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7> 왜 SF처럼 생긴 판타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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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에서 <스타워즈>가 (일부 비평가들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팬들의 환대를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대체 어떤 매력이 있기에? 필자는 이 영화가 무엇보다 보수적 가치(질서)에 대한 낭만적인 향수 내지 회귀심리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라 본다.

해외의 <스타워즈 7> 인기몰이는 지난 속편들에 못지않은 듯하다. 지난 12월 24일 영국의 <가디언> 기사는 그러한 열풍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혹평한 일부 비평가들에게 스타워즈 광팬들이 일제히 독설이 가득한 메일폭탄을 보내자 그 중 한 비평가가 공개서한을 통해 항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광팬들의 이메일은 “나가 죽어버리고 우리는 냅둬!” 식이었던 터라 감정이 상한 그 평론가는 비판적인 평 몇 개 나왔다고 다음 속편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되느냐며 맞받아쳤다. 놀랄 일은 아니다. <스타워즈>의 뜨거운 팬덤은 미국만이 아니라 해외 많은 나라들에서 예전부터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이번에 가장 지독한 독설을 퍼부은 팬은 미국인이 아니라 캐나다인이었단다.)

필자가 이번에 새삼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우리나라 팬덤의 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스타워즈>가 시대정신과 동떨어진 시대착오적인 오락물이라는 투의 악평이 일부 평론가들에 의해 쓰여졌는데, 이에 대한 팬들의 감정적인 반발이 SNS를 통해 즉각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온 것이다. 아니, 한국에 언제 이렇게 스타워즈 팬덤이 튼실해졌을까? 필자가 중학생 시절 <스타워즈> 오리지널 1편(나중에 다시 정리된 족보상으로는 <에피소드 4>)을 보러 영화관 매표구 앞에 줄을 섰을 때만 해도 사정이 딱했다. SF라 하면 어린이가 한때 접하는 콘텐츠 정도로 인식되던 시절, 비주류 하위문화 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익히 알고 있던 필자는 당시 국내 개봉 소식을 듣기 무섭게 부랴부랴 영화관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금방 영화를 내릴까봐 걱정이 되었던 게다.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는 ‘선악의 이분법’에 충실하며 ‘선’을 좋았던 과거 시절의 복원으로 본다는 점에서 판타지에 가깝다. 사진은 영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는 ‘선악의 이분법’에 충실하며 ‘선’을 좋았던 과거 시절의 복원으로 본다는 점에서 판타지에 가깝다. 사진은 영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아니나 다를까. 미국과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에피소드 4>이건만 우리나라 극장가에서는 이렇다 할 트림 한 번 내지 못하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이후 속편들이 연이어 해외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나 한 번 덴 기억이 있는 영화업계는 제때 수입할 엄두를 내지 않았다. 한참 세월이 흘러 추억의 영화처럼 찔끔찔끔 개봉되었지만 역시 대중의 무관심 속에 체면만 구겼다. 그나마 이 시리즈가 대중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새로운 3부작(<에피소드 1~3>)이 적극적인 마케팅을 벌이면서부터다. 하지만 이번 <스타워즈 7>은 벌써 국내 관객 250만명을 넘어섰으며 일부 열혈 팬들의 임전무퇴(?) 태세로 보건대 가장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국내외에서 <스타워즈>가 (일부 비평가들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팬들의 환대를 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대체 어떤 매력이 있기에? 평론가와 영화팬들마다 각기 다양한 답을 내놓겠지만, 필자는 이 영화가 무엇보다 보수적 가치(질서)에 대한 낭만적인 향수 내지 회귀심리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고? 영구집권을 도모하는 악의 세력의 전진기지 ‘스타킬러’ 행성을 혁명군이 초공간 점프가 가능한 워프 전투기 편대를 몰고 가 초토화시키는 이야기가 보수적이라고?

그렇다. 보수적이다. 이 프랜차이즈물은 ‘제국’이란 체제는 무조건 악하고 ‘혁명군’이라 이름 붙여진 반체제는 무조건 선하다는 이분법적 도식 아래 어떤 역경을 겪든지 간에 결국 선이 악을 이긴다는 결정론에서 한 치도 벗어난 적이 없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관객이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게 주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는 정형화되고 사건은 단선적으로 흐른다. 그래도 무슨 소리인지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좋다. 그럼 <스타워즈 7>을 포함해서 이 연작물에 내포된 주요한 기본 속성 두 가지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로 하자.

