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CJ헬로비전 인수 순항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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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 이통업계 1위와 케이블TV 1위의 합병… 방송통신업계의 핵폭탄

지난달 2일 방송통신업계에 ‘핵폭탄’이 떨어졌다. 무선 이동통신업계 1위인 SK텔레콤이 케이블TV 1위 사업자(SO)인 CJ헬로비전을 인수한다고 전격 발표한 것이다. 양사 합의안을 보면 SK텔레콤은 CJ오쇼핑이 보유한 CJ헬로비전 지분 30%를 5000억원에 인수한다. CJ헬로비전 나머지 지분 23.9%는 향후 양사 간 콜옵션(주식매수선택권) 등의 행사를 통해 SK텔레콤이 인수할 수 있도록 했다. 향후 콜옵션 비용까지 감안하면 CJ헬로비전 주식 53.9%를 인수하는 데 들어가는 실질비용은 약 9000억원 수준이다.

SK텔레콤은 인수 후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을 합병할 계획이다. 합병이 완료되면 SK브로드밴드는 상장법인인 CJ헬로비전에 통합돼 우회상장된다.

업계에서 유료방송과 무선 간 대형 합병이 이뤄지는 건 2009년 당시 KT와 KTF 합병 이후 6년 만이다. KT와 KTF의 경우 계열사를 합병한 사례였다. 아예 ‘남남’인 두 회사가 합병하는 건 사실상 첫 사례다. 그것도 1위 사업자 간 결합이다. 담당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전례가 없던 일이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하다”며 “핵폭탄을 맞은 거 같다”고 표현했다.

SKT, CJ헬로비전 인수 순항할까

KT “결사 반대” LG유플러스 “갈 길 멀다”
합병 소식이 들리자마자 경쟁사인 LG유플러스는 “갈 길이 멀다”며 손놓고 있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KT는 즉시 입장자료를 내고 “결사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 많은 변수를 따지자면 합병 승인이 날 때까지 험로가 예상된다. 합병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정부 부처만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미래부 등 3개에 달한다.

SK텔레콤은 계열사인 SK브로드밴드를 자회사로 편입할 때도 합병 대신 주식 전량을 매입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합병할 경우 정부 인가를 받아야 하고, 그에 따른 다양한 인가조건 들을 이행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다. 그럼에도 더 ‘가시밭길’인 CJ헬로비전 인수와 합병을 선택했다.

SK텔레콤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한때 국내 최고 ‘알짜 기업’이었던 SK텔레콤이지만 해마다 실적이 하향세다. 지난해만 해도 매출은 늘었지만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9.2% 감소했다. 올 들어 ‘철옹성’이라고 여겼던 이통시장 점유율 50% 선도 무너졌다. 가입자당 1만원 수준인 기본료도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뭔가 새롭게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터라 SK텔레콤이 몇 년째 새 주인을 찾고 있는 케이블업계 2위인 씨앤앰 인수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형희 SK텔레콤 이동통신망사업(MNO) 총괄이 12월 2일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설명회에서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 SK텔레콤 제공

이형희 SK텔레콤 이동통신망사업(MNO) 총괄이 12월 2일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설명회에서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 SK텔레콤 제공

그런 점에서 CJ헬로비전은 가장 적절한 매물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단 가격이 적절했다. 유료방송의 경우 한때 시장이 활황이던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입자 1인당 가치가 100만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번 거래에서 SK텔레콤은 CJ헬로비전 가입자 1인당 가치를 45만원에 책정해 사들였다. SK텔레콤 장동현 사장은 지난 7일 간담회에서 “씨앤앰은 가격이 안 맞아 인수가 안 됐고, CJ헬로비전은 적정한 가격에 나와서 일이 매우 빨리 진행됐다”며 소문이 사실이라고 확인해줬다.

갈수록 방송과 통신이 결합상품으로 묶여서 팔리는 추세다. 2010년대 들어 무선 이통시장과 유선 인터넷 시장의 성장이 사실상 정체된 시점에서 유일하게 성장하고 있는 곳이 결합상품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케이블TV 가입자의 경우 현재 20% 정도만이 결합상품에 가입 중이다. 케이블 업계 1위로 416만명의 가입자를 가진 CJ헬로비전은 결합상품 시장의 ‘블루오션’인 셈이다.

