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살 수 있게 화성 환경을 개조한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테라포밍은 화성처럼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을 아예 지구와 판박이처럼 통째로 환경을 바꿔놓는 대단위 개발사업이다. 아직 인류의 과학기술과 경제력으로는 화성의 테라포밍을 엄두 낼 처지가 못 되다보니 SF의 상상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과학자들이 이에 대해 아무 고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자국 우주비행사를 2030년대까지 화성에 보내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한 준비의 일환으로 2015년 NASA는 우주에서 승무원들이 장기간 편히 지낼 수 있는 인공거주시설을 짓고 그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한 예산을 미 의회로부터 승인받았다. 5500만 달러에 달하는 이 예산은 화성까지 편도로만 6개월 걸리는 본격적인 우주여행을 과연 인간이 육체적·정신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지,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이어야 할지 실증적인 데이터를 얻어내는 데 투여된다. 이 시설은 2018년 완공 예정이다.

예전부터 화성탐사에 공들여온 미국뿐 아니라 최근에는 유럽과 중국 그리고 인도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올 3월 중순 발사된 유럽의 두 번째 무인화성탐사선 ‘엑소마스’는 화성에 도착하면 궤도를 도는 본체 외에 미국처럼 착륙선도 내려 보낸다. 2003년 탐사 때와 달리 1회성이 아니다. 유럽우주국은 2018년 착륙선에 지하 5m까지 굴착할 수 있는 장비를 딸려 보내 생명체 탐사에 나설 계획이다. 이전 탐사기들은 지하 5cm까지밖에 흙을 파내지 못했으니 진일보한 시도가 될 것이다. 영화 <마션>을 보면 궁지에 몰린 NASA가 자기네 우주비행사를 구하려 중국 우주국의 도움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작가 앤디 위어의 이러한 가정이 아주 근거 없지만은 않다. 두 차례의 시험단계를 거쳐 2022년부터 우주정거장을 본격적으로 독자 운영할 작정인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의 화성탐사를 위한 유력한 공동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기술력과 자본력 모두 내세울 만해서다. 인도의 최근 행보도 인상적이다. 이미 1970년대에 인공위성을 발사한 우주 강국으로서 인도는 2013년 세계에서 네 번째로 화성 탐사선을 발사했는데, 주목할 점은 단번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미국 탐사선 예산의 불과 10분의 1로 같은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다.

화성의 테라포밍 공장

화성의 테라포밍 공장

유럽·중국·인도까지 화성 탐사 열올려
우주 선진국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궁극의 행선지로 화성을 꼽는 까닭은 무엇일까? 단순히 과학적 호기심 충족이나 미·소 냉전 시기처럼 국위선양의 목적만으로 최근의 화성탐사 붐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아직 화성에 인간이 단 한 명도 발을 디디지 못한 상황이라 현재로서는 화성탐사의 궁극적 결실을 단언하기 어려우나, 다음 두 가지 프로젝트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부분적인 답이 될지 모르겠다. 먼저 재활용 로켓으로 민간 주도 우주시대를 연 ‘스페이스X’ 창업주 앨런 머스크의 우주개발사업 최종 비전을 보자. 그는 궁극에 가서 21세기 말까지 화성에 100만명을 이주시키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네덜란드의 한 비영리기구가 주도하는 ‘마스 원 프로젝트’(Mars One Misson)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마스 원’의 최초 입안자인 벤처기업가 바스 란스도르프는 2027년까지 인류의 정주지를 화성에 세우겠다며 후보 모집에 나서 세계 각국으로부터 총 20만2568명의 지원자 중 100명을 선발했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는 현 기술로는 왕복이 불가능한 까닭에 일단 떠나면 되돌아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여 화제를 모았다.

위의 프로젝트들은 저마다 목표한 시기까지 과연 실현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화성에 가서 살아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시사한다. 설사 다시는 가족과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모래와 자갈투성이의 붉은 행성에서 여생을 마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SF에서는 핵전쟁이나 환경오염 혹은 감당할 수 없는 인구 폭증으로 인해 지구인들의 일부가 화성으로 옮겨간다는 식의 이주동기를 종종 부여한다. 하지만 지구촌 단위의 위기가 전혀 닥치지 않아도 20만2568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화성 이주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이 문제를 다분히 낭만적으로 바라본다는 인상을 준다. 현재의 화성은 인간이 살기에 부적당하다. 평균기압이 지구의 0.6%에 지나지 않으며 그나마 산소는 대기 속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가 95.9%나 되지만 공기밀도가 너무 희박해 온실효과를 일으키지 못하는 바람에 지표의 평균기온이 영하 60도이며 최저 영하 120도까지 떨어진다.