1. <스타워즈>는 신화적 서사 형식을 띠고 있으며, 새로운 ‘세상의 변혁’보다는 ‘좋았던 과거’의 복원을 갈망한다.
조지 루카스는 기본 세계관의 설정에서 미국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 결과 주인공이 본래 자신의 고귀한 자질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향을 떠나 고난 어린 모험 끝에 자신의 힘을 충분히 각성하여 세상을 구하고 화려하게 돌아오는 영웅상이 완성된다. <에피소드 4~6>에서의 루크와 <에피소드 1~3>에서의 아나킨이 그러했고, <에피소드 7>에서는 레이와 카일로 렌이 이제 막 바통을 이어받은 참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루크와 레이는 선의 영웅을, 아나킨과 카일로는 악의 영웅을 추구할 따름이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대의(大義) 역시 고색창연하다. 공화제를 붕괴시키고 독재자가 전횡을 일삼는 신생 제국에 맞선 저항연합세력의 영웅적인 투쟁은 고대 서사시들에서 수도 없이 반복된 패턴을 답습하며 단지 배경만 우주로 바꾸어 놓은 듯하다. 이른바 ‘잃어버린 황금시대’로의 귀환이다. 스페이스오페라의 단골인 이국적인 외계인들과 인간의 수발을 드는 로봇들, 그리고 위풍당당한 우주전함들이 수시로 고개를 내밀지만 왠지 설정 하나하나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인상을 준다. 대체 엑스윙 전투기의 파일럿들은 왜 로데오 시합장에서 소몰이하는 카우보이들처럼 구는 걸까. 작은 도시만한 우주전함이 등장하는 시대에 왜 검을 휘두르는 영웅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이처럼 신화적 서사를 충실하게 따르다 보니 <스타워즈>는 시각적으로는 SF의 탈을 쓰고 있지만 본질은 오히려 판타지에 더 가까운 이율배반적인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SF영화의 뿌리이자 곧잘 영감을 주는 원천 콘텐츠인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은 ‘변화의 문학’이라 일컬어진다. 이유는 명쾌하다. 과학소설은 과학기술이 사회와 문명, 그리고 나아가서는 인간 자신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를 살피는 ‘가치전복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핵무기와 인공지능을 만들어낸 인류는 그로 인해 이전과는 모든 것이 180도 달라진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만일 외계인과 만나거나 타임머신을 발명한다면 그러한 사건들이 몰고올 변화의 충격은 훨씬 더 엄청날 것이다. 이제까지 알고 있던 질서(견고한 인식체계)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될 수 있음을 그럴 듯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과학소설을 포함한 SF 콘텐츠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방향 아니던가.

반면 판타지는 과거의 질서를 다시 복원시키려는 소망이 담긴 이야기(literature of longing)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해리 포터 시리즈>를 떠올려 보라. 프로도 일행은 사우론의 세력을 물리치고 세상을 다시 좋았던 예전의 황금시대로 되돌리고자 하며, 해리 포터는 볼드모트의 마수를 물리치고 부모의 유지를 지켜내려 한다. 한마디로 판타지는 내일의 세계보다는 과거의 세계를 다시 복구하는 데 온힘을 기울인다. 판타지에서 구체제는 언제나 아름답기에 변혁의 대상이 아니다. 만일 혁명이 화두로 등장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구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 (추악한) 신체제를 다시 전복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쓰이기 위해서일 뿐이다.

<스타워즈>가 바로 좋은 예다. 펠퍼타인이 은하제국 황제로 즉위하기 이전의 공화국 세계는 다양한 여러 종족들 간에 다소 의견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런대로 조화와 균형이 작동되는, 느슨한 정치연합체로 그려진다. 원래 <스타워즈>가 진정한 SF의 틀을 고집하고 싶었다면 기본세계관부터 출발이 달랐어야 한다. 하지만 조지 루카스는 오리지널 1편(<에피소드 4>) 개봉 당시 이미 “이 영화는 SF가 아니라 일종의 판타지로 봐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 시리즈의 총기획자는 <스타워즈>가 내일의 변화를 그리는 대신 ‘과거로 되돌리고자 하는 소망’(좋았던 시절)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검증된 과거는 안전하고 불확실한 미래는 위협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이 혁명군과 퍼스트 오더에 적용되었다. 이처럼 안정지향적인 보수 이데올로기는 판타지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의 크나 큰 환영을 받았다. 한마디로 말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다. <스타워즈>팬이 반드시 SF팬이란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힌트가 된다.

영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2. <스타워즈>의 정치학은 반민주적인 데다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다.
왜 혁명군의 의사결정은 툭하면 주먹구구로 처리되며 전권은 극소수 몇 명에게만 맡겨지는가? 그로 인한 결과를 보라. 은하제국이 더욱 강대한 위력을 과시하는 퍼스트 오더로 업그레이드되는 지난 20여년간 혁명군 지도자들은 뜨개질이나 하고 있었는지 여전히 엑스윙 전투기 편대에만 의지해 압도적으로 불리한 전황을 풀어나간다. 매편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며 요행수나 바라고 있으니 차라리 그동안 군자금 마련을 위해 로또라도 사 모으는 편이 나았을지 모르겠다. 날로 군사력이 현대화·비대화되는 제국군과 달리 혁명군은 마치 정지화면이 풀리자 그제야 비로소 다시 걷기 시작한 무리 같다.

