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이 여소야대를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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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은 고수 입장이지만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손볼 태세로 개정 불가피

“테러방지법보다 사이버테러방지법을 먼저 통과시키도록 했어야 했다.”

테러방지법(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을 대표 발의한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경북 김천)은 20대 국회에서 테러방지법 개정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법안 통과의 순서가 잘못됐다고 이야기했다. ‘먼저’라는 표현은 여대야소(與大野小)이던 19대 국회가 20대 국회에서 여소야대(與小野大)로 바뀐 현실을 말하고 있다. 여대야소일 때 테러방지법보다 사이버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켰어야 했다는 것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지난 2월 22일 테러방지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국가 사이버테러 방지 등에 관한 법률안·서상기 의원 대표발의)을 동시에 발의했다. 기존에 발의됐던 법안을 제쳐놓고 추가로 발의된 이 쌍둥이 법안을 들고 여당은 정의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압박했다. 하지만 정 의장은 테러방지법만 직권상정했다. 야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종료 이후 이 법안은 3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 의원은 “테러의 위험은 지금 당장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지만 사이버테러의 위험은 지금도 상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테러방지법 개정에 대해서는 완고한 입장을 보였다. 고칠 것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여야가 협상하면서 최소의 내용을 담은 것인데, 그것마저도 고친다면 법을 만든 취지가 하나도 없게 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첫 필리버스터 발언을 2월 24일 0시까지 진행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첫 필리버스터 발언을 2월 24일 0시까지 진행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6월 4일 발효 앞두고 시민단체 반대 회견
이 의원이 이야기하는 여야 협상은 지난해 국회 정보위 법안소위에서 여야 의원들의 논의과정에서 나온 협의안을 말한다. 여당 측은 지난 2월 새롭게 발의한 테러방지법이 이 협의안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야당 측은 협의안은 단순히 논의를 위한 안일 뿐이며, 지난 2월 발의된 법안은 여당에서 새롭게 만든 안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법안소위 논의과정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은 정보위 법안소위에서 한 번도 다룬 적이 없는 법안”이라며 “내용 자체가 법제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완성된 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테러방지법은 한두 조항을 고칠 것이 아니라 원론적으로 보면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테러방지법에 대한 여야 간 뚜렷한 시각 차이로 볼 때 테러방지법이 20대 국회에서 어떤 운명을 겪을지 주목되고 있다. 여소야대로 재편된 20대 국회에서 두 야당이 테러방지법을 어떤 식으로든 손을 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이 끝난 직후인 4월 15일 정부는 테러방지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테러방지법은 6월 4일 발효돼 시행된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49개 시민단체(테러방지법 및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는 49개 시민사회단체)는 5월 4일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테러방지법 시행령 반대 시민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민단체는 대테러센터가 정체불명이 될 위험성을 지적했다. 테러방지법 제6조 2항에 ‘대테러센터의 조직·정원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시행령에는 대테러센터 조직 구성에 관한 내용이 전혀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 시민단체는 “대테러 활동에 있어 실제 권한은 대테러센터가 쥐고 있음에도 조직 구성과 운영 규정을 법률은 물론 시행령에도 전혀 규정하지 않은 것은 국정원이 사실상 장악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테러방지법은 시행령으로 미루고, 시행령은 국정원으로 미뤄 결국 키는 국정원이 쥐는 격이 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지적한 시행령의 문제점으로는 ‘전담기구를 통해 국정원의 권한 확대’ ‘민간 시설을 상대로 대테러 특공대 투입 허용’ ‘조사권한 없는 인권보호관’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 제공으로 인권침해 가능성 확대’ ‘테러 위험인물에 대한 정보수집 요건과 절차 부재’ 등이 있다.

테러방지법이 여소야대를 만나면

국민의 당, 더민주 입장보다는 유연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4월 29일 상임위를 열어 테러방지법 시행령안에 위헌소지가 있다며 보완하라는 의견을 냈다. 인권위는 시행령안 제18조에 국방부 소속 대테러 특공대가 군사시설 이외 지역에 출동해 대테러 진압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둔 것이 헌법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테러방지법의 운명은 이제 두 야당의 손에 쥐어져 있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일단 해당 상임위인 국회 정보위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대에서 6(새누리당)대 6(더민주)이던 정보위 구성이 8(두 야당)대 4(새누리당) 또는 7대 5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정보위원장을 새누리당이 차지할지, 더민주가 차지할지도 관건이다.

테러방지법 개정에 관한 한 공조를 할 것으로 보이는 두 야당의 입장은 조금씩 차이가 난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이나 계좌추적권 같은 조항은 반드시 손을 봐야 할 조항”이라면서 “하지만 상황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개정만 해서는 안 된다는 당내 기류를 의미하는 이야기다. 김광진 의원은 “국가에서 필요하다면 국가 대테러활동 지침 정도면 된다”면서 “국민 인권을 침해하고 국정원 권한만 늘리는 테러방지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정이냐 폐기냐는 논란은 향후 더민주 내부에서 강경파(폐기 주장)와 온건파(개정 주장) 사이에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당의 입장은 더민주보다는 유연해 보인다. 국민의당은 총선 공약에 테러방지법 개정 내용을 담았다. ‘인권침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테러방지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 이 공약의 제목이다. 세부 내용으로는 ‘테러 위험인물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 ‘대테러센터 등의 조직에서 국정원 이외의 조직이 집행 역할 담당’ ‘금융거래 지급정지 요청권 삭제’ ‘국정원에 부여된 대테러 조사권을 조사참여권으로 바꾸고, 위험인물 추적권은 동향파악권으로 축소’ ‘영장없이 전화감청을 허용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원상복구’ 등이 있다. ‘테러방지법의 필요성은 인정되나’라는 문구에서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미묘한 차이를 알 수 있다.

5월 2일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당론이라고는 말하지 못한다”면서 “테러 방지에는 만전을 기하지만 특별히 국정원의 부당한 권한남용을 막을 수 있는 입법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의 한 정책 관계자는 “개정을 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갖고 있다”면서 폐기 추진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거기까지는 검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당론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간에 국정원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당내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개정보다는 폐기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은미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팀장은 “시행령안의 문제는 결국 테러방지법에서 파생된 것”이라면서 “조문 몇 개가 문제가 되니까 그 문제만 해소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폐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해다. 이 팀장은 “여소야대가 됐다고 해서 테러방지법을 당장 폐기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하지만 법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테러방지법 폐기 국민청원안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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