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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아이들을 미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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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에 따른 곤란 겪는 저소득가정 스트레스 아동학대로 이어지는 경우 빈번

빚이 늘면서 생활은 어려워졌다. 주거마저 불안해지면서 아버지는 스트레스를 11살 딸아이에게 풀었다. 부천에서 가평으로, 가평에서 강북구 수유동으로, 다시 인천으로 빚독촉을 피해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학대는 갈수록 심해졌다. 아이는 지난 12월 가스배관을 타고 집에서 탈출했다. 슈퍼마켓으로 탈출한 11세 아이의 몸무게는 4살 아이의 몸무게인 16㎏이었다.

11살 아이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아이를 학대하지 않았다. 200만원이 안 되는 적은 월급이었지만 직장을 다닐 때만 해도 아버지는 아이를 때리지 않았다. 그러나 재혼하면서 아내의 소비벽으로 카드빚이 쌓였고, 경제적으로 궁핍해졌다. 직장을 그만둔 아버지는 재혼한 아내가 아이를 학대할 때 처음에는 이를 말렸다. 그러나 경제적 궁핍이 더욱 심해지고 빚독촉에 시달리다 주거마저 불안정해지자 어느 순간 아버지도 아이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초등생 아들의 시신을 훼손하고 냉동보관한 혐의를 받는 아버지가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초등생 아들의 시신을 훼손하고 냉동보관한 혐의를 받는 아버지가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아동학대 가구가 가족소득 변화 커
아동학대는 부모의 병리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사회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경제위기가 닥치고 생활이 변화하게 되면 이것이 아동학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IMF 외환위기 직후 아동학대가 증가했다는 진단에 따라 1999년 아동학대가 발생한 가구들을 조사한 논문 <경제위기가 저소득가구의 아동학대에 미치는 영향 분석>에 따르면, 경제위기에 따른 경제적 상황 변화가 가족의 생활 변화로 이어지게 되고, 이러한 가족의 생활 변화가 아동학대로 이어지게 된다.

보고서는 IMF 사태 직후인 1999년 7~11월까지 아동학대 가구와 비학대 가구를 구분해 조사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저소득층 보건복지욕구 기초자료 분석>의 보고서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경제위기에 따른 가족 생활의 변화 폭이 아동학대 가구에서 보다 더 큰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르면 경제적 상황 변화가 가족생활 변화를 매개로 아동학대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가족생활 변화를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은 가족 소득 변화였다. 실업, 고용불안, 가계부채, 주거불안 등 2016년의 경제상황도 IMF 이후처럼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인천시의 아동학대 현황을 분석한 인천발 전연구원의 배은주 연구원은 오늘날에도 경제적 불안이 심화되면서 경제적 스트레스가 아동학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경제적 불안이 심해지고 경쟁이 과열된 지금의 사회문화 풍토가 아동학대에 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를 풀 데가 없으니 약자인 아동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아동학대의 가해자로 20대 부모의 비율이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살기 힘든 세상, 각박한 세상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경제적 능력이 없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아동학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훈육과 체벌을 당연시하는 교육을 받은 세대가 아님에도 20대 부모의 학대 비율이 높다는 것은 더 이상 아동학대가 왜곡된 유교적 문화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인천발전연구원이 2014년에 발표한 <인천광역시 아동학대 현황 분석>을 보면 20대 부모의 학대행위 비율은 갈수록 늘고 있다. 전국적으로 2011년에는 539건(8.9%)이었던 20대 부모 학대행위자가 2013년에는 701건(10.3%)으로 증가했다. 인천의 경우는 두 배 가까이 늘었다. 2011년에는 25건(10.4%)의 학대행위자가 20대였는데, 2013년에는 68건(20.0%)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 12월 인천에서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한 11살 아이의 아버지 또한 32세로 비교적 젊은 연령에 속했다.

[특집]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아이들을 미워하지 마라

힘든 세상, 20대 부모의 학대 비율 높아
아동학대가 빈곤이나 경제적 상황과 상관관계가 높다는 것은 사실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2005년 서울대 이봉주 교수는 <아동학대와 방임의 사회구조적 요인: 빈곤과 상관관계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2002년 1월부터 2004년 3월까지 7개 광역시 1233개 동 아동학대 사례 발생률과 지역사회의 경제적 특성, 가구 특성, 교육수준, 그리고 주거 특성들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논문은 빈곤과 아동학대 및 방임 간의 상관관계를 네 가지 측면에서 짚었다.

첫째, 빈곤한 부모는 자원이 많지 않아 빈곤아동은 빈곤하지 않은 아동들보다 학대와 방임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빈곤한 상태는 부모의 스트레스를 높이게 되고, 높은 스트레스에 처한 부모는 보다 엄격한 자녀 양육방법을 사용하게 될 소지가 크다.

