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 밥줄’ ICT 수출 내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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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반도체, 디스플레이 모두 큰 폭 하락… 현 정부 창조경제 성과에 의문

지난달 대북제재와 개성공단 문제 등에 묻혀 ‘조용히’ 지나간 이슈가 하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올 1월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입 동향 통계다.

올해 들어 처음 받아든 ICT산업의 성적표는 가히 충격적이다. 산업부는 “1월에 수출 118억6000만 달러, 수입 67억9000만 달러로 50억7000만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흑자가 난 사실을 강조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흑자가 났다고 기뻐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ICT 수출이 작년 10월부터 1월까지 4개월 연속 감소했기 때문이다. ICT 수출이 넉 달 연속 감소한 것은 2012년 6월 이후 3년 7개월 만이다. 수출 감소폭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감소폭은 10월 -1.6%, 11월 -7.0%, 12월 -14.7%로 점차 커지더니, 1월에는 17.8%나 줄었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이 ICT산업도 계절에 따라 조금씩 실적에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연말연시에는 성탄절, 블랙프라이데이 등 소비가 활발한 시즌이라 대체로 ICT 제품 구매도 늘어난다. 1월은 대체로 ‘성수기’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럼에도 수출이 전달 대비 17.8% 줄었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다. 작년 1월의 경우 ICT 수출은 144억2000만 달러였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감소폭이 22.4%에 달한다.

서울 종로의 한 매점에서 자판기로 팔리는 중국 샤오미의 스마트폰  ‘홍미3’을 사려고 시민들이 줄지어 섰다. / 연합뉴스

서울 종로의 한 매점에서 자판기로 팔리는 중국 샤오미의 스마트폰 ‘홍미3’을 사려고 시민들이 줄지어 섰다. / 연합뉴스

삼성전자, 휴대전화 시장 5위로 밀려
ICT산업을 총괄하는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부는 이게 얼마나 심각한 사안인지 언급하지 않고 있다. ICT산업은 우리 경제의 ‘먹거리’ 정도가 아니다. 없으면 망하는 ‘밥줄’이다. 지난해 대한민국이 달성한 903억5000만 달러의 무역흑자 중 90% 이상인 815억6000만 달러가 ICT산업에서 나왔다. 1월에도 전체 무역흑자 53억3000만 달러 중 대부분인 50억7000만 달러가 ICT 수출에서 나왔다. 작년 8월처럼 ICT 흑자(69억 달러)가 전체 흑자(43억 달러)를 넘어선 달도 있다. ICT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2~33% 수준임을 감안하면 ICT를 제외한 대부분의 산업은 손해를 보거나 ‘본전’을 찾기도 바쁘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ICT가 돈을 벌어오는 대한민국 경제의 ‘가장’인 셈이다.

미래부는 지난달 17일 최재유 2차관 주재 하에 ‘ICT 수출 활성화 점검회의’를 열고 “ICT 분야별 해외진출 집중 국가를 선정해 종합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수출부진 문제로 점검회의를 여는 게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다. 국가경제가 휘청이고 있는 마당에 차관 주재의 회의가 얼마나 ‘힘’을 받을지도 의문이다.

세부 ICT 부문별로 보면 위기가 아닌 부문이 없다. 3대 주력 수출품인 휴대전화, 반도체, 디스플레이 모두 큰 폭으로 수출이 떨어지고 있다. 휴대전화의 경우 올 1분기 신형 스마트폰 조기 출시에 따른 대기수요 등이 겹치면서 전년 동월 대비 7.3% 줄어든 19억 달러에 그쳤다. 휴대전화 해외 생산이 늘면서 1월에는 휴대전화 부분품 수출도 작년 1월보다 4.6% 감소했다. 국내 업체의 휴대전화 생산량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스마트폰의 경우 몇 년 내 ‘성장 절벽’에 도달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DC의 분석자료를 보면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 성장률은 9.8%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스마트폰 성장률은 2011년 62.8%로 정점을 찍은 후 2012년 46.5%, 2013년 40.7%, 2014년 27.6% 등으로 매년 하락세를 걷고 있다. 중국 업체의 추격도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거의 유일하게 스마트폰 시장이 성장한 중국의 경우 판매량 2~5위 업체가 모두 중국 업체였다. 한때 시장 1위였던 삼성전자는 5위권 밖으로 밀려난 상태다. 휴대전화 수출에서 더 이상 크게 기대할 게 없다는 뜻이다.

