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시장 지각변동 ‘저가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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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샤오미 등 중국산 저가 스마트폰 인기… 우체국 알뜰폰도 신청 폭주

이동통신시장에 저가 바람이 불고 있다. 화웨이, 샤오미 등 중국산 저가 스마트폰은 인기가 치솟고 있다. 중장년층이 주로 사용하던 알뜰폰은 신청이 폭주해 가입하려면 일주일씩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들쭉날쭉한 단말기 보조금에 속고, 비싼 통신요금에 분노한 소비자들이 일으킨 ‘반란’이다.

LG유플러스는 지난 14일 저가 스마트폰인 화웨이의 ‘Y6’ 판매량이 2만대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출시된 화웨이는 출고가 15만9000원으로, 지금까지 국내 시장에 선보인 스마트폰 중 가장 가격이 싸다. LG유플러스 집계를 보면 Y6는 출시 후 16일 만에 1만대를 판매했다. 이후 다시 11일 만에 1만대를 추가로 팔아 2만대를 넘어섰다.

판매량이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하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최근엔 하루 판매량이 1000대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이 성숙하면서 일명 ‘대박폰’이 사라진 스마트폰 시장에서 하루 1000대 판매는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중박’ 수준은 된다. ‘인기폰’이라는 칭호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판매량이 계속 증가하고 있어 하루 2000대 이상의 대박폰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놀라운 점은 Y6가 국내 소비자들한테서 그간 외면받던 중국산 스마트폰이라는 점이다. 본래 한국 스마트폰 시장은 외국산 스마트폰들의 ‘무덤’으로 불린다. 노키아, 모토로라, 소니, HTC 등 한때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제조사들의 스마트폰들이 도전장을 냈지만, 대부분 실패를 맛보고 시장에서 철수했다. 국산 제품에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세계적인 제조업체들이 버티고 있는 탓이었다.

중국산 스마트폰에 대한 천대는 더했다. 지난해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냈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여전히 ‘싼 게 비지떡’이라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화웨이만 해도 지난해 중가폰 ‘X3’를 선보였다가 쓴맛을 봤다. 하지만 1년여 만에 절치부심 내놓은 Y6로 중국산 스마트폰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꿔놓고 있다.

(왼쪽부터)샤오미 ‘홍미노트3’/ 샤오미 제공, 화웨이 ‘Y6’/ 화웨이 제공

(왼쪽부터)샤오미 ‘홍미노트3’/ 샤오미 제공, 화웨이 ‘Y6’/ 화웨이 제공

“가격대비 성능이 우수하다” 입소문
Y6가 오프라인에서 돌풍을 일으켰다면, 온라인에서는 샤오미의 ‘홍미노트3’가 화제에 올랐다. 인터파크와 KT가 지난 4일 홍미노트3 판매를 시작했다가 하루 만인 5일 돌연 판매를 중단하면서 큰 관심을 모았다. 판매 소식이 알려지면서 점차 홍미노트3에 대한 관심도 막 증폭되려던 참에 벌어진 일이었다. KT는 판매 중단 배경에 대해 “인터파크가 본사와 협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품을 판매하려 했다”고 밝혔다.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KT가 저가폰 라인업 강화를 위해 샤오미 제품을 들여오려다 국내 제조사의 거센 항의를 받고 이를 철회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홍미노트3에 관심을 보였던 소비자들이 KT를 향해 비난을 쏟아냈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의 애플’로 불리는 샤오미만 해도 국내에서는 그간 조롱거리였다. 샤오미가 괜찮은 제품을 선보일 때마다 ‘어쩌다가 잘 만든 제품’이라는 뜻으로 ‘대륙의 실수’라는 별칭이 어김없이 따라붙었다. 홍미노트3 사태는 국내 소비자들이 중국산 스마트폰을 구매할 의향이 ‘기꺼이’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중국산 스마트폰의 돌풍은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돌풍이 점점 커져 시장을 집어삼키는 ‘태풍’이 될 수도 있다. 중국산 스마트폰의 인기가 단지 가격이 싸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2014년 10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이 유통구조에 변화를 일으켰다. 단통법 이전 국내 단말기시장은 ‘보조금 시장’이었다. 국내 제조업체들이 80만~90만원대의 고가 스마트폰을 출시한 뒤 60만~70만원의 보조금을 줘가면서 판매하는 구조였다.

