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새 수장의 화끈한 공약 실현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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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판티노 회장은 FIFA 209개 가맹국 모두에 매년 500만 달러(약 62억원)의 수익 분배금을 제공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그리고 월드컵 본선 출전국을 40개국으로 늘리고, 이웃 나라 간의 공동 개최를 확대하겠다는 핵심 공약도 내걸었다.

세계 축구계에서 18년 만에 새 대통령이 탄생했다.

지안니 인판티노 유럽축구연맹(UEFA) 사무총장(46·스위스)은 2월 27일 스위스 취리히 국제축구연맹(FIFA) 본부에서 열린 FIFA 신임 회장 선거에서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총 유효표 207표 중 과반을 넘는 115표를 얻어 셰이크 살만 빈 이브라힘 알 칼리파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51·바레인·88표)을 제치고 제9대 FIFA 회장에 당선됐다. 인판티노 신임 회장은 부패의혹에 연루돼 불명예 퇴진한 제프 블라터 전 회장(80·스위스)의 뒤를 이어 4년 임기로 축구계를 이끈다.

FIFA 회장 선거는 209개 가맹국이 각각 1표씩 투표권을 행사해 1차 투표에서 가맹국 3분의 2의 지지를 받거나 2차 투표에서 가맹국 과반의 표심을 잡아야 수장이 될 수 있다. 이번 선거에는 징계로 투표권을 잃은 쿠웨이트와 인도네시아를 제외한 207개국이 모두 선거에 참여했다.

지안니 인판티노 유럽축구연맹(UEFA) 사무총장이 2월 27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에서 신임 회장에 당선된 뒤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지안니 인판티노 유럽축구연맹(UEFA) 사무총장이 2월 27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에서 신임 회장에 당선된 뒤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유럽세에 도전한 아시아, 실패로 끝나
예상대로 치열한 접전이었다. 1차 투표에선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인판티노가 88표를 얻었고, 살만은 3표 뒤진 85표를 챙겼다. 또 다른 유력후보로 손꼽혔던 요르단 왕자 알리 빈 알 후세인 FIFA 부회장(41)이 27표, 제롬 상파뉴 전 FIFA 국제국장(58·프랑스)은 7표에 그쳤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치인 토쿄 세콸레(63)는 1차 투표를 앞두고 자진 사퇴했다.

인판티노와 살만의 승패를 가른 것은 알리 왕자와 상파뉴를 지지한 국가들의 표심이었다. 인판티노가 1차에 비해 27표를 더 가져간 반면, 살만은 단 3표를 추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아시아계인 알리 왕자가 살만을 지지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AP통신은 “1차 투표에서 알리 왕자에게 표를 준 나라들이 2차에서 인판티노의 손을 들어준 게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인판티노의 당선으로 굳건한 유럽세는 다시 확인됐다. 역대 FIFA 회장을 살펴보면 8명 중 7명이 유럽 출신이었다. 1974년부터 1998년까지 제7대 회장을 역임한 주앙 아벨란제(브라질)가 유일한 비유럽권 수장이었다. 아발란제 역시 벨기에계 브라질 이민자 2세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유럽이 독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FIFA 수장 자리가 특정 지역의 전유물이라고 꼬집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1904년 5월 21일 프랑스에서 설립된 FIFA는 넓은 의미의 세계화를 추구해 왔다. ‘국경 없는 축구’와 ‘탈정치적인 축구’를 추구해 국제연합(UN)보다 FIFA 가맹국 숫자가 더 많기에 아쉬움은 더욱 크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인판티노 회장은 당선 직후 “축구는 분열되지 않는다”며 상대 후보 진영에 손을 내미는 한편 탕평책을 꺼내 들었다. 그는 “가장 먼저 비서관을 임명하겠다. 비서관에는 절대 유럽 출신을 뽑지 않고, 지역 균형을 맞춰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인판티노 회장이 축구 대통령에 오른 배경에는 파격적인 공약이 있었다. 인판티노 회장은 FIFA 209개 가맹국 모두에 매년 500만 달러(약 62억원), 대륙별 연맹에는 매년 4000만 달러(약 494억원)의 수익 분배금을 제공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FIFA 수익의 절반을 나누겠다는 의미다. 회장 선거에 나섰던 다른 후보들은 “현실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공약대로면 FIFA는 2년 내로 파산할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재정상태가 좋지 않은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등에서는 “축구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고 반기고 있다.

