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봄, 어떤 청춘들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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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페이지 ‘청춘씨: 발아’의 ‘이런 사람 뽑지 마라, 진짜’ 영상이 인기 끈 까닭은

번쩍. 천장에 설치된 플래시가 터졌다. <경향신문> 5층 스튜디오. 뭔가 달랐다. 자연스럽다. 어떤 포즈를 요구해도 ‘준비된 답’을 내놓는 것처럼 보인다. 미리 예상했다는 듯이. 시간을 맞추지 못해 함께 하지 못한 구현모씨(26·박스 인터뷰 참조) 대신, 스마트폰을 켜 구씨의 얼굴과 함께 하는 아이디어를 즉석해서 내놓는다. 이후 인터뷰도 그랬다. 헬조선을 사는 흙수저 이야기. 우울하고 칙칙한 이야기인데도 구김살이 안 느껴진다. 아직 풋풋한 20대 청춘이라서? ‘청춘씨:발아’. 26살 동갑내기 네 명 청년들이 만든 단체다.

기자는 1989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운수 좋게도 재수하지도 않고 그해 대학에 들어갔다. 온라인이라는 건 개념조차 없었다. 100% 오프라인이었다. 리포트는 대학 구내 문구점에서 파는 리포트 용지나 200자 원고지에 직접 손으로 써내는 게 보통이었다. 조금 사는 집이라면 전동타자기로 찍어냈다. 컴퓨터가 보급된 건 1990년 무렵이었다. 학교 터미널실에는 AT 컴퓨터와 하드디스크가 없어 5.25인치 플로피디스크를 번갈아 끼워 프로그램을 띄우는 XT 컴퓨터가 공존했다.

‘청춘씨:발아’의 말 중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바이럴, 유튜브 아카이빙과 임베딩, 동접(동시접속), 짤줍(인터넷에서 가져온 이미지)과 같은 단어는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페이스북이 없었다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진 않았을 것 같아요.” 박진영 청춘씨:발아 대표(26)의 말이다. ‘청춘씨:발아’는 SNS 페이스북에 개설되어 있는 페이지다. 왜 페이스북일까. 묻자마자 반사적으로 답이 나온다. “2030세대들이 지금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매체이니까요.”

프로젝트 모임 ‘청춘씨: 발아’의 멤버들. 왼쪽부터 박리세윤씨, 김혜지씨, 박진영 대표. / 이상훈 선임기자

프로젝트 모임 ‘청춘씨: 발아’의 멤버들. 왼쪽부터 박리세윤씨, 김혜지씨, 박진영 대표. / 이상훈 선임기자

왜 페이스북이었을까
‘청춘씨:발아’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해 8월. 핵심 멤버는 박진영, 구현모, 박리세윤, 김혜지 넷이다. ‘친해지고 보니’ 이들은 1991년생 동갑내기다. ‘청춘씨:발아 모임의 이름이나 담을 내용은 함께한 술자리에서 구체화되었다. 박 대표의 말이다. “시작은 ‘짤줍’이었어요. 발아하는 씨 사진. 왜 뉴스나 다큐 같은 델 보면 인터뷰 영상 하단에 실명과 나이, 직업을 밝히는 자막이 있잖아요? 싹 트는 사진에 이름은 씨하고 가로친 뒤 나이는 0세, 직업 대신 ‘발아하는 중’이라고 적힌 짤(사진)을 보고 각자 연상되는 것을 덧붙이는 식이었어요. ‘현실이라는 아스팔트를 뚫고 나가는 청춘이라는 씨’니 발아하자, 고 말하니 거기에 그럴 듯한 이야기가 덧붙여지는 형태였습니다. 의미는 한 4개 정도 있어요. 알다시피 ‘씨발’이 욕이잖아요. 친한 친구끼리 욕을 섞어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런 것도 있고 또 “??씨에게 바라(발아)는 것을 묻습니다”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기도 하고. 일종의 B급 정서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형식실험이 이 페이지를 통해 진행됐다.

