게 엮여 있음을 시사한다.

이렇듯 인터넷은 2000년대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현상’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테크놀로지를 현상적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그것이 갖는 거대한 물질성(materiality)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인터넷을 구성하는 것은 거대한 길이의 각종 전선(랜선, 동축 케이블, 광섬유 등)의 집합이고, 그것을 통과하는 데이터를 관리하는 기기들(케이블 모뎀, 라우터, 서버 등)의 총합이다. 인터넷의 진짜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전선을 끝까지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 그 길 위에서 우리가 클릭 한 번만으로 세계 각국의 정보를 안방에서 받아볼 수 있게 해 주기 위해 들어가는 수많은 정부 기관과 기업, 다양한 인터넷 관련 협회의 노력을 볼 수 있게 된다. 또 반대로 인터넷이라는 강력한 테크놀로지를 제어해 우리의 정치담론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활동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과학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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