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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취약계층 연착륙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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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인구 증가로 주택 매물도 증가 전망… 부동산 하락 땐 재무건전성 더욱 악화

“10년 전에 퇴직금 받은 걸로 집 사놓은 게 그나마 다행이지. 빚 갚는다고 결국 팔긴 팔지만 사업한다고 돈 안 까먹은 게 어디야.”

주부 박모씨(57)는 최근 살고 있던 경기 남양주시의 아파트를 부동산에 매물로 내놨다. 빚 때문이다. 박씨의 아들은 지난해 결혼을 하면서 박씨 부부에게 결혼자금 일부를 부탁했다. 직장 2년차인 아들이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신용대출 액수로는 결혼과 신혼집 마련에 필요한 돈을 충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아들에게 줬다. 10년 전 남편의 퇴직금으로 집을 사기에는 모자라 받았던 대출은 거의 갚은 상태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가계부채 규모 1700조원 육박
그러나 박씨가 건강이 나빠져 일을 그만두고, 남편이 퇴직 후 들어간 직장도 형편이 어려워져 사업규모를 대폭 축소하면서 졸지에 일자리가 날아갔다. 박씨도 남편도 다시 일자리를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들 결혼자금 대출 외에도 자잘하게 남은 대출들의 액수는 크진 않았지만 당장 생활비도 없으니 집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부부는 2명이 살 작은 평수의 집으로 옮긴 뒤 차액으로 빚을 갚고 노후 생계비를 위해 남겨두려 한다.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부착된 아파트 담보대출 안내문 앞을 행인이 지나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부착된 아파트 담보대출 안내문 앞을 행인이 지나치고 있다. / 연합뉴스

은퇴 직후 주택 등 실물자산을 처분해 금융부채를 상환하는 현상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매달 들어오는 소득이 있을 때는 적당한 규모로 대출도 받으며 자산을 늘리다가 은퇴 나이가 되어 소득이 크게 줄어드는 시기를 맞으면 빚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여기에 변수 하나가 끼어든다. 점점 더 심화되는 고령화 문제다. 일반적인 가계가 빚을 갚기 위해 처분하는 자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집이다. 고령화로 은퇴 후 소득 감소를 겪는 고령인구 비율이 점차 늘면서 매물로 나오는 집도 늘어난다. 청년세대와 중년세대의 주택수요가 풍부하거나 부동산경기가 활성화된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 또 다른 변수가 생긴다.

2016년을 맞아 여러 기관과 경제연구단체에서 잇따라 내놓은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공통되는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경제 위축과 이에 따른 국내 한계기업의 연쇄적 구조조정 문제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는 한국 경제가 맞닥뜨리고 있는 가장 시급한 경제 현안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고령화와 이에 따른 가계부채 문제, 신흥국 경제불안, 그리고 만성적 한계기업 문제다. 각각의 문제에 관한 지표들을 따로 떼어놓고 봤을 때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세 가지 문제가 일시적으로 엮일 때에는 심각한 경제문제가 터질 수 있는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것이다.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는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 늘었다. 2005년 말 521조원이던 가계신용 잔액은 2015년 3분기에는 1166조원을 넘어섰고, 2015년 말에는 1200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전망됐다. 사실상 대부분이 가계대출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는 자영업자 대출 520조원을 더하면 가계가 짊어지고 있는 부채의 규모는 1700조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가계부채 문제의 중심에 있는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다. 이미 은퇴를 시작한 이들 세대는 향후 10년 이내 대규모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은퇴 무렵 부동산 등 실물자산 처분이 시작되는 추세를 고려하면 이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자칫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인 하락 압력을 받을 수도 있다.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65~70세 연령대에 금융부채와 실물자산 감소 폭이 가장 컸다. 2차 은퇴 및 자녀 출가 이후 대형주택을 처분해 부채를 갚은 뒤 소형주택으로 옮긴 데 따른 것이다. 때문에 부동산 핵심 수요층이라 할 수 있는 자산축적연령인구(35~59세)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2018년을 전후해 인구 고령화에 따른 부동산시장 하락 압력이 나타날 공산이 높다.

