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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차’ 제네시스, 넌 어떤 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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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디자인 비싼 부품으로 명차되나…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자신만의 색깔 보여줘야

평지에서 쾌속 주행으로 승승장구해온 현대자동차 앞에 험로가 나타났다. 세계 5위 완성차 업체로 성장했고, 제네시스로 고급차에까지 도전장을 던진 마당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당장 모습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좀처럼 선진 업체를 추월하지 못하고, 중국 업체가 무섭게 쫓아오는 현실을 냉정히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전기차 시대로 대전환이 이뤄질 경우 시장 판도가 순식간에 뒤바뀔 수 있다. <주간경향>이 자동차 전문가와 소비자에게 제네시스 고급화의 의미와 몇 가지 과제를 물어봤다. 현대차로서는 잔칫상에 재 뿌리는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급출발에 앞서 목전에 놓인 적잖은 턱들을 직시하고 내비게이션을 정확히 설정해야 할 때다. ‘제네시스(Genesis)’가 말 그대로 현대차, 아니 한국 자동차의 신기원이 되길 빌어본다.

수입 명차에 버금가는 편의사양 장착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45)이 12월 4일 ‘제네시스’를 별도 브랜드로 해 고급차 시장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자동차 전문가를 비롯한 대다수는 “현대차가 이제 그럴 때가 됐다”며 한결같이 응원을 보냈다. 지난 9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선보인 ‘제네시스 EQ900’은 기존 에쿠스 후속보다는 높은 급의 제네시스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어 보였다. 이제 벤츠와 BMW 같은 고급차도 곧 따라잡힐 듯 가시권에 들어온 듯 보인다. 그럼 현대차가 제네시스에 가속페달을 밟기만 하면 될 만큼 다 준비돼 있을까. 급가속으로 일부 구간에서는 벤츠나 BMW를 제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두 레이스에서 반짝 빛난다고 명차로 인정받는 게 아니다. 일단 입성하고 나면 상당 기간 자리를 지켜낼 실력과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일단 제네시스 EQ900의 특징부터 간단히 보면 현대차가 심혈을 기울였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고속도로 주행 지원시스템(HDA)이나 국산차 최초인 후측방 충돌 회피 지원시스템(SBSD) 같은 주행 보조기술이다. 향후 자율주행차 시대를 앞두고 현대의 기술력을 뽐낸 대목이다. 실제 주행 때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는 봐야겠지만 여러 편의사양은 수입 명차 뺨치는 수준이다.

12월 9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제네시스 EQ900’ 출시 행사에 참석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차량 왼쪽)과 황교안 국무총리(차량 오른쪽) 등이 박수 치고 있다.  / 현대차 제공

12월 9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제네시스 EQ900’ 출시 행사에 참석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차량 왼쪽)과 황교안 국무총리(차량 오른쪽) 등이 박수 치고 있다. / 현대차 제공

현대차가 고급화에 나선 배경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세계적 대중차 제조사로서 덩치를 키운 만큼 이제 폼 나게 만들어볼 때가 된 것이다. 이는 물론 수익성 제고와도 연결된다. 미국, 중국, 체코 등지에서의 현지 생산이 늘고 국내 인건비 상승을 고려하면, 한국 공장에서 최대한 값어치 높은 모델을 만들어야 일자리가 유지된다. 또 하나는 시대적 요인이다. 지금은 폭스바겐발 디젤 게이트 등을 계기로 전기차나 자율주행차 같은 차세대 차량으로의 급속한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이다. 기존 석유엔진 차에서 명성을 쌓아놓지 않으면 신개념 자동차 시대에 한순간에 후발주자에게 역전당할 우려가 있다. 마치 삼성·LG가 브라운관 기술에서 앞선 소니·파나소닉 같은 일본 업체의 아날로그 CR TV는 뒤쫓아갔지만, 액정화면(LCD)의 디지털 평면 TV 시대에 들어서며 ‘뒤집기 한판승’을 거둔 일을 떠올리면 된다.

