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령 왜 늦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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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5개월 앞두고 감감 무소식… 검토와 홍보 기간 촉박

오는 9월 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또다시 화제의 법으로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4월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김영란법에 대한 질문에 “우리 경제를 너무 위축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속으로 많이 했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국회 차원에서도 한 번 다시 검토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며 국회에서 개정안을 통과시켜 주기를 기대했다.

박 대통령 “경제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려”
시행 5개월을 앞두고 다시금 김영란법의 위력을 확인한 국회에서는 새로운 사실에 놀랐다. 첫 번째 놀람은 지난해 3월 통과된 이 법의 시행령이 아직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그렇게 논란이 된 법안이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시행령이) 아직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김영란법의 부칙 1조는 ‘이 법은 공포 후 1년 6개월이 경과한 날로부터 시행한다’고 규정돼 있다. 김영란법은 지난해 3월 27일 공포됐다. 1년 6개월이 경과되는 시점인 9월 28일 정식으로 시행된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당초 이 법의 시행을 1년 6개월 유예한 이유는 처벌조항이 있기 때문에 시행령을 빨리 만들어 충분히 검토하고 홍보하기 위해서였다”면서 “그런데 아직까지 정부에서 시행령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월 26일 편집국장-보도국장 간담회에서 김영란법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4월 26일 편집국장-보도국장 간담회에서 김영란법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정부 해당부처에서 시행령을 만드는 데는 보통 최소 3개월, 최대 6개월이 걸린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법률안에 언제부터 시행한다는 규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때에 법이 시행될 수 있도록 해당부처에서 빠른 시일 내에 시행령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초 김영란법의 원안에서는 유예기간이 1년이었으나 여야가 협의하는 과정에서 1년 6개월로 연장됐다. 당시에는 올해 총선을 염두에 두고 총선 이후로 잡았다는 이야기가 무성했다. 하지만 당시 법안 마련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은 총선 때문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홍보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시행령 마련이 늦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해당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를 비판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정무위 새누리당 간사이자 정무위 법안소위 위원장인 김용태 의원은 “법 자체가 어려운 조항이 많다”면서 “권익위원회의 해태나 방임이 아니라 그만큼 시행령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과정이라는 점을 감안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권익위가 수십 차례 공청회를 열면서 각 분야별로 불만을 수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런 우려들을 불식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제대로 잘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 시행과 관련해 농축수산·화훼·요식업 등 관련 업계에서는 기존 공무원행동강령 기준(음식물·선물 3만원, 경조비 5만원)의 금액 상한을 올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 일간지에서는 최근 ‘김영란법 식비·경조사비 기준이 완화된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는 5월에 김영란법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예고할 예정이라고 나와 있다. 권익위는 이 같은 보도에 대해 해명자료를 내고 식비·경조사비 기준 및 시행령 제정안 입법예고 일정과 관련해 아직 결정된 바가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권익위의 한 관계자는 “(시행령 제정안 입법예고) 시기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내용에 대한 논란이 있는 만큼 권익위에서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은 헌법 소원이 청구돼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적용 대상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 등이 포함돼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법에 포함되는 것이 맞지 않다며 위헌 확인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 결정이 나면 이 결정도 참조해야 되기 때문에 늦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영란법 시행령 왜 늦어지나

권익위 “논란 많아 신중하게 검토 중”
김영란법은 2013년 8월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됐다. 이 법안이 화제가 된 것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다. 관피아 문제들이 쏙쏙 드러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5월 19일 세월호 관련 대국민 담화에서 “전·현직 관료들의 유착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 정부가 제출한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며 “국회의 조속한 통과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당시 이 법은 해당 상임위인 정무위에 상정됐으나 계류 중이었다. 국회에서는 따가운 여론에 떠밀려 이 법을 여러 차례 수정한 끝에 지난해 3월 국회 본회의에서 정무위원장안으로 통과시켰다.

더민주의 정무위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이후 김영란법을 빨리 통과시켜달라고 재촉할 때는 언제이고, 지금 와서는 시행령도 만들지 않은 채 경제를 위축시킬까 우려된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이를 두고 적반하장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개정안 요구에 대해 더민주 정무위의 강기정 의원은 “오래도록 국회가 토론해서 통과시킨 것인데, 시행도 하기 전에 개정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적반하장 논란에 대해 “그런 감이 없지 않다”면서 “하지만 법안을 고칠 것이 아니라 시행령에 충분한 의견을 반영하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새누리당 김종태 의원이 발의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정무위원회에 제출돼 있다. 이 법안은 ‘공직사회의 부조리를 근절하고자 마련된 본 법률이 당초 취지에도 불구하고 사회 통념상 과도한 규제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며 개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개정안은 ‘명절 선물용 농·축·수산물의 상당수가 5만원 이상인 점을 고려할 때 현재 국민권익위원회와 한국법제연구원 등에서 논의하고 있는, 허용되는 선물 가액(5만∼7만원)은 그 기준이 지나치게 낮아 현실 물가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현행 법의 일부 미비점을 개선·보완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국회에서는 여야 구분 없이 김영란법 개정에 대해서는 찬반 여론이 뒤섞여 개진되고 있다. 새누리당 정무위 간사인 김용태 의원은 “개정안 마련은 지금 필요하지 않다”며 “위헌 청구에 대한 헌재의 결정을 보고 난 뒤 국회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은 당초 부정청탁 금지와 금품수수 금지, 그리고 이해충돌(공직자의 이해관계와 충돌되는 직무수행) 금지라는 세 가지 행위 금지법이었다. 국회에서 논의되면서 부정청탁 금지와 금품수수 금지는 김영란법에 대부분 반영됐지만 이해충돌 조항은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는 이유로 따로 분리돼 추후 토론으로 미뤄졌다. 이해충돌 방지와 관련된 부분에서 일부 수정·보완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내용을 담은 제2의 김영란법(공직수행의 투명성 보장과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법률안)은 정무위 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19대 국회가 끝나면 자동적으로 폐기된다. 권익위의 한 관계자는 이 법안에 대해 “지금 상태로 보면 19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돼 20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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