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소비가 착한 기업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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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준법과 환경 등 공익적 가치 따져… 기업, 제품 중량 늘리고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

기업들이 착해지고 있다. 이윤 추구가 주목적인 기업들이 최근 원가 부담에도 불구하고 제품 중량을 늘리고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과거에는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하면 좋은 기업으로 평가받았지만, 요즘에는 거의 모든 경영활동에서 윤리와 책임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제품의 품질과 가격을 중요한 구매기준으로 삼았던 소비자들이 준법과 환경 등 공익적 가치를 따지기 시작하면서 찾아온 변화다. ‘착한 소비’가 뜨면서 ‘착한 기업’도 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제과업체 오리온이 2014년 9월부터 진행 중인 ‘착한 포장’ 프로젝트다. 오리온은 그해 11월 ‘마켓오 리얼브라우니’를 시작으로 ‘눈을감자’ ‘고래밥’ ‘와우껌’ 등을 가격 변동 없이 증량했다. 지난해 9월에는 오리온 전체 매출의 18%를 차지할 만큼 효자상품인 ‘포카칩’ 중량을 10% 늘렸다. 한 달 후에는 ‘초코파이 정(情)’ 중량도 11.4% 늘렸다. 현재까지 제품 중량을 늘린 제품은 9개에 이른다.

임직원이 학교에 찾아가 직업 강연을 하는 아시아나항공의 ‘색동나래교실’./ 아시아나 제공

임직원이 학교에 찾아가 직업 강연을 하는 아시아나항공의 ‘색동나래교실’./ 아시아나 제공

오리온, 포카칩·초코파이 등 중량 늘려
포장지 개선작업도 벌이고 있다. 오리온은 프로젝트를 시작하자마자 21개 제품 포장재 규격을 축소한 데 이어 포장재를 인쇄하고 접착할 때 사용하는 유해화학물질을 친환경·친인체 물질로 대체했다. 과자의 주소비층이 어린이라는 점을 고려해 인체에 무해한 포장재를 개발하는 그린포장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오리온 관계자는 “올해에도 주요 제품을 대상으로 증량과 포장재 개선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리온의 체질개선 작업은 소비자 불만이 기폭제가 됐다. 약 2년 전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 국내 제과업계는 내용물에 비해 포장지 부피가 지나치게 크다는 ‘과대포장’ 논란에 휩싸여 있었다. 대학생들이 질소 충전된 과자봉지를 엮은 뗏목을 만들어 한강을 건넜으며,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따라왔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국내 과자를 외면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수입과자 전문점들은 우후죽순 들어섰다. 착한 포장 프로젝트는 ‘질소과자’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오리온이 선택한 정면돌파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겨우 10% 늘리고 생색을 낸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많았지만, 회가 거듭되면서 진정성을 인정받고 있다. 포카칩과 초코파이는 증량 이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씩 증가했다. 롯데제과와 해태제과도 각각 ‘초코파이’와 ‘자일리톨 껌’, ‘구운양파’ 중량을 늘리는 등 착한 포장 움직임은 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오뚜기도 최근 전체 직원 3300여명 중 비정규직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착한 기업 반열에 올랐다. 일반적으로 대형마트 시식사원들은 외부업체에서 파견된 인력이지만, 오뚜기 제품을 홍보하는 시식사원 1800여명은 모두 정규직이다.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제부터 우리집 라면은 오뚜기다” “착한 기업이 돈도 잘 벌어야 한다” 등의 글을 남기고 있다.

양을 늘린 오리온 포카칩(위)과 미담 주인공에게 패딩 점퍼를 선물하는 네파의 캠페인.<br />/ 오리온 제공

양을 늘린 오리온 포카칩(위)과 미담 주인공에게 패딩 점퍼를 선물하는 네파의 캠페인.
/ 오리온 제공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정보분석기업 닐슨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기업 사회공헌활동에 관한 글로벌 소비자 보고서’를 보면, 국내 소비자 중 58%가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기업 제품이라면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2014년 조사에서는 같은 질문에 46%가 ‘그렇다’고 답했다. 1년 사이에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사회공헌활동을 많이 하는 착한 기업 제품을 구입하겠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착한 기업이 대세다. 해외 소비자 가운데 66%가 착한 기업 제품이라면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2014년 조사 때보다 11%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이 조사는 전 세계 60개국 3만명 이상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한국 응답자는 507명이었다.

