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한국에 기회의 땅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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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제재 풀리자 선박검사 한국에 맡겨… 박 대통령도 이란 순방

지난 3월 28일. 마산항에 한 척의 이란 국적 화물선이 입항했다. 이란 최대 국영선사인 IRISL(Islamic Republic of Iran Shipping Lines) 소속의 아바(ABBA)호다. 특이한 점은 이 배는 선박검사를 한국선급에서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선급 등록선으로 국내에 입항한 이란 국적호는 아바호가 처음이었다. 유조선, 대형상선 등 국제항로를 뛰는 배들은 해마다 선박검사를 받아야 한다. 선박검사를 할 수 있는 곳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등 9개국 선급에 불과하다. 올 초 이란은 경제제재가 풀리자 자국이 보유한 대형선박 27척 전부를 한국선급에 맡겼다. 이란이 한국선급에 배를 모두 맡긴 것은 한국선급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2010년 이란의 경제제재가 시행되자 주요국 선급들은 곧바로 철수했지만 한국선급은 사무실을 유지했다. 미국 국무부는 한국 정부에 “한국선급을 철수시키라”고 요청했고, 한국선급은 2013년 1월 1일부로 사무실을 폐쇄했다. 하지만 이 이후에도 한국선급은 주재원 부부를 이란 테헤란에 머물도록 하면서 이란 관계자들과 계속 접촉했다. 미국 측도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테헤란에 주재원이 남더라도 영업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이를 막을 명분은 없었다. 한국선급은 3년간 주재원을 주재시키면서 10억원 이상을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1월 16일(현지시간) 대이란 경제제재가 해제되는 날도 한국선급은 테헤란에서 이란 관계자들과 함께 선박 관련 국제행사를 갖고 있던 중이었다. 경제제재 해제 소식을 전해 들은 이란 측은 “한국의 우정에 보답하겠다”며 자국의 선박검사 일체를 한국선급에 맡겼다. 치열한 해외경쟁 때문에 해외선박 유치가 어려웠던 한국선급으로서는 최고의 낭보였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가운데)이 1월 25일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이란 교역·투자지원센터’ 개소식에 참석해 현판식 제막을 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가운데)이 1월 25일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이란 교역·투자지원센터’ 개소식에 참석해 현판식 제막을 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원유·천연가스 등 자원매장량 세계적
이란은 과연 한국에 기회의 땅이 될까. 수출감소, 조선·해운·건설업 위기에 빠진 한국에 ‘이라니안 드림(Iranian Dream)’이 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순방길에는 최대규모의 경제사절단(236명)이 함께 떠났다. 최태원 SK 회장과 권오준 포스코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황창규 KT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김인호 한국무역협회 회장 등 재계 총수도 여럿 나섰다. 경제행보로 바닥에 떨어진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청와대의 의도도 없지 않지만, 재계도 이란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의미가 된다.

한국으로서는 절박하다. 원유수입 감소로 중동경제가 크게 위축되면서 주력산업들이 잇달아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해운·건설·석유화학·철강 등 구조조정 1순위에 올라 있는 업종들은 모두 중동과 연관성이 깊은 산업들이다. 중동경제가 나빠지면서 해양선박플랜트, 해외건설 등은 직격탄을 맞았다. 단기간에 유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랫동안 경제·금융제재를 겪었던 이란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그동안 투자를 하지 못했던 만큼 개발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란 테헤란 시민들이 1월 16일(현지시간) 중앙역 앞에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풀렸다는 소식이 실린 신문들을 살펴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이란 테헤란 시민들이 1월 16일(현지시간) 중앙역 앞에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풀렸다는 소식이 실린 신문들을 살펴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이란은 인구구조로 보나 자원매장량으로 보나 매력적인 국가다. 2013년 기준 이란의 원유매장량은 1564억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베네수엘라·캐나다에 이은 세계 4위다. 천연가스(2위), 철광석(12위), 구리(9위), 석탄(26위), 납·아연(17위) 등도 세계적인 수준의 매장량을 갖고 있다. 이란의 원유는 주변 중동국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2015년 1~10월 평균 배럴당 51.5달러로, 타 중동국가 원유단가(배럴당 53.6달러)보다 낮다. 에너지 수입국인 한국으로서는 러브콜을 내밀 수밖에 없는 구조다. SK와 포스코는 총수가 직접 이란에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란은 소비시장으로도 가능성이 크다. 이란 인구 7700만명 중 3분의 2 이상이 고등교육을 받았고, 전체 인구의 60%가 30대 이하 젊은 층이다. 특히 오랜 경제제재로 해외 소비재에 대한 욕구가 커 소비잠재력이 높다. 철강 및 기계류 등과 같은 중화학공업 수출뿐 아니라 자동차, 스마트폰, TV, 의료용기기 등의 수출 가능성도 크다.

해외 경쟁국은 이미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경제제재 이후 미국과 유럽, 한국 등이 빠진 사이 중국과 러시아가 시장 깊숙이 파고들어 상당 부분 선점을 한 상태다. 중국의 이란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10월 누적으로 25.7%에 달했다. 경제제재가 본격 시작되던 시점인 2013년(18.1%)과 비교해 보면 7.6%포인트가 늘어났다. 이란에서 판매되는 외국산 제품 4개 가운데 1개는 중국산이라는 의미다. 지난해 7월 핵협상이 타결되자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중국 시진핑 주석 등은 대규모 사절단과 함께 이란을 방문했다.

이란은 한국에 기회의 땅이 될까

한류열풍 진원지로 우호적 소비시장
유럽연합(EU)도 지난해 핵협상 타결 직후부터 산업별 고위 관계자와 민간기업 대표가 현지를 방문했다. 이란은 전통적으로 유럽산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시장이었다. 코트라에 따르면 최근 이란 바이어들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조사 대상 521개사 중 221개사가 유럽을 교역상대 선호국 중 1위로 꼽았다. 프랑스의 르노와 푸조-스트로엥은 자동차분야 협력을 이란 업계와 논의했고, 토탈사는 천연가스 개발 참여를 이란 국영석유공사(NIOC) 측에 타진했다. 독일 보쉬, 다임러도 기계와 자동차 수출을 위해 이란과 접촉을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이란 시장은 한국에도 우호적이라는 점이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이은 한국의 중동지역 내 세 번째 수출국이다. 한국의 대이란 수출은 2012년 63억 달러에 달했지만 지난해에는 37억 달러 수준으로 감소했다. 재제 기간 동안 수출입 물량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나름대로 선전했다는 평가도 있다. 유럽 기업들이 사업을 접는 동안 상대적인 반사이익을 봤기 때문이다. 삼성, LG는 가전제품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이란은 한류열풍의 진원지였다. 2006년 대장금, 주몽은 시청률 80%에 육박했다. 한국의 사극 열풍은 히잡문화의 덕을 톡톡히 봤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란 공중파에는 여성의 살갗이 드러날 경우 편집이 되는데, 한복은 그런 편집이 필요 없었다는 것이다. 한류가 되살아날 경우 식료품, 화장품, 무선통신기기(스마트폰) 등이 직접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부가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을 꾸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해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란과 앙숙관계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자극할 경우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대이란 진출은 조용하고 차분하되, 실속을 차리면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코트라 관계자는 “이란은 공급자 위주의 시장으로 야바쉬(Yavash·중국의 만만디 관습처럼 특유의 느림문화) 문화가 존재한다”며 “이란 진출은 이란 바이어들의 관행과 관습을 파악한 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m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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