고급화는 두 갈래 길로 나뉜다. 스스로 기술력을 쌓거나, 아예 다른 명차를 사서 키우면 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 빅3를 비롯해 자동차 업계가 휘청댈 때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첫 출시하며 고급화를 저울질했다가 접었다. 이후 고급 브랜드의 인수·합병(M&A)으로 프리미엄화하는 방식이 시장에서 거론됐다. 그러나 현대차는 ‘이제 재규어-랜드로버 정도는 성에 차지 않는다’며 외면했다. 고급 브랜드 재규어-랜드로버는 그해 인도 타타그룹에 넘어갔다. 중국 지리자동차는 2010년 볼보를 인수했다. 현대차는 스스로 브랜드를 키우는 길을 택했고 이제 시험대에 섰다. 배경은 자신감이다. 그럼 현대차 기술은 어느 정도에 올라 있을까. 이런 평가는 결국 소비자 몫이다. 적어도 제네시스 2세대까지 보면 아직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소비자가 적잖다. 제네시스 2세대 G330을 1년 넘게 모는 김모씨(45)는 “확실히 그랜저보다 코너링이나 고속 주행에서 한 단계 높아진 것은 분명한데, 차체가 무거워서 그런지 출발 때 반응이 굼뜬 편”이라며 “아직 사륜구동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연비 부담도 있어서 중고 BMW 520d로 갈아탈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첨단기술을 앞세우기 이전에 차의 기본은 달리는 능력이다. 먼저 엔진을 보면 이번 제네시스 EQ900은 세 모델 모두 GDi(가솔린 직분사) 엔진을 달았다. 쉽게 말해 기존 엔진과 달리 GDi는 연소실에 바로 휘발유를 뿌리는 덕분에 더 큰 폭발력을 낸다. 같은 크기 엔진이라도 힘이 좋다. 엔진 크기는 줄이되 고연비를 추구하는 이른바 ‘다운사이징’ 엔진 시대에 GDi 기술은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부담도 크다. 일단 연소실이 받는 충격이 커진다. 또 탄소(카본) 찌꺼기가 남기도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엔진 성능이나 수명을 줄일 수 있다.

미션 부분, 아직 세계적 기술과 격차
현대차도 과거 일본 기술을 들여온 실패 경험을 딛고, 2009년부터 GDi 기술을 적극 도입했다. 그러나 적어도 2012년 즈음까지 노킹(두드리는 소음) 증상이나 심지어 엔진이 깨지는 현상을 호소하는 소비자들이 더러 나타났다. 올해 9월 미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2009년 12월부터 2012년 4월까지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된 2.0ℓ, 2.4ℓ GDi 엔진을 탑재한 쏘나타 47만대에 주행 중 엔진이 멈출 우려가 있다고 리콜을 권고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GDi 단점은 이제 거의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급 제네시스에도 적용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말했다.

다음으로 주목할 부분은 변속기다. 사실 현대·기아차는 엔진 출력 등은 세계적 수준에 올라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현대차의 고급화에 아직 부족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미션이다. 엔진은 힘이 좋게 만들어도 바퀴로 연결시키는 중간에 변속기 기술이 떨어지면 효율이 반감된다. 초반에 현대차는 일본 교토 미션(KM)을 들여와서 쏘나타나 구형 그랜저 등에 써오다가 이후 국산화했다. 제네시스 EQ900에는 현대파워텍의 8단 변속기가 들어갔다. 아직 독일 고급차가 쓰는 ZF 변속기와는 기술력에서 차이가 난다.

[특집]‘고급차’ 제네시스, 넌 어떤 차냐?

이처럼 엔진, 미션의 ‘미세한’ 기술 격차는 사양으로 드러난다. 엔진 방식은 다르지만, 배기량이 비슷한 2016년형 벤츠 S500L(4.7ℓ)은 분당 회전수(rpm) 5250에서 최고 출력 455마력을 내는 데 비해, 제네시스 EQ900 5.0ℓ는 6000rpm에서 최고 출력 425마력을 보인다. 출력 차이는 크지 않은 편이라고 쳐도 문제는 토크다. 급가속을 할 때 치고 나가는 힘을 일컫는 토크는 운전 때 피부와 와닿는 주요소다. 디젤 승용차가 인기를 끈 것도 주로 높은 토크 덕분이다. 벤츠 S500은 71.4㎏·m, 제네시스는 53㎏·m로 최대 토크 차이가 난다. 특히 최대 토크가 구현되는 구간에 격차가 크다. 제네시스는 5000rpm에서 최대 토크가 나오는 반면, 벤츠는 무려 1800rpm에서 실현된다. 경쟁 차종으로 지목된 BMW 750Li(4.4ℓ)도 66.3㎏g·m의 최대 토크를 1800rpm에서 보여준다.