화성의 테라포밍, 이산화탄소 분출 공장 nomad 프로젝트

화성의 테라포밍, 이산화탄소 분출 공장 nomad 프로젝트

이는 화성으로의 이주가 설사 가능해진들 현재 과학기술로는 사람들이 좁아터진 인공 이글루 같은 곳에서 여생을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인류 최초의 이민자들이란 자부심으로 살아갈지 모르나 곧 자신들이 감옥 아닌 감옥에 갇힌 신세임을 절감하게 되리라. 탈옥은 꿈도 꿀 수 없다. 격벽 바깥이야말로 죽음의 세상이므로. 과연 이런 식의 삶을 승계할 후계자들이 지구에서 계속 공급될 수 있을까? 외부에서 인구가 꾸준히 유입되지 않는 한, 자식을 낳는다 해도 100명 남짓한 화성 공동체는 한두 세대 안에 고사하고 말 것이다.

화성 이주자 모집에 20만명 넘게 몰려
이러한 낭만적인 식민주의자들과는 달리 과학자들은 좀 더 구조적인 관점에서 화성의 식민이주를 고려한다. 당장은 과학탐사 이외의 명분을 찾기 어렵지만 정말 지구의 인구압이 아주 심각해지거나 또는 가치가 높은 자원이 화성에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음이 밝혀진다면 언젠가는 인간들이 화성에 대거 이주하고자 하는 수요가 생길지 모른다. 그 때가 되면 불편한 기압복을 입고 일하다 비좁은 이글루에서 잠시 쉬는 소규모 탐사대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생산성 높은 업무를 쾌적하게 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돔의 크기를 키운들 밀폐된 격벽 안에서의 삶은 한계가 뻔하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으로 일부 과학자들은 화성의 테라포밍(Mars Terraforming)을 제안한다. ‘테라포밍’은 문자 그대로 ‘대지를 만들어낸다’(Earth-shaping)는 의미로, 화성 같은 외계행성에서 인간이 지구에서처럼 우주복이나 산소마스크 없이 쾌적하게 살 수 있게 현지의 대기와 기온을 바꿔 인위적으로 동식물 생태계를 일구는 거시적인 행성 개조 프로젝트다.

화성의 테라포밍 순서 - 킴 스탠리 로빈슨의 [화성3부작]

화성의 테라포밍 순서 - 킴 스탠리 로빈슨의 [화성3부작]

행성공학(planetary engineering)이라고도 불리는 테라포밍은 과학뿐 아니라 SF에서도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다. 이 용어 자체는 미국 SF작가 잭 윌리엄슨(Jack Williamson)이 ‘어스타운딩 과학소설(Astounding Science Fiction)’ 1942년 7월호에 게재한 단편 <충돌궤도(Collision Orbit)>에 처음 등장했다.

한마디로 테라포밍은 화성처럼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을 아예 지구와 판박이처럼 통째로 환경을 바꿔놓는 대단위 개발사업이다. 예컨대 태초의 지구처럼 얼음과 유기물질을 다수 품은 혜성과 소행성들의 궤도를 바꿔 화성에 충돌시킨다면 바다와 대기를 단번에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실제로 지금으로부터 41억~37억년 전의 화성에는 큰 바다가 존재했는데, 지구처럼 얼음 투성이 혜성과 소행성들이 외부에서 다수 유입된 때문으로 보인다.) 아울러 혜성이나 소행성을 충돌시킬 때 충격의 크기와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면 화성의 회전축 경사각과 자전속도까지 변화를 줄 수 있다(크로노스케이프 지음, 김훈 옮김, , 비즈앤비즈, 2012년, 15쪽). 이렇게 외부 천체와의 충돌을 이용한 환경개조는 지각과 대기가 다시 안정될 때까지 오랜 조정기간을 필요로 한다는 단점이 있다. 대신 화성의 화산폭발을 유도하거나 땅속의 이산화탄소 배출 공장을 지상에 건설하고 일조량을 늘리기 위해 초거대 반사경을 궤도 상공에 띄우는 등 상대적으로 미세조정에 가까운 방식은 효과는 덜해도 비교적 단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당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아직 인류의 과학기술과 경제력으로는 화성의 테라포밍을 엄두 낼 처지가 못 되다 보니 SF의 상상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과학자들이 이에 대해 아무 고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진작부터 태양계 안에서 가장 유력한 테라포밍 후보는 화성과 금성이었다. 이 두 군데는 무엇보다 ‘생명거주가능지대’(Goldilocks Zone) 안에 들어 있는 데다 크기도 행성급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90기압의 무게로 내리누르고 지표온도가 섭씨 450도로 납도 녹아버리는 금성에 비하면, 화성의 테라포밍은 작업과정이 비교적 순조롭고 비용 대비 효과도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과학계는 화성의 기온을 높이고 대기성분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연구해 왔는데, NASA 소속 과학자들은 화성의 테라포밍을 5단계로 진행해야 한다고 본다.(표 참조)

