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원의 사이언스 or 픽션!

황사, 중국에 전기차 바람이 불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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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시장의 확대는 고용효과가 높은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고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노동시장 한파를 초래할 것이다. 대기의 질이 나아지는 만큼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올해도 어김없이 황사가 봄철 한국인의 건강을 위협한다. 황사 발생일수는 해마다 느는 추세다. 발생일수가 1980년대의 연간 평균 3.9일에서 2000년대에는 10여일로 늘어난 해도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문제 해결을 위해 각기 100억원과 900억원을 지원한다지만, 정작 발원지인 중국은 그동안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외려 자국 경제성장에 황사가 발목을 잡을까 우려해 왔다. 눈앞의 산업적 욕망 때문에 해마다 늘어나는 황사일수에 눈감는다면 나중에는 과연 어찌 될까? 이와 관련하여 제럴드 허드(Gerald Heard)의 단편소설 <엄청난 안개(The Great Fog)>(1944)는 참고할 만한 황망한 미래를 보여준다. 여기서는 기후변화로 지구가 흙먼지를 잔뜩 품은 희뿌연 안개로 뒤덮이자 사람들의 생활양식·문화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해간다. 흙투성이 지붕덮개 아래 지하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그림과 글 같은 시각정보는 무용지물이 되고, 대신 구어(口語)로 된 스토리텔링이 지식전승과 예술을 좌우한다. 구어적 즉흥성이 강조되는 이 미래사회에서 인류문명은 과거의 영광을 잃고 옹색하게 쭈그러든다. 사실 대기오염은 선진국들의 산업구조가 중공업 위주로 개편되던 1950~60년대부터 영미권 과학소설의 주요한 소재로 떠올랐다. 당시 작품들은 무분별한 산업 개발로 스모그가 심해져 외출할 때마다 방진마스크를 써야 하는 근미래를 예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니, 재작년 국내 출간된 프레데릭 폴과 C M 콘블루스의 과학소설 <우주상인(The Space Merchants)>(1952)이 그러한 초기 예들 중 하나다.

문제는 중국발(發) 황사가 SF의 사고실험이 아니라 당장 코앞에 닥친 현실이라는 점이다.

프레데릭 폴과 C M 콘블루스의 과학소설 <우주상인(The Space Merchants)>의 책 표지.

프레데릭 폴과 C M 콘블루스의 과학소설 <우주상인(The Space Merchants)>의 책 표지.

황사에 포함된 미세먼지와 중금속
황사는 삼국시대 기록에도 나오는 자연현상으로, 원래 주성분이 알칼리성이라 바다 건너 날아오는 분진의 양이 적당하면 산성비를 중화시켜줘서 도리어 토양에 이롭다고 한다. 북유럽에서는 산성화를 막고자 일부러 농토에다 알칼리 성분의 흙을 뿌렸다. 황사가 골칫덩이가 된 것은 몽골과 북중국 사막지대에서 일어난 이 모래바람이 산업화가 많이 진행된 중국 내륙을 지나며 인체에 해로운 미세먼지와 중금속을 잔뜩 품게 되면서부터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에 섞인 납은 오래 노출되면 신경장애를 유발한다. 중국의 대규모 공업단지와 엄청난 인구가 소비하는 화석연료 및 차량 배기가스 외에 ‘황사능’까지 거론하는 이도 있다. 황사능은 중국 정부가 핵실험을 벌인 사막에서 날아든 방사성 잔여물질을 뜻하는 속어다.

매년 일시적이기는 하나 황사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피해는 만만치 않다. 국민 건강에 끼치는 해악은 기본이고, 사람들의 야외활동을 기피하게 만들어 일상생활까지 제약한다. 그 결과 쇼핑과 문화산업은 물론이고 관광레저와 아웃도어 패션시장까지 위축시킨다. 어디 그뿐인가. 정밀기계와 장치산업 분야의 기업들은 불량률이 증가하고 생산성이 떨어진다. 특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장에는 쥐약이다. 항공산업도 죽을 맛이다. 10㎛ 이하의 초미세입자는 햇빛을 산란시키거나 흡수하는 통에 시야가 나빠져 비행기 운항이 지연 또는 결항될 수 있다. 그 바람에 항공사들이 여객기 엔진과 동체를 세척하는 주기가 전보다 짧아졌다고 한다. 황사가 국내 산업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미 2006년 전경련의 보고서 ‘우리나라에 미치는 황사 영향 최소화 방안’에서 분석된 바 있다. 흥미롭게도 보고서는 황사 덕에 뜻밖의 특수를 누리는 상품군도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황사가 심한 철에는 마스크가 10배, 공기청정기와 선글라스, 스카프 등의 매출이 각각 70%, 25%, 19.7%씩 일시적으로 오른다. 과학적 근거가 증명되지 않았으나 돼지고기와 녹차, 클로렐라, 미역, 마늘 같은 이른바 ‘건강식품군’의 소비량도 잠시 두드러진다.

