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행정의 표본 ‘NCS교육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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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는 국가직무능력표준… 전문대 교수들 ‘울화통’

“이 제도, 정말 말이 안 된다. 벌써 3년째다. 교수들에게 물어보라. 장담하건대 직접 겪은 교수라면 10명 중 9명은 반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디서도 말이 안 나온다. 왜? 이름을 걸고 문제제기하면 찍히니까. 한 번 캐봐라. 뭔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박근혜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누군가 특혜를 받는 사람이 없다면 이렇게까지 할까. 교수들이 사석에서 모이면 다 이 이야기를 한다.”

스펙보다 능력? 현장에선 ‘울며 겨자먹기’
한 전문대 ㄱ교수의 하소연이다. 그가 말하는 그 ‘제도’란 무엇일까. NCS(National Competency Standard), 국가직무능력표준이다. 이 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석에서 NCS를 말할 때 국가직무능력표준이 아니라 ‘니x씨x새x’라는 욕설의 약칭이라는 교수도 있다.”

3월, 신학기를 앞두고 각 전문대 교수들 사이에서는 일대 혼란이 ‘소리 없이’ 벌어졌다. ‘NCS 교육과정을 적용한 강의계획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NCS 교육과정을 적용한 수업계획서는 종전의 수업계획서와는 딴판이다. 모든 강의 내용을 국가능력표준 사이트(ncs.go.kr)에 제시되어 있는 ‘NCS 능력단위’를 활용해 작성해야 한다. 사이트에 들어가면 총 24개 대분류에 80개 중분류, 238개 소분류, 887개 세분류 등 4분류로 나뉘어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이번 학기에 가르치는 과목이 ‘지역사회분석’이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 ‘07사회복지·종교’라는 대분류를 선택한 다음 ‘01. 사회복지’라는 중분류, 다시 ‘01. 사회복지정책’이라는 소분류를 찾아 다시 ‘01.사회복지개발’을 클릭하면 비로소 ‘능력단위’라는 이름으로 지역사회분석이라는 항목이 나타난다. 또다시 이 능력단위는 ‘환경분석’, NCS 학습모듈, 그리고 평생경력 개발경로, 훈련기준(시안), 출제기준(시안)으로 나뉘어 있다. ‘NCS를 적용한 강의계획서’는 이 직무능력표준에 따라 작성해야 한다. 계획서는 능력단위를 기준으로 ‘이 강의를 들은 학생은 무엇 무엇을 할 수 있다’는 형식으로 써야 한다.

작성해야 하는 교과목 명세서도 복잡하다. 직무명과 이 사이트에서 찾아낸 능력단위와 능력단위 코드에 교수 학습방법, 평가방법도 주어진 분류체계 내에서 써야 한다. 여기에 다시 그 수업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관련한 ‘능력단위 요소’를 ‘지식, 기술, 태도’로 분류해 재기술해야 한다.

2014년 11월 20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능력중심사회 구현을 위한 ‘2014 국가직무능력표준(NCS) 박람회’에 참여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에서 네번째)이 특성화 대학 부스를 방문해 학교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고용노동부

2014년 11월 20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능력중심사회 구현을 위한 ‘2014 국가직무능력표준(NCS) 박람회’에 참여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에서 네번째)이 특성화 대학 부스를 방문해 학교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고용노동부

NCS에 대한 교수들의 ‘불만’은 쉽게 확인된다. 기자는 전국교수노조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교수들에게 문의했다. 다음은 ㄴ교수의 말이다. “찬성하시는 사람들은 능력중심사회를 만들기 위해 NCS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무엇보다도 NCS를 적용하는 게 곧 능력이냐는 것이다. 대학교육의 특성은 무엇보다도 다양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획일적으로 기준을 정해 놓고 그것을 따라오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 ㄷ교수는 “‘눈 가리고 아웅’이 맞다. 현장에서는 써먹지도 않는 NCS를 과목에 억지로 때려 맞추기를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만드는 쪽에서도 다 안다. NCS 관련 설명회에 가면 주최 측에서 나온 사람도 다 양해를 구하며 하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소리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 지금은 돈을 받는 것이 우선이니까”라고 말했다.

“NCS는 박근혜 정부판 4대강 사업?”
돈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교육부는 2014년, 5년에 걸쳐 약 1조5000억원의 정부 예산이 투여되는 특성화 대학 사업에 전국 77개 대학교를 선정했다. 특성화 대학 사업으로 선정된 학교는 NCS 교육과정을 도입하도록 했다. 계속되는 ㄷ교수의 말이다. “말하자면 ‘울며 겨자먹기’다. 433개 대학 중 전문대 수가 139개인데, 특성화 대학에 지정되지 않는 순간 사실상 끝이다. 순응이라는 표현은 그렇지만 길들여지는 거다. NCS 교육과정을 선도한다는 대학들을 보면 NCS 센터장이 있는데, 이 분들 말씀이 이렇다. ‘교수님 이거 안 하면 우리 대학은 부실대학으로 찍혀 죽습니다.’”

