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삶의 비명 진지하게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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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에 도전하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정의당 조성주·녹색당 이계삼 3인의 방담

2014년 지방선거 투표율과 2012년 총선 투표율 가운데 어느 쪽이 높을까? 18대 대선을 앞두고 진보·보수가 결집했던 19대 총선 투표율이 아무래도 높지 않을까. 그러나 예상은 틀렸다. 56.8% 대 54.2%. 2014년 지방선거 투표율이 더 높았다. 1995년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2006년 이후 지방선거 투표율은 계속 상승세다. 이유가 뭘까. 조성주 정의당 예비후보의 말이다. “지방자치제도가 안착화되면서 시장이 바뀌니까 무상급식도 되고 비정규직도 정규직화되는 등 변화가 있었다. 논란도 있지만 어쨌든 시장이 바뀌면 지방정부가 바뀌고, 그 변화를 체감하니까 투표에 대한 욕구들이 생긴 것이다.” 한마디로 ‘정치 효능감’이다. 정치 효능감은 유권자가 정치에 참여해서 얻는 만족감을 뜻한다. 정치에 참여하여 자신이 의도한 바를 관철시킬 수 있다고 느낄 때 정치 효능감은 높아진다. 그렇다면 곧 막을 내리는 19대 국회에서 유권자들은 높은 정치 효능감을 느꼈을까? 이계삼 녹색당 비례대표의 말이다. “국회의원은 정치 자영업자라고 표현했다. 국회가 시민사회와 노동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국가·행정·법체계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그저 한 명 한 명 자영업자로 생존하고, 별 타격이 없으면 아무일을 하지 않는 틀 안에 놓여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만큼 20대 국회는 유권자들의 정치 효능감을 높여주는 국회가 됐으면 하는 게 이 비례대표의 생각이다.

거리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뛰어다녔던 박주민 변호사, 2세대 진보정치를 외치며 당대표 선거에 도전했던 조성주 정의당 예비후보,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의 최전선에 있었던 이계삼 녹색당 후보가 20대 국회에 도전하는 목적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의원 몇 사람 바뀐다고 국회가 바뀔까? “국회의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박주민 변호사가 말했다. “어떤 법안을 적극적으로 미는 국회의원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진다. ‘네 알겠습니다. 살펴봐 드리죠’ 하는 것과 한 명이 집요하게 동료의원들을 찾아다니고 대표에게 보고하고 들러붙으면 확실히 다르다.” 3월 3일 ‘확실히 다른’ 20대 국회에 도전하는 박주민 변호사(더불어민주당), 조성주 정의당 예비후보, 이계삼 녹색당 후보를 만났다.

“시민들에 대한 국회의 민감도가 높아져야 한다.“_박주민

“시민들에 대한 국회의 민감도가 높아져야 한다.“_박주민

박주민 변호사와 이계삼 후보는 20대 총선을 계기로 정치에 첫발을 내디뎠다. 계기가 있다면.

박주민 “밖에 있어 보면 안다. 현장의 목소리가 국회에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비명과 곡소리가 나도 정치영역에서는 잠깐 반짝하다 사라진다. 지난 2년 동안 세월호 문제를 풀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많이 만났다. 국회의원들이 대놓고 말하더라. ‘여기 있어 보면 수많은 이야기들이 왔다가 흘러간다. 오래 머물지 않는다. 세월호도 지금은 마치 굉장한 일인 것 같지만 3~4개월 있으면 또 지나갈 것이다. 국회라는 곳이 그렇다.’ 삶의 현장에서 나오는 비명이 전달되기 어렵고, 정말 어렵게 전달되어도 일회성에 그치거나 여러 많은 일 중 하나에 불과하게 된다. 이게 바뀌어야 한다. 진지하게 고민해서 이런 일들이 재발 안 되도록 제도나 법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런 식으로 국회가 일을 했으면 좋겠다. 이미지로 정치하는 게 아니라 진중하게 하나 하나 고민을 해가면서 말이다. 현장 목소리를 많이 들었고, 절실함은 아니까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계삼 “할머니들이 4800번의 밤을 지새도 5분 걸리는 상임위에 안건 하나 올리기 어렵다. 2014년 6월 10일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이 있었다.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2013년 8월부터 네 군데에 움막을 짓고 행정대집행에 반대하는 숙박농성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매일 밤 네다섯 분씩 당번을 섰다. 숙박농성을 조금 늦게 시작한 곳도 있으니 평균 8개월 동안 숙박농성을 했다고 한다면 약 4800번의 농성의 밤이 있었던 셈이다. 상임위인 산업통상위원회에 할머니들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고, 제발 6월 10일 행정대집행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데가 국회 산통위였으니까. 국회를 숱하게 다니며 읍소를 했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4800번의 움막농성의 밤이라는 시간 값이 국회 상임위의 5분과 등치되지 않더라. 국회에 직접 들어가서 싸워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성주 “17·18대 때 국회에서 보좌진을 했다. 정작 일할 때는 정치가 누구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가를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했다. 큰 이슈가 터지면 그대로 쫓아갔다. 국회 밖으로 나오니까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가 절실해졌다. 왜 이 목소리들이 국회 안으로 안 들어갈까? 왜 이 많은 사람들의 요구가 국회에 반영되지 않는 걸까? 나는 국회 안에 있을 때 뭘 했던 걸까? 이런 절박한 물음이 쏟아졌다. 답을 못하겠더라. 진보정당운동 10년을 했는데도. 사람 만나고 공부도 하고 관련 책도 읽고 그랬다. 지금 한국 정치는 다들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다. 정치인은 많은데 정치가가 없다. 유권자를 대표하고 정치관과 민주주의관을 공유하는 정치인은 많은데, 정치가는 없다. 개별 연예인 같은 존재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국회 안으로 유입될 틀이 없는 것이다.”