특히 앞으로 소비시장을 주도할 젊은 세대들이 착한 기업 제품을 선호했다. 같은 질문에 대한 세대별 응답률을 보면 만 21~34세가 73%로 가장 높았다. 이어 만 15~20세와 만 35~49세는 각각 72%, 62%였지만 만 50~64세와 만 65세 이상에서는 각각 51%, 41%에 그쳤다.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도 진화하고 있다. 성금을 모아 기부를 하거나 임직원들이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일회성 행사에서 벗어나 기업의 핵심 가치와 특성을 연결짓는 지속가능한 활동으로 바뀌고 있다.

/ 네파 제공

/ 네파 제공

네파, 미담 주인공들에게 패딩 선물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는 지난해 9월부터 100일간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어준 미담 주인공들에게 패딩점퍼를 선물하는 ‘따뜻한 세상’ 캠페인을 진행했다. 따뜻한 패딩 주인공 중에는 계곡에 빠진 두 남녀를 구하고 목숨을 잃은 고 이혜경씨 가족,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씨, 백혈병에 걸린 친구를 돕기 위해 7년간 길러온 머리카락을 잘라 기부한 지희원양 등이 있었다. 아웃도어가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제품이라는 점에 착안해 마음까지 따뜻하게 지켜준다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캠페인이다. 네파는 올해에도 따뜻한 세상 캠페인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소비자들에게 소비할 명분을 주는 코즈마케팅(Cause Marketing)도 줄을 잇고 있다. 소비자들은 따로 돈을 내지 않아도 기부활동에 참여해 의미있고, 기업 입장에서는 선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GS숍은 방송과 모바일·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키트와 ‘몸짱소방관 달력’ 등을 판매했다.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는 저체온증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영·유아를 살리기 위해 털모자를 만들어 보내는 프로젝트다. 몸짱소방관 달력은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저소득층 화상환자를 돕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GS샵은 각각 모자뜨기 키트 제작·판매 및 발송비 후원, 달력 제작비 지원과 판매를 맡았다. 판매수익은 전액 기부한다.

변신로봇 장난감 ‘터닝메카드’의 유통을 맡고 있는 완구전문기업 손오공은 ‘놀이터를 지켜라’ 캠페인을 후원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세이브더칠드런이 아이들을 위해 놀이터를 짓거나 개선해주기 위해 진행 중이다. 지난달 한 달간 터닝메카드 3종(메가테릭스·메가스파이더·메가드래곤) 판매금액의 1%를 적립해 기부했다. 이마트도 지난달 소비자들이 내복 1벌을 구입하면 1벌을 기부하는 행사를 진행해 8만벌을 저소득층과 독거노인들에게 기부했다.

비용을 직접 내놓기보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전문인력을 활용하는 프로보노(pro bono) 형태도 많다. 아시아나항공은 조종사나 승무원 등 임직원들이 학교에 직접 찾아가 청소년들에게 직업 강연을 하는 ‘색동나래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2013년 시작해 현재 전국 530여개 중·고등학교, 10만5000여명의 학생들에게 항공 관련 진로탐색의 기회를 제공했다. 롯데홈쇼핑은 중소기업유통센터와 연계해 중소기업 제품의 무료방송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임직원들의 봉사활동 시간도 길어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간한 ‘2015년 주요 기업·기업재단 사회공헌백서’에 따르면, 2006년 7시간이었던 연간 1인당 평균 봉사시간이 2014년에는 17시간으로 2.5배가량 증가했다. 임직원의 평균 봉사활동 참여율이 50%가 넘는 기업도 52.7%나 됐다. 사회공헌활동의 진정성과 필요성에 대한 임직원들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고 전경련은 분석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최근에는 사회공헌활동도 주요 경영활동 중 하나로 보는 시각이 많다”며 “소비자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기업이나 브랜드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성희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mong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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