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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사건… 의혹만 더 키운 ‘성완종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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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흐지부지로 끝나 초대형 비리게이트 조짐이 ‘개인적 일탈’로 축소

“불법 대선자금은 없다.” 지난 7월 2일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 착수한 지 81일 만에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성 전 경남기업 회장의 불법 대선자금 의혹과 특별사면 로비 의혹은 사실무근으로 결론내려졌다.

4월 9일 성완종 전 회장은 메모를 남기고 자살했다. 성 전 회장은 해외자원개발 비리 혐의자로 지목됐다. 3월 18일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경남기업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됐다. 기자회견을 통해 결백을 주장했던 성 전 회장은 4월 9일 북한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에는 여권 인사 8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허태열, 유정복, 홍문종, 홍준표, 부산시장, 김기춘, 이병기, 이완구. 현 정권의 최고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1대, 2대, 3대 비서실장과 현직 총리, 그리고 친박 실세들의 이름이 나열됐다. 이름 옆에는 각각 7억, 3억, 2억, 1억, 2억, 10만 달러의 금액이 적혀 있었다. 당장 리스트에 적힌 숫자가 박근혜 대통령과 연결된 불법대선자금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성 전 회장도 <경향신문>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불법대선자금을 언급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대선 때도 우리 홍문종 같은 경우가 본부장을 맡았잖아요. 통합하고 같이 매일 움직이고 뛰고, 그렇게 하는 데 제가 한 2억 정도 줘서, 조직을 관리하니까”라며 “이 사람(홍문종)도 자기가 썼겠습니까. 대통령 선거에 썼지. 개인적으로 먹을 사람은 아니잖습니까”라고 말했다.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선대위에서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은 박근혜 캠프의 핵심 인사였다. 성 전 회장의 말대로라면 홍 의원은 회계처리를 하지 않고, 불법정치자금을 받아 박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사용한 셈이다.

[표지이야기]올해의 사건… 의혹만 더 키운 ‘성완종 리스트’

들통난 거짓 해명, 논란 증폭시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이름도 대선불법자금 의혹을 짙게 했다. 김 전 실장에 대한 의혹은 17대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메모에는 ‘김기춘’이라는 이름 옆에 ‘10만불 2006. 9. 26 독일 베를린’이라고 쓰여 있었다.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6년 9월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만나러 독일을 갈 때 박근혜 대통령을 수행했던 김 전 실장에게 10만 달러를 미화로 바꿔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김기춘 전 실장은 이에 대해 해명했지만 곧 거짓 해명으로 들통나 논란을 증폭시켰다. 김 전 실장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가 “착각을 한 것 같다”며 이를 번복했다.

허태열 전 실장도 17대 대선자금 의혹에 연루됐다. 허 실장의 이름 옆에 7억원이라는 금액이 적시돼 있었다. 성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2007년 당시 허 본부장을 강남 리베라호텔에서 만나 7억원을 서너 차례 나눠 현금으로 줬다. 돈은 심부름한 사람이 갖고 가고 내가 직접 주었다”고 말하며 “그렇게 경선을 치른 것”이라고 말했다.

메모에 등장한 유정복 인천시장과 서병수 부산시장은 성 전 회장 인터뷰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성 전 회장이 지니고 있던 메모에 기록된 ‘유정복 3억’ ‘부산시장 2억’이라는 내용이 전부다. 그러나 유정복 시장과 서병수 시장은 2012년 새누리당 대선 캠프에서 각각 직능총괄본부장과 당무조정본부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성 전 회장이 이들에게 돈을 준 게 사실이라면 대선자금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서병수 시장의 경우는 10차례 만났다고 쓴 성 전 회장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 시장과 서 시장은 당시 의혹을 일절 부인했다.

권력 실세들의 이름과 구체적인 액수와 정황으로 성완종 리스트가 불법대선자금 게이트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됐지만, 지난 7월 2일 검찰은 2012년 대선과의 관련성이 없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불법대선자금 의혹을 일축했다. 메모에 등장한 8인 중 6인은 증거 부족 또는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되고,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1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1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메모에 등장 8명 중 6명은 불기소 처리
이완구 전 총리는 2013년 4월 재·보궐을 앞두고 성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재판 중이다.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총리에게 ‘비타 500’ 상자에 든 3000만원을 건네주고 왔다고 전했다. 당시 이 전 총리는 선거사무소에서 독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당시 이 총리와 성 전 회장이 만났을 것이라는 이 총리 전 운전기사의 진술이 나왔다. 그 과정에서 이 총리 측이 운전기사를 회유하려는 정황까지 언론 보도를 통해 밝혀지면서 이 전 총리가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과 함께 의혹이 깊어졌다. 여론이 악화되자 이 전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가 폭로된 지 18일 만인 4월 27일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이 전 총리의 재판은 현재까지 다섯 차례 진행됐고, 당시 선거캠프 관계자들에 대한 심문이 이어지고 있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성 전 회장으로부터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당시 1억원을 건네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성 전 회장은 홍 지사에게 1억원을 줬다고 증언했고, 이를 전달했다는 윤승모 전 특보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윤 전 특보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0년 홍준표 의원 특보였고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지냈다. 반면 홍준표 지사는 배달사고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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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지사의 주장대로 배달사고라면 윤 전 특보에게 혐의가 돌아가게 되는데, 윤 전 특보 측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배달사고의 가능성을 극구 부인했다. 홍 지사의 재판은 내년 1월에 시작될 예정이며, 재판은 윤 전 특보와 홍 지사의 싸움이 주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불법대선자금 의혹, 초대형 권력비리 게이트로 여론의 맹비난을 받았던 ‘성완종 리스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완구 전 총리,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개인적 일탈’로 축소됐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 특별수사팀이 출범할 당시 문무일 수사팀장은 “좌고우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사 시작부터 제대로 된 압수수색이나 계좌추적 없이 서면조사만 이뤄지는 등 수사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권력실세보다는 사건의 핵심에서 벗어나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관련 의혹에만 수사의 초점을 맞춰 수사 결과 발표자료 11페이지 중 4페이지가 ‘노 전 대통령 특별사면’ 의혹에 할애될 정도였다. 성 전 회장의 리스트가 밝혀지면서 리스트가 정치권의 살생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수사 의지 없는 검찰의 용두사미 수사로 리스트의 진실은 여전히 의혹 속에 남았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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