인판티노 회장의 경력을 고려하면 단순히 표심을 노린 행동이 아닐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이탈리아계 스위스인으로 국제변호사 출신 행정가인 그는 2009년부터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국제 스포츠 행정에서 ‘합리적 리더’로 불렸다. 과도한 지출로 인한 경영위험을 막기 위해 UEFA 산하 프로리그에 선수 인건비가 구단 수입의 총액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재정적 페어플레이(Financial Fair Play)’ 정책을 도입한 주인공이 바로 그다. 또 유럽축구선수권 본선 참가국을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려 ‘흥행’과 ‘재정’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도 받았다. 2018년부터 개최될 예정인 유럽 내 국가대표팀 리그(UEFA 네이션스리그)도 그의 작품이다.

인판티노 회장은 FIFA 월드컵 본선 출전국에도 손을 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월드컵 본선 출전국을 현행 32개국에서 40개국으로 늘리고, 이웃 나라 간의 공동 개최를 확대하겠다는 핵심 공약도 내걸었다. 월드컵 본선 출전국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24개국에서 32개국으로 늘어난 뒤 20년 가까이 굳혀진 흐름이지만, 이르면 아직 개최지가 확정되지 않은 2026년 월드컵부터 새롭게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인판티노 회장이 월드컵 체제를 바꾸는 것은 FIFA 위상 제고와도 맞물려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FIFA는 부패의혹으로 재정위기에 처했다. 포브스는 “FIFA의 주요 후원사들이 재계약을 하지 않거나, 월드컵 투자를 망설이면서 월드컵을 통한 FIFA의 수익이 감소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브라질 월드컵이 열린 2014년 FIFA의 수익은 약 2조5950억원에 달했다. 인판티노 회장의 본선 참가국 확대 방침은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과 광고 효과를 키워 후원사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의도라는 의미다.

FIFA 새 수장의 화끈한 공약 실현될까

부패의혹 받는 FIFA 개혁이 과제
인판티노 회장에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UEFA 사무총장으로 미셸 플라티니 UEFA 회장(61·프랑스)의 대리인이라고 폄훼하는 편견을 이겨내야 한다.

플라티니 회장이 블라터 전 회장에게서 200만 스위스프랑(약 25억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난 시점에서 FIFA 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 ‘대리 출마’가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인판티노 회장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던 월드컵 본선 출전국 확대방안도 사실 플라티니의 아이디어라는 점이 그 근거다. 플라티니 회장은 “내가 FIFA 회장이 되면 본선 출전국을 40개국으로 늘리겠다.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본선 출전권을 각각 2장씩 더 배정하고, 북중미와 남미, 오세아니아에도 모두 합쳐 2장을 추가 할당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플라티니 회장이 부패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된 블라터 전 회장과 연루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곤혹스럽다. 두 사람은 200만 스위스프랑의 지급 배경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면서 FIFA 윤리위원회에서 자격정지 8년 처분을 받았다. 최근 재심을 청구해 6년으로 징계가 완화됐지만 혐의를 벗지는 못한 상태다.

인판티노 회장이 플라티니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그의 지원에 고맙게 생각한다. 함께 일한 시간이 즐거웠다”면서도 “나는 굳건한 생각을 갖고 있다. (플라티니와의 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 억측도 많지만 나를 믿어 달라”고 당부한 것도 이런 우려를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아울러 조직 투명성 강화 및 의사 결정 합리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함께 마련했다. 블라터 전 회장이 문제됐던 임기를 최대 12년으로 제한하고,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 부패가 드러난 집행위원회를 폐지하는 내용의 개혁안도 통과시켰다. 인판티노 회장은 “FIFA가 투명하고 합리적인 조직으로 부활할 수 있도록 쉬지 않고 일하겠다. 아름다운 스포츠인 축구를 다시 세상의 중심으로 옮겨놓기 위해 여러 회원국과 함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황민국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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