[표지이야기]부채 취약계층 연착륙 가능할까

부채 상환으로 실물경제에 악영향
하지만 문제는 고령가구가 부동산 가격 하락 탓에 부채에 비해 상환자금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때 더 심각해진다. 지난해 기준 금융부채를 보유하고 있는 60대 이상 고령가구에서는 금융부채 비율이 200%를 넘었고, 원리금상환부담률도 30%를 크게 상회했다. 고령가구에서는 부채의 질적 구조나 고용여건도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어 재무건전성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고령가구에선 만기일시상환 및 비은행금융기관 대출 비중이 30~40대에 비해 높고, 고령가구일수록 급여를 받는 노동자보다는 자영업자와 무직자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가계의 가용자금이 부채 상환을 위해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소비가 저하되고 실물경제에 연쇄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그동안은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상황에서 통화량이 크게 팽창해 왔고, 그 일부가 가계에 부채 형식으로 유입돼 왔다. 결국 빚으로 경기를 유지한 셈이다. 그러나 경제를 자극하기 위해 정부 대신 일부 빈곤층을 포함한 개인과 가구가 빚을 떠안아 왔고, 늘어난 소득으로 구매력을 뒷받침하는 대신 가계부채로 소비수요를 충당해온 경제구조는 임계점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영향으로 늘어난 자영업자의 부채가 뇌관이 될 수도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정희수 연구위원은 “사업자대출 등을 포함해 가계 및 기업대출을 중복해서 받은 자영업자 비중이 63.6%나 되는 데다 자영업자들의 불규칙한 소득 흐름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가계부채의 구조적 문제와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520조원에 달하는 자영업자 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비율(LTV) 70%를 초과한 대출이 18.5%를 차지할 정도로 비교적 많은 것이 잠재된 위험요인으로 꼽힌다고 밝혔다. 또 경기 민감업종인 부동산임대업 34.4%, 음식·숙박업 10.2%, 도·소매업 16.9% 등에 대출이 집중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흥국 위기와 국내 한계기업 구조조정 등에 따른 경기침체 여파가 한꺼번에 밀어닥칠 경우 상당수 자영업자의 부채도 악성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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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가계부채가 구매력 저하로 이어지는 문제 때문에 한국 경제가 장기적인 불황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돌거나 극히 소폭만 상회하는 추세가 이어진 것을 보면 저성장 추세가 점차 굳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의 허문종 수석연구원은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1990년대 일본과는 달리 가계부채 문제가 더 심각하게 진행되고 구조적인 내수부진을 겪고 있어 저성장이 지속되는 한국식 장기불황을 맞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지표상으로도 이와 같은 흐름은 뚜렷하게 나타났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전국 약 2만 가구를 조사해 발표한 ‘2015년 가계금융 복지조사’에서도 금융부채는 2015년 기준 가구당 평균 4321만원으로 전년의 4118만원에 비해 4.9% 늘었지만,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3924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2.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가계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10.1%로 전년의 107.8%보다 2.3%포인트 증가했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 역시 같은 기간 21.7%에서 24.2%로 뛰었다.

가계부채의 규모는 고소득층일수록 높지만 경기침체 여파는 저소득층일수록 더욱 극심하게 체감하는 양상도 확인됐다. 저소득층 가계일수록 부채 상환에 사용하는 금액의 비중이 큰데, 제1·제2 금융권에서 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받기 어려운 저소득층은 대부업체를 이용해 왔지만 높은 금리 탓에 원리금 상환에 더욱 애를 먹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의 대부업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등록된 대부업체에서 풀려나간 대출잔액만 해도 2011년 8조7000억원에서 2013년 10조원으로, 2015년 6월 말에는 12조3000억원까지 늘었다. 이용자 수는 252만명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등록되지 않은 대부업체를 통한 대출 액수는 집계조차 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소득층이 지고 있는 빚이 경제위기가 재발할 경우 경제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정부 종합대책은 근본적 해결 힘들어
가계부채의 급증이 앞으로 미칠 여파에 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늘고 있지만 문제 자체의 복잡성 때문에 다양한 해법이 거론되고 있다. 정부의 가계부채 종합대책은 주로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에 집중돼 있다. 대출 시 소득심사를 한층 강화하는 내용의 대책이 수도권에선 2월 1일부터, 그 외 지역은 5월 2일부터 시행된다. 신규 대출을 대상으로 이자만 내는 거치기간을 현행 3~5년에서 1년 이내로 단축하고, 집의 담보가치나 소득규모에 비해 대출 액수가 크면 아예 처음부터 빚을 나눠 갚도록 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정책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빚으로 빚을 막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집값 대비 대출금(LTV)이나 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DTI) 기준을 보다 상향하는 한편, 금리인상 충격을 완화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최한 가계부채 부문 토론회에서 강동수 거시·금융정책연구부장은 “현재의 낮은 금리는 저축 대신 빚을 내 소비하도록 경제생활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금리인상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취약계층을 위한 대책으로 사회복지 차원에서 생계형 자금지원을 제공하고, 신용회복지원제도의 이용절차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침체에 따른 부채상환의 여파가 특히 재무건전성이 취약한 고령가구 위주로 밀어닥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시장으로 전해지는 충격을 다각도로 흡수하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가계가 주택을 팔아서 빚을 갚고 생계비를 마련하는 대신 보유주택에서 계속 거주하면서 해당 주택을 이용한 주택연금을 수령하게 하는 등 주택연금제도를 보완 및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은 금융안정보고서는 “주택을 상속 수단이 아니라 저축 자산으로 인식하도록 인식을 전환하는 한편, 고령가구로부터 매입한 주택을 임대사업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적 투자기구 설립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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