3월 3일, ‘현모뉴스’라는 타이틀로 이들이 올린 ‘이런 사람 뽑지마라, 진짜’라는 20대 총선 바이럴 영상은 3월 18일 현재 공식 조회수만 90만8074회에 이른다. 공감 횟수는 1만1036회. 페이스북 관리 페이지에 들어가면 더 자세한 수치를 볼 수 있는데, 박 대표에 따르면 도달률은 300만명에 육박한다. 2014년 초 페이스북 측이 밝힌 대한민국 월 이용자 수가 1300만명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페이스북 사용자의 약 23% 정도, 전체 사용자 10명 중 2명은 이 영상을 본 셈이다. 이렇게까지 뜰지는 예상 못했다. “그날 오후 4시56분에 올리고 저녁 7시쯤 <시사인>의 고재열 기자가 공유하고, 다시 <한겨레신문> 페이스북 운영자가 공유했는데, 새벽 1시까지 100만 도달률을 기록했습니다. 공유는 다시 2~3일간 파급력을 유지했고요.” 3월 17일, JTBC 8시 뉴스 앵커브리핑에서 이 영상이 언급된 뒤 다시 확산되는 양상이다.

페북 사용자 10명 중 2명은 본 ‘현모뉴스’
그냥 대충 만든 영상처럼 보이지만 치밀한 기획이 들어가 있다(인터뷰 참조). 박 대표의 말. “뉴스라고 불릴 만한 건 없을 수 있지만 정보를 제공해주는 겁니다. 저널리즘과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해서 만든 말인데, ‘1인 저널테인’을 지향하고 있어요. 여기에 다른 광고나 영화 포맷 형식도 참고하고.” ‘현모뉴스’가 특히 벤치마킹한 영상은 내 손안의 남자친구, 줄여서 ‘내손남’이라는 페북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영상이다.

기자가 “본 적 없다”고 하니 스마트폰으로 바로 찾아 보여준다. 꽃미남쯤으로 말할 수 있는 남성이 스마트폰 화면에 여자 친구 대하듯 말을 건다. ‘자기야, 어디 갈까’는 식으로. “가만히 보면 스마트폰 카메라에 눈을 맞추는 것부터 세밀하게 실험하고 정답을 찾은 경우에요.” 박리세윤씨의 말이다. 현모뉴스는 ‘내손남’처럼 이성친구라는 설정은 아닌 것 같아 ‘과 동기가 개강날 개강파티를 하고 돌아가는 길’이라는 설정에 맞춰 찍었다.

이른바 ‘포텐 터지는(주목을 받고 히트를 치는)’ 공식이 따로 있진 않다. 바이럴에 성공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들이 속해 있던 대안언론 미스핏츠(misfits.kr)는 지난 2014년 12월, ‘협박편지(TO 최씨 아저씨)’라는 글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를 지목해 비판하는 글이었다. 모두 다 온라인, SNS를 말할 때 이들이 채택한 형식은 ‘대자보에 손글씨’라는 고전적(?) 방식이었다. ‘청춘씨:발아’의 4명은 미스핏츠의 활동을 통해 만났다. 다시 박진영 대표의 말이다. “미스핏츠는 언론사 등록도 했고, 그래도 조직이고 엄연한 언론사예요. 실험해보고 싶은 것이 많은데 그럴 경우 그 조직에서 해가 될 수 있어 ‘청춘씨:발아’는 미스핏츠 밖에서 만들어본 일종의 프로젝트 팀입니다.”