“절반이 가입되지 않는 고용보험 개정하고 싶다“_조성주

“절반이 가입되지 않는 고용보험 개정하고 싶다“_조성주

삶의 현장과 정치가 왜 이렇게 괴리됐을까.

박주민 “19대 국회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내걸었다.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국회라는 공간은 별도로 떨어져 있는 공간 같은 느낌이다. 현장의 비명은 안 들리고, 그저 이걸 어떻게 쌈박하고 멋있는 문구로 만들까 하는 고민에 치중돼 있다. 시민과 국회가 밀접하게 연결되고 시민들에 대한 국회의 민감도가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에 이계삼 후보님이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는데, 국회가 항상 열려 있어야 하고 그 문으로 시민들이 드나들고 국회의원들은 그 문이 닫혀 있지 않도록 문에 버티고 서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 사고에 기반한 정치가 있어야 한다.”

이계삼 “사실 이번에 필리버스터가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것 아닌가 싶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천권을 쥐고 필리버스터를 중단한 것은 대단히 실망스럽다. 필리버스터를 보면서 19대 국회가 끝물에 가서야 그래도 민주주의를 한 번 하는구나 생각했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스피치, 즉 말이다. 아주 이상적으로 보자면 국회는 이번 필리버스터 정국처럼 24시간 그런 공간이어야 한다. 말들의 경연을 통해서 시시비비와 가치와 지향들이 각자의 자리를 잡는 것이다. 갈등이 날것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갈등, 말, 혼란, 이 자체가 민주주의다. 이거 때문에 나라가 망한 적은 없다. 물론 정치일정이 있고 마무리가 분명히 필요하지만 테러방지법의 수정 혹은 폐기를 제안해 제2막의 논란을 기대해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거대여당과 거대야당이 약속이나 한 듯 본능적인 교감에 의해서 정리를 해버렸고, 그렇게 된 상황이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볼 때는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조성주 “필리버스터의 마무리가 어쨌든 성과는 분명히 평가해줘야 한다. 국회가 뭐하는 곳이고 국회의원들이 무엇을 두고 싸우고 무엇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지 보여준 게 지난 10년 이래 처음인 것 아닌가 싶다. 법안 하나 두고 190시간 넘게 이어진 토론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장면을 보여줬다. 중요한 건 잘 지는 것인데, 질서 있는 퇴각을 하지 못했다. 선거 이야기를 꺼낸 것은 마무리를 잘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여당이 승자일까? 전혀 아니다. 새누리당은 지난번 국회법 개정 문제로 유승민 원내대표를 찍어낸 시점부터 지금까지 사실상 정당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새누리당은 청와대 법제실이다. 여당 국회의원들도 상당히 굴욕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여당이라는 민주주의의 한 축을 박근혜 대통령이 무너뜨린 건데, 나중에 굉장히 큰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한국 사회도 핵발전에 큰 브레이크 걸 때가 됐다“_이계삼

“한국 사회도 핵발전에 큰 브레이크 걸 때가 됐다“_이계삼

‘새누리당 180석 압승’을 이야기하고 있다. 헬조선, 흙수저 등이 공감대를 얻는 것은 역설적으로 진보에 대한 욕구를 반영한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이 새누리당에 표를 주는 이유는 뭘까.

