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기업이지만 기업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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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傳> 펴낸 심정택 작가 인터뷰

식자들 사이에 알음알음 ‘입소문’이 퍼지는 책이 있다. <이건희傳>. 지난 3월 초에 출간됐다. 벌써 2년째 병석에 누워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평전이다. 책이 기술하는 관점은 책의 부제 ‘초국가 삼성을 건설하다’에 답이 있다. ‘국가를 초월한 기업집단 삼성’을 만들어낸 이가 2세 경영인 이건희라는 것이다. 책은 그 과정을 정밀하게 추적한다.

<이건희傳>은 설렁설렁 쓰여진 책이 아니다. 삼성이라는 기업의 최고 꼭대기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인터뷰를 통해 교차검증해 쓰여졌다. (심 작가는 글의 머리말에서 “삼성이라는 거함의 부회장급, 특히 이학수 전 부회장이나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인터뷰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나온 자료라도 치밀하게 검증해 재조립했다.

“삼성은 기업이지만 기업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설사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책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명예훼손이 아닐까.
“책 세 권을 냈지만 아직까지 전문작가라고 하기는 힘들다. 전작 <삼성의 몰락>(2015)을 쓰지 않았다면 이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평전을 쓰고 싶었다. 평전을 영어로 크리티칼 바이오그래프(critical biograph)라고 한다.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평전을 보라. 좋게만 쓰지 않았다. 그 사람의 인간적인 결함까지 썼다. 그래야 객관적이다. 우리 사회를 보라. 평전이라는 장르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듯하다. 삼성과 이건희에 대해서는 마치 접근해서는 안 되는, 그런 것으로 성역화되는 것 같다. 원고를 완성한 상태에서 출판사를 접촉했다. 몇몇 출판사로부터 ‘상업적으로 팔리려면 좀 더 좋은 이야기를 덧붙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답을 들었다. 비교적 균형적 시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 주요 등장인물을 이니셜로 처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가급적 실명으로 쓰려 했다. 사실 법률적으로 코너에 몬다면 방법은 없다. 누구 명예를 훼손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확실한 건, 그런 문제제기도 하면 안 된다는 사회 분위기가 확실히 정상적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책 제목은 <이건희傳>이지만 선대회장 때부터 2세 경영으로 넘어가는 과정, 그리고 다시 3세 경영인 이재용 체제가 들어서는 과정이 나온다. 전반적으로 후대로 넘어가면 넘어갈수록 평가가 박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건희가 1942년생이다. 부회장 시절은 준비기간이었고, 1987년 12월에 취임해서 3년이 지난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경영한다.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한국 경제가 그때가 성장시대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그 시대에 걸맞은 리더십을 발휘한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경영인은 숫자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남들이 따라갈 수 없는 경영성과를 낸 것은 사실이다. 창업주와 2세, 3세 경영인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다. 창업세대에는 창업주가 해야 할 역할이 있고, 시대적 배경이 다르다. 창업주(이병철 회장) 때는 인적·물적 자원 자체가 부족한 시대였다. 이재용 체제는 아직 평가할 단계가 아니다. 아직 론칭하는 단계이고, 아직 안정적으로 론칭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병철 회장이 후대를 세울 때 장남이 아니고 삼남을 택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이건희 시대는 끝난 셈인데, 두고두고 평가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맹희씨로 후계자를 결정했다면 그것대로 또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건희가 후계자가 된 것은 잘된 선택이었다고 평가한다.”