테라포밍 완료 후 화성

테라포밍 완료 후 화성

저명한 천문학자로 과학 대중화에 앞장섰던 칼 세이건은 일찍이 1973년 ‘화성에서의 행성공학(Planetary Engineering on Mars)’이란 논문에서 쾌적한 화성 거주지 건설에 관한 구상을 선보였으며, 1998년 발족한 화성의 인간 정주를 촉진하기 위한 제반 홍보활동을 벌이는 비영리단체인 화성협회(Mars Society) 설립자 로버트 주브린(Robert Zubrin) 또한 테라포밍으로 화성에 인간을 영구 상주시키는 구상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화성의 대대적인 테라포밍은 소요되는 기간이 수백에서 수천 년에 달하므로 기존 사업방식에 익숙한 투자자들 입장에서 섣불리 엄두 낼 수 없다. 설사 이러한 난제가 해결되는 날이 온다 해도 무턱대고 외계환경과 그곳의 생태계를 지구와 무조건 빼닮게 뜯어고치는 짓이 온당한가에 관해서는 논란을 낳을 소지가 있다. 테라포밍이 애초의 개발 취지와 별개로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생태학적·윤리적 문제를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고장원의 사이언스 or 픽션]인간이 살 수 있게 화성 환경을 개조한다?

화성이 사상 최대 부동산 투기장 될 수도
SF에서는 한 발 앞서 이러한 걱정을 구체적으로 그린다. 프랭크 허벗(Frank Herbert)의 대하장편 연작 <듄(Dune Series); 1965~1985년>에서 모래투성이 행성 ‘아라키스’를 사람들이 살기 좋게 바꾼답시고 녹화(綠化) 사업을 진행하자 오히려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며 특산물인 스파이스의 생산량마저 급감하는 부작용이 초래된다. 스파이스는 모래사막 속에 사는 거대한 모래벌레가 뿜어내는 분비물인데, 녹화사업 탓에 모래벌레 개체 수가 격감한 것이다. 정소연의 단편 <가을바람>에서는 테라포밍된 행성의 정착민들이 노후화된 장비 탓에 기후조절이 예전 같지 않아도 그대로 방치한다. 기온 저하로 곡물생산량이 전보다 다소 감소했지만 주민들은 생전 처음으로 책에서만 접하던 가을을 진짜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박민규의 풍자우화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켰어요>는 화성의 테라포밍이 본격화되면서 이 행성이 사상 최대의 부동산 투기장으로 변모하는 양상을 희극적으로 그린다.

맨몸으로 살 수 없는 외계행성에 인류를 대거 정주시키려면 어느 정도의 테라포밍은 꽤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순리에는 어긋난다. 여름과 겨울이 있다면 봄과 가을도 있어야 하는 법 아닐까. <가을바람>의 농업행성 정착민들은 그곳에 투자한 자본가들과는 사뭇 다른 관점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고향을 바라본다. 주민들은 코앞의 곡물생산량 증대보다는 살아가는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제철 가을이 있는 행성. 비록 인공이 가미되었으되 어느 정도까지는 자연이 생태계 순환에 나름의 통제력을 발휘하는 세계….

화성을 비롯한 외계환경을 생명이 살 수 있는 풍요로운 세상으로 바꾸려 할 때 그 궁극의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생산량 증대인가, 아니면 지구 못지않은 삶의 질인가? 하물며 무분별하게 난개발된 신도시라 해도 그곳에 눌러앉은 주민들의 강력한 요구로 인해 일부 환경이 바뀌거나 개선되곤 한다. 신도시의 행성판 확장버전이라 해서 뭐가 다를까? 자연과 인류가 서로 한 발씩 양보하고 순응하는 세계라야 애초의 테라포밍 취지대로 그 세상이 인간에게 두고 두고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고장원 SF평론가>

고장원의 사이언스 or 픽션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