ㄱ교수는 NCS 교육과정과 평가방법이 왜 말이 안 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NCS 사이트에 들어가 능력단위를 적용시키라고 해서 다운받아 검토해 보니 말이 안 된다. 예를 들어 ‘전기기기 제작’을 보자. 세분류로 설계·제작·유지보수를 순차적으로 가르치게 되어 있는데, 이게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다. 설계는 공학에서 최고 고수가 하는 거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1. 하늘 날기’, ‘2. 바다를 헤엄쳐 건너갈 수 있다.’, ‘3. 걸을 수가 있다’와 같은 순서로 되어 있는 걸 거꾸로 하라는 말이다.” 관련 학습모듈 내용의 ‘퀄리티’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계속된 ㄱ교수의 말. “NCS를 하면 좋다고 하지만 솔직히 그들만의 리그다. 모듈이라는 게 사실상 교재인데, 사실 저작권 검토라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 든다. 인터넷 검색만 하면 금방 보이는 자료를 짜깁기해서 만들어놓은 수준이다. 도대체 이런 수준의 교재를 누가 썼을까 해서 찾아 보니 집필진 6명 명단이 나오는데, 폴리텍 교수와 공고, 마이스터 선생님들, 그 다음에 기업체 대표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정말 그 고등학교 선생님들이나 기업체 대표들이 집필에 참여했을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분들 실력이 낮춰 봐서하는 말이 아니다. 잘못된 체계의 문제다. 나는 ‘그들만의 리그’라고 본다. ‘우리가 모범답안이니 따라해’라고 해놓고 반발하면 ‘다 학생들 교육 잘하자고 하는 것인데’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NCS 사이트에서 NCS의 능력단위 등의 개발자가 적절했는지 여부에 대해 검토해봤다. ‘납득이 되지 않는 케이스’는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문화예술 카테고리에서 다시 문화예술경영(중분류), 문화예술기획(세분류)의 능력단위 대부분, 예컨대 기획·작품선정·실행·사후관리 등은 한국전파진흥협회라는 사단법인이 개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협회의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는 단체의 설립 목적을 보면 ‘전파법 66조 2에 의거해 만들어진 특수법인으로 전파자원의 효율적인 이용을 도모하고 전파환경의 변화에 대처하며, 전파 관련 업체의 상호협력과 유대 강화…’와 같이 기술되어 있다. 어디를 봐도 문화예술과 관련한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ㄴ교수는 “NCS는 ‘박근혜 정부판 4대강 사업’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왜 NCS인가. 황우여 전 교육부 장관 시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NCS는 잘되어 가냐’고 말을 꺼내더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학벌 위주 사회가 되어 있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현장에서 필요한 직무기술이 괴리되어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은 한두 해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유독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부터 마치 군사작전하듯이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이 왜 비판을 받았나. 대운하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성과 또는 치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임기 내 완수로 밀어붙인 것이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취임 1년을 맞이하여 발표한 담화문 중 NCS 언급 대목을 부각하여 편집해 국가직무능력표준 웹사이트(ncs.go.kr)에 올려진 홍보 동영상. / 국가직무능력표준 웹사이트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취임 1년을 맞이하여 발표한 담화문 중 NCS 언급 대목을 부각하여 편집해 국가직무능력표준 웹사이트(ncs.go.kr)에 올려진 홍보 동영상. / 국가직무능력표준 웹사이트

왜 박근혜 정부는 NCS에 집착할까
ㄷ교수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은 사석에서만 논의하는 수준이지만 아마도 내년도 하반기쯤 되면 많은 이야기가 튀어 나올 걸로 본다. NCS의 전망? 박근혜 정부가 끝나도 계속 추진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엔 액티브X 논란과 똑같은 운명일 것이다. 일단 대통령이 뭔가 하라고 하니 안할 수는 없고, 성과지표를 보여줘야 하니 하는 척 시늉만 하는 거다.”

NCS 교육과정 도입은 전문대에 머무르지 않는다. 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일부 4년제 대학도 취업과 관련한 필요성에서 자발적으로 NCS 교육과정을 도입한 곳이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 전문대정책과가 내놓은 ‘대학별 연차적 NCS 기반 교육과정 도입계획’을 살펴보면 “2016년 평균 50.6% 도입을 시작으로 2017년에 평균 90% 이상, 2018년도 100%를 달성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NCS는 공기업 및 공공기관 채용에 도입돼 130개 기관의 검증 잣대로 활용되었다. 이에 따라 시중 서점가나 학원가에서는 NCS 대비 수험서, 취업 강의가 개설되어 있다. ‘스펙 대신 능력’을 중시하겠다는 NCS가 또 하나의 스펙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제기된 논란에 대해 직업능력개발원 NCS센터 핵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기준에 맞춰 커리큘럼을 만들어 수업을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일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교수들이 있을 수는 있다”라며 “지난해 개발된 3257권의 학습모듈 중 일부 문제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일부의 사례를 두고 전체가 문제가 있다고 하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NCS과제는 일-교육훈련-자격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도록 하여 스펙 위주가 아닌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직무중심 교육으로 전환할 필요성에 따라 제기된 것이며 처음 제기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라며 “박근혜 정부 들어서 국정과제로 전면화되었다고 4대강 사업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NCS 학습모듈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주장과 관련해 이 관계자는 “실제 모듈을 만들다 보면 불가피하게 기업체의 매뉴얼 등을 가져다가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용 허락이 뒤늦게 나와 적용이 늦어지는 일부 사례도 있겠지만 역시 대부분의 경우는 충실히 집필자가 직접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전파진흥협회가 문화예술 분야 NCS를 개발하게 된 것은 어떤 경위일까. 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관련 전공자가 아니라 확실하게 확인할 수 없지만, 아마도 유관기관이다 보니 개발과정을 맡게 되었을 것”이라며 “개발진의 문제라든가 내용상 부실한 면이 있다면 추후 보완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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