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집을 노리는 수리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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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초저녁이면 수리부엉이가 동네 박물관 앞 전신주에 날아와 앉아서 머리를 휘저으며 소리를 냈다. 수리부엉이가 앉아 있는 전신주 아래에는 좁은 하천이 있다. 밤이면 물새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수리부엉이는 분명 물새를 사냥하기 위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소리를 낸다는 것이 이상했다. 주변에 있던 물새들은 상류와 하류 쪽으로 피신을 했는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호기심에 위장텐트 안에서 기다리다 보니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비둘기집을 들여다 보던 수리부엉이가 카메라 소리에 뒤돌아 보고 있다.

비둘기집을 들여다 보던 수리부엉이가 카메라 소리에 뒤돌아 보고 있다.

전신주에 앉아 소리를 내던 녀석이 소리를 멈추더니 몸을 길게 세웠다. 큰 눈의 시선은 박물관을 응시했다. 잠시 후 수리부엉이는 건물 옥상에 있는 비둘기 집 앞으로 날아가 앉았다. 그러자 비둘기들의 겁에 질린 듯한 소리가 짧게 흘러나온 후 조용해진다. 순간 수리부엉이 녀석은 옆걸음질을 하며 비둘기집 가가호호를 들여다 본다. 녀석이 하는 행위가 능숙한 것으로 보아 밤마다 찾아와 비둘기를 잡아 간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빈집이 많았을 것이다.

수리부엉이가 비둘기집 안을 들여다 보고 있다.

수리부엉이가 비둘기집 안을 들여다 보고 있다.

여러 둥지를 들여다 보던 녀석이 순식간에 비둘기 집에 발을 집어넣고 비둘기 한 마리를 잡아 날아갔다. 다음날 같은 자리로 날아와 앉았지만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전날과 다르게 물새들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없이 전신주에 앉아 있던 녀석이 수로 안으로 육중한 몸을 날렸다. ‘쉬이익’ 하는 바람소리가 일면서 물새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적막감이 돌다가, 수리부엉이는 사냥한 오리를 발에 움켜쥐고 넓은 밭 가운데로 날아가 앉아 있다가 앞산으로 날아간다.

어둠이 내린 마을 전신주에 수리부엉이가 날아와 앉아서 비둘기집을 노려보고 있다.

어둠이 내린 마을 전신주에 수리부엉이가 날아와 앉아서 비둘기집을 노려보고 있다.

수리부엉이는 야행성 맹금류다. 시각은 물론이고 청각도 뛰어나 숲속의 작은 들쥐 소리까지 듣고 사냥할 정도다. 특히 3월에는 새끼들이 서너 마리 태어나면 어미들은 고달플 정도로 하룻밤에 많은 사냥을 해야 한다. 수리부엉이 어미들은 눈이나 비가 많이 내려 사냥하기 어려운 날을 대비해 사냥해온 먹잇감을 둥지 주변에 숨기기도 한다. 수리부엉이는 대체로 마을 주변 한적한 바위 절벽에서 한 쌍이 터를 잡고 나면 매년 그곳에서 번식을 하며 살아간다. 마을 사람들은 수리부엉이를 마을의 길조로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수리부엉이가 야속하기도 하다. 가끔 닭장을 습격해 닭을 잡아가기 때문이다.

<이재흥 생태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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