제네시스는 가속페달을 세게 밟고 엔진 회전수가 크게 올라가야 순간 가속력이 잘 발휘되는 데 비해 벤츠나 BMW는 낮은 회전수에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언덕을 오르거나 갑자기 치고 나가며 추월할 때 벤츠, BMW가 훨신 수월하게 느껴질 수 있다.

물론 제네시스 EQ900은 뒷좌석에 편히 앉은 회장·사장님을 위한 차여서 가속력이니 하는 항목은 운전기사나 신경 쓸 사안이라고 반박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제네시스 프리미엄화의 목적은 단지 회장님 차를 팔겠다는 데 있지 않다. 현대차는 2020년까지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포함해 6개 차종의 제네시스 브랜드를 늘리기로 했다. 나아가 고성능의 ‘N 브랜드’도 추가키로 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BMW가 M브랜드, 벤츠가 AMG를 내세우는 이유는 단지 비싼 차를 팔겠다는 게 아니라, 최고 기술력을 구현한 모델로 얻은 노하우를 여러 차급에 적용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향후 쏘나타나 아반떼 차급에서도 고급 제네시스 브랜드를 낼 수 있을지 소비자는 주목한다.

제네시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있어야
빼어난 디자인에 멋진 가죽 시트 등을 넣는다고 명차는 아니다. 앞서 엔진이나 변속기 못잖게 또 하나 가늠자가 서스펜션(현가장치)이다. 차가 달리거나 회전하고 멈출 때 충격을 흡수해 탑승자를 보호하고 운전을 편하게 해주는 장치다. 전기차 시대에 배터리나 전기모터를 달면 누구나 차를 만들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된 차를 만들기 힘든 이유가 서스펜션 기술이다.

소비자나 전문가는 국내 브랜드와 독일 고급차의 차이점으로 서스펜션도 자주 지적해 왔다. 차량 정비 전문가 박병일 명장은 “150㎞ 이상 달릴 때 차가 가라앉으며 탑승자가 속도감을 잘 못 느낄 만큼 안정감을 주는 서스펜션이 좋다”며 “떠다니는 게 아니라, 도로에 붙어 달리는 감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명장은 “대중차와 명차의 차이는 고속주로나 곡선주행 때 드러나는데, 차체를 꽉 잡아주는 수준이 차의 무게나 속도에 따라 달라야 한다”며 “일본 차도 아직 완성은 안 됐지만 전자식 자세제어장치(ESC)로 상당히 극복했다”고 평했다. 이번 제네시스 EQ900도 서스펜션에 신경을 썼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어댑티브 컨트롤 서스펜션(GACS)은 섀시 통합제어 기능을 포함해 고속선회나 장애물 긴급회피 상황에서도 정밀한 서스펜션 감쇠력 제어기술을 통해 보다 안전하게 차체를 보호한다”고 설명했다.

제네시스 EQ900은 앞선 제네시스 2세대와 함께 현대차를 한 단계 올려놓은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다수 전문가들은 정작 중요한 게 뚜렷이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항구 한국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각종 첨단기술이나 비싼 부품, 고급스런 디자인을 엮는다고 바로 명차가 되진 못한다”며 “고급차로서 제네시스의 정체성(identity)이 뭐냐”고 되물었다.