이맹희였다면? 부질없는 가정이다. 책에는 이건희가 쓰러지기 전, 이맹희 측과 벌인 송사부터 훨씬 전부터 거슬러 올라가 이맹희가 아버지 이병철의 눈 밖에 나던 시절부터 언급돼 있다. 심 작가에 따르면 이맹희씨는 12·12 이후 실세로 떠오른 신군부세력의 핵심인물인 김복동, 정호용, 권익현 등과 오래전부터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이맹희씨는 복귀를 꿈꿨을까. 신군부 세력의 일부도 그런 관계를 이용했다는 ‘증언’이 있다. 하지만 이병철을 비롯한 삼성 쪽에서는 TK세력의 대부 신현확 전 총리를 삼성물산 회장으로 앉혀 그런 시도를 틀어막는다. “흔히 삼성의 반도체 사업을 1980년대 5공 때 경제관료가 국가 전략산업으로 키운 것으로 알고 있다. 책에도 인용해 놨지만, 이병철은 1983년 일본에 가서 ‘도쿄선언’이라는 것을 발표하는데, ‘정부 지원이 있으면 해볼 만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정부는 정치권력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상식적으로 경제관료를 이야기하는 것이겠는가. 이맹희의 술회에 따르면 전두환 대통령의 부친은 이병철이 운영하던 삼성상회 국수집 공장장이라는 특수관계였다. 결국 정치권력과 산업권력의 관계에 대해서는 새로운 시각으로 산업사를 다시 쓸 필요가 있다.”

<이건희傳> 책표지 / 새로운미래

<이건희傳> 책표지 / 새로운미래

특히 1980년대 이후 삼성의 성장에는 다른 재벌과 차별성이 있는 정경유착·인적 커넥션이 있다는 건데, 이건희 체제에서 그것이 완성되었다고 보는가.
“책을 쓰다 보니 그런 것이 저절로 눈에 띈다. 우리가 민주화를 이야기할 때 첫 번째로 꼽는 것이 군사독재 시절 간선제로 치러진 선거가 직선제로 바뀐 1987년 6·29 선언이지 않나. 직선제를 기반으로 하는 대통령제가 도입되면서 흔히들 이야기하는 진보 보수정권으로 교체도 가능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1987년 이후 정권들이 단임정권이라는 것이다. 연임이 안 되니까 자신들이 당대에 성과를 내야 했다.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다. 경제관료들이 재벌 위주의 지표에 집착하고 성장 위주의 정책을 편 것이 길게 보면 1990년대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이건희 체제가 본격화된 1993년이나 96년의 삼성은 지금과 또 다르다. 그때만 하더라도 글로벌 기업이라고 안 했고, 한국의 최고 기업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삼성이 데미지를 입게 되면 한국 경제에 데미지를 준다고. 회사가 고꾸라지면 우리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이 빠져나가면서 대한민국의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삼성의 사업구조를 보면 내부 수직계열화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건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삼성의 하청기업을 보면 삼성에 독립적인 기업이 없다. 극단적으로 말해 국민 개인의 소득수준이 2만7000~2만8000 달러라고 하는데, 국민 개개인을 놓고 보면 3만 달러 행색이 아니지 않는가. 쉽게 따지면 국민의 90%가 3만 달러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재벌 위주의 경제성장이 우리 국민의 행복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5년 단임정권에서 직업공무원들은 정권이 표방하는 이념과 상관없이 삼성과 재벌 위주의 정책을 펴지 않나. 일반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중심이 아니고. 책을 쓰고 난 다음에 삼성 내부에서 나온 이야기가 ‘그 사람(심 작가)이 진보좌파 아니냐’고 했다는데,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잘못이라고 본다. 아니, 왜 자기들이 진보좌파인지 여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느냐는 거다.”