미온적이었던 중국 정부의 태도 변화
현재로서는 황사 해결의 근본대책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이제까지 중국 정부가 미온적이었던 탓이 가장 크다. 한·중·일 환경장관회의(TEMM)가 열리고 민·관 합동으로 황사 발원지인 북중국과 몽골에 산림을 조성하는 사업이 산발적으로 이뤄지지만 발생범위에 비추어볼 때 조족지혈이다. 쓰나미를 손바닥으로 막는 격이랄까. 몸이 단 쪽은 외려 주변국들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와 일본의 정부, 민간기업, 그리고 NGO들이 나서 몽골 사막에 나무를 심어 왔다.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매년 서울시의 4배만큼 사막화가 진행되는 판에 찔끔찔끔 나무를 심은들 홍보성 면피효과는 거둘지 몰라도 근본대책이 되기 어렵다. 지난 수천년간 지속된 기후현상을 최근에 유해성분이 포함되었다 해서 당장 어찌 근절시킬 수 있으랴. 한편으로는 중국 정부의 소극대응을 탓하기에 앞서 황사를 공급하는 사막(혹은 사막화)지역이 한반도의 약 20배나 된다는 현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중국 영토의 무려 15%다. 설상가상으로 그 배후지인 몽골의 광활한 사막까지 합산해보라. 몽골은 국토의 90%가 언제든 사막이 되기 쉬운 조건인 데다 실제로 약 80%가 웬만큼 사막화된 상태다. 당장 돈 한 푼 나오지 않는 메마른 땅에 환경개선만을 위해 천문학적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방풍림을 조성하기란 어느 나라 정부든 쉬운 선택이 아니리라.

해마다 황사일수가 꾸준히 늘면 베이징은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앞서 예로 든 소설들에서처럼 누구든 사시사철 마스크 없이는 도저히 거리를 나다닐 수 없는 시대가 찾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그때에도 끼를 숨길 수 없는 패션니스트들은 마스크에다 이런저런 치장을 하고 셀카 사진을 SNS에 올리는 데 열을 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리되면 미용업계의 주식시장 테마주 판도가 바뀌리라. 주거문화는 어떨까. 주기적으로 인공강우를 농경지가 아니라 오히려 혼잡한 도심에 내리게 하고, 어지간한 미세먼지는 다 막아내는 밀폐형 방진설계가 아파트와 주택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지나 않을까? 허나 이런 식의 대응은 죄다 미봉책에 불과하다. 뿅 망치로 이 구멍 저 구멍에서 머리 내미는 두더지를 그때그때 후려갈기는 짓과 같다. 다행히 최근 중국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한 두 가지 변화가 엿보인다. 하나는 민의에 의해, 다른 하나는 산업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중국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여론을 모아 정부의 정책방향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일견 당연한 정공법이나 산업적 이해에 따라 친환경 정책을 택하게 된 결과는 아이러니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월 1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행사에서 BYD가 하이브리드 SUV 차량을 선보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지난 4월 1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행사에서 BYD가 하이브리드 SUV 차량을 선보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먼저 정공법을 보자. 작년 초 중국에서는 아나운서 출신의 한 여성이 황사문제에 정면 대응하여 화제를 모았다. 중국 CCTV 아나운서 차이징(柴靜)은 자기 뱃속의 딸이 뇌종양 판정을 받자 그 이유를 베이징 시내의 지독한 스모그에서 찾았다. 방송사를 사직한 그녀는 1년 동안 자비 100만 위안(약 1억7500만원)을 들여 중국 각지와 해외 현장을 취재했고, 그 성과를 <차이징의 스모그 조사: 돔 지붕 아래>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유튜브에 공개했다. 2015년 2월 28일 공개된 그녀의 다큐멘터리는 단 하루 만에 1억1700만번 조회되고 10만개의 댓글이 달렸다. 언론인이라기보다 아이 엄마의 시선에서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환경부처 장관이 호의적으로 반응했고, 유력 언론들도 대기오염 해소를 위한 강력대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3월 둘째 주가 되어도 사회적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중국 정부는 차이징의 다큐멘터리를 인터넷에서 볼 수 없게 차단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릴 만큼 당혹해했다. 이보다 불과 한 달 앞서서는 베이징 서쪽 산시성의 한 마을을 방문한 리커창(李克强) 총리에게 한 여중생이 ‘스모그를 줄여 중국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건넸다. 한 달 뒤 리 총리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노라고 친필로 답장을 썼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세상을 진정으로 바꾸자면 제2·제3의 차이징이 꾸준히 필요함을 일깨운다. 어찌 계란으로 바위를 한 번에 깨뜨리랴. 이들의 염원이 사회 전반의 공감을 얻자 결국 정부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소위 ‘스모그와의 전쟁’을 선포한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GDP 단위기준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보다 40~45% 수준으로 줄이고, 청정에너지 비중은 15% 늘리기로 했다. 특히 수도권의 형편없는 대기 질 개선에 향후 6년간 42조 위안(7300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철밥통이자 출세의 지름길로 여겨지는 공산당 간부들에게도 생태환경을 파괴하는 정책을 추진 시 기록에 남겨 평생 책임을 묻는 ‘종신책임제’를 적용하겠다는 의지까지 내비쳤다.