이통시장 지각변동 ‘저가의 역습’

판매전략도 늘 유사했다. 출시 초기에는 신제품 효과에 기대 보조금을 적게 준다. 이후 몇 달이 지나 다시 차기 신제품이 나오기 직전 보조금을 대폭 올려 구형 단말기 판매를 늘리는 이른바 ‘밀어내기’ 전략을 구사했다. 신제품 효과와 밀어내기 전략이 결합한 유통구조 속에서 외산 단말기가 설 자리는 없었다. 해외 업체들은 단말기에 그렇게 높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조금은 이통사와 제조사가 공동 부담했다. 보조금에 익숙해진 국내 소비자들은 시도때도 없이 단말기를 바꿨다. 대한민국의 단말기 교체주기는 1년6개월가량으로 세계에서 가장 짧다. 국내 휴대전화 시장은 연간 2000만대 규모로 결코 작은 시장이 아니다. 단말기 회전이 빠른 국내 시장에서 제조사들은 큰 이익을 얻었다.

이통사들은 새 단말기를 앞세워 가입자를 유치했다. 요금을 인하해 경쟁할 생각은 안 하고 새 단말기를 들여오는 데 관심이 더 컸다. 이통3사의 통신요금이 판에 박은 듯 똑같은 이유다.

단통법 시행으로 보조금 규모가 축소되면서 제조사와 이통사의 ‘혈맹’이 깨졌다. 이통사들이 수익 감소 등의 이유를 들어 보조금을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보조금 축소로 단말기 비용이 증가하자 이통시장 자체가 축소됐다. 위기의식을 느낀 이통사들은 제조사들이 단말기 출고가를 크게 낮추거나 보조금을 올리길 기대했지만 제조사들은 ‘응답’하지 않았다.

결국 삼성과 LG를 벗어나 단말기 공급원을 다변화하기로 했다. 이통사들의 ‘배신’이다. SK텔레콤은 TG앤컴퍼니와 손잡고 ‘루나’를 출시했다. LG유플러스는 Y6를 들여왔고, KT는 홍미노트3를 들여오려다 주춤한 상태다.

제조사 간 기술 격차가 줄어든 점도 주목해야 한다. 스마트폰 시장의 중저가화는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과거 개인컴퓨터(PC)의 경우도 출시 초기에는 엄청난 고가였지만, 대중화 단계에 접어든 이후로는 가격도 많이 내려가고 브랜드 간 격차도 사라졌다.

돌풍이 점점 커지다 ‘태풍’ 될 수도
‘손 안의 PC’로 불리는 스마트폰 시장도 같은 과정을 겪고 있다.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현명한’ 소비자들이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성향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중국산 저가폰 공세에 올해 국내 업체들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경우 시장이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삼성과 LG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저가 공세는 제조업계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통시장도 연초부터 알뜰폰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우체국 알뜰폰의 경우 올 들어 30여종의 온라인 전용 요금제를 추가한 이후 가입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의 알뜰폰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면 ‘가입 문의 폭주로 업무가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와 함께 ‘최대 일주일가량 가입절차가 지연될 수 있다’며 양해를 구하고 있다. 우체국 알뜰폰은 지난 4~7일간 3만2704명의 가입자를 새로 모집했다. 하루 평균 가입자는 8000명가량이다. 지난해 우체국 알뜰폰의 하루 평균 가입자 수는 550명 수준이었다. 새 요금제 출시 후 가입자 수가 15배가량 늘었다. 우체국 알뜰폰의 새 LTE 요금제를 보면 기본요금 월 3만9900원을 내면 음성, 문자,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 데이터는 기본 제공량인 10기가바이트(GB)를 다 사용하면 매일 2GB를 추가로 이용할 수 있다. 10% 부가세를 합쳐도 실납부요금은 월 4만3890원이다. 통상 6만원대인 기존 이동통신사들의 유사요금제보다 월 2만원가량 저렴하다.

기본요금 0원에 매월 50분 음성통화를 무료로 쓸 수 있는 요금제도 나왔다. 음성통화는 1초당 1.8원, 문자는 1건당 15~20원씩 요금을 내면 된다. 3G용으로는 기본요금 6000원에 음성 230분, 문자 100건, 데이터 500M를 주는 요금제도 나왔다. 새 요금제를 보고 LTE에서 3G로 돌아가는 소비자들도 나오고 있다.

우체국 알뜰폰의 흥행은 올해 통신요금에도 저가 바람이 거셀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단말기 보조금 대신 받을 수 있는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에 가입하는 소비자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 갈수록 싼 요금제를 찾는 소비자들의 움직임 속에 그간 기본료 폐지 등 직접적인 요금인하를 요구해온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도 보다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는 총선까지 앞두고 있어 정치권에서도 ‘통신요금 인하’ 공약이 쏟아질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다.

<송진식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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