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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중도 생각’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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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실험들 성과 못 냈지만 현재 입지 나쁘지 않아 승부해볼 만

중도의 길은 실험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표방할 노선을 두고 안 의원 측 진영 안팎에서는 ‘중도+개혁’ 노선 지향이 선명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미 12월 13일 탈당 기자회견에서 “새누리당 세력의 확장을 막겠다”며 새누리당과 보수 노선에 대해서도 경계선을 그은 안 의원은 새정치연합에 대해서도 ‘낡은 진보’라며 여러 차례 거리 두기를 한 바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을 좌우에 둔 중간의 제3 지대에 정착하겠다는 의지가 앞으로 신당 창당과 총선 대비 과정에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합리적 보수세력과 연대 가능성 시사
안 의원은 탈당 후 부산·광주지역 등 지역 민심에 촉각을 기울이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야권의 외연을 넓히겠다며 합리적 보수세력과의 연대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은 지역 행보에서도 이어졌다. “새정치연합은 평생 야당만 하기로 작정한 당”이라며 떠나온 새정치연합과의 노선 차이를 부각한 발언과는 상반된 태도다. 안 의원이 밝힌 자신의 ‘새정치’ 구상 발언에는 합리적 보수 포용을 포함해 공정성장론 등 좌우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는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안 의원 측의 한 인사도 “2012년 대선을 준비할 때도 안 의원은 합리적인 보수 인사 영입에 적잖은 노력을 쏟았다”며 “20대 총선에서 야권 전체의 성적을 높이려면 보수 쪽으로도 넓게 연대할 부분을 찾아야 한다는 전략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보수나 진보의 선명성에 갇혀 있지 않고 폭넓은 중도노선을 선보이겠다며 나섰던 과거의 다른 실험들이 결과적으로 썩 좋지만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가깝게는 2012년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등이 보수진영과 중도 성향의 인사들을 규합해 19대 총선을 앞두고 창당한 ‘국민생각’을 들 수 있다. 박세일 이사장과 전여옥 전 의원 등 보수인사들이 보수 색채를 지우고 ‘중도’ 노선을 강하게 천명하며 나섰지만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에서 의석 획득에 실패했다. 정당지지율 득표에서도 0.73%만을 얻어 등록취소 요건인 2%에 미달해 정당 등록이 취소됐다. 이후 국민생각에 참여했던 전직 국회의원 등 대부분의 인사들은 선진통일당에 입당한 바 있다.

안철수 의원이 12월 14일 서울 노원구의 한 경로당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안철수 의원이 12월 14일 서울 노원구의 한 경로당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17대 대선을 앞둔 2007년 2월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였던 김한길 의원을 비롯한 23명의 의원들이 탈당한 후 구성한 원내교섭단체 중도개혁통합신당추진모임의 수명도 길지 못했다. 4월 국민중심당에 있던 신국환 의원 등과 함께 중도개혁통합신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이탈자가 발생해 교섭단체 선인 20석이 위협받기도 했으나, 이후 옛 새천년민주당을 계승한 민주당과의 추가 합당을 거쳐 중도노선을 표방하는 유일한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잇따른 내홍으로 창당 중심세력인 김한길계 의원들이 다시 탈당해 8월 열린우리당과 다시 합당하며 대통합민주신당을 만들면서 중도지대를 장악하려는 시도는 아무런 정치적 성과도 없이 흐지부지되기도 했다.

여야 양쪽에 ‘적지 않은 위협’ 분석도
안 의원의 탈당 이후 오르고 있는 지지율과 비견될 만한 인물은 1992년 14대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에서 나와 신정치개혁당을 창당해 대선 득표율 4위를 기록했던 박찬종 변호사를 들 수 있다. 당시 박 후보는 자신이 출연한 광고 문구로 쓰이던 ‘무균질’ 구호를 차용해 유권자들에게 신선한 이미지를 각인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1995년 자신의 정치적 명운이 좌우된 서울시장 선거에서 초반 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새정치국민회의의 지원에 힘입은 조순 후보에게 패배한 뒤 다시 여당인 신한국당으로 돌아가고 만다. 거대 양당 사이에서 중도 색채를 내세운 정치실험이 가시적 성과 없이 종료된 것이다.

안 의원을 둘러싼 정치권 인사들은 과거의 중도 지향 정당이나 인사들과 비교할 때 안 의원의 현재 처한 입지가 나쁘지만은 않다고 분석한다. 탈당 후 오르고 있는 지지율이나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어느 정치인과도 맞설 만한 인지도 덕에 중도노선을 내건 시도가 쉽게 좌절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과거 안 의원의 멘토 역할을 했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새누리당이 오른쪽으로, 새정치연합은 왼쪽으로 가고 있어 그 중간밖에 열려 있지 않으니 중도를 내걸 것은 자명하다”며 “중도의 입장에서 이념에 매몰되지 않으며 실사구시 정책의 모습으로 승부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의 중도노선은 새정치연합은 물론 새누리당에도 적지 않은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새정치연합의 경우 당내 계파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봉합하는 수준으로 총선을 맞게 되면 지지층의 일부가 안 의원 쪽으로 쏠릴 수 있다. 조정관 전남대 교수는 “(안 의원이) 지금의 정치현실 속에서 기존 정파 대결을 뛰어넘을 수 있는 광범위한 연대가 있어야 야권이 이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본인의 역할을 강조하는 듯하다”며 “새정치연합은 총선에서 표심을 생각하면 계속 왼쪽으로만 갈 수도 없기 때문에 고심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새누리당에서도 안 의원 쪽으로 움직이는 보수표의 행방을 잘 쫓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권성동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은 “지금은 우리(새누리당)가 우리 갈 길을 가야 한다”면서도 “우리 당 지지자 중에 보수 쪽은 아예 움직이지 않겠지만 중도층은 이동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도 “중도 성향의 유권자 표를 흡수해갈 수 있기 때문에 새누리당도 예상치 못한 총선의 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후보 개인의 영향력이 커 후보별 노선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대선에 비해 총선에서는 이념 노선에 우선하는 변수가 많아 안 의원과 중도 실험의 성공을 쉽게 점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안 의원이 호남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는 하지만 호남 민심의 특성상 야당이 갈라질 경우에는 보다 현실적으로 기존 야당을 선택하는 경향이 되풀이되었다”면서 “부동층에서도 안 의원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유통기한이 지났기 때문에 결국 시간이 흘러 총선이 다가올수록 제1야당에 미칠 영향은 적어질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고 평가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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