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 친위세력 보충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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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총선 낙하산 친박 공천자들 컷오프시키고 또 새로운 친박들로 물갈이

12명의 대구 지역구 의원 중에서 절반이 경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컷오프’됐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하고 ‘저승사자’로 돌아와 고향의 동료의원들에게 무자비하게 칼을 휘둘러댔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이종진 의원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불출마 대열에 합류했다.

박 대통령에게 ‘배신’의 아이콘으로 찍힌 유승민 의원의 공천 여부는 시간을 질질 끌고 있다. 낙천한 인사들이 유 의원을 중심으로 뭉치는 것을 막겠다는 여권 내부의 지공(遲攻)전략이다. 유 의원과 더불어 경선에 나선 3명의 의원 중에서도 사상자가 나올 경우, 대구에서만 10명 안팎의 현역의원이 낙천하게 된다. 무차별적인 공천학살이다. 대구의 유력 언론은 이를 ‘병신사화’(丙申士禍)라고 부른다.

새누리당이 2월 26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20대 총선 대구 지역 공천 신청자 면접을 했다. 이날 면접장에서 공관위 위원들이 예비후보들에게 질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새누리당이 2월 26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20대 총선 대구 지역 공천 신청자 면접을 했다. 이날 면접장에서 공관위 위원들이 예비후보들에게 질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친이계 주도한 2008년에도 친박 8명 당선
TK 물갈이는 사전예고됐다. 새누리당 공천은 처음부터 박 대통령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었다. 남은 2년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고 퇴임 후까지를 겨냥한 ‘친위세력’ 구축이 공천의 기본 룰이었다. 박 대통령에게 맞서거나 눈 밖에 난 유 의원과 비박계를 솎아내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됐다. 친위세력 구축에는 TK지역이 적격이었다. 대구는 지난 대선에서 80% 이상의 지지율로 박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다. 누구를 내세워도 당선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대구가 박 대통령 ‘개인 땅’으로 넘어간 것은 18대 총선 이후였다.

머지않은 과거로 돌아가 보자. 이재오-이방호 라인의 친이계가 주도한 2008년 공천에서 박 대통령은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며 친박계에 대한 학살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구에서는 단 2명이 잘렸고, 그만큼 친이계도 공천을 받지 못했다. 박 대통령을 비롯한 4명(유승민·주성영·서상기)의 친박이 재공천받았고 당시 중립 성향으로 분류된 이한구 의원도 살았다. 무소속과 친박연대로 나선 박종근·이해봉·홍사덕·조원진 의원까지 살아 돌아와 친박계가 8명을 차지하면서 대구 정치권을 장악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으로 전권을 행사한 19대 공천에서는 친이와 비박계가 ‘을’이었다. 당시 영남권 공천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최경환-권영세-현기환 라인이 주도했다. 공천 보복이 재연되자 ‘이재오-이방호-정종복’ 라인을 빗댄 ‘최재오-권방호-현종복’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이번에 컷오프된 김희국·권은희·홍지만·류성걸 의원과 불출마한 이종진 의원은 모두 4년 전 친박 측이 내리꽂은 ‘박근혜 키즈’였다. 당시에도 TK 공천은 원칙이나 명분 없는 무차별적 ‘돌려막기’가 횡행했다. 대표적인 예가 김희국·권은희 의원이다. 김 의원은 군위-의성-청송에 공천 신청을 했지만 탈락했다. 그 후 배영식 전 의원이 공천 배제된 중남구에 전략적으로 배치됐다. 권 의원도 돌려막기 공천의 수혜자다. 수성갑에 공천 신청을 했지만 경쟁력이 낮아 탈락했다가 주성영 전 의원이 불출마한 동구갑에 ‘여성 배려’ 몫으로 구제됐다. 그러나 권 의원의 지역구는 발표 당일 새벽 류성걸 의원과 맞교환됐다. 전형적인 돌려막기 공천이었다.

이번에 달성에 출사표를 던진 ‘진박’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뒤늦게 중남구로 출마지역을 바꾸고 달성에는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이 ‘진박 인증’을 받은 것과 판박이다.