다양한 형식실험 중에서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앞의 현모뉴스와 같은 1인 뉴스포맷이다. 헬조선, 흙수저, 청년일자리, 주거 문제 이외에도 비정규직, 비4년제 대학, 고졸의 삶과 같이 ‘주류에서 배제되어 잘 안들리는 목소리에 마이크를 쥐어주는 것’을 미션으로 하고 있다. “최저시급이나 주휴수당과 같은 이슈를 찾아보면 누군가 이미 말한 것이긴 해요.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가 광범위하게 전달되지는 않을까. 그런 것을 깨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제가 대학생·수도권에 집중되는데 지역청년·비수도권, 20대 비정규직도 만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역청년, 특히 부산·울산·경남은 이전부터 인연이 있던 ‘1인 저널리스트’ 하인혜씨 등이 지역에서 일주일에 한두 개씩 인터뷰를 해서 보내주면 편집해 ‘청춘씨:발아’를 통해 내보내고 있다.

20대 총선과 청년의 ‘목소리’
“기획은 다 각자 하지만 잘하는 분야는 각자 다르다”고 김혜지씨는 덧붙였다. 박리세윤씨는 게임전문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그래픽 툴을 배우고 바로 사회에 나온 경우다. 충무로의 디자인 인쇄단지에서 일하면서도 대안언론에 관심이 많아 ‘슬로우뉴스’ 활동에 결합해 활동했고, 2012년도에 군대를 갔다 2014년 제대하고 다시 결합했다. 박리세윤씨의 말이다. “대안언론 활동을 하면서 근로계약서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쪽 업계가 법정근로시간을 넘어 야근이 일상 다반사로 벌어지는 곳인데, 근로계약서를 안 쓰는 경우가 태반이거든요. 정의당이 이번 총선에서 ‘다섯 시 퇴근제’를 주장했는데, 사실 그건 업종 특성에 따라 모든 산업에 다 적용될 수 있는 룰은 아니거든요. ‘청춘씨’ 활동을 통해 그런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김혜지씨는 서울로 유학이나 취업하러 온 지역 출신 20대가 겪는 처지, 특히 청년주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김씨 자신이 대구에서 올라왔기 때문이다. 박씨와 김씨를 공통으로 묶는 키워드는 대학언론이다. 박 대표는 연세대학교의 연세춘추 편집장을 역임했다. ‘미스핏츠’를 만들 때 학보사 한 기수 선배와의 인연이 작용했다. 김혜지씨도 성균관대 학생들이 만든 대안언론 ‘고급찌라시’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결국 이들이 공유하는 관심사는 언론이다. 박 대표는 “그렇다고 우리가 기존의 저널리즘을 하는 것 같진 않다”며 “모바일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말한다. 기존 언론사에서는 할 수 없는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기성 언론사와 ‘청춘씨:발아’의 관계도 “업체 대 업체의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개인적으로 분노한 것은 인턴도 일종의 취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인턴을 받는 쪽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죠. 디지털이 중요하다고 하니 SNS 운영에 필요한 인력을 인턴으로 뽑습니다. 정식으로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왜? 돈쓰기 싫으니까. 스펙에 한 줄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간 청년들의 마음을 악용하는 것이죠. 제대로 교육은 시키지 않으면서 부려먹기만 하는.”

이들의 활동에서 딱히 수익모델은 아직까지 없다. 박 대표는 “기존의 출판사나 언론계가 모바일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했으니, 예능이나 뷰티, 패션, 성인, 게임 분야처럼 시사정보를 알려주는 것도 콘텐츠를 만들어가면서 시스템을 구축해 지속가능하게 만들어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기존의 시민운동이나 청년운동에서 미디어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그는 덧붙였다. “찾아보니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앞서 저희가 다루려고 하는 문제들, 노동, 신용, 주거 문제에 대해 풀어쓴 <청춘이 사는 법>이라는 책을 냈었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텍스트를 넘어 다른 콘텐츠로는 재생산이 안 되는 거예요. 이런 데서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것도 있을 텐데 아직까지 협업모델은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청년이라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 가난과 연관지어지면서 추상적이고 모호한 집단으로 인식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청년하면 자동적으로 흙수저, 헬조선 이런 식으로밖에 연결이 안 되니 답답해요.”

