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세계화로 전염병엔 국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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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의 전파속도가 빨라진 이유는 전례가 없는 교통수단의 비약적인 발전 덕이다. 특히 비행기는 지구촌 전역에 바이러스를 삽시간에 퍼뜨리는 데 가장 위력적인 도구다.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국민에게 당분간 임신하지 말라고 권하는 정부들이 있다니! 올해 엘살바도르와 콜롬비아, 그리고 자메이카의 보건 관련 부처들은 길게 2년에서 최소 6개월 이상 임신 자제를 권고했다. 원인은 ‘지카 바이러스’ 탓이다. 고열을 동반하고 눈에 염증이 생기며 손발이 붓고 피부에 붉은 발진이 생긴다. 다행히 보통 2~3일 뒤 완쾌되나 생각지도 못한 뒤통수가 기다린다. 감염된 여성이 임신하면 소두증에 걸린 아기를 낳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두개골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얼굴모양이 괴이해지고 심하면 정신지체까지 일으킨다. 지카 바이러스는 원래 1947년 우간다 지카 숲의 붉은털원숭이한테서 처음 발견되어 그런 이름이 붙었으나 2015년 초 칠레의 이스터 섬에 출현해 남미 여러 국가들로 번졌다. 현재 브라질에서는 100만명 이상 감염되었고, 인근 다른 나라들도 평균 수천명씩 감염자가 나왔다. 미국에서도 중남미를 다녀온 여행자 셋이 양성판정을 받았다. 심지어 동아시아도 벌써 비상이다. 지난 1월 22일 대만 국제공항에 입국한 한 태국 남성에게서 지카 바이러스가 발견되었으니까.

전염병 방역체계 미흡한 안일한 대처
예방약도 치료약도 없다는 점에서, 작년 우리나라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메르스를 떠올리게 한다. 지카 바이러스는 메르스나 에볼라처럼 환자의 치사율이 높지는 않으나 다음 세대를 불구로 만드는 이상 인류에게 위협적이기는 매한가지다. 일종의 발목지뢰형 바이러스라고나 할까. 지카 바이러스는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사람을 단번에 죽이는 대신 산송장으로 만들어 가족과 사회에 평생 그 짐을 떠넘긴다.

작년 말 감사원이 메르스 사태의 초동대응 부실을 규명하고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제주도의 전염병 방역체계가 여전히 일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제민일보> 2016년 1월 21일자 기사) 이처럼 안이한 대처는 바이러스 연구에 국내 투자가 미온적인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2014년 국회 산하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총예산에서 바이러스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 2.8%, 연구인력은 2.4%에 불과하다는 국감자료를 내놓았다. 특히 에볼라처럼 치사율이 매우 높은 악성 바이러스를 연구하자면 미국 육군 전염병의학연구소처럼 4등급 수준의 안전한 연구시설이 필요하나 국내에는 아예 전무한 실정이다. (안전수준은 1등급이 제일 낮고, 4등급이 제일 높다.) 그나마 국내 생명공학기업 한 곳이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Defenc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의 자금 지원 아래 미국의 관련기업과 에볼라 DNA백신 및 항체치료제를 공동개발 중이고, 2015년 3월 HIV 백신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재미교포 제롬 김이 국제백신연구소(IVI) 사무총장으로 취임하며 에볼라 백신 개발에 우리나라 정부와 학계의 관심을 촉구하고 나섰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안드로메다 스트레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포스터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안드로메다 스트레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의 포스터

체계적이고 심도 깊은 방역시스템 구축에 정치권과 행정부가 미온적인 것은 삽시간에 쓰나미처럼 번져나갈 치명적인 바이러스 전염병의 위험성을 절감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허나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면 치명적인 전염병은 예고 없이 슬그머니 들이닥쳐 우리의 숨통을 죈다. 1980년대 밀 작황이 나빠 식량부족에 시달린 옛 소련은 밀을 수입하려 캐나다 오대호 지방으로 곡물운반선을 여러 척 보냈다. 문제는 빈 배로 대서양을 건너다 바다에서 전복될까봐 유럽 항구를 경유하며 선박평형수(船舶平衡水)를 가득 채우느라 생겼다. 화물선 전용 탱크를 꽉 채운 바닷물에 난데없는 불청객인 홍합들이 덩달아 잔뜩 무임승차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홍합에 원래부터 기생하던 잡다한 유충과 온갖 바이러스들이 함께 딸려왔다. 결국 목적지에 도착한 운반선들은 짐을 실으려 선박평형수를 배출할 때 위험의 소지가 있는 밀항자들(?)까지 함께 호수 속으로 떠밀었다. 학자들은 대형 화물 컨테이너가 바다를 주름잡기 전만 해도 폭풍우나 철새에 묻어서 낯선 곤충과 미생물이 오대호까지 옮겨오는 일은 5만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선박평형수에 묻어오는 공짜승객 중에는 콜레라균도 나온다(앤드류 니키포룩 지음, 이희수 옮김, <대혼란>, 알마, 2010년).

