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등한 대구 주택시장 심상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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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거래 급감 평균매매가 크게 하락… 투기꾼 빠진 자리 서민들이 떠안게 될까 우려

대구 부동산 가격은 최근 5년 동안 65%나 뛰었다. 전국 최고 상승률이다. 대구 부동산 거래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거품 논란이 나왔다. 특히 일반 매매는 잘 없고 분양권 거래만 늘어나는 행태를 보였다. 전형적인 투기수요가 가격 거품을 키운 꼴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대구에서 최근 거래가 급감하며 가격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투기꾼들이 지갑만 채우고 빠져나간 자리는 전·월세 사는 서민들이 메워야 할 것으로 우려된다.

2011년 이래 대구의 아파트 가격은 해마다 10%대로 올랐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대구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66.9%를 기록해 지방 5대 광역시(평균 51.3%)보다 15%포인트 넘게 높았을 정도다. 2011년 이후 실거래가 기준으로 아파트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은 대구다. 다음이 제주, 광주, 울산, 경북 등지다. 대구 아파트 실거래가는 2011년 14.0%, 2012년 6.7%, 2013년에 16.3%, 2014년에 14.1% 상승했다. 2015년에는 10월까지 18.6%로 더 뛰었다. 2015년 10월 대구 아파트 실거래가격지수(2006년 100 기준)는 176.1을 기록했다. 또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주택대출 규제완화와 재건축 허용연한 완화 정책을 편 2014년 8월 이후 대구 아파트값은 제주 다음으로 많이 올랐다. 2011년부터 전국에서 가장 가파르게 상승하기 전만 해도 대구 주택가격은 2003년 이후 대체로 정체 또는 하락 흐름세를 보여 왔다.

앞서 2004~2008년 상당한 주택 공급이 있던 대구에서는 2005년부터 미분양 물량이 전국에서 경기에 이어 가장 많았으나 2011년부터 가파르게 줄었다. 그러나 2015년 공급물량은 2007년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크게 늘었다.

대구의 부동산 가격이 근래 들어 급등한 원인을 놓고 해석이 다소 엇갈린다. 일단 앞서 2008~2010년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에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가격이 올랐다는 해석이 있다. 또 혁신도시의 영향으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된 점도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는 견해도 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전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 지역이 가격 상승을 주도했다. 이 일대에 관공서가 들어서고 대대적인 아파트 단지가 조성됐다.

‘미분양의 무덤’이던 2010년 당시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는 입주 1년이 넘어도 빈집이 많았다. 최근 분양 물량이 급증하자 악몽을 떠올리는 이들도 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미분양의 무덤’이던 2010년 당시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는 입주 1년이 넘어도 빈집이 많았다. 최근 분양 물량이 급증하자 악몽을 떠올리는 이들도 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주택담보대출 5년 만에 90%나 급증
선대인경제연구소는 “대구는 1인당 지역 내 총생산이 1900만원 수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다”며 “주택가격이 최근 5년 사이에 급등한 것은 부채 증가를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구 주택담보대출은 2010년 말 13조1000억원에서 2015년 10월 24조9000억원으로 90%나 급증했다. 거래당 주택담보대출도 서울과 맞먹는다. 2010년 1월 대비 2015년 11월까지 예금취급기관 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을 살펴보면 제주 100%·경남 95%·경북 94%·대구 86% 등으로, 두 배 가까이 대출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은 제주가 167%, 경북 117%, 경남 115%, 대구 95% 등을 기록했다. 빚낸 돈의 힘으로 주택 가격이 끌어올려진 상황이다.