인터뷰 다음날, 지난 2월 청년 실업률이 12.5%로 ‘통계수치가 작성된 이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뉴스가 각 언론 1면을 장식했다. 3월 26일, 청년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청년 2000여명이 신촌에서 국회 앞까지 행진한 뒤 ‘국회 점령 퍼포먼스’를 벌일 계획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여야 정당들은 앞다퉈 ‘청년 일자리 70만개 창출(더민주당)’과 같은 청년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청년들의 목소리는 이번 총선 결과에 반영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변화의 싹은 트고 있다. 2016년 봄, ‘어떤 청년들’의 실험과 활동, 그들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다.

‘총선에서 이런 사람 뽑지 마라’ 현모뉴스 주인공 ‘청춘씨:발아’ 구현모씨 “영상 잘 팔려 좋지만 SNS 여론이 실제와는 괴리”

‘현모뉴스’ ‘총선에서 이런 사람 뽑지 마라’ 주인공 구현모씨. / 청춘씨: 발아

‘현모뉴스’ ‘총선에서 이런 사람 뽑지 마라’ 주인공 구현모씨. / 청춘씨: 발아

‘청춘씨:발아’ 박진영 대표에게 들으니 나름의 기획의도를 갖고 찍은 영상이라고 하던데.
“기획이라고 딱히 규정 짓지는 않는데, 페이스북에 메모 형식으로 자주 글을 남긴다. 그 단상을 바탕으로 구어체로 스크립트를 만들긴 했다. 사실 대부분 애드립이었다. 스크립트 그대로 간 것은 세 가지 이슈뿐이었다.”

그 세가지 이슈에 대한 반론도 있다. 이번 총선에서 뽑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대통령이나 당 대표와 친분을 과시하는 후보, 지역의 아들딸이라며 연고를 강조하는 후보, 지역구 공약만 가득 내놓은 사람을 꼽았는데, 사실 이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일반화된 선거운동 방식 아닌가.
“그게 잘못된 것 아닌가. 대통령 임기는 2년 후에는 끝나는 거고, 지역 민원을 담는다는 건 지역 구의원이나 도의원. 구청장이 하면 되는 것이지. 의문이 들었던 것은 국회의원은 국정을 논해야지 지역구 이야기할 것이 아니지 않나.”

그건 사실상 소선구제 승자 독식을 규정한 87년체제의 한계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제도상의 문제는 있다. 그리고 민도라고 하지 않나. 유권자도 지역구 공역을 안 내면 안 뽑아주니. 유권자를 바꾸는 것보다는 국회의원 후보를 바꾸는게 쉽다고 생각해 그렇게 주장했다.”

‘현모뉴스’가 페이스북에서 인기영상이 되었다. 영상의 주장이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영상이 잘 팔린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SNS 여론이 실제와는 괴리가 있다. 정말 영향을 준다면 진짜 광화문까지 삼보일배하는 퍼포먼스도 할 수 있다. 온라인 여론이 힘을 썼다면 2012년 대선이나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그런 결과를 얻었을까.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책상을 한 번 내리치는 게 더 영향을 미치는데…”

이번 총선과 관련, ‘현모뉴스’는 또 제작하나.
“사실 그날 찍은 것이 3개다. 총선 말고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영상도 있었다. 그런데 총선 영상이 갑자기 터지면서 지켜보다가 시기가 지나 2개는 날렸다. 앞으로 만들 영상은 생각해 둔 게 있다. 하나는 요즘 캐나다의 젊은 총리 트뤼도 이야기다. 트뤼도 트뤼도 하는데 ‘한국에서 트뤼도가 나올 수 없는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이다. 또 신문에 보면 석패율제라든지 소선구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걸 간단한 비유를 들어 쉽게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고 싶다.”

가벼운 질문을 하자. 실제 나이(26세)보다 어려 보인다, 급식충(고등학생)의 콘셉트질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잘생겼다는 사람도 있는데 다른 페북 글을 보니 여자친구는 없다고….
“정말 없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요의 줄임말)이다. 잘생기지 않았다. 카메라빨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오프에 안 나가려고 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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