삼성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가 뭔가 뒤집혀 있다는 지적인데.
“개인적으로 천주교 신자다. <삼성의 몰락>을 냈을 때 한 70대 자매님 할머니가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책도 안 읽어 보셨는데 대뜸하시는 말이 ‘왜 이런 짓을 했느냐’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삼성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다. 전체 다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비상식이다. 삼성과 삼성의 오너에 대해서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삼성 이야기로 돌아가면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생산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하면서 내세운 이야기가 국내에서는 인력수급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뭔가 하면 양산조립 일을 대졸사원이 할 수는 없고, 영남·충청·호남의 고졸 출신 생산직 여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건 중요한 이야기인데, 안 그래도 삼성이 국민경제와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별 관련이 없는데도 고용이나 인력에서 더더욱 그렇게 돼가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기 전인 2013년 10월 2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 신경영 만찬에 이 회장과 부인 홍라희 여사가 입장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기 전인 2013년 10월 2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 신경영 만찬에 이 회장과 부인 홍라희 여사가 입장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3세 경영권 승계가 거의 마무리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 삼성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이건희 회장을 흔히 은둔의 경영자라고 했다. 앞서 아직 평가할 단계는 아니라고 했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훨씬 더 정치적 인물로 본다. 이건희의 경우 정치적 사안이 있으면 밖으로 나갔다. 아예 피해 버렸다. 이학수 부회장이 대신 악역을 많이 담당했다. 그런데 이재용 부회장은 정치적인 자리 전면에 아예 나서고 있다. 그걸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옆에 서라고 하니 선 것일 것이다. 내가 정치전문가가 아니라 함부로 할 이야기는 아닌데, 정치인도 리스크는 크다고 본다. 왜 자꾸 이재용하고 같이 사진 찍으려 하냐는 거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삼성이 국민경제와 거의 상관이 없어져 가는데, 정치인들도 삼성과 자꾸 우호적이고 호혜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비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결국 경영권 승계를 위한 수단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회사가 글로벌화되고 커지면 지배주주의 지분이 약해지는 것은 정상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기존의 소유주가 지분구조는 약해질 수 있더라도 다른 형태로 지배를 강화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이야기는 결국 이재용 체제 지배구조 확립을 너무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언론들도 애국심 마케팅을 하며 한쪽으로 몰아가니 결국 그게 다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 생산적으로 쓰이는 게 아니라 국민경제의 시각에서는 부정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책에는 삼성그룹의 전직 고위관계자 증언이 많이 나오는데, 어떻게 접촉했나. 책이 발간된 후에 ‘내가 말한 의도를 왜곡했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는 모양이던데.
“옛날에는 다 못살았다.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다 똑같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 후 달라졌다. 재무담당 라인이었던 이학수는 SDS 지분이 공개된 것만 하더라도 2조원이다. 그 사람들로서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삼성이라는 존재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집단이나 개인이 많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당연히 경쟁이 있고 승자와 패자가 있다. 게임의 룰이 정당했다면 경쟁에서 진 사람들이 정당하게 감수하겠지만 양극화와 불평등으로 가는 상황에서는 자신이 벌 받는 느낌을 받는다. 책 발간 뒤 그분들이 말을 바꾸는 것은 십분 이해한다. 여러모로 곤란해질 수 있으니까.”

삼성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 책이 마지막인가.
“쓰고 싶은 건 다 썼다.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삼성은 하나의 기업이지만, 이미 기업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역사는 힘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라도 사실이 묻히기 전에 바로잡을 것은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반도체는 이병철, 이건희가 선견지명이 있어 다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만약 내 이야기가 틀렸다면 근거를 가지고 뒤집으면 된다. ‘삼성에 대해 잘 모르는 놈이 썼다’는 식의 이야기가 그쪽에서 들리는데 잘 모르는 것, 맞다. 이해관계가 없으니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고, 삼성과 특수관계가 있던 사람들을 운 좋게 만나뵐 수 있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공개된 자료들도 하나로 모으면 의미가 있어 제시한 것일 뿐이다. 옳고 그르고의 차원은 아니고, 이런 책도 한 권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나는 내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걸 써서 떼돈을 벌겠다, 출세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안 썼을 것이다.”

심정택 작가(56)는 칼럼니스트이자 산업분석가다. <삼성의 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2015) 등의 저서를 냈다. 쌍용그룹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1993년 삼성그룹으로 옮겨 승용차사업 태스크포스인 삼성중공업 중장비사업본부 경영기획실, 삼성중공업 전략사업추진본부, 삼성그룹 21세기기획단 등을 거쳤다. 이후 홍보대행사를 설립해 기업·경제연구소 홍보업무를 대행하는 한편, 국내 화랑업계 미술컨설팅 등의 일을 해왔다.

<글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사진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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