중국, 2020년까지 전기차 500만대 생산
두 번째 변화는 그 파장이 보기보다 미묘하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전기차를 500만대 생산하고, 충전소 1만2000곳(충전기 480만대)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이는 악성 미세먼지의 주범 중 하나인 차량 배기가스를 줄이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자국 기업을 선두로 끌어올리려는 복안이 한데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를 위해 전기차 구매보조금을 최대 약 1900만원까지 지급하고 지방정부도 전기차 의무구매 비율을 기존의 30%에서 50%로 확대하도록 권했다. 이러한 기조는 2015년 시진핑 주석이 상하이자동차를 방문해 “전기차야말로 중국이 자동차 대국에서 강국으로 가는 필수 코스”라고 강조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내연기관 자동차시장에서 경쟁하는 한 후발주자로서는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테스트베드 삼아 전기차 사업에 일찍 뛰어든다면 내일의 세계 자동차업계는 중국 기업들이 선도할 수 있으리라는 속내인 것이다. 환경에도 도움이 되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다. 국민에게 면이 서는 동시에 기업도 살려 국부를 늘리는 일 아닌가. 실제로 중국의 전기차 판매는 2015년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며 연간 시장규모 20만대를 돌파했고, 덕분에 중국 토종기업 BYD가 세계 1위 전기차 생산업체로 부상했다. 전기차 분야에서 앞선 기술력을 자랑하는 테슬라모터스가 중국에 생산기지 건설을 검토하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

황사로 시작한 이야기의 결말이 의외라 생각되는가? 그렇지 않다. 뭐든 동전의 양면이 있는 법이니. 중국의 전기차 생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 우리 국민이 황사(더 정확히는 미세먼지)로 겪는 고통은 많이 완화되겠지만 국내 자동차업계에는 비상이 걸린다. 그동안 우리 자동차업계는 독일과 미국 같은 메이저 자동차 생산업체들처럼 차세대기술로 떠오른 전기차 개발보다는 공해를 뿜어내는 재래식 자동차 시장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테슬라 같은 일개 사업자가 아니라 중국 시장이 움직인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2016년 6월 출시 예정인 현대자동차의 전기차는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130~180㎞지만 테슬라의 최신형은 346㎞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도 한국의 전기차 기술 경쟁력은 미국의 40%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이제라도 국내 기업들이 정신 차리고 서두르면 어떻게든 쫓아갈지 모르나 우리나라 정부와 국민이 염두에 두어야 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차세대 자동차산업은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기존의 자동차는 대규모 장치산업의 산물이다. 복잡한 내연기관과 수많은 부품을 생산·조립하려면 대규모 공장은 물론이고 숙련된 수많은 직원들과 협력업체들에 의존해야 한다. 반면 전기차는 배터리와 모터, 차체, 그리고 운영시스템이 전부라 생산방식이 단순하다. 알기 쉽게 테슬라의 예를 들면 시가총액은 제너럴 모터스의 2분의 1이지만 직원 수는 30분의 1에 불과하다. 전기차시장의 확대는 고용효과가 높은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고,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노동시장 한파를 초래할 것이다. 대기의 질이 나아지는 만큼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매년 노사분규가 일 때마다 자동차 기업의 귀족노조 운운하는 언론의 수식어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워질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황사가 불던 시절이 그나마 나았다고 회고하는 이들이 있을까?

<고장원 SF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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