SKT, CJ헬로비전 인수 순항할까

공정위 방통위 미래부 승인 ‘가시밭길’
CJ 입장에서는 ‘계륵’이었던 케이블 사업을 접을 돌파구가 마련됐다. 케이블TV는 인터넷TV(IPTV)에 밀려 점차 유료방송 시장에서 비중을 잃고 있다. 지난 9일 발표된 ‘2015 방송산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IPTV의 경우 매출이 전년 대비 33.2%나 증가했지만 케이블TV는 1.4% 감소했다.

CJ헬로비전의 경우 지난해 1021억의 영업이익을 올려 전년(2013년)의 1157억보다 수익이 줄었다. 주요 수익원인 케이블TV 가입자 1인당 매출도 지난 3분기 기준 8458원으로, 2년 전인 2013년 1분기의 9320원에서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결합상품을 강화해 보기 위해 알뜰폰인 ‘헬로모바일’을 설립해 운영도 해봤지만 최근까지 누적 수백억원의 적자를 냈다. 매매가가 호가보다는 낮게 나왔지만 이번 거래로 그룹의 1700억 규모 유상증자에 SK텔레콤이 참여하는 등 향후 그룹 콘텐츠 사업의 든든한 ‘아군’으로 국내 최대 이통망 플랫폼사업자를 확보하게 됐다.

경쟁사들의 심기는 매우 불편하다. 그간 유선 인터넷과 유료방송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결합상품 시장에서 독주하던 KT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현재 유료방송에서 812만명으로 압도적인 1위인 KT지만, 양사가 합병하면 가입자 730만명 규모의 강력한 2위와의 대결이 불가피해진다. 유료방송과 이를 포함하는 결합상품 시장은 모두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시장이다. 가입자가 많을수록 더 유리한 가격에 더 많은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

3위 사업자인 LG유플러스 역시 2위와 격차가 더 벌어져 좋을 게 없다. SK텔레콤은 이미 지난해부터 별도의 영업조직을 놓고 SK브로드밴드의 유선상품과 자사의 이통상품을 결합해 판매해 왔다. LG유플러스는 이때부터 “SK텔레콤의 무선시장 지배력이 유선시장으로 전이되고 있다”며 강력하게 반발해 왔다. 공정위 제소 등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여기에 CJ헬로비전까지 들어오면 LG유플러스 입장에선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

통신비 인하문제를 놓고 SK텔레콤을 비판해온 새정치민주연합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합병 시 공정경쟁이 저하되고 SK텔레콤의 독과점이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케이블 업계도 울상이다. 업계 1위가 합병될 예정이고, 업계 3위인 씨앤앰도 매물로 나온 상태라 당장 대놓고 반대 목소리는 못 내고 있지만 케이블TV 업계의 하향세를 더 부추기는 일임은 분명하다. 수 년 전부터 매각 추진 중인 씨앤앰의 속은 더 타들어간다. 씨앤앰의 경우 매각가격을 최하 2조5000억원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씨앤앰의 가입자 규모는 238만명으로 CJ헬로비전보다 훨씬 적다. 이번 CJ헬로비전 매각을 고려한다면 씨앤앰이 희망하는 가격을 그대로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SK텔레콤은 이달 초 합병 승인요청서를 제출한 상태라 향후 90일 이내 결론이 나게 된다. 과거 KT와 KTF 간 합병 사례를 보면 합병 자체가 불허될 가능성은 낮다. 당시 공정위는 “합병한다 해도 경쟁사들이 대기업이라 시장경쟁이 크게 저하되거나 제한될 우려가 없다”며 조건 없이 합병을 허용했다.

문제는 방통위와 미래부다. KT와 KTF의 경우 당시 방통위가 허가를 내주면서 3개의 전제조건을 달았다. 전주·관로 등 통신설비 공동 활용, 인터넷 및 유선전화 번호이동제도 개선, 인터넷 콘텐츠 활성화(망개방) 방안 등이다. 합병 승인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번호이동제도 개선을 끌어낸 것은 SK텔레콤의 건의가 받아들여진 결과라는 평가가 나왔다.

KT와 LG유플러스 역시 SK텔레콤의 합병을 곱게 놔둘 리 없다. 합병 승인을 막을 수 없다면 최대한 얻어낼 것을 얻어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합병 자체를 막기보다는 본인들에게 유리한 합병 승인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과 시민단체 역시 합병 승인을 조건으로 기본요금 폐지 등 통신비 인하대책을 강력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이 이들의 요구를 얼마나 ‘방어’해낼 것인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다.

<송진식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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