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은 지구여성에게 성적 욕망을 느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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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은 호모사피엔스와 유전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다. DNA 계통상 우리는 슈퍼맨보다는 칠성장어와 훨씬 더 가깝다. 이는 크립톤 여성들이 지구 여성들과는 전혀 다른 페로몬이나 성적 매력을 지녔으리라는 뜻이다.

세상에 고민 없는 사람은 없다. 1938년 출판만화로 데뷔해 조만간 팔순을 바라보는 슈퍼맨도 마찬가지다. 크립톤이라는 먼 외계행성 출신의 이 외계인은 애초 보통사람보다 힘이 꽤 센 정도로 그려졌지만 오리지널 창작자 제리 시겔과 조 슈스터는 대중의 인기에 고무되어 이 캐릭터의 슈퍼 파워를 한도 끝도 없이 부풀렸다. 만화잡지 ‘액션 코믹스(Action Comics)’에 얼굴을 내밀던 신인 시절 슈퍼맨은 머리 위로 자동차를 들어올려 괴력을 과시했고, 몇 년 후에는 비명 지르는 승객들이 가득 탄 버스 몇 대를 통째로 떠받쳤다. 나중에는 여객선의 공중부양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1960년대에는 아예 행성들을 움직이고 나선다. 크리스토퍼 리브가 주연을 맡은 극장용 영화 <슈퍼맨(Superman); 1978년>에서도 이 크립톤 사내는 사랑하는 로이스 레인을 되살리고자 지구의 자전 방향을 역전시킨다. 정말 그랬다간 세상이 풍비박산 나겠지만 아무튼 슈퍼맨 파워에 대한 과대포장은 중국식 뻥에 뒤지지 않는다.

정신적·육체적으로 선결해야 할 문제들
허나 일명 ‘강철인간’(Man of Steel)이라는 화려한 수사의 이면에 슈퍼맨 나름의 고충이 있음을 그의 팬들은 알까? 실은 슈퍼맨에게도 선뜻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이 하나 있다. 이를 꿰뚫어본 이가 있으니 바로 미국의 SF작가 래리 니븐(Larry Niven)이다. 그는 슈퍼맨이 다름 아닌 자신의 출신 탓에 성생활에 큰 애로가 있음을 과학적으로 규명했다. 슈퍼맨이 팔순잔치를 앞뒀다 해서 그가 혼기를 놓쳤는지 인간의 잣대로 따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칼 엘(Kal-El·슈퍼맨의 크립톤 이름, 지구인 이름은 클락 켄트)처럼 파괴된 모행성을 탈출한 크립톤인 생존자 수가 손으로 꼽는 이상, 이 외계인이 여태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를 작가들이 로이스 레인을 가운데 두고 슈퍼맨과 클락 켄트(칼 엘의 또 다른 자아)가 경쟁하는 묘한 삼각관계 만들기에 급급해서라고만 볼 수 없다는 것이 니븐의 설명이다.

영화 <맨 오브 스틸>의 스틸컷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영화 <맨 오브 스틸>의 스틸컷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슈퍼맨에게는 노총각 딱지를 뗄 수 없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그것은 그가 지구인 여성과 사랑하기에는 정신적·육체적으로 선결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라서다. 먼저 정신적 문제부터 따져보자. 라나 랭-슈퍼맨의 청소년 시절 첫사랑. 나중에도 좋은 친구 사이로 지낸다-과 로이스 레인은 둘째 치고 엘리자베스 테일러 뺨치는 미모라 한들, 근본적으로 슈퍼맨이 지구 여성에게 성적 욕망을 느낄까? 무엇보다 그는 외계인이잖은가. 물론 크립톤인들과 지구인들은 겉보기에 서로 별 차이 없는 휴머노이드 종이다. 신체 골격과 크기, 신체 부위별 기능, 그리고 심지어 식사습관까지 빼닮았다. 허나 겉만 보고 현혹되지 말라. 슈퍼맨은 호모사피엔스와 유전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다. DNA 계통상 우리는 슈퍼맨보다는 칠성장어와 훨씬 더 가깝다. 이는 크립톤 여성들이 지구 여성들과는 전혀 다른 페로몬이나 성적 매력을 지녔으리라는 뜻이다. 예컨대 로이스 레인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는 칼 엘에게 내심 지구산 침팬지를 연상시키지 않을까. 그러니 작가들이 슈퍼맨과 로이스를 어떻게든 맺어주려 머리 쓰는 작태(!)는 교회법이나 관습법 상 소돔과 고모라를 조장하는 짓이나 진배없다.