무심코 들여온 애완동물에 딸린 세균
사소해 보이나 이러한 변화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기도 한다.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즈가 들이닥치기 전만 해도 멕시코의 인디오 인구는 약 2500만명으로 추정되나 불과 200년 만에 100만명으로 확 줄었다. 마찬가지로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인구도 같은 기간 큰 폭으로 격감했다. 뜻밖에도 주 원인은 화약 등 신무기를 앞세운 백인들의 무자비한 학살 탓이 아니었다. 정복자들이 부지불식간에 신대륙에 함께 들여온 온갖 병원균과 바이러스들이 주범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으며, 그 전파 속도는 도리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당신이 수입산 이국적인 애완동물을 딱 한 마리만 산다 치자. 그러나 꼼꼼히 따져보면 당신 수중에 들어온 외래종은 실은 하나가 아니다. 짧은꼬리원숭이는 헤르페스B를, 아마존앵무새는 엑조틱 뉴캐슬 병원균을, 아프리카산 레오파드거북은 가축전염병 진드기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도마뱀과 뱀, 그리고 거북은 전체 개체 중 90%가 살모넬라균을 지녔다. 미국은 매년 80여국가에서 약 200만마리의 파충류를 수입한다. 그러니 미국의 파충류 애호가들 중 매년 7만4000명이 피가 썩고 내장이 뒤집어지는 병에 옮는다 해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는 매주 25톤의 거북을 해외로 수출한다. 게다가 부지기수로 빈발하는 불법밀수까지 고려하면 전체 유통규모를 가늠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가 빨라진 이유는 전례가 없는 교통수단의 비약적인 발전 덕이다. 오늘날 컨테이너 수송 선박들은 대개 화물이 가득찬 20톤짜리 컨테이너 박스를 한 척당 5000개씩 실어 나른다. 해운업계의 자랑에 따르면, 유통되는 컨테이너 박스를 2.5m 높이의 벽으로 쌓으면 적도를 두 바퀴나 돈단다. 특히 비행기는 지구촌 전역에 바이러스를 삽시간에 퍼뜨리는 데 가장 위력적인 도구다. 바야흐로 돈 많고 기동성 있는 사람들이 24시간 이내 온 대륙을 바이러스 놀이터로 바꿔놓을 수 있는 시대다. 관광과 무역은 전 세계 어느 항구나 대도시에서 생물폭탄을 터뜨릴 수 있는 뇌관이다. 닭 유행병으로 2억마리 이상의 새를 땅에 묻게 한 견인차는 다름 아닌 세계화 현상이다.

이 모든 사태를 바이러스 탓으로만 돌리면 그만일까. 외딴 섬에 사는 킹콩을 굳이 사람들이 문명사회로 끌어내는 통에 큰 혼란에 빠지는 것을 다룬 영화 킹콩의 인과응보와 같지 않는가. 사진은 영화 <킹콩>의 스틸 사진.

이 모든 사태를 바이러스 탓으로만 돌리면 그만일까. 외딴 섬에 사는 킹콩을 굳이 사람들이 문명사회로 끌어내는 통에 큰 혼란에 빠지는 것을 다룬 영화 킹콩의 인과응보와 같지 않는가. 사진은 영화 <킹콩>의 스틸 사진.