조성주 “민주화 이후 총선 투표율은 하락하는 추세인데 지방선거 투표율은 상승하고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안착화되면서 시장이 바뀌니까 무상급식도 되고 비정규직도 정규직화되는 등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를 체감하니까 투표에 대한 욕구들이 생긴 것이다. 19대 총선은 진보·보수가 최대한 세 결집을 한 선거였다. 그런데 2014년 지방선거 투표율보다 낮다. 야권이 착각하는 게 심판론이 유권자들에게 큰 결집과 효능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야권이 ‘헬조선’ ‘흙수저’에 절망하는 욕구와 불만을 조직하기보다는 상대방이 나쁘다는 ‘고자질 정치’에 집중해 왔다. 여기서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계삼 “김대중·노무현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야 한다. 진영논리를 주고받는 틀 안에서는 체감할 수 있는 정치의 일상성을 확보해낼 수가 없다. 사실 20대 총선 투표율이 걱정된다. 세월호 참사가 분기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마저도 우리 정치가 참사에 아주 기본적인 진상과 책임자 처벌, 사회안전망과 기본적 질서를 구축하는 일을 못해낸다면 사람들은 국가라는 존재, 정치라는 존재를 아예 지워버릴 수 있겠구나 하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박주민 “불만들을 조직화해야 한다. 정치가 원래 그런 것이다. 이계삼 후보님이나 조성주 후보님,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것은 거의 비슷하다. 이런 제도를 만들면 된다. 이런 것을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모인다. 그렇게 모아서 무언가를 해보려고 했을 때 표가 모자라다고 하면 힘을 더 실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 없이 표를 달라는 말만 하면 지금의 틀을 깨기가 어렵다.”

조성주 정의당 후보, 이계삼 녹색당 후보, 더불어민주당의 박주민 변호사(왼쪽부터)가 방담을 하기 위해 만나 정동길을 함께 걷고 있다.

조성주 정의당 후보, 이계삼 녹색당 후보, 더불어민주당의 박주민 변호사(왼쪽부터)가 방담을 하기 위해 만나 정동길을 함께 걷고 있다.

20대 국회에 들어간다면 해결하고 싶은 한국 사회의 과제는 무엇인가.
박주민
“세월호 특조위가 6월이면 임기가 끝난다. 여당은 적대적이고 야당은 무관심하다. 당 관계자 한 분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만약 내가 당선이 되면 당으로서는 세월호를 다시 시작한다는 부분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문제는 당 입장에서는 정리돼가야 하는 과제일 수 있다. 많은 정치인들에게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법안을 적극적으로 미는 국회의원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네 알겠습니다. 살펴봐 드리죠’라고 하는 것과 한 명이 미친 척하고 동료의원들 쫓아다니고 대표에게 보고하면 상황은 확실히 다르다. 과거 한나라당이 야간집회 시간을 10시로 제안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했다. 당시 백원우 전 의원이 침낭에서 자면서 동료의원들을 설득하고 다니니까 결국 막아지더라. 국회의원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은 많고, 결국 정당도 표와 대중의 지지를 먹고사는 조직이다. 시민사회에서 요구하는 의제를 갖고 이를 진짜 열심히 하는 의원이라면 시민들이 지지를 보내줄 것이고, 정당도 그 의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계삼 “탈핵·재생가능한 에너지에 주력할 것이다. 녹색당이 이상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이상주의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일본과 독일은 재생가능한 에너지 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법제가 이미 마련됐다. 한국 사회에서도 핵발전에 큰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또한 환경이슈와 노동이슈는 별개가 아니다. 맞닿아 있다. 심야노동 하나만 놓고 봐도 핵발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핵발전소를 껐다 켜는 것보다 24시간 가동하는 것이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에 핵발전소가 24시간 돌아가고 값싼 심야전기요금으로 심야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성주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구멍은 실업안전망이라고 생각한다. 취업자의 절반이 가입되지 않은 고용보험이 실업안전망이 될 수 없다. 고용보험 개정을 가장 하고 싶다. 입법부의 한 사람으로 꼭 하고 싶은 것은 예산편성권을 국회로 가져오는 것이다. 행정부가 예산편성권을 독점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사실상 행정독재를 제도적으로 묵인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짜놓은 예산에 지역구 민원 쪽지 예산만 반영하는 수준이다. 국회는 예산에 대한 권한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건 여야 막론하고 국회가 제기해야 할 문제다.”

<진행·정리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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