슈퍼맨은 납을 제외하고는 뭐든 투시하는 X레이 눈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모든 여성의 나신을 감상할 수 있다. 그렇다고 타고난 능력 때문에 그를 치한이나 변태로 모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섬유에 납 성분을 함께 넣어 짠 옷을 입지 않은 여성들 탓도 있으니까. 다행히 슈퍼맨은 자신의 투시능력을 변태적인 데 쓰지는 않는다. 이는 그가 도덕군자라서라기보다는 지구 여성에게 생리적으로 어떤 흑심도 생기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해보라. 당신 같으면 오랑우탄 암컷의 나신에 마음이 혼미해지겠는가.(여성 독자라면 같은 종의 수컷을 떠올려보시길.) 그러니 만화와 영화에서 슈퍼맨이 지구 여성들과 로맨스를 벌이는 것은 본능이 시켜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속에서 인간으로 위장하고 산 지 너무 오래되어 지구 여성에게 어찌 대해야 하는지 머릿속 깊이 학습 내지 세뇌된 결과가 아닐까. 칼 엘의 리비도와 무관하게 그의 사회화된 자아인 클락 켄트가 평소 배운 대로 사랑을 흉내 내고 있을 뿐이지 않을까. 오랑우탄과도 친구가 될 수야 있겠지만 끈적끈적한 사이의 연인이 될 수 있겠는가?

원더우먼과 키스하는 슈퍼맨.(사진 왼쪽) 슈퍼맨의 모험_루이스와 클라크(사진 오른쪽)

원더우먼과 키스하는 슈퍼맨.(사진 왼쪽) 슈퍼맨의 모험_루이스와 클라크(사진 오른쪽)

좋다. 한 발 양보하겠다. 이유야 어찌 됐든 슈퍼맨이 호모사피엔스 암컷과의 육체적 사랑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래도 그가 지구 여성과 섹스하는 데 걸림돌이 일소되었다고 보기는 이르다. 정사(情事)를 벌이는 동안 남녀의 뇌파를 검사해 보면 오르가슴이 쾌락을 주는 동시에 간질과 비슷한 파장을 잠시 유발한다. 이는 우리의 의식이 근육을 통제하는 능력을 잠깐이나마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슈퍼맨은 강철에도 손톱자국을 남긴다. 그런 그가 오르가슴에 도달한 나머지 눈 깜짝할 순간만 방심해도 로이스는 어찌 될까? 칼 엘의 근육은 원래 지구보다 중력이 20배 높은 고향행성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쾌락에 잠시 정신줄 놓았다가 가랑이에서 흉골까지 으스러지고 내장이 튀어나온 그녀 앞에서 슈퍼맨은 자신이 부지불식간에 저지른 짓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으리라. 여기서 다가 아니다. 칼 엘이 그녀의 몸 안에 배출한 크립톤 산(産) 정자들은 연약한 인간자궁 따위는 가볍게 뚫고 나가 직진해서 머리통을 날려버릴 것이다. 왜 그럴까? 슈퍼맨은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만큼 그가 배출하는 정자들 또한 기관총 탄환처럼 빠르기 때문이다. 이제 똑똑히 알았을 것이다. 슈퍼맨과 로이스 레인 사이에는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정상적인 이성애 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 슈퍼맨 만화의 한 버전에서는 슈퍼맨이 원더우먼과 결혼하여 아기까지 낳는다. 과학적 견지에서 보면 이 역시 불가하다. 원더우먼이 아무리 초강력 파워를 구사하는 슈퍼히로인이라 해봤자 지구인 아닌가. 그녀의 황금벨트와 ‘진실의 올가미’로는 체내를 관통하는 칼 엘의 정자를 막을 재간이 없다.

독신의 고민 해결 차원이 아니라 크립톤 종족의 보존을 위해서라면 살아남은 크립톤 여성들과 상의할 수밖에 없는데, 이 또한 녹록지가 않다. 크립톤 행성이 파괴된 후 살아남은 여성들이라곤 슈퍼걸과 조드 장군의 여성 부하 ‘어싸’(Ursa) 둘뿐이다. 그러나 슈퍼걸은 슈퍼맨의 친사촌누이이고 어싸는 슈퍼맨이 지구방위를 위해 해치워야 할 사악한 악당이잖은가. 두 여성 다 나름의 이유로 슈퍼맨이 흑심을 품기에는 번지수가 영 맞지 않는다. 만에 하나 크립톤 풍속이 근친결혼을 허용한다 한들 대부분의 지구사회에서 금기시하는 이상 칼 엘과 카라 조엘(슈퍼걸의 크립톤 이름)이 공공연한 커플이 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인간이 감당하기 불가능한 슈퍼 육체
그렇다면 한 발 더 양보해서 두 가지 가정을 추가하겠다. 과학자들이 슈퍼맨의 대를 잇고자 그와 인간여성 간에 인공수정이 가능한 유전자 조합방법을 찾아냈다는 것이 하나요, 수정란 착상은 여성의 자궁 속이 아니라 인공자궁에서 한다는 것이 또 다른 하나다. 하지만 딴지맨 래리 니븐이 또 나선다. 설사 이종(異種) 간 인공수정이 가능하다 해도 그러려면 우선 슈퍼맨이 우리 같은 범인(凡人)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된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그에 따르면, 슈퍼맨은 일단 달까지 날아가 달 표면에서 자신의 정액을 사출해야 한다. 꼭 프라이버시 때문은 아니다. 슈퍼맨의 정액이 날아가는 속도는 음속을 넘어선다. 지구상에서 그랬다가는 공기를 가르는 파열음이 큰 소음공해를 유발할 뿐 아니라 그 앞을 가로막았다간 뭐든 뼈도 못 추릴 것이다. 인간이 금속으로 만든 시험관 따위로는 받아낼 재간이 없다. 슈퍼맨은 자기의 정액을 사출한 뒤 빛의 속도로 따라잡아 자기 손에 다시 움켜쥐어야 한다. 그 정액의 엄청난 운동량 값이 0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인공자궁에서 얌전히 기다리는 로이스의 난자와 만나는 것이다.

