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에 국회도 질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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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구제 특별법’ 3년 만에 법안 소위 겨우 상정… 19대에서 자동폐기 예정

2013년 11월 1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샤시 쉐커라파카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첫 질문자는 환노위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홍영표 의원이었다.

홍영표 의원 : 저기 화면을 보시면 저렇게 써 있습니다.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하여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옥시싹싹’에서는 소비자들에게 말을 했고, 소비자들은 그 말을 믿고 가습기 살균제를 이제 갓 태어난 어린이 옆에서 사용했습니다.

증인 쉐커라파카 대표 : 저희 회사는 조금이라도 유해하다는 의심이 들었다면 절대로 이러한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쉐커라파카 대표는 이날 시종일관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해 책임을 회피했다. 쉐커라파카 대표는 당초 10월 15일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출석하지 않았다. 야당에서 끈질기게 다시 출석을 요구하자, 11월 1일에야 증인으로 참석했다. 홍 의원에 이어 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쉐커라파카 대표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19대 국회 내내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한 이는 더불어민주당의 장하나 의원이었다. 장 의원 외에도 19대 국회에서 처음 이 문제를 논의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데에는 야당 간사였던 홍 의원의 지원이 있었다. 그리고 홍 의원이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직접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피해를 입은 홍 의원실 정한모 보좌관의 사연이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중 한 곳인 ‘옥시레킷벤키저’의 샤시 쉐커라파카 대표(오른쪽)가 2013년 11월 1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책임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가습기 살균제 판매업체 중 한 곳인 홈플러스의 도성환 사장. / 박민규 기자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중 한 곳인 ‘옥시레킷벤키저’의 샤시 쉐커라파카 대표(오른쪽)가 2013년 11월 1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책임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가습기 살균제 판매업체 중 한 곳인 홈플러스의 도성환 사장. / 박민규 기자

의원실 자료 요청에도 옥시측 협조 안 해
정 보좌관은 2010년 겨울, 임신 5개월이 된 아내와 잠이 들었다. 가습기를 틀어놓은 채였다. 가습기 바로 옆에 아내가 누웠다. 아내에게 습기가 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정 보좌관은 가습기의 청결을 위해 사태의 발생 원인인 옥시의 살균제 제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잠을 자던 정 보좌관은 꿈결에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숨이 쉬어지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들숨이 쉬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를 깨웠으나 의식이 없었다. 홍 보좌관은 맨 처음 가스가 샌 줄 알고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내를 거실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 아내에게 인공호흡을 했다.

정 보좌관과 아내는 새벽에 인근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실려갔다. 이 병원에서는 호흡장애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당시 유행했던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인 것 같다는 진단이 나왔다. 새벽부터 부부가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는데 저녁에서야 호흡기를 떼고 퇴원할 수 있었다. 이들 부부에게는 독감 처방이 내려졌다.

집에 돌아온 정 보좌관의 아내는 가습기를 주목했다. 남편보다 증세가 심한 아내가 바로 가습기 옆에서 잠을 잤기 때문이었다. 정 보좌관은 가습기를 치워버렸다. 다음해 5월 정 보좌관의 딸이 태어났다. 그동안 감기에 잘 걸리지 않았던 아내는 응급실에 실려간 이후 자주 감기에 걸렸다.

피해자 구제 결의안 발의에 여당은 2명만
딸이 태어나던 해인 2011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다.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을 가져온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정 보좌관은 2010년 응급실로 실려간 원인이 바로 자신의 집에서 사용했던 가습기 살균제임을 직감했다.

국회 환노위의 야당 간사인 홍 의원실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인사들이 찾아왔다. 직접 피해자이기도 한 정 보좌관은 피해자가족모임 인사들을 면담하고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정 보좌관은 “나도 피해자 중 한 명이었기에 원인을 분명히 밝히고 책임을 분명히 따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당시 이들을 만나면서 대부분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옥시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 보좌관은 정부 기관은 물론 옥시 측에도 자료를 요구했다. 옥시 임원이 홍영표 의원실을 찾아와 의원과 실무자들을 만나고 갔다. 정 보좌관은 옥시 관계자로부터 서울대에 의뢰해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 여부를 조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 보좌관은 이 자료를 제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서울대에서 조사를 진행했던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 독성실험 결과를 조작한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서울대 교수는 뒷돈을 받았다는 혐의까지 안고 있다. 정 보좌관은 “생각이 날 때마다 옥시 측에 자료를 요구했으나 정부 기관과는 달리 민간 기업에서 국회에 자료를 제출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결국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에 국회도 질식했나

19대 국회에서는 2012년 환노위의 장하나 의원이 상임위 질의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파헤치는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2013년에는 장 의원을 비롯해 홍영표 당시 민주당 간사, 정의당 심상정 의원 등이 앞장섰다. 심 의원은 그해 3월 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를 위한 결의안을 제출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를 위한 결의안’이 4월 18일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통과됐다. 대표발의자인 심상정 의원은 이날 복지위에서 “기업은 미비한 제도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며 정부에 책임을 전가했고, 복지부와 환경부 그리고 산업부는 타 부서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3년이라는 세월이 허비됐다”면서 “이제 국회가 나서서 방치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문제를 해결할 때”라고 말했다. 발의에 동참한 26명의 의원들은 대부분 야당 의원이었다.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는 김태원·이완영 의원만 발의에 참여했다. 이 결의안은 4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13인 중 찬성 198인, 기권 15인으로 가결됐다.

장 의원은 4월 초 피해자 구제 대책특위 구성 결의안과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독성 화학물질에 의한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안’을 냈다. 홍 의원 역시 6월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 작성에 정 보좌관은 적극 참여했다. 이해 7월 12일에는 국회 환노위 차원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관련법 공청회가 열렸다. 여당에서는 김상민 의원만 이 공청회에 참석했다.

새누리당은 피해자 구제 특별법 제정에 반대해 이 법안은 19대 국회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는 올해 5월 9일에야 환노위 법안소위에 상정됐다. 장하나·홍영표·심상정·이언주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관련 법안이었다. 3년 만에 법안소위 문턱을 넘은 이 법안들은 통과가 역시 무산돼 자동 폐기를 앞두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졸속이 우려된다며 20대 국회로 넘기자는 입장을 나타냈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지난 4월까지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는 700여명에 이르고 사망자는 198명이다. 정 보좌관의 아내는 출산 이후에도 감기에 자주 걸렸다. 태어난 딸 역시 기침을 달고 살 정도였다. 피해자 가족모임의 다른 피해자들처럼 정 보좌관은 피해자로 접수했다. 하지만 국립의료원의 검진 결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정 보좌관은 “국회에서 공론화되던 초기에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파헤치면서 높은 벽을 실감했다”면서 “아무리 (정부와 옥시 회사에) 이야기해도 답이 없어서 결국 지쳐 나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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