셋째, 빈곤한 부모일수록 그들 자녀에 대한 투자로부터 받게 될 미래의 보상이 낮으므로 자녀에 대한 투자가 적다. 빈곤한 부모일수록 자녀에 대한 투자의 미래 수익률에 대한 기대가 낮아 아동학대와 방임이 빈곤한 가정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넷째, 빈곤한 부모일수록 자녀에 대한 투자의 기회비용이 높아 제한된 자원을 자녀들에게보다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게 된다. 자녀 양육에 대한 불충분한 투자 과정에서 아동학대와 방임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이봉주 교수는 10년 전의 분석이지만,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며 부모의 경제적 상황과 아동학대의 상관관계가 높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아동학대는 빈곤과 실업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와 복합적으로 연계돼 있다. 아동 양육 자체도 스트레스인데 경제적 문제도 거기에 더해진 스트레스다. 이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면 이것이 아동에게 폭력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2015년 한국 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는 오늘날에도 빈곤아동이 학대에 더 노출돼 있는 것은 마찬가지임을 증명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적 문제를 겪고 있는 저소득층 가정에서 학대가 더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학대의 유형을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방임의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눠서 초등학교 4~6학년 458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저소득층 기준은 총소득이 중위소득의 60% 이하인 가구다. 신체적 학대는 부모로부터 심하게 맞은 적이 있는지에 대해 0~4점(전혀 없었다: 0점, 1년에 1~2번: 1점, 2~3개월에 1~2번: 2점, 한 달에 1~2번: 3점, 일주일에 1~2번: 4점)의 점수를 부여했다. 저소득가구의 아동은 0.5점, 일반가구의 아동은 0.3점으로 저소득가구 아동이 신체적 학대에 더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비율로 따지면 40%가 더 높다.

지난해 1월 한 어린이가 인천 송도센트럴파크 공원에서 아동학대를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지난해 1월 한 어린이가 인천 송도센트럴파크 공원에서 아동학대를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예방이 중요, 부모 대상 교육 실시해야
정서적 학대도 신체적 학대와 동일한 배점으로 조사했다. 저소득가구의 아동이 1.1점, 일반가구의 아동은 0.7점으로 정서적 학대 빈도 또한 저소득층 아이들이 더 높았다. 부모의 방임에 대해서도 저소득가구의 아동은 0.6점, 일반가구 아동은 0.2점으로 저소득층 아동들에 대한 부모의 방임이 더 높았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는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저소득층 밀집지역 등 아동학대 위험이 높은 지역의 부모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배은주 연구원은 “아동학대 사건이 난 가정을 보면 저소득층도 있지만 전혀 아닌 고학력 계층의 부모들도 있다. 경제상황과 아동학대가 정비례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저소득층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부모의 직업이 불안정하고 경제적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경우 부모가 아주 건전한 정신 건강상태가 아닌 경우에 아동학대는 꽤 많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엇보다 모니터링이 중요한데, 이를 바탕으로 부모 교육을 의무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고, 부모 교육을 복지 혜택과 연계시키는 등 다양한 방안들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이런 것들이 제도화된다면 아동학대에 노출된 가정이 조금 더 빨리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아동학대 가정일수록 부모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아동학대 부모일수록 아동학대의 원인을 아동에게 돌리며 자신의 폭력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경제위기가 저소득가구의 아동학대에 미치는 영향 분석>에 따르면 아동학대를 하는 부모일수록 아동학대의 원인을 아동에게 돌렸다.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생각하는지를 질문한 결과 ‘모르겠다’와 ‘필요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47%, 자녀 대상 교정서비스 및 상담이 22.1%, 부모와 자녀가 함께 받는 상담이 18.2%로 나타났다. 반면, 부모 대상 상담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7.8%에 불과했다. 사법처리를 포함해 경찰의 개입은 전혀 원하지 않았다. 이들의 응답은 비학대가구의 인식과는 전혀 달랐다.

그러나 ‘부모 교육’과 ‘처벌 강화’ 등이 사후적인 대책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방법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특례법이 2014년 9월 시행됐지만 학대받는 아이들은 여전했고, 처벌규정을 강화했지만 아동학대 근절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봉주 교수는 개인의 책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회구조의 문제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아동학대와 빈곤의 상관관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번 부천의 자녀 살해 및 시신 훼손 사건도 그렇고, 인천의 아동학대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런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면 대부분 부모의 문제로 돌리고 이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개인의 책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부모의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건강 문제는 구조적인 것과도 관련돼 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아동학대 문제를 개인의 병리현상으로만 보기보다는 빈부격차 문제, 소득지원 문제, 저소득층의 정신건강 문제 등과 함께 통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개인의 특성 문제로만 치부되면 해결되기 어렵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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