예로부터 치명적인 바이러스 전염병의 공포는 SF의 단골소재였다. 그 중 아마 가장 유명한 예가 영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의 소설 <안드로메다 스트레인(The Andromeda Strain)>(1969)이리라. 이것은 지상에 추락한 군사위성에 함께 묻어온 외계 바이러스 탓에 인근 마을 주민 대다수가 몰살당하자 대책에 부심하는 이야기다. 이 바이러스는 인체에서 증식하면 십중팔구 혈액을 응고시켜 질식사나 심장마비를 일으킨다. 그러나 사실 치사율이 엄청난 바이러스를 상상해보려 굳이 SF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그에 버금가는 토종 바이러스들이 오지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니까. 리처드 프레스턴의 현장 르포 <핫존(The Hot Zone)>은 일단 감염되면 치사율이 50~90%에 이르는 에볼라 바이러스 변종들이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럽과 미국 워싱턴 DC 같은 문명세계 안방까지 넘보는 아찔한 현실을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토대로 생생하게 재현한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에볼라 바이러스는 정말 끔찍하다. 2~3주 잠복기를 거쳐 발병하면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죄다 피가 흘러나오지만 지혈이 되지 않는다. 혈소판 자체가 파괴돼 혈액이 물처럼 흘러내린다. 고환을 포함해 온몸이 퉁퉁 붓고 몸속 장기들은 딱딱하게 굳어 결국 괴사한다. 다음 숙주를 찾아 나선 바이러스들은 죽기 전 환자가 피가 섞인 기침 비말을 시속 150㎞로 날리며 주위 사람들을 붙들고 치대게 한다. 그 바람에 에볼라 바이러스의 실체를 몰랐던 초창기에는 환자 가족뿐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병 수발을 든 수녀들 다수가 2차 감염으로 떼죽음을 당했다. 에볼라는 에이즈와 달리 꼭 베인 상처가 아니어도 맨살에 닿기만 하면 피하지방으로 침투해 증식하므로 그야말로 가공할 번식력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볼라로 인한 피해가 아직 적은 것은 역설적이나 너무 치사율이 높아서다. 이 바이러스의 발원지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사는 아프리카 열대우림이다. 따라서 일단 발병하면 마을 전체가 삽시간에 초토화되어버려 외부인들에게까지 퍼뜨릴 짬이 없다. 그러나 최근 유럽과 미국의 연구소들이 아프리카산 원숭이들을 대거 잡아다 실험용으로 쓰느라 문제가 되고 있다. 유력한 숙주가 원숭이들인 까닭이다. 이렇게 보면 문제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오지랖이 넓은 사람에게 있는 셈이다.

인간의 개발욕망에 따른 인과응보?
다행히 아직 에볼라 바이러스의 여러 변종들은 대부분 공기감염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유일하게 에볼라 레스턴만은 공기감염이 되지만 현재까지는 원숭이들 사이에만 전염된다. 만일 조류독감이나 메르스처럼 에볼라가 종(種)을 넘나들며 멋대로 변이를 일으키는 날에는 그 파급력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지난 1월 10일 질병관리본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국내 메르스 환자 8명에게서 채취한 바이러스 유전자에서 당단백질 8개와 아미노산 4개의 염기 서열이 변이된 사실이 확인됐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끝없이 옷을 갈아입듯 외관을 바꿔 숙주의 방어기제를 뚫는다. 조류독감의 일종인 H5N1은 이미 스무 번이나 돌연변이했다.) 비행기가 지구촌을 일일생활권으로 만든 오늘날, 감염된 줄 모르고 잠복기에 있는 환자가 이 나라 저 나라를 넘나들며 대도시에 바이러스 비말을 뿌리고 돌아다니면 어찌 될까. 우리는 이따금 외신보도로 에볼라 피해 소식을 접하며 우리와는 동떨어진 별세계 이야기인 양 여기지만, <핫존>은 그러한 안이한 마음가짐이 예기치 못한 국가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끝으로 필자는 당면한 방역대책 못지 않게 중요한 한 가지 관점을 덧붙이고 싶다. 그것은 이 모든 사태를 바이러스 탓으로만 돌리면 그만일까 하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녹지인 아프리카와 아마존의 원시림은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로서 바이러스와 미생물로 넘쳐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를 무시하고 정글을 농경지와 주택, 도로 등으로 바꿔놓기 바쁘다. 살 곳을 잃은 동물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거나 멸종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미생물들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특히 성질이 고약한 녀석의 경우에는 호된 후폭풍을 각오해야 한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지나친 남벌과 개간으로 맞추포 바이러스에 오염된 먼지를 흡입한 시골주민들이 출혈열에 걸려 그 중 26명이 사망했다. 지카 바이러스는 2007년까지만 해도 사람이 감염된 사례는 14건에 불과했고, 에볼라 역시 처음에는 감염자가 드물었다. 이는 인간들이 자연개발을 명분으로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유해한 바이러스에 제 발로 가까이 다가갔다는 말이 된다.

마치 영화 <킹콩>의 인과응보 같지 않은가. 외딴 섬에 사는 킹콩을 굳이 사람들이 문명사회로 끌어내는 통에 도시가 큰 혼란에 빠진다. 어렵사리 킹콩을 퇴치하긴 하나 사람들 역시 적지 않은 피해를 입는다. 필자는 치명적인 희귀전염병과 현대 인류와의 관계 또한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별 방역대책과 달리 지구촌 전체의 맥락에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가이아 이론의 이상을 지엽적으로나마 따라 보면 어떨까. 성질 고약한 바이러스를 고향에서 무턱대고 쫓아낼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존중해주며 우리의 안위를 돌보는 편이 기회비용 면에서 훨씬 더 이익이 아닐까?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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