이렇게 무능한데도 불구하고 끼리끼리만 알아주는 혈통주의는 여전히 강고하다. <스타워즈 7>에서 악의 세력 ‘퍼스트 오더’와 혁명군은 ‘최후의 제다이’ 루크 스카이워커를 서로 먼저 찾아내려 혈안이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은거 중인 루크를 만나러 가는 혁명군의 사절은 왜 하필 느닷없이 전쟁 막판에 굴러들어온 신참 ‘레이’여야 할까? 제다이 잠재능력자여서? 더 노골적으로 말해 루크의 조카여서? (아직 대놓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레이는 한 솔로와 레이아 공주가 낳은 쌍둥이 남매 중 하나로 추정된다.) 대체 <스타워즈>는 제다이를 위한 이야기인가, 아니면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다이의 이야기인가.

이 때문에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앞서 말했듯이 SF라기보다는 판타지와 더 궁합이 맞아 보인다. SF에서 주인공은 주변 환경에서 지식을 얻고 나름의 노력을 통해 변화에 적응하는 데 비해, 판타지에서 주인공은 육체적·정신적으로 스스로 자기계발하기보다는 신이나 정령 또는 고귀한 존재로부터의 ‘선택받은 자’이기에 대단한 능력을 거저 얻는 경우가 적지 않다. 루크와 아나킨, 그리고 레이와 카일로 렌의 가계도처럼 말이다. 주요 인물의 성격도 비교적 단선적이라는 점에서 판타지 정서에 더 가깝다. SF는 (겉보기에 미래의 삶을 그리는 듯하지만) 현실의 삶을 지향하고 판타지는 (허구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해도) 인간 내면의 삶을 진실되게 투영하려 한다. 그렇다 보니 판타지의 등장인물들은 SF의 등장인물들보다 선악의 이분법에 훨씬 더 강렬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스타워즈> 또한 이야기 형식에 맞게 캐릭터들도 최적화되었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SF 골수팬은 <스타워즈>에서 다소 아쉬움을 느낄지 모르겠다. 미국에서도 종종 <스타워즈>는 불특정 시공간 궁정사극의 SF버전이라 할 ‘루리타니아 스페이스오페라’의 플롯을 살짝 변주한 데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다. 미국의 저명한 SF작가 새뮤얼 R 딜레이니의 이번 <스타워즈 7> 평에서도 보듯이, 속편이 나올 때마다 시장의 폭발적인 반응과는 별개로 SF가 추구하는 경이감과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새로움을 더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평론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스타워즈> 팬이라면 삐딱한 소수 평론가들에 대한 격한 반응에서 보듯 이 영화를 생긴 그대로 받아들이며 기뻐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SF면 어떻고 판타지면 또 어떠랴. <스타워즈>의 기획의도가 어차피 어떤 장르적 틀에 연연하지 않는 엔터테인먼트 프랜차이즈물이었음을 감안할 때, 평론가들이 텍스트 해석에 저마다 너무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거나 맞지도 않는 시대정신으로 견강부회하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질문 하나는 감독에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카일로 렌은 화상 흔적 하나 없이 준수한 얼굴인데, 어째서 다스 베이더 짝퉁 가면을 쓰고 있는 거요? 카일로가 베이더 광팬이라 단지 코스프레 하느라고? 아니면 기계음으로 변조된 목소리로 기선을 잡으려고?

사족 한마디. <스타워즈>에서 과학적 논리는 너무 따지지 않기 바란다. 예컨대 ‘스타킬러’처럼 지구만한 행성이 아무 항성계나 들어가 나돌아다니면 다른 행성들의 궤도가 영향 받아 대재앙을 일으킬 우려가 높아진다. 굳이 슈퍼울트라급 레이저로 공화국 행성을 터뜨리는 퍼포먼스를 벌이지 않아도 행성과 행성 사이의 공간을 유유히 돌아다니며 궤도에 중력간섭을 일으키기만 해도 행성들끼리 서로 들이받거나 행성이 태양으로 돌진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아울러 스타킬러 행성이 항성 간 공간을 초광속으로 이동한다 해도 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일정하지 않으면 단지 표토가 눈과 얼음으로 덮이는 데 그치지 않고 침엽수 산림 따위는 일절 존재할 수 없는 불모의 세계가 될 것이다.

<고장원·SF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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