이는 수도권 주택시장이 침체를 겪는 동안 부산, 울산, 대전 등을 순회하며 주택 가격을 올려놓았던 건설·부동산업계와 투기세력들이 대구 주택시장을 적극 공략한 결과라는 풀이도 나왔다. 최근 전국적으로 비슷한데, 특히 대구는 매매가 얼어붙은 상태에서 분양시장의 청약은 과열된 양상을 보였다. 전형적인 투기 징후로 해석된다. 부동산정보업체 리얼투데이 집계를 보면 올 1월 대구지역 평균 청약경쟁률은 132.15대 1로 전국 최고였다. 2월도 22.4대 1로 선두다. 부동산114는 2014년 14대 1, 2013년 7대 1 등 예년에 1.9대 1~3대 1 수준이던 대구 청약경쟁률이 지난해 평균 56대 1로 급등했다고 계산했다. 선대인 소장은 “박근혜 정부 이후 지역 개발사업과 편승한 선심성 개발공약 및 규제완화 등이 어우러져서 혁신도시를 핑계로 투기판을 만들고, 빚내서 집을 사도록 부추겼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지난 연말부터 심상찮은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KB국민은행 집계를 보면 올해 1월 대구 아파트값은 전달에 비해 0.15% 떨어져 5년 6개월 만에 하락했다. 달성군 테크노폴리스 등 특정지역 위주로 공급물량이 많아 가격 조정을 받기 시작했다. KB국민은행의 주간 주택시장 동향자료를 보면, 대구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해 12월 말 이후 10주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올해 1월 대구지역 실거래 평균매매가는 1억9046만원으로, 지난해 1월 2억4742만원보다 23.0%나 줄었다. 전국에서도 가장 큰 폭 하락률이다. 거래량은 지난해 1월 4242건에서 올해 1월 2035건으로 52%나 급감했다. 아파트만 보더라도 올 2월 대구지역 거래량은 956건으로, 2006년 1월 428건 이래 1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1~2월을 더해도(2192건) 2007년 이래 가장 적다. 이는 지난해 5963건의 3분의 1에 그친다. 인근 경북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올해 1월 경북의 주택 매매거래량은 2615건으로, 지난해 1월(6628건)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물밑에서는 미분양이 늘고 있을 것으로 보여 올해부터 대구 주택 가격도 정점을 찍고 정체 또는 하락세로 반전할 가능성이 있다. 4·13 총선 후 4·5월에만 전국에 4만가구가 분양될 예정이어서 여파가 대구에도 미칠 수 있다.

이를 놓고 과열 이후 숨고르기인지, 거품이 빠지면서 침체로 돌아서는 신호인지에 대해 말들이 많다. 이미 공급과잉 우려가 나온 달성군에는 최근 마이너스 프리미엄까지 있는 아파트가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급등한 대구 주택시장 심상찮다

뒤늦게 나선 일반인들 ‘상투’ 위험
청약경쟁으로 분양가는 끌어올렸지만 뒤늦게 따라나선 일반인들은 자칫 ‘상투’를 잡을 위험이 있다. 부자동네인 수성구 일부 아파트는 3.3㎡당 2000만원을 호가한다. 특히 입주물량이 늘어나고 있어 다 소화하지 못하고 미분양이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됐다. 앞서 대구는 쏟아진 공급량을 감당하지 못해 2005년 3000가구를 시작으로 2008년 2만가구가 넘는 ‘미분양의 무덤’으로 불리며 아파트 가격 하락세가 이어졌다. 지난해 대구 미분양 아파트는 거의 사라졌다가 올해 1월 1806가구로 늘었다. 앞으로가 문제다. 2012년 4500가구대이던 입주물량이 지난해 1만5000가구에서 올해 2만6000가구, 내년에도 2만가구를 넘을 예정이다.

수도권에서 2월에 적용된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지방에서는 오는 5월에 처음 적용되는 점도 악재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지난해부터 입주단계에 공급 부담이 커진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청약경쟁률을 예년과 비교해보면 외지인의 투자 등 일정한 ‘가수요’가 가세한 것으로 보인다”며 “5월부터 시행되는 대출규제는 지방에선 처음이기 때문에 수도권보다 충격이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투기꾼들은 열매를 취하고 떠난 자리에 뒤따라간 지역 투자자나 전·월세 사는 서민들이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경실련 조광현 사무처장은 “박 대통령이 테크노폴리스 개발 등으로 택지 공급을 늘려 투기수요를 부채질했다”며 “전·월세 가격이 뛰어 서민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고 지적했다. 대구의 아파트 전셋값(2억1684만원)은 서울(3억9866만원)과 경기(2억3608만원) 다음으로 높다. 2010년 말부터 지난해까지 대구 아파트 전셋값은 매매가가 65.9% 오를 동안 91%나 뛰어 광역지자체 중 최고였다.

그러나 정부는 건설경기 부양과 취득세를 통한 세수 확보, 기존에 집주인들의 부동산 ‘장부가격’ 향상 효과, 총선을 앞둔 선심성 정책까지 맞물려 근본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당국자는 “지난해 대구 부동산시장이 좋았던 건 2009~11년 신규 아파트 공급이 부족했던 이유가 크다”며 “미국 금리인상과 금융위원회의 여신심사 강화에 따라 시장이 관망세로 돌아선 것으로 보여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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