박 대통령이 발탁한 대구지역 초선들이 유 의원 편에 선 것을 청와대로서는 두고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유 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될 때와 원내대표로 일할 때 지역의원들은 적극적으로 도울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지역정치권의 정서상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유 의원이 청와대와 몇 차례 각을 세우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남은 2년 동안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려면 대구 정치권을 충성도 기준으로 재편해야겠다는 것이 여권 핵심부의 복안이었다. 이 정부의 청와대와 내각에서 박 대통령을 ‘모신’ 지역 연고 인사들이 우선적으로 선발됐다. 나머지 ‘진박’ 후보는 지역에서 뽑았다. 정종섭 전 행자부 장관과 추 전 실장, 곽상도·윤두현 전 수석 등이 뽑혔고, 지역에서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과 이재만 전 동구청장 등도 합류시켰다.

유 의원은 이미 새누리당 공천의 태풍의 핵이 됐다. 그가 국회에 살아 돌아온다면 TK 좌장을 노리는 최경환 의원의 입지가 위축될 뿐만 아니라 TK는 박 대통령의 친위대 역할은 고사하고 유 의원을 중심으로 한 미래주자 쪽으로 급속도로 쏠릴 가능성도 있다.

‘유승민 죽이기’가 역효과 부를 수도
대구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대구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면서 무조건 투표성향이 고착화되다시피 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기류가 일고 있다.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모두 박 대통령의 말과 생각이 같은 ‘아바타’로 만들어서는 곤란하다는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낙천한 조해진 의원의 말처럼 “(새누리당이) 한 사람의 생각에 맞는 사람만 있는 정당이라면 그것은 공산주의 정당”이다.

대구지역의 이형락 정치평론가는 “청와대는 대구지역 국회의원을 공천만 주면 당선되는 임명직 국회의원 정도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지만 정작 그들을 당선시켜준 것은 대구시민”이라면서 “친박이 연이어 대구를 친위세력 보충대로 여기고 있지만, 그 바람에 대구 정치권은 난장판이자 아수라장이 되면서 무풍지대 부산에 비해 심한 정치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공천학살의 무대인 대구에서 이한구의 칼춤에 저항하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주호영 의원을 제외한 현역의원들은 무기력하게 낙천을 받아들였다. 그들 역시 정치적 지역기반 없이 어느 날 대구에 날아온 낙하산 공천의 수혜자였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그들이 낙천하더라도 무소속으로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을 친박 측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선택했다 버린 카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과하면 역풍이 일게 마련이다. 공천전쟁이 시작되던 초반, ‘실세’ 최경환 의원이 진박 후보들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잇따라 참석하면서 ‘진박 마케팅’에 나섰다. 그러나 그들의 입지가 강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역풍이 일어났다. 박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와 진박 마케팅이 조화가 되지 않는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지지율과 관계없는 막무가내식 이한구 위원장의 컷오프는 진박 후보 당선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선거의 여왕’이라고 하지만 박 대통령은 자신의 안방을 내준 적이 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당의 전국 지원유세 요청을 거부한 박 대통령은 지역구에 상주하면서 달성군수 선거에 매달렸다. 당의 공천장에 박 대통령의 지원까지 한몸에 받은 후보는 무소속 후보에게 낙선했다. 지역 민심과 동떨어진 후보를 공천한 것은 박 대통령이었다. 그때도 친박 측은 패인을 후보에게 돌렸다.

판박이는 또 다른 판박이를 낳는다. 공천갈등이 대구 민심을 건드리고 있다. 이번에도 대구시민들이 새누리당 후보를 무조건 지지해줄지는 알 수 없다. 때맞춰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에서 유승민 의원이 여권 주자로 부각되고 있다. 박 대통령 이후 ‘인물론’에 목말라 하는 지역정서는 유 의원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친박계의 ‘유승민 죽이기’ 공세가 오히려 유 의원을 대선주자로 키워내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유 의원이 생환하고 대구에서 야당의원이 20년 만에 당선되고, 진박 후보들의 성적표도 저조하다면 박 대통령의 레임덕은 급격하게 가속화될 것이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소장(전 매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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