콘돔 광고 모델로 등장한 슈퍼맨-<XXX콘돔> 광고.

콘돔 광고 모델로 등장한 슈퍼맨- 광고.

콘돔 광고 모델로 등장한 슈퍼맨
안타깝게도 아직 끝이 아니다. 로이스의 난자는 인간남성의 정자를 받아들이게 설계된 자연의 산물이다. 인간의 정자들이라면 제일 먼저 난자의 막을 뚫고 들어간 녀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퇴출당한다. (그래서 쌍둥이가 드물다.) 그러나 크립톤 산(産) 정자들은 인간의 정자들과는 기본체력이 다른 천하장사들 아닌가. 슈퍼맨의 첫 번째 정자를 받아들이고 나서 인간의 난자가 아무리 막을 두껍게 감싸도 바로 뒤이어 도착한 정자들이 막무가내로 막을 찢고 들어온다. 그렇게 밀고 들어오는 정자들 수가 인간처럼 2억~3억개라면…. 이래서야 난자가 남아날 리 없다. 난자가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된 가운데 지칠 줄 모르는 슈퍼 정자들만 인공자궁 벽을 뚫고 나가려 버둥대겠지. 이상에서 보듯 슈퍼맨은 정의의 사도라는 대단한 위상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밀한 사생활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남들은 모를 슈퍼맨의 성생활에 눈길을 준 이는 SF작가만이 아니다. 위 광고의 크리에이터는 슈퍼맨의 초인적 속성을 유머와 섹스어필을 함께 버무려 제품 메시지와 연결한다. 피임을 원하는 남녀가 사랑을 나누기에 앞서 반드시 챙겨야 할 필수품이 콘돔이다. 하지만 가격 따라 재질 따라 천차만별이니 살짝 고민이 된다. 뭐니 뭐니 해도 관건은 완벽한 피임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어떤 콘돔을 써야 안심일까? 방금 전 슈퍼맨이 자신의 정액 사출 속도를 줄이려 달까지 가야 하는 수고를 얘기했다. 그런데 이 광고물의 비주얼을 보라. XXX 콘돔을 뚫고 나가려 애쓰지만 끝내 그 안에서 버둥대는 인물은 다름 아닌 슈퍼맨이다. 이제까지의 논리에 따르면 이 광고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슈퍼맨이 찢지 못할 만큼 인장강도가 강한 콘돔이 존재하겠는가. 그러나 이 광고는 황당무계하지만 코믹하고 명확한 소구로 소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광고 비주얼 하단에 자리한 ‘여분의 힘이 더 보강된 콘돔, 남보다 더 공격적인 분을 위해’라는 헤드라인까지 읽고 나면, 슈퍼맨의 점잖은 기존 캐릭터를 떠올리며 파안대소하지 않을 수 없다. 콘돔은 얼핏 고관여제품 같지만 현장(?)에서는 저관여제품이 되기 쉽다. 임신을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필요할 때는 마음이 급해 어떤 콘돔을 쓰면 좋을지 깊게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 자사 제품의 장점을 주절주절 늘어놓느니 임팩트 있는 비주얼로 단번에 기억되는 쪽을 택했다. 더욱이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민감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광고주의 과장된 주장을 위트 있게 전달해 소비자의 거부감을 누그러뜨린다. 이 광고는 1997년 뉴욕 국제 광고제에서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

일찍이 필립 호세 파머(Philip Jose Farmer)의 과학소설 장편 <연인(The Lovers); 1953년>은 인간과 외계인의 사랑을 묘사하면서 적나라한 섹스까지 포함시켜 당대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요즘에는 과학소설에서도 에로틱한 묘사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지만 당시에만 해도 과학소설계는 성적 묘사를 터부시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외계인 여성을 인간여성과 다를 바 없이 사랑하며 그녀와 자신 사이에 낳은 아기를 소중히 키우려 마음먹는다. 필자가 우리에게 어려서부터 친숙한 슈퍼맨 캐릭터를 뜻밖의 측면에서 바라보도록 주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보편적 복지가 사회의 화두다. 같은 논리로 말하건대, 당신은 ‘보편적 사랑’을 할 수 있는가? 상대가 외계인이어도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는가? 만약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있다면, 멀리 서양의 인종갈등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다문화가족을 둘러싼 여러 갈등에 대해서도 훨씬 열린 시각으로 볼 수 있으리라. 당신이 슈퍼맨을 외계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단지 피부와 인종, 그리고 언어와 문화가 조금 다를 뿐인 지구상의 또 다른 인간을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고장원 SF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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