예컨대 BMW 하면 역동성을 떠올리는 소비자가 많다. 박혜영 BMW코리아 이사는 “혁신기술이나 탄소섬유 같은 소재 등을 엮어 ‘진정한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추구해 왔다”고 자평했다. 최근 디젤 게이트로 비난받지만 아우디의 경우 사륜구동 ‘콰트로’나 가솔린·디젤 직분사(FSI·TDI) 기술은 정평이 났다. 벤츠는 근래 수년간 디젤차 시동 결함을 비롯해 잦은 잔고장으로 체면을 구겨도 브랜드의 아성은 여전하다. “가솔린과 디젤 엔진의 산 역사라고 할 벤츠의 정체성은 벤츠 그 자체”라고 얘기하는 마니아층이 두텁다.

1989년 미국 시장에서 뒤늦게 프리미엄화에 나서서 성공시킨 도요타의 렉서스는 현대차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가격 대비 품질력으로 인정받던 도요타의 수뇌부가 1983년 “언제까지 싼 차로만 인식될 수는 없지 않느냐”며 명차 개발을 주문했다. 4000여명이 6년간 개발비 1조원 넘게 들여 약 450개 시제품을 만들어본 뒤 내놓은 게 렉서스 LS400이었다. 렉서스는 성공한 뒤 2006년에야 일본에 처음 들여왔을 만큼 철저히 미국을 겨냥한 브랜드다. 한국토요타 관계자는 “당시 실용적인 미국의 젊은 신흥부자를 주요 고객으로 상정해 최고급 오디오를 장착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직원들은 ‘도요타와 렉서스의 세계관이 다르다’는 말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덩치 크고 힘은 좋아도 시끄러운 미국 차와 차별화한 렉서스는 정숙성을 카드로 들고 나왔다. 이항구 위원은 미국 체류 당시 렉서스가 등장한 TV 광고를 생생히 기억한다. “보닛에 와인잔을 올려놓고 시동을 걸었는데도 흔들림 없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독일 아우토반에서 시속 150마일까지 속도를 올렸는데 엔진 소음은 거의 속삭이는 수준이었다는 현지 평가도 있었다. 이후 도요타는 하이브리드 기술력을 앞세워 렉서스에도 적용하며 조용함에 친환경성까지 가치를 더했다. 그럼 현대차는 어떤 자기만의 정체성을 보여줄 것인가. 정동수 창원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제네시스가 좋긴 한데 렉서스랑 비슷한 느낌이 든다면 소비자를 끌어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품사와의 협력, 고객의 신뢰 중요
구동·조향·제동 같은 기본이 갖춘 걸 전제로, 볼보가 추구했듯 튼튼함이나 안전성을 특화해볼 수도 있다. 현대차는 2016년형 제네시스가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 충돌시험에서 지난해에 이어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고 11일 밝혔다. 특히 스몰 오버랩 충돌(앞 범퍼 비스듬히 부딪치기)에서도 최고인 G 등급을 획득했다. 이번 제네시스 EQ900은 첨단 고장력강판 비율을 기존 16.3 %에서 51.7 %로 늘렸다. 또 비틀림 및 굽힙 강성을 약 1.8배 개선했다고 현대차는 밝혔다. 차는 달리는 게 주목적이지만 안전이 가장 중요한 가치여서 승부를 걸어볼 만한 분야다.

또한 내구 품질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많았다. 한 수입차 업체 임원은 “품질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품질이 안 되면 고급화는 불가능하다”며 “특히 내구성에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 중고 제네시스를 타도 성능에 차이가 없고, 자부심을 가질 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동수 교수도 “당분간은 이익을 남기기보다 수제품을 만든다는 각오로 전수 품질검사를 거쳐 불량률을 0에 가깝게 관리해야 평가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제네시스는 올해 3월 리어램프에 물이 새 들어갈 수 있어 국내 5000여대, 북미 2만6000여대를 리콜한 적이 있다. 세계적 명품 기타 브랜드인 깁슨은 품질관리를 위해 미국 테네시주의 몇 개 공장 위주로 최대한 수작업을 추구한다. 공장 안은 언뜻 보기엔 실망스러울 만큼 허름한 목공소처럼 생겼고, 먼지투성이다. 마감질 하나, 페인트 칠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하는 자세야말로 오늘날 깁슨이 선두자리를 지키는 비결이라는 걸 현대차도 본받을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과 상생을 통한 부품 경쟁력 강화도 중요한 대목으로 꼽힌다. 해외 부품을 조립해 고급차가 될 수도 있지만, 진정한 한국산 명품이 되려면 부품사와 같이 커야 한다는 얘기다. 독일차와 렉서스가 고급차로 올라선 배후에는 자국의 수준 높은 부품업체가 있다. 박병일 명장은 “볼트 하나하나가 명품이 돼야 한다. 5년이 넘어도 독일차의 특성이 유지되는 건 부품 덕분이다”라고 강조했다. 이항구 위원은 “BMW의 부품 중에 아시아 쪽은 10%도 안 되고 거의 다 유럽산이 들어간다”며 “현대차의 정체성을 얘기할 때 국산화율도 중요하게 평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세계 5위권 자동차 강국’의 맨 얼굴은 완성차 대수가 아니라, 부품 실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다양한 숙제들을 풀자면 연구개발(R&D) 투자를 크게 늘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2014년 연구개발비로 2조8441억원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는 2015 회계연도에 약 10조원을, 폭스바겐·아우디그룹은 지난해 14조원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쏟아부었다고 한다.