최근 2~3년간 호황을 누린 반도체도 올해 들어 수요 감소와 단가 하락으로 무섭게 실적이 떨어지고 있다. 1월에는 45억3000만 달러의 수출로 전년 동월 대비 13.9%나 수출이 줄었다. 반도체는 석 달 연속 두 자릿수 수출 감소를 보이고 있다. 주력 수출품인 D램의 경우 올 들어 단가가 6% 이상 하락했다. 반도체 역시 중국의 추격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중국은 이른바 ‘반도체 굴기(반도체로 우뚝서다)’라는 기조 아래 정부가 업체들에 전폭적인 지원을 보내고 있다. 중국 국영기업 칭화유니그룹이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업체인 미국의 마이크론 인수를 시도한 것이 일례다. 칭화유니그룹은 무려 28조원를 써내 마이크론 인수를 눈앞에 뒀지만 미국 정부의 반대로 인수가 무산됐다. 칭화유니그룹은 낸드플래시 세계 3위인 샌디스크 인수를 시도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추락하기 시작한 디스플레이는 올해 더욱 안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1월부터 1년간 디스플레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매달 감소했다. 디스플레이 패널 수요도 줄고 있는 데다, 중국 업체들이 물량공세에 나서면서 공급과잉까지 겹쳐 있다. 작년 9월부터 수출 감소폭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더니, 1월에는 30.7%나 수출이 감소했다. 단가 하락도 심각해 IHS 집계를 보면 9인치 이상 대형 패널의 평균 판매가는 지난해 5월 96달러에서 12월 77달러로 급감했다.

‘우리 경제 밥줄’ ICT 수출 내리막

미래부 “창조경제 성과내고 있다” 자찬
이쯤되면 ICT 수출이 곤두박질칠 동안 정부는 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현 정부의 국가경제 기조는 ‘창조경제’다. 창조경제의 정의가 무엇인지 여전히 논란거리지만, 주무부처가 미래부인 점을 감안할 때 ICT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돈 상태에서도 ICT 수출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점은 창조경제가 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다.

하지만 미래부는 ICT 수출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창조경제 성과를 홍보하는 데 여념없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지난해 “올해부터 본격적인 창조경제의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미래부 홈페이지를 보면 ‘창조경제 3년의 성과’라며 다양한 성과를 거론하고 있다. 가장 으뜸으로 꼽은 게 전국 시·도에 설치한 창조경제혁신센터다. 미래부는 “전국 18개 지역에 설치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창업보육, 투자유치, 고용창출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과연 그럴까.

정부 입장에서 볼 때 창조경제의 최대 편의성은 그 성과를 검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창조경제에서 가장 핵심으로 취급받는 창업 관련 성과에 관한 질문을 하면 정부 관계자들은 “창업 성과를 몇 년 내 따지기는 어렵다”는 대답을 내놓는다. 이어 내놓는 게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스타트업 기업 몇 개가 지원을 받았고, 육성되고 있는지 등의 자료다. 정부 논리에 따르면 해당 스타트업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여부는 지금 알 수 없다. 다음 정권 또는 그 다음 정권에 가서야 따져볼 수 있는 문제다. 따라서 일단 지원받는 스타트업이 많으면 성과가 난 것이 된다. 참 편리한 창조경제다. 하지만 다른 통계로 눈을 돌려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벤처기업협회가 집계한 벤처무역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벤처기업들의 수출실적은 171억2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이전인 2012년의 177억1000만 달러보다 오히려 수출실적이 떨어진다. 반면 벤처기업 수는 지난해 3만1260개로 역대 최대였다. 2012년의 2만8193개보다 3000개 이상 벤처가 늘었지만 수출은 줄어든 것이다.

<송진식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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