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저비용항공사, 성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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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제주항공과 진에어 잇달아 어이없는 사고… ‘안전’에 불안감 커져

“아주 어이없는 사고지요. 뭔가 다들 나사가 빠진 것 같아요”

사고기를 특별점검한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거듭 한숨을 내쉬었다.

“기존에 있는 매뉴얼대로만 하면 전혀 문제가 없는 사안이더라구요. 기내압력조절장치(여압장치) 스위치를 켜지 않았고,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 않고 출발한 겁니다.”

지난해 12월 23일 오전. 김포를 떠나 제주로 향하던 제주항공 여객기 7C101편이 1만8000피트 상공에서 8000피트로 갑자기 급강하했다. 여압장치가 작동되지 않은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비행기 안과 외부의 기압을 맞추기 위해서는 고도를 낮춰야 한다. 비행기가 급강하하면서 압력이 갑자기 떨어지자 여객기 내부는 아수라장이 됐다.

150여명의 승객들은 심한 두통과 어지러움과 귀통증을 겪었고, 아이들은 자지러졌다. 산소마스크까지 작동되면서 승객들의 공포감은 극에 달했다. 마땅한 회항 장소를 찾지 못했던 비행기는 기수를 그대로 유지해 제주공항에 착륙했다. 이 사고의 여파로 제주항공의 다른 항공기까지 줄줄이 출발이 지연되면서 성탄절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

저비용항공사인 제주항공 여객기가 이륙하는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저비용항공사인 제주항공 여객기가 이륙하는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가파른 승객 증가… 인력과 시스템 한계
1월 3일 새벽 세부 막단 공항에서 출발해 김해공항으로 가던 진에어 여객기 LJ038편은 출입문이 꽉 닫히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벌어진 문틈 탓에 기압차가 생기자 기내는 엄청난 소음이 밀어닥쳤다. 승객들은 머리가 깨질 듯하고, 고막이 찢어질 듯한 통증을 느꼈다. 기장은 별도의 안내방송 없이 비행기를 급회항시켰다. 승객 160여명은 영문도 모른 채 극심한 불안감에 떨었다. 이 여객기에 탔다는 한 여성은 네이버 카페에 “이륙 후 10분쯤 지났을 때 아이들이 경기를 일으키며 소리지르고 울기 시작했고, 나도 귀가 찢어질 듯 아프더니 비행기가 좌우로 흔들리며 회항했다”면서 “아직도 심장이 덜덜 떨려서 잠을 못 자고 있다”고 밝혔다.

단순한 성장통일까, 구조적인 한계일까. 거칠 것 없이 비상하던 저비용항공사들이 ‘안전’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연말연시 제주항공과 진에어가 잇달아 사고를 일으키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인명사고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소한 사고’가 잇따라 일어나는 게 예사롭지 않아서다. 일각에서는 저비용항공사들이 단기간에 너무 빠른 성장을 하면서 예견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저비용항공사가 첫 출범한 때는 2003년 한성항공이었다. 한성항공은 문을 닫고 티웨이항공으로 간판을 바꿨지만 2005년 설립된 제주항공은 생존에 성공했다. 대형항공사들은 저비용항공사를 무시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2007년 아시아나가 자회사인 에어부산을 띄웠다. 다음해 대한항공까지 진에어를 설립하면서 저비용항공사 시장은 본격적으로 확대됐다. 최근 아시아나항공은 제2 저비용항공사인 ‘에어서울’ 면허를 획득했다. 조만간 저비용항공사는 여객기 시장에서 6개 항공사 체제로 재편될 예정이다.

잘나가던 저비용항공사, 성장통?

저비용항공사의 성장은 눈부시다. 지난해 11월 기준 5개 저비용항공사의 국내선 시장점유율은 56.3%로, 대형국적사인 대한한공과 아시아나를 이미 압도하고 있다. 저비용항공사들은 2014년 국내선 점유율 절반을 넘긴 뒤 더욱 가파르게 시장을 장악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5개 저비용항공사의 성장률은 23.5%에 달했다. 대한항공 등 대형항공사 성장률(5.8%)의 4배다.

저비용항공사들은 국제선 점유율도 빠른 속도로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16.2%로, 5년 전(5.1%)보다 점유율이 3배 이상 높아졌다. 저비용항공사들은 미주, 유럽 등 장거리 노선을 운항하지 않는다. 중국, 대만, 싱가포르, 필리핀 등 단거리 노선만 놓고 따진다면 저비용항공사는 이미 대형항공사를 압도하고 있다. 속속 취항지를 확대하면서 성장속도는 더 빨라졌다. 지난해 11월 2개 대형국적사들의 국제선 성장률은 10.3%이지만 5개 저비용항공사는 54.6%다. 진에어(71.2%), 이스타항공(65.9%), 제주항공(58.4%) 등은 성큼성큼 해외여행객들을 늘려가고 있다.

국내 별도 항공사 정비업체 육성 시급
불안감은 여기서 불거졌다. 승객 증가가 너무 가파르다 보니 인력과 시스템이 따라가기 버겁게 된 것이다. 운용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의미다. 통상 비행기 사고는 항공사가 급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많이 발생한다. 정비불량이나 운항 준비 소홀 등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항공의 경우 2005년 보유항공기는 1대였지만 지금은 22대로 늘어났다. 덩치가 커졌다고 인력이나 조직, 시설을 팍팍 늘릴 수 없다는 게 저비용항공사의 고민이다. 유지비용이 늘어나면 저가항공권을 내놓을 수 없다. 그러다 보면 과부하가 걸린다.

잘나가던 저비용항공사, 성장통?

비용 절감을 위해 저비용항공사는 중고비행기를 리스 형태로 주로 들여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저비용항공사의 평균 기체 연령(기령)은 제주항공 11.5년, 에어부산 14.9년, 이스타항공 14.5년, 진에어 11.8년이다. 평균 10년 미만인 대형항공사와 대조된다. 그런 만큼 정비시설이 중요하지만, 저비용항공사 중에서 자체 정비시설을 갖고 있는 곳은 없다. 중요한 정비는 모두 외부에 맡긴다. 국내에는 정비업체가 없어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호주 등에서 정비를 한다. 에어부산과 진에어 정도가 일부 항공기에 한해 모회사인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의 정비시설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체 중에는 대한항공이 외부 항공사의 비행기를 정비할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외부항공사 정비는 하지 않는다. 대한항공 자체 항공기 정비만 해도 버겁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정비를 한 항공기가 사고를 났을 경우 책임소재 부담 때문에 외부 개방을 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에 항공정비업 진출을 의사타진했는데 안 하더라”며 “국내에 별도의 항공사 정비업체를 육성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국내에 항공정비업체가 없는 것은 시장이 좁기 때문이다. 양대 대형항공사가 자체 정비시설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국내 저비용항공사 항공기 60여대만으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반면 중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은 에어아시아 같은 저가항공사가 난립하고 있어 항공정비산업(MRO)의 시장성이 있다. 일부 민간사에서 인천공항의 일부 부지를 확보해 격납고를 짓고 항공정비시설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운영은 2018년 이후가 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항공사고는 항공사가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인력이나 시설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항공산업은 사고가 나면 한번에 무너지는 모래성 같다는 점에서 정부 정책도 이제는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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