끝으로 명차의 반열에 오르는 데는 고객의 신뢰가 중요하다. 국내 소비자 마음을 얻지 못하고 명차로 불리는 브랜드는 어디에도 없다. 제네시스가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명차 브랜드로 올라설지, 그냥 ‘우리도 값비싼 차를 만들 줄 안다’는 자만에 안주할지 갈림길에 섰다. 경쟁업체는 물론 소비자가 채점표를 꺼내들었다. 축제는 성황리에 끝났다. 현대차가 초심으로 돌아가 실력으로 답할 차례다.

중국 전기차 몰려온다

중국의 전기자동차가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무섭게 달려오고 있다. 까딱하다간 스마트폰에서 화웨이·샤오미 득세로 삼성·LG가 고전하듯, 미래 자동차 쪽도 국내 브랜드가 추월당할 수 있어서 위기의식이 감돈다.

지난 11월 중국 충칭을 다녀온 이항구 한국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기차 굴기(떨쳐 일어남)’를 목격하고 왔다. 10월에 중국 일반 차량 내수 판매에서 현대차를 따돌리기도 한 장안자동차를 비롯해 리판자동차, 전기차 선두인 BYD(비야디) 등이 대대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 위원은 “리판의 전기차를 시승해보니 문짝과 차체 틈새가 벌어져 있는 등 조립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운행 자체는 문제가 없는 수준에 올랐더라”고 위기의식을 전했다. 까딱하다가는 우리가 중국 전기차의 부품에 맞춰 나가야 할 만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BMW의 미니보다 작은 리판의 전기차는 보조금 2200만원 정도를 받으면 580만원에 살 수 있는 수준이다.

중국의 올해 1~7월 전기차 등 신에너지차 판매량은 9만8900여대로, 전년 동기 대비 3배 늘었다. 올해 중국 신에너지차는 22만~25만대까지 늘어 미국(18만대 수준)을 따돌리고 1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핵심 부품인 배터리 기술력은 한국의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이 있어서 선두이지만, 전기차 경쟁력은 안심할 수 없다. 배터리 보급량으로 보면 중국이 최대로 올라섰다. 배터리 제조에 필수인 리튬, 코발트, 니켈 같은 기초 광물을 중국이 확보한 것도 위협적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전기차가 2016년 한국에 진출한다. 이달 중 제주에 전기버스 K9 3대를 시범 운행하고, 내년 초 전기택시 E6 100대가 들어온다. 이어 E6와 K9으로 서울 등지 전국 운송사업에도 뛰어들 기세다. K9은 한 번 충전에 300㎞ 이상 달린다고 알려졌다.

현대차도 대응에 나선다. 내년 초 친환경 브랜드 ‘아이오닉’을 내세워 하이브리드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 전기차(EV) 세 가지 모델로 출시키로 했다. 기아차도 내년 상반기 소형 하이브리드 SUV ‘니로’를 낼 예정이다. 다만, 수소연료전지차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적극 개발해 왔지만, 전기차보다 충전소 구축에 비용이 들어 현실화